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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이잉-
텔레포트 후 느꼈던 그 청량한 바닷바람을 다시 맞으며 일행은 바다 위 하늘을 날고 있었다. 디 앱솔브 최강의 몬스터 중 하나인 드래곤의 등 위에서 넓디 넓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기분은 초보인 일행에게 있어 참으로 멋진 경험이었다.
공중을 통해 이동하는 것은 속도와 쾌적함이 보장되는 것이었지만 하늘엔 오직 라시드의 화이트 드래곤만이 유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모두 이유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비행이 가능한 씰, 그 중 마법으로 날아야 하는 인간형이나 그와 유사한 씰은 절대로 이 먼거리를 날아서 갈 수 없다. 4클래스 비행 마법 '플라이'는 애초에 장거리 이동이 불가능하고, 7클래스 비행 마법 레비테이션이라 해도 대륙에서 배를 타고 1시간 30분은 걸리는 거리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정은 비행 몬스터를 테이밍해서 씰로 부리는 유저도 비슷하다. 유저 하나를 태우고 난다해도 오랜 시간을 지속할 수는 없었다. 드래곤급의 몬스터를 제외하면 최고에 달하는 몬스터인 와이번 등의 경우에도 유저를 태우고 50분 이상을 나는 것은 상당한 스테미너의 소모를 가져온다.
마나가 받쳐주는 고수가 비행 몬스터를 혼자서 탄다고 해도 레벨이 250은 넘어야 섬까지 그럭저럭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이 정말 무식하게 힘을 빼는 짓인지라 차라리 배를 타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라시드는 달랐다.
그는 레벨이 286이었고, 실리에르는 레벨이 290이다. 레벨로만 따져도 문제가 없다. 더불어, 실리에르는 화이트 드래곤이다. 최강의 육체와 무한에 가깝다고 평가되는 그 엄청난 육체적 능력으로 인해 이런 초장거리 비행도 문제 없이 해낼 수 있는 것이다.
"드래곤 마스터라… 판타지의 로망이군."
"으음, 나도 고수가 되면 드래곤 마스터의 칭호를 얻어봐야지!"
카디안이 슬쩍 혼잣말을 흘리자 키리안이 주먹을 불끈 쥐며 낮게 외쳤다.
"에에, 1년쯤 잡아야 하나?"
"흐응, 내가 있으니까 대충 8개월 걸리겠다."
"드래곤 마스터라… 나는 엔젤 마스터, 데몬 마스터의 스페셜 클래스를 획득하려 하는데, 서로 열심히 해보자고."
카디안, 아리에, 디엔트 순으로 키리안의 말에 대한 반응이 있었다.
"아, 근데 스페셜 클래스는 정확이 어떤 개념이야? 내가 알기론 직업은 3차가 끝이라고 하던데……."
키리안의 초보자다운 질문에 대답해 준 것은 아리에였다.
"정확히 알고 있어 주인님. 분명히 공식적인 직업은 3차가 끝이야. 하지만, 특정 씰과의 성장, 조건을 만족할 경우 말 그대로 특별한 직업을 얻을 수 있어. 아니, 명성에 따른 칭호라고 해야 할까?"
"명성에 따른 칭호?"
"응. 일단 전직을 두 번 해서 3차 직업을 얻고 함께 성장한 파트너와의 친화도가 최고조에 이르면 함께 고급 퀘스트를 수행해 나가는 거야. 그렇게 하다보면 언젠가 자신의 파트너와 관련된 퀘스트를 수행하게 돼. 그것을 몇 번 하다보면 어느 순간 퀘스트 수행자와 파트너에 딱 맞는 호칭이 주어지는데, 그것이 스페셜 클래스야."
"아하, 그렇구나아."
고개를 끄덕거리는 키리안. 아리에는 잠시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전음으로 키리안에게 말했다.
{주인님, 만약 우리 사이가 많이 가까워지게 되면 말이지… 언젠가는 '위시 에이전트(Wish agent)'의 칭호를 얻게 될수도 있을 거야.}
"…위시 에이전트?"
