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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안이 옆에 서게 됨으로써 머릿수는 똑같아졌다. 이제 남은 것은 실력. 마나 포션의 효력이 돌아 마나는 크게 문제가 없는 상태다.
키리안은 앞의 둘을 차갑게 응시하며 디엔트에게 전음을 보냈다.
{디엔트, 이번 일은 우리 둘이 해결할 테니 패배하기 전엔 나서지 말아줘.}
{응? 왜?}
막 나서려던 차였던 디엔트는 의외의 말에 멈칫했다.
{3:2는 너무 비겁하잖아? 저런 놈들을 상대로 셋이나 움직일 필요 있겠어?}
{헤, 그런가. 뭐 알았어.}
디엔트는 가볍게 승낙을 표시했다. 그 역시 레벨 차이를 아는 듯 했지만 너무나 자신만만한 그들의 모습에 크게 걱정을 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렇게 디엔트가 뒤로 살짝 물러났다.
전투의 시작은 대치 상태의 고요를 견디지 못한 메자르와 바카르 쪽이었다.
"스테인, 천공(穿空)!"
메자르의 외침에 따라 그의 씰로 보이는 스테인이 금빛 눈동자를 번뜩이며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커다란 소음과 함께 빛의 탄환이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피하기 힘든 속도. 아직 친화도가 극에 이르지 못해 생각하는 즉시 씰이 움직여 줄 수 없는 상태였기에 이런 류의 씰과의 싸움은 피곤하다.
몸을 살짝 틀어 주는 것으로 공격을 피한 후 곧바로 공격에 들어갔다.
"유하야."
키리안의 가벼운 부름. 그리고 쾌속하게 이어지는 유하의 주문.
"속박, 산!"
물을 격하는 유하의 새하얀 손. 그리고 그 손끝을 따라 뻗어나가는 은빛의 줄. 그것은 먹이를 옭아매는 거미줄 마냥 메자르들을 구속하기 위해 뻗어나갔다.
"이 정도로 당할까보냐!"
우습다는 듯 소리치는 바카르. 그리고 그의 파트너 세이자르가 나섰다.
"세이자르, 야수의 손톱!"
바크르의 명령에 세이자르는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앞으로 튀어나가더니 거친 왼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 박혀 있던 손톱이 순식간에 15cm 가량 늘어났다. 그는 흉기와 같이 변해버린 손톱을 빠르게 휘저었다.
샤아아악-!
물살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속박의 주술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여유만만하게 웃는 메자르와 바키르. 하지만 공격은 이제 시작이었다.
"바보 같으니."
키리안의 비웃음. 그 비웃음과 함께 카디안의 파트너, 네피엘의 성혈궁이 연신 빛을 쏘아내고 있었다. 수중(水中)을 가르는 여러 줄기의 빛살. 그것은 앞으로 나선 세이자르의 좌우를 노리고 짓쳐들고 있었다.
"아크 필드!"
성혈궁의 공격에 메자르가 급히 방어막을 쳤다. 붉은빛의 실드가 반구형으로 펼쳐지며 세이자르를 보호했고 성혈궁이 거기에 부딪쳐 밝은 빛을 뿜으며 소멸되었다.
"제법인데? 마염포!"
카디안은 메자르가 당황하지 않고 실드를 펼쳐내자 씨익 웃으며 자신의 스페셜 스킬을 시전했다. 연속으로 카디안의 손에서 뻗어나가는 마염포는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아크 필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찌직-
금이 가기 시작하는 아크 필드. 하지만 메자르는 오히려 웃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스테인, 천휘(天輝)!"
메자르의 외침에 스테인이 총을 어깨에 메고 눈을 빛냈다. 그리고 쏘아지는 엄청난 빛줄기. 조용하다 싶었더니 이것을 노렸던 모양이다. 눈 앞의 적이 그대로 가루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메자르. 하지만 카디안은 가볍게 웃었다.
"암광 배리어."
카디안은 가볍게 암광 배리어를 시전했다. 거기에 네피엘이 천사의 수호를 더했다. 두 겹의 실드를 시전한 후 카디안과 네피엘은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콰과광-!
빛은 너무나 쉽게 실드를 격파했지만 그 시간에 이미 카디안과 네피엘은 자리를 벗어난 상태였다. 게다가 그에 그치지 않고 다시 마염포와 빛의 화살을 쏘아내고 있어 메자르와 바카르의 이를 갈게 했다.
그들의 시선이 모두 카디안에게 쏠렸을 때였다. 바카르는 뒤에서 섬뜩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불길함에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키리안이 유하와 함께 서 있었다. 그의 입가엔 섬뜩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언제나 뒷통수 조심. 그럼 잘가라. 콘센트레이트 오라."
파앗-!
바카르가 무언가 하기도 전에 키리안은 볼 것도 없다는 듯 검을 찔러 넣었고 바카르는 그대로 게임 오버 되었다.
씰과 함께 사라지는 바카르. 무언가 해보기도 전에 공격만 당하다 어이없이 게임 오버 되어 버린 것이다.
"엇, 바카르!!"
