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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르의 두 파트너가 동시에 야수의 손톱을 뽑아들고 달려든다. 혼자라면 그냥 단숨에 파고들어 끝을 볼 수도 있지만, 반원형을 이뤄 짓쳐드는 스물 하나의 적 때문에 시도할 수 없는 수법이다.
탓-!
키리안 일행은 단숨에 반원의 범위 밖으로 물러났다. 소수와 다수의 싸움에서 소수가 이기기 위한 가장 중요한 관건 중 하나는 포위되지 않는 것이다. 압도적 실력차가 없는 이상은 포위되면 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키리안은 오른쪽 대각선을 타고 물러나며 원의 끝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앞뒤 젤 것 없이 아리에를 불렀다.
"아리에!"
그의 뜻이 전해지자 아리에는 망설임없이 폭발적인 속도로 몸을 움직이며 원의 끝에 선 유저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연검기(聯劍氣)!"
레드 슬레이어의 검에서 연속적으로 붉은 검기가 피어올라 적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목표가 된 유저는 타워 실드를 든 파트너를 앞세워 막으려 했지만 레벨 182에 달하는 힘을 지닌 아리에의 연속된 검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슈슈슈슉-!
검기는 같은 부위를 시간차를 두고 갈랐고 씰과 함께 유저는 허무하게 게임 오버 되었다. 이로서 18:9.
"이, 이익! 죽어 버려!"
단숨에 동료 하나가 당하자 츠아스 길드원들은 진형을 바꿔 산개하며 검기와 마법을 날려댔다. 팔방(八方)에서 날아오는 검기와 마법의 그물은 상당히 촘촘해 모두 피해내기가 여의치 않았다.
"사이 배리어(Psi barrier)."
일행이 곤란해하자 단숨에 아리에가 다가와 사이 배리어를 펼쳐 주었다.
"땡큐. 그럼 이 틈에 공격 준비를 해보실까나."
일행은 튼튼한 사이 배리어를 믿고 큰 기술을 준비했다. 바로 합체기. 카디안과 디엔트는 합체기를 시전하기 위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 것이다.
"흐음, 유하와의 친화도가 얼마지?"
키리안은 일행이 합체기를 외우자 자신만 따로 떨어진 상태가 되었다. 아리에와의 합체기는 당연히 불가능하고(기술 쓸 마나도 못 받쳐 주는데 합체기는 무슨), 남은 것은 유하 뿐.
[유하와의 친화도 : 은근히 신경을 씀]
"흠냐, 아직 안되는군."
총 일곱 단계로 나뉘는 친화도 중 네번째 단계에 이른 후부터 합체기의 시전이 가능해진다. 키리안은 유하와 현재 세번째 단계에 이르렀으니 아직 합체기를 쓸 수 없다.
"아쉽네에."
키리안이 투덜거리자 아리에가 한 마디 했다.
"내가 있는 이상 합체기는 오히려 독이야."
"에, 그래?"
합체기 한 번에 드는 내력은 최소 총 마력, 기력의 1/3, 최대 3/4이다. 사실 유하 정도의 파트너가 둘이라면 합체기 한 번 정도 쓰고 바로 마나 포션을 쓰면 되겠지만 키리안의 파트너 중 하나는 아리에다. 그 무지막지한 마력 소모를 생각해 볼 때, 합체기 한 번은 현재 수의 열세를 겪지 않게 해주는 최대 전력인 아리에의 행동 범위를 엄청나게 축소시키는 것이다.
"쳇."
키리안은 아쉽다는 듯 끌어 올렸던 마력과 기력을 가라앉혔다. 아쉽게도, 튀는 역할은 카디안과 디엔트에게 맡겨야 했다.
"이거 맞고 그냥 가라! 심연의 그림자 속에 감추어져 있는 혼돈. 혼돈속에 존재하는 심연의 불꽃. 그 불꽃의 축제를 벌여라! 아바돈 오브 카오스!"
"천공을 가르는 윤회의 강줄기. 일곱 번째 별빛에 의해 이어진 그 근원에 존재하는 한줄기의 빛. 에테리온!"
검기와 마법이 줄기차게 사이 배리어를 때려 이제 아리에도 슬슬 힘에 부칠 때 드디어 카디안과 디엔트의 합체기가 터졌다.
카리나의 상징물인 반지가 변한 검붉은 색의 스태프를 쥐고 시동어를 외우자 폭발적인 마력과 기력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곧 파멸의 불꽃이 카리나의 두 손에 모여들었고, 그녀의 의지에 따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화르르륵-!
폭발은 없었다. 오직 먹이를 찾아 땅을 타고 뱀처럼 뻗어 나갈 뿐. 공격에 치중했던 많은 유저와 씰이 그대로 휩쓸려 나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속타.
디엔트가 힘차게 시동어를 외치자 아세리아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앳된 소녀의 모습을 한 그녀는 카디안의 네피엘과는 다른 느낌의 부드럽고 잔잔한 성력을 뿜어냈다.
잔잔하고 부드럽지만 마치 바다와 같은 거대한 성력이 아세리아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반원형의 그것은 일행을 보호하고 적을 밀어냈다. 그리고, 적이 기력을 뿜어내자 갑자기 흉포하게 변했다.
츠츠츳-!
잔잔하기만 하던 힘이 고리를 이루더니 광포한 기세로 적을 향해 날아들었다. 밀려나는 것에만 신경 쓰던, 그리고 카디안의 합체기에 이미 반쯤 혼이 빠졌던 유저 몇이 또다시 그대로 고리에 얻어맞아 저 멀리 나자빠졌다.
"후우, 후우. 이때다, 키리안. 가라~!"