미약한 소리로 키리안은 아리에가 말한 스페셜 클래스를 말해보았다. 위시 에이전트. 그것은 아리에의 클래스였다. 어떤 직업에서 전직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클래스. 기실 그것은 씰에게 있어 3차 다음의 최종 직업인 스페셜 클래스였다. 다수의 스페셜 클래스 취득이 가능한 유저와는 달리 씰에겐 단 하나의 스페셜 클래스만이 존재할 뿐이다.
"응? 위시 에이전트? 키리안… 이라고 했던가? 그거 어디서 들은 거야?"
하늘을 날며 대화를 하는 동안 어느새 말을 놓게 되었기에 넷의 거리는 꽤 가까워진 상태였다.
라시드의 물음에 키리안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흐응, 신기하네. 방금 마스터 랭커 아레이나르의 스페셜 클래스를 말하지 않았어?"
라시드의 물음에 옆에 있던 아리에가 움찔거렸지만 키리안은 별반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의 관심이 라시드에게 옮겨간 까닭이었다.
"에, 마스터 랭커요?"
"그래. 마스터 랭커 아레이나르. 최고 최강의 유저. 유저 최초의 기검술사였던 그는 암은청한검이란 최강의 유저 소드(유저가 사용하는 검) 소유자이자 최강의 씰 소유자였는데 말이지. 마법사에 가까운 그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검술을 높일 수 있었던 게 절대적인 위력을 보이던 암은청한검 덕분이었을 정도로 엄청난 검이었지. 그의 씰만 해도 3스킬 12레벨 마스터란 경이적인 사이 배리어를 사용해서 자그마치 웜 급의 드래곤 브레스를 정면에서 막을 정도였어. 그야말로 절대적 방어 능력이었지. 그것 뿐만이 아냐. 방어 위주인 그의 씰은 절대적 공격 스킬마저도 소유하고 있었어. 그것이 바로 위시 에이전트! 그 씰의 스페셜 클래스 네임이기도 한 그 스킬은 그야말로 드래곤마저도 날려버릴 수 있는 절대적인 합체기였지. 그야말로 천상의 씰. 물론, 게임인 이상 2, 3위가 함께 덤비면 승률은 5:5일 정도지만 단신으론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그야말로 최강의 랭커지.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얼마 전에 게임을 접었지. 들리는 소문엔 뇌에 무리가 와서 어쩔 수 없이 게임을 떴다고 하더라고. 사실인진 모르겠지만……."
기나긴 설명이었다. 그리고, 키리안은 그 긴 설명 중에서 경악할만한 것 하나를 집어낼 수 있었다.
"저기, 분명히 암은청한검이라 했죠?"
복잡한 표정으로 묻는 키리안에게 라시드는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맞아. 암은청한검이야. 푸른빛의 거대한 파도처럼 몰아치는 검기를 부를 수 있는 매직 소드(Magic sword) 암은청한검."
"나, 그거 얻었는데……."
짜릿-!
갑자기 일행(아리에 포함)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사시미 저리가라 할 정도로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키리안을 응시했다. 그 눈빛에 담긴 것은 '계속해 봐'였다.
"아, 그러니까 말이지, 그거…… 끙! 모르겠다. 어차피 큰 비밀도 아니니까."
키리안은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꼭 비밀로 해야하는 일도 아니고 이들도 남은 아니니 말하기로 결정했다(…실은 살을 도려낼 듯한 일행의 눈빛이 두려웠다).
"음, 그러니까 내가 레벨이 5일 때였을 거야. 레벨 5를 만들고 씰을 얻기 위해 노비스 시티로 향하던 중이었거든. 근데 성문 앞에서 은색 머리카락의 유저 하나가 허공답보로 날아다니면서 아이템을 뿌리고 있는 거야. 접기 전에 하는 행사(?)인 아이템 뿌리기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아이템이 떨어질 위치로 몸을 날리기 위해 자세를 잡았지. 근데! 마침 딱 그때 그 사람이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은색의 검을 내게 던진 거지! 난 얼떨결에 그것을 받았어. 그 후에… 밟혀 죽었지."
