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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벅터벅-
일행은 현재 이벤트가 벌어지는 다섯 대륙 중 한 곳의 깊은 숲속을 걷고 있었다. 드래곤을 타고 내려다본 바다 위의 환상의 대륙. 수많은 일행의 눈빛 속에 대륙을 밟은 그들은 달라붙으려는 유저들을 피하기 위해 신속하게 숲속으로 들어선 것이다.
질질질질-
고요한 숲속에서 멀쩡히 걷는 일행들 사이에서 이질적인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리의 주인은 키리안. 그는 껌딱지 마냥 유하의 뒤에 달라붙어서 발을 질질 끌며 일행을 따르고 있었다.
아리에의 어퍼컷에 의해 바다로 풍덩~ 해버린 그는 본래가 맥주병인데다 캐릭터 역시 수영은 커녕 물을 접해본 적도 없었기에(해룡이 있던 바다는 차라리 진공 상태에 가깝기에 제외된다) 심신의 충격이 엄청났고, 일행에 의해 구조된 후에는 바로 소금에 절은 생선 마냥 늘어졌다.
그가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은 드래곤이 대륙에 도착한 후였다. 하지만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불편했기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디엔트나 카디안은 칙칙한 남자라서 싫다, 아리에는 무서워서 싫다, 라시드는 낯설어서 싫다. 그래서 선택된 것이 조용히 있던 불쌍하고 가녀린 유하였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모습이다.
"…주인님. 유하 그만 괴롭히고 일어서지?"
질질질- 뚝-
키리안은 아리에의 날카로운 말에 발을 질질 끌던 것을 멈추고 건성으로 걷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유하에게 달라붙어 있는 상태다.
아리에는 무언가 말을 더 하려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괜히 조용한 것이 어색해 말을 걸어본 것일 뿐이어서 딱히 물고 늘어질 이유가 없었다.
언뜻 보기엔 유하가 키리안이라는 짐덩이를 끌고 가는 것 같지만 기실 유하에게 가는 부담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절묘하게 키리안은 유하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찰싹 붙어있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우히히. 역시 유하에게 달라붙어 있으니까 못 때리는 구나아아아~"
키리안이 아리에가 고개를 젓는 모습에 기분 나쁘게 쪼갰다. 웃음의 대상이 된 아리에의 새하얀 이마에 살짝 혈관 마크가 돋았다.
"끄으응. 갈수록 능구렁이가 되어 가는 거 같아."
"레벨이 아무리 높게 잡아도 70 정도인 거 같은데 친화도가 장난이 아닌데?"
앞서 가던 라시드가 키리안과 아리에를 보며 옆에서 걷고 있는 디엔트에게 말했다.
"그렇지? 현재 레벨 64. 레벨 5부터, 그러니까 파트너와 함께 할 수 있는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함께 해왔다 해도 기껏해야 4단계의 친화도가 한계일 텐데 저 정도라면 최하가 5단계지. 저 녀석, 여러모로 흥미롭단 말이야."
{가장 흥미로운 건 역시 그 레벨엔 다루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아니 불가능하다 할 수 있는 씰과 저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다는 건데……레어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씰이라면 최소 3차 직업 이상의 레벨이다. 레벨 64짜리가 다룰 수 있는 게 아냐. 그건 내가 보장할 수 있어. 츠아스의 놈들과 싸웠을 때의 모습을 봐도 알 수 있지만 마나 때문에 그 실력을 십분 발휘하지도 못하더군.}
라시드의 전음에 디엔트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친 형이나 다름없는 라시드와 함께 여러 게임을 섭렵하며 일면에서 '히든 피스 헌터(Hidden piece hunter)'라 불리던 그들이었지만 이런 황당한 경우는 버그를 제외하곤 본 적이 없었다.
{그 씰을 준 게 천령이라 했으니 그 능력에 대해선 크게 의심을 가질 필요가 없겠지. 궁금한 건 결국 하나, 친화도가 되겠군. 히든 피스 헌터의 피가 끓어오르는데?}
{나도 마찬가지. 뭐, 너 저 녀석 꽤 맘에 들어하는 것 같으니까 함께 다니다보면 알 수 있겠지. 그땐 나도 알려달라고.}
{알았어.}
스스슥-
막 디엔트와의 대화를 끝낸 라시드의 귀에 미세한 소음이 흘러들어왔다. 그것은 실리에르를 봉인하고 대신 소환한 금발 머리의 미청년 엘프 파트너 또한 들은 듯 했다. 숲에선 그 능력이 최고조로 발휘되는 엘프가 그가 들은 것을 못 들었을 리 없다.