합체기를 쓰느라 지친 카디안과 디엔트. 마나와 기력량이 문제가 아니다. 그 행위 자체에 드는 스테미너가 엄청난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의 효과는 있어서 대부분의 유저와 씰이 큰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지금 멀쩡한 것은 단 한 명 키리안과 그 씰들. 아리에의 사이 배리어가 있었기에 발생한 상황이었다.
"좋아, 그럼 맡겨 두라고!"
키리안은 힘차게 소리치며 컨트롤 바이탈리티를 이용해 기력을 돌리며 유하와 함께 적들 사이를 누볐다. 아리에는 따로 행동하며 유저들을 가볍게 게임 오버 시켜나갔다.
"이, 이익!"
가장 먼저 만난 것은 메자르였다. 카리나의 불꽃에 당했는지 씰과 함께 반쯤 익은 모습이었다. 키리안이 나타나자 발악하듯 마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주문을 외우기도 전에 빠르게 찔러진 키리안의 검에 가볍게 게임 오버 당하고 말았다.
유저들만을 노렸기에 싸움은 너무나 간단하게 끝나 버렸다. 사실, 아리에가 사이 배리어를 쓰지 못했다면 싸움은 배로 어려워졌을 수도 있었다. 오히려 질 수도 있었던 상황.
승리의 요인은 적들이 일행을 너무 쉽게 보았다는 것에 있다. 덕분에 그 어떤 방해도 없이 방심한 적들에게 합체기를 연속으로 먹일 수 있었던 것이다.
"…너무 쉽게 끝나 버렸네."
"그러게."
일행은 머리를 긁적였다. 너무나 싱거운 싸움이었다. 그들이 좀 더 침착하게 대처했으면 수 배는 더 어려웠을 싸움이 별다른 피해도 없이 끝나버린 것이다.
"그럼 사냥터로 가보실까?"
키리안은 검을 다시 검집에 꽂고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채 세 걸음을 걷지 못하고 멈춰야 했다.
"…일행이 더 있었군."
키리안의 정면에 네 명의 유저가 나타났다. 검은빛의 화려한 복장으로 통일된 모습, 왼쪽 가슴에 새겨진 붉은빛의 형이상학적인 문양이 그들이 같은 길드 소속임을 알려 주었다.
디엔트가 그것을 살피더니 말했다.
"츠아스 길드의 문양이군. 복장의 모양을 보니, 적어도 우리가 방금 상대한 졸개들보다 몇 단계는 높아 보여."
"골 때리는군."
카디안이 귀찮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싸움 실력이 제법이더군. 아무리 허접한 놈들이라 해도 그렇게 가볍게 처리해 버리다니."
네 명 중 검은 머리카락을 짧게 기른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의 양쪽엔 3m에 달하는 거대한 키를 지닌 거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로봇물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묵빛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손에는 거대한 메이스가 들려 있었다.
키리안이 그의 말에 너스레를 떨었다.
"아아, 별 거 아냐. 다 그놈들이 방심해서 그런 거니까. 아무리 쪽수가 많아도 이건 2D가 아니니까. 그런 정신 상태로 가상 현실의 전투를 치르는 건 무리지."
2D의 단순한 주고받기 식의 전투가 아닌 실제의 가상 현실 전투. 키리안 일행에게 게임 오버 당한 일곱은 그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부족했다.
사내가 키리안의 반말에 눈썹이 꿈틀했다. 하지만 용케 참아내며 말했다.
"너의 씰, 정확히는 은청색 머리카락의 씰, 아무래도 너무 과분한 능력을 지닌 것 같군."
사내는 아리에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마 사이 배리어가 모든 공격을 막아낸 것을 보고 아리에의 능력이 보통이 아님을 알아본 것 같았다.
"확실히 그렇지. 사실 내가 아니라 제대로 된 유저를 만났다면 그놈들 정도야 한 방에 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사실 보지 않았다면 그냥 넘길 수도 있는 일이지만, 보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군. 그래도 같은 길드원이니 복수하지 않을 수 없는 거 아니겠나."
키리안의 예상대로 이것저것 말해도 결국 한 판 붙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봐, 난 돌려 말하는 거 싫어해. 레벨로도 씰로도 딸리…… 켁!"
한참 분위기 멋드러지게 잡고 말하는 그는 갑자기 느껴지는 뒷통수의 고통에 머리를 부여잡아야 했다. 그의 뒤에는 아리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물론, 주위엔 죽음의 오라를 풍기고 있다.
본능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단숨에 깨달은 키리안은 다시 자세를 잡고 말했다.
"아, 잠시 실수했군. 레벨로는 딸리지만 씰로는 전혀 딸리지 않으니 얼마든지 상대해주지."
"……."
뒷통수 얻어 맞고 다시 자세 잡고 말해봐야 이미 사라진 카리스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개그만이 남을 뿐.
키리안은 분위기가 상당히 좋지 않자 볼 것 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왜 분위기가 이따구야! 문답무용! 그냥 덤벼!"
그래도 쪽팔리는 것은 아는지 이리저리 검을 휘둘러대며 무마하려하는 노력이 가상하다.
"…그쪽이 셋이니 이쪽도 셋만 나서겠다."
사내의 옆으로 두 명의 유저가 붙었다. 각자 푸른색과 붉은색의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의 씰은 사내와 같은 것이었는데 다른 것이라곤 색깔 뿐이었다.
키리안의 옆으로도 디엔트와 카디안이 섰다. 이번엔 이기기 힘들다. 하지만 물러설 생각은 없다. 게임일 뿐이니까 자존심 정도는 지킬 수 있는 거다. 져도 잃는 것은 없다. 그저 한 번의 게임 오버만이 있을 뿐!
"그럼, 덤비라고!"
재회, 그리고 만남
헤유유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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