"풉."
웃음이 들렸지만 키리안은 혈관 마크를 꾹꾹 누르며 무시했다.
"리스타트 후에 마을에서 한 번 그 검을 살펴봤어. 그때 분명히 확인했어. 그 검의 이름, 분명히 암은청한검이었어. 확실해. 그땐 몰랐는데, 레벨 5에 일급의 능력치를 보일 정도라면 틀림없는 진품일 거야."
"확실하군. 레벨 5에 얻었다면 평균레벨이 적용되었을 텐데, 뭉텅 깎인 능력치가 일급이라면 암은청한검 뿐이야. 계속해."
라시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이 진품임을 확인해 주었다.
"그리고 만났어. '천령(穿靈)'이라 불러달라던 유저를."
"천령! 현 마스터 랭커로군. 이거, 레벨 5짜리가 겪기엔 너무 화려하군."
"…이야기 좀 그만 끊어."
키리안의 뚱한 말에 라시드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서 자리를 옮기자고 했지. 그렇게 으슥한 카페로 이동한 뒤에……"
"뒤에?"
그가 살며시 뒷말을 흐리자 일행의 얼굴이 더욱 가까워지며 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 뒤에…… 그냥 팔었어."
너무나도 간단한 그의 말에 일행의 표정이 살짝 멍해졌다.
"파, 팔았다고?"
"그, 그걸 팔아?! 얼마에!"
살벌한 라시드의 물음에 키리안은 더듬거리며 답했다.
"그, 그러니까 아리에랑 바꿨어. 아, 그러고보니까 7플래티넘까지 덤으로 얻었다. 헤헤."
"조, 좋아할 일이 아니잖아 바보야!!!"
바보같이 실실 웃는 그의 행동에 라시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이어이! 암은청한검이라고! 최고 최강의 검! 유저가 쓸 수 있는 검중엔 최강이라고! 그것도 아레이나르가 이벤트로 얻은 유일무이한 아이템!!"
광분하며 소리치는 라시드. 키리안은 그런 그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흥분하지마, 형."
얼빵한 이미지의 키리안이 아니었다. 웬지 모르게 저 높은 곳에 있는 듯한, 고요한 바다와도 같은 그의 표정과 말에 라시드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런 그에게 키리안은 약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련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 미련이 크지 않은 건 분명한 사실이야. 사실 나에겐 오히려 유리한 거래였어. 그때의 나에게 암은청한검이 있어봐야 뭐하겠어? 기껏해야 좀 더 좋은 검으로 약한 몬스터나 수월하게 사냥할 수 있을 뿐이었을 거야. 게다가 나에게 있어선 저주나 다름 없는 가난에 시달려야 했을 걸? 하지만 아리에와 많은 돈을 얻음으로 인해 좋은 아이템 맞추고 신나게 사냥할 수 있었어. 그냥 조금 좋은 검이 아니라, 좋은 파트너와 많은 돈을 얻을 수 있었잖아. 전혀 손해가 아니라고."
일행 모두는 감탄했다는 표정으로 키리안을 보았다. 특히 아리에는 키리안에 대한 평가를 다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저 조금 유쾌한 녀석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예전 '그'와도, 레이와도 같은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이 키리안과 겹쳐지는 듯 했다.
"뭐, 그렇게 볼 것 없어. 잘 보라고. 이렇게 이쁜 씰을 줬는데 무엇이 아쉽겠어. 아리에야, 우리도 부비부비 해보자아아아아아~~"
퍼어어어억-!!
"우캬아아아악!!"
"꺄아! 주, 주인님!!"
"…내가 미쳤었나 보다. 그와 주인님이 겹쳐 보이다니."
허공을 나는 키리안. 그것을 보며 처음으로 비명을 지르는 유하. 얼빠진 표정의 일행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는 드래곤. 마지막으로 어퍼컷의 자세를 풀며 한숨을 쉬는 아리에. 여전히 끝은 개판이었다.
고대 유적 입성
압. 오랜만에 98로 글 써보는 군요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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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Fourteen - 고대 유적 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