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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리안 일행은 언제든 산개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앞의 적들을 견제했다. 호기롭게 소리치긴 했지만 홀로 튀어나갔다간 메이스에 그대로 떡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주인님, 미리 말해두는데 마나 포션 제대로 준비해. 저놈들, 레벨이 160대야. 씰도 비슷해. 어떻게든 세인트 블레이드를 쓸만한 여건만 만들면 이길 수도 있어. 알았지?}
{응.}
가볍게 대답했지만 행동은 절대로 가볍지 않았다. 그럭저럭 싸울 줄 아는 놈들이다. 능력도 이쪽보다 월등하게 높다. 비록 아리에가 레벨이 180대라지만 키리안의 마나량과 사용량에 한계가 있어 그나마도 십분 발휘할 수 없는 상태. 이 싸움, 어렵다.
키리안은 힐끔 일행을 살펴봤다. 카디안은 언제든 자신과 보조를 맞출 수 있도록 자세를 잡고 있었고 디엔트는 지원이라도 요청하는지 전음을 보내고 있었다.
대충 상황을 살핀 뒤엔 적을 눈이 아프도록 주시했다. 틈을 잡아야 했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상태에 서기 위해선 약점을 찾아 노리는 수밖에 없다.
슥-
키리안의 검이 살짝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그에 따라 적들의 시선도 오른쪽으로 살짝 이동한다.
{가장 왼쪽의 푸른색 거인! 오른쪽 무릎 관절 부위의 틈!}
키리안은 빠르게 아리에와 카디안에게 전음으로 소리친 뒤 몸을 날리며 소리내어 외쳤다.
"오른쪽 붉은색 거인! 오른쪽 팔꿈치 부위의 틈!"
크게 소리친 그 목소리를 들은 적들은 단숨에 정신을 오른쪽으로 돌렸고, 전음을 듣지 못한 디엔트는 엉겁결에 붉은 거인에게 마법 세례를 퍼부었다.
파지직-
뇌전의 정령의 힘이 급속히 형성화되며 한줄기 뇌전이 되어 거인에게 쏘아졌다. 그에 그치지 않고 그의 파트너인 아세리아가 백색의 활 레이시아를 이용해 세인트 에로우를 쐈고 데미시온이 창백하리만치 새하얀 왼손에 검붉은 빛의 암화(暗火)를 형성해 쏘아보내 적을 휘감으려 했다.
순식간에 쏘아진 여러가지 공격에 적의 정신은 좀 더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키리안 또한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흥, 간단하군."
붉은 거인의 주인, 아사트는 가소롭다는 듯 오른손을 내밀어 스펠을 외웠다. 그리고 붉은 거인은 메이스를 크게 휘둘러 돌풍을 일으키는 것으로 디엔트의 모든 공격을 해소시켰다.
"플레임 스피어(Flame spear)."
그녀는 머리카락과 거인에서 짐작해 볼 수 있듯 화염 속성을 주로 익힌 유저였다. 플레임 스피어는 그녀의 관점에서 볼 때 분명히 하급의 마법이었지만 키리안을 상대하기엔 전혀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더불어 키리안의 다른 공격에도 분명히 대처할 수 있게 여유를 둔 것이었으니 생각 이상으로 실력이 있는 유저였다.
'쳇. 제법이잖아?'
키리안은 기력을 다리로 쳐내듯 밀어내며 몸을 띄웠다. 그로 인해 적의 공격이 키리안에게 집중될 찰나였다. 갑자기 왼쪽에서 공격이 들어왔다.
"홀리 윈드 커터!"
카디안이 자주 쓰는 마법 중 하나인 홀리 윈드 커터였다. 그것은 푸른 거인의 왼쪽 무릎의 갑옷을 잇는 틈새를 정확히 노리고 들어왔다.
카카카캉-!
틈새를 강타한 홀리 윈드 커터는 쇠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소멸되어 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속타.
"마나여, 검에 머물러 그 예기를 더하라! 인첸트 샤프(Enchant sharp)!"
키리안이 벌어준 시간 동안 인첸트 웨폰보다 상위의 절삭성 상승 마법인 인첸트 샤프를 건 아리에는 기력을 검에 모아 푸른 거인의 갑옷 틈새를 쳤다.
캉-!
잘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일행, 그리고 아리에. 하지만 들린 것은 믿을 수 없게도 격타음이었다. 무적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아리에의 검이 막힌 것이다.