옆에 있던 동료가 순식간에 당해버리자 당황하는 메자르. 그런 그에게 키리안은 차갑게 웃으며 검기를 몇 가닥 날려 주었다.
"젠장, 파이어볼 세퍼레이션!"
그의 외침에 따라 파이어볼이 여덟개 가량 떠올랐다. 세퍼레이션이 붙은 걸로 봐서 스페셜 스킬인 듯 하다. 빠른 캐스팅과 다수의 파이어볼. 물 속에서의 패널티를 별로 받지 않은 듯 한 모습이 틀림 없다.
파파팡-!
메자르가 날린 파이어볼에 의해 검기들이 상쇄되었다. 파이어볼은 그에 그치지 않고 키리안을 노리고 날아 들었다.
"유하야."
"폭발하는 화산의 힘을 간직한 화염이여, 내 앞의 적을 격(擊)하라. 폭염(爆炎)!"
빠르게 모습을 갖추는 주술. 그것은 파이어볼 세퍼레이션에 전혀 뒤지지 않는 사나운 화염 구체들이었다.
콰과과광-!
거칠 것 없이 쏘아져 나가 파이어볼들을 상쇄시키는 폭염. 메자르는 다시 한 번 파이어볼 세퍼레이션을 시전하려 했다. 하지만, 키리안은 피식 웃으며 공격을 멈췄다.
"바보 같은 녀석. 키리안이 뒷통수 조심이라고 했었잖냐."
메자르의 뒤에는 어느새 네피엘과 함께 카디안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잘가라. 아이스 에로우."
푸욱-!
카디안이 가볍게 시전한 얼음 화살은 너무나 쉽게 메자르를 꿰뚫었고 심장을 관통한 아이스 에로우에 의해 그는 치명타를 입었고 게임 오버 당했다.
너무나 쉽게, 그리고 허무하게 끝나버린 전투였다. 강렬한 합체기의 격돌 따위도 없었다. 그저 둘은 상대를 유린하다 뒤에서 너무나 간단한 스킬로 적을 끝내 버린 것이다. 키리안의 말대로 플레이어 간의 전투(PvP)가 아니라 차라리 PK에 가까운 결투였다.
카디안은 손을 툭툭 털며 키리안에게 말했다.
"어벙한 모습을 보여도 실력은 녹슬지 않았구나."
"그건 형도 마찬가지야. 아니, 상대가 너무 허접했다고 봐야할 걸? 이름을 부른 뒤 스킬을 시전하는 걸로 봐서 친화도도 우리보다 뒤졌을 거야. 속도면에서부터 상대가 안되는 거지."
"아아, 그런가."
둘의 평온한 대화에 디엔트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저 유쾌한 유저들이라고 봤던 그의 판단은 아무래도 심하게 빗나간 듯 했다. 실력면에서 우위라 생각했던 역시. 본 실력을 다 발휘해도 승률은 5:5. 숨은 강자들이었다.
"이봐들. 나 소외감 느껴."
디엔트는 대화가 잠시 멈췄을 때를 맞춰 끼어 들었다. 그의 목소리에 둘은 고개를 돌렸다. 키리안은 그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자신 역시 씨익 웃었다.
"아아 미안해. 오랜만에 잠시 훼까닥 해버렸다. 스틸에 관해선 우리 둘 다 최악의 기억이 있어서 말이지……."
웬지 어색한 분위기였기에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해룡을 잡은 후 얻었을 아이템들을 살피기 위해 인벤토리를 열었다.
"흐응, 별 것 없네. 죄다 상점행(行) 아이템이군."
"쳇. 해룡의 비늘이라도 하나 나오길 빌었는데."
키리안은 아쉽다는 듯 말했다. 기실 아리에가 방패에서 검을 뽑아드는 모습이 꽤나 멋있게 보여 그도 내심 하나 얻길 바랬었는데 결과는 '다음 기회에'였다.
"어차피 방패는 죽어도 안 쓸 거면서 뭘 아쉬워하고 그러냐?"
카디안이 그의 푸념을 듣고 한 소리 했다. 키리안은 그의 말에 그저 헤헤 웃었다.
"자, 그럼 대충 상황은 종료 됐으니까 돌아가자."
디엔트의 제안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도 꽤 된 듯 하네. 제한 시간(디 앱솔브를 플레이 할 수 있는 시간)도 거의 다 됐으니까 난 오늘은 여기까지다."
카디안이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어느 가상 현실 게임이든 그것을 플레이 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너무 장시간 플레이 할 경우 뇌에 무리가 가기 때문인데, 아무리 길어도 8시간을 넘길 수 없었다. 디 앱솔브의 경우엔 7시간 30분이었는데 그것을 표시하는 타임 리미트(Time limit) 창엔 -20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20분이 남았다는 소리였다.
"나도 마찬가지야. 디엔트, 그럼 내일 보자."
"뭐 나도 곧 나가려고 했으니까. 모두 내일 보자고."
그렇게 셋은 인사를 나눈 후 로그 아웃 했다.
고대유적의 유물
압- -);; 시간 잘못봐서 7시 40분에 일어나버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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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Eleven - First Event 고대유적의 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