"말도 안돼!"
일행 모두의 심정이었다. 그것은 아리에가 제일 컸다. 갑옷의 틈새를 노리고 정확히 잘라 들어갔는데 막힌 것이다. 좁은 틈새에 살짝 걸려 있던 갑옷이 아리에의 검을 막았다.
"훗. 덴드론의 갑옷이 지닌 방어력은 그야말로 경악할 수준이지. 겨우 검기와 인첸트 마법으로 뚫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검은 머리카락의 사내는 놀라는 일행에게 가볍게 웃으며 손가락을 저었다.
"언제 이런 개사기 씰이 생긴 거야!"
아리에는 신경질적으로 날아오는 메이스와 마법을 피해내며 검에 기력을 모았다.
"이것도 막나 보자! 이글 오브 라이트닝(Eagle of lightning)!"
아리에는 검에 뭉쳐든 거대한 푸른빛의 뇌전검기(雷電劍氣)를 푸른색 거인에게 날렸다. 거인은 그것에 맞서 메이스를 크게 휘둘렀다.
콰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푸른색 거인이 뒤로 날아가 나자빠졌다. 하지만 뇌전검기의 덩어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조각조각 흩어져 하나의 검기가 되어 적들에게 내리꽂혔다. 아리에가 자랑하는 스페셜 스킬 중 하나인 이글 오브 라이트닝의 효과였다.
"쳇. 파이어 비트(Fire bit)."
아사트가 혀를 차며 아이 주먹만한 작은 불꽃의 구체들을 띄워 뇌전검기에 맞섰다. 그 대단한 효과를 지닌 이글 오브 라이트닝의 약점인 마법 공격, 방어 중 공격을 택해 대응하는 아사트였다.
검을 들고 대항한 둘은 꽤나 고생했지만 아사트는 마법 공격으로 그것을 상쇄시켰던 것이다.
아리에는 이글 오브 라이트닝으로 끝내지 않았다. 이 정도론 부족하다 느낀 그녀는 이글 오브 라이트닝을 쏘자마자 다음 공격에 들어갔다.
"빛이여, 나의 앞을 가로막는 적에게 폭풍의 잔혹함을! 스톰 라이트(Storm light)!"
일전 아베스 던전에서 보였던 그녀의 공격 스킬 중 하나인 스톰 라이트가 다시 재현되었다. 광검을 형성하지 않았기에 그 위력은 전에 비해 약해 보였지만 여전히 위력적인 백색의 검기가 폭풍이 되어 몰아쳤다.
"큭, 뭐야 이 말도 안되는 위력은?"
사내와 일행은 생각 이상으로 강력한 검기가 몰아치자 당황하며 방어막을 쳤다. 거인들은 왼팔에서 거대한 방패를 생성해 검기의 폭풍을 막았지만 여기저기에 검기의 흔적이 남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쾅-!
마지막으로 거대한 검기가 거인의 방패를 두들기는 것으로 스톰 라이트는 끝이 났다. 키리안은 그 사이 마나 포션(대)을 하나 마신 상태였다.
"후, 어떠냐?"
아리에는 검으로 거인들을 보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거인들이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듯 방패를 없애고 웅크렸던 몸을 일으켰다. 검기에 여기저기 갑옷이 긁혀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그 주인들 또한 큰 피해는 없어 보였다.
"젠장, 이걸론 안된다는 거야?"
아리에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자신의 주인님을 쏘아봤다. 스톰 라이트는 그녀가 지닌 스킬 중 하위에 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명색이 최강의 씰인(자타가 공인하는) 자신이 사용하는 것인데 겨우 이 정도라니. 속 터진다.
"으아아, 주인님! 안되겠다. 지금부터 인트(int)랑 매직 마스터리에도 좀 투자해! 그렇게 마나가 딸리니까 기술 하나 제대로 사용 못하잖아아아!"
"예예, 미안해요 미안해."
키리안은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곤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씰이었군. 키리안이라고 했던가? 네가 다룰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아닌 것 같은데?"
사내의 지적은 정확했다. 사실, 이 말도 안되는 조합이 디 앱솔브 내에 알려지면 모든 유저의 턱이 빠져 버릴 것이다. 최강의 씰과 초보. 성립될 수 없는 조합이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키리안은 머리를 긁적였다.
"어이어이, 그런 건 신경 쓰지 말자고."
사내가 픽 웃었다.
"그래, 이번엔 우리가 가도록 하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덴드론들이 움직였다. 쾌속한 속도로 거리를 줄인 그들은 사정없이 메이스를 휘둘렀다.
키리안 일행은 감히 맞받아치지 못하고 몸을 굴렸다.
"이거나 먹어!"
컨트롤 바이탈리티로 오른손에 모든 기력을 집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라 스플리트, 콘센트레이트 오라. 그것을 십분 발휘한 틈새를 노린 쾌속한 찌르기!
카아앙-!
하지만 돌아온 것은 손과 팔의 저릿함 뿐이었다. 아리에마저 어찌하지 못한 덴드론의 갑옷을 키리안이 어찌하는 것은 무리였다.
다른 일행도 사정은 비슷했다. 차라리 공격 위주에 방어력이 취약하다면 쉬웠을 것이다. 레벨이 부족해도 타격을 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들은 극상의 방어력 위주다. 속도가 느리고 명중률도 부족한 편이어서 피할 수는 있었지만 타격은 주지 못한다.
'젠장, 아리에마저!'
그나마 그 방어력에 대항할 수 있는 아리에마저 무슨 이유인지 위태롭게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제대로 공격 한 번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무슨 이유가 있겠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마나가 급히 소모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큭!"
메이스의 강렬한 풍압에 키리안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순간의 시야차단. 그리고 날아오는 덴드론의 킥.
"폭발하는 화산의 힘을 간직한 화염이여, 내 앞의 적을 격(擊)하라. 폭염(爆炎)!"
콰과과광-!
키리안을 위기에서 구한 것은 유하였다. 강력한 물리력을 지닌 폭염의 술(術)로 덴드론의 발을 집중적으로 격타했고 덴드론은 균형을 잃고 쿵쿵거리며 물러났다.
"후우, 고맙다 유하야."
그녀는 대답 대신 미약한 미소를 보여 주었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절대에 가까운 방어력. 그것을 뚫지 못하는 것이다.
쾅-!
키리안 쪽으로 은청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아리에가 날아왔다. 해룡의 비늘로 몸을 감싼 그녀는 메이스를 정면으로 막아낸 듯 키리안이 기력을 아래로 집중하며 받았는데도 꽤 뒤로 밀려나야 했다.
아리에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도 없이 키리안의 품에서 벗어난 뒤 해룡의 비늘을 인벤토리에 넣었다(씰에게도 인벤토리가 있다). 그리고 위시 에이전트를 들었다.
툭-
그녀 특유의 멋드러진 자세로 위시 에이전트를 잡은 그녀는 말없이 자신을 날린 푸른색의 거인을 보았다. 자신의 검을 막아낸 발칙한 녀석. 드래곤조차 힘겹게 막아내던 검을 막은 녀석, 그냥 둘 수는 없다.
아리에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섯 힘의 정점. 그 정점의 중심에 존재하는 근원의 빛. 지금 나의 검이 되어 강림하리라. 세인트 블레이드(Saint blade)!"
파아아앗-!
그녀의 앞에 육망성이 빠르게 그려지며 빛을 발했다. 그녀의 레어 스킬, 세인트 블레이드가 시전된 것이다.
파지직-!
위시 에이전트가 중심에 닿자 곧 빛은 그 앞에 모여 하나의 광검을 형성했다. 그녀가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한 수, 세인트 블레이드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레어 스킬…? 어떻게? 힘은 느껴지지 않았는데?"
가장 경계해야 할 아리에가 꼼짝 못하자 승리를 확신했던 사내로선 뒤통수를 얻어맞은 격이었다.
사내의 일행이 당황하자 아리에는 통쾌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훗. 하이드 마나 포스(Hide mana force)를 쓰고 레어 스킬의 스펠을 외우니 죽을 맛이더라.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그랬다. 그녀가 약세를 보인 것과 마나를 급속하게 소모한 것은 지쳐서가 아니었다. 레어 스킬의 스펠을 외우면서 주문을 외우는 힘든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2차전 시작이다!"
아리에가 호기롭게 소리치며 푸른 거인에게 달려들었다.
재회, 그리고 만남
..글 날려먹었습니다.
...씨..부..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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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Twelve - 재회, 그리고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