"카이실, 어디지?"
"좌측으로 50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작은 생명체인 듯 하군. 별달리 강한 것 같진 않지만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져."
부드러운 미성의 목소리. 과연 엘프다웠다. '꽃미남'이라 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이 호리호리한 존재는 과연 그 외모와는 다르게 라시드의 파트너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너의 말이니까 틀릴 리 없겠지. 자, 그럼 이동해 보자고!"
덩치 큰 실리에르를 대동할 수 없는 탓에 일행은 죽어라 달려야 했다. 라시드로선 최대로 양보한 속도였지만 일행에겐 그것만 해도 따라가기에 빠듯했다. 오직 아리에만이 조금 여유를 보였을 뿐이었다.
50m는 그야말로 지척이었지만 그 이질적이며 작은 존재 역시 지속적으로 빠르게 움직였기에 따라잡은 것은 스테미너가 거의 바닥을 보일 지경에 이르렀을 때였다.
"허억, 허억. 조그맣다는 놈이 뭐가 이렇게 빠른 거냐!"
키리안이 역정을 내며 소리쳤다. 늘어져 있던 몸은 일행이 달리자 별 수 없이 혹사를 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속도가 쳐지는 유하까지 업고 달려야 했기에 허파가 튀어나올 지경이었다(인과응보다).
스슥-
"엥? 토깽이?"
수풀을 헤치고 여유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새하얀 토끼였다. 녀석은 붉은눈을 살짝 굴리더니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뛰지 말란 말이야아아아아아!!"
일행이 다시 토끼를 따라 달리자 키리안이 다시 절규하며 몸을 날렸다. 스테미너 포션이 없었다면 일행이고 나발이고 누워버릴 수 있겠지만 있으니 별 수 있나. 서서히 차오르는 체력을 다시 소모시켜 가며 괴롭게 일행의 뒤를 따라야했다.
토끼가 다시 멈춘 것은 키리안의 허파가 결국 튀어나올 채비를 마치고 막 비상하기 직전이었다. 조금만 더 달렸으면 초특급 호러 스페셜 쇼(?)를 감상하기 직전이었을 텐데 심하게 아쉬웠다.
"허억, 허억. 여긴 또 어디냐!"
토끼가 멈춘 장소는 숲 곳곳에서 간간히 보이던 유적과 같은 곳이었다. 다만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의 가지가 빽빽하게 위를 덮고 있어서 하늘에선 찾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휙-
일행이 모두 유적 근처에 도달하자 토끼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라시드마저 사라진 위치를 알 수 없을 정도니 이벤트를 위해 특수하게 생성된 녀석이 틀림없다.
"흐음, 여기가 던전으로 가는 곳인가보군."
라시드가 던전의 주변을 훑어보며 말했다.
원형의 공터는 반지름이 대략 25m 되어 보였는데 여기저기 세월의 풍파에 깎인 흔적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원형을 유지한 유적이 자리잡고 있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이 일정한 형식을 따르며 지어져 있었고 그 가운데 작은 원형의 마법진이 그려진 제단이 있었다. 양쪽에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는 것으로 봐서 마법진이 던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 같았다.
"에에에? 벌써 입구라고? 너무 쉽잖아? 본래 이런 곳은 길을 막는 몬스터들을 힘겹게 상대하다가 모두가 깊은 상처를 입은 뒤 긴박한 추격전을 펼치다가 찾아야 하는 거잖아."
라시드의 말에 키리안은 맥이 빠진다는 듯 말했다. 내용 자체를 듣자면 머리를 부여잡아야 하겠지만 '너무 쉽다'는 말엔 모두가 동의했다. 일행은 여기까지 오면서 한 번도 몬스터를 본 적이 없었다.
모두가 의아해하자 라시드가 '훗'하는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구냐. 랭킹 5위에 빛나는 라시드 카인이 아니냐. 그리고 그런 나의 파트너는 누구냐. 숲에선 무적이라는 하이 엘프 카이실이다. 몬스터 정도를 피해가는 건 일도 아니지. 다가오려 하는 녀석도 원거리 저격으로 쉽게 끝냈단 말씀."
콧대를 세우며 거만하게 웃는 라시드를 향해 키리안이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봐, 당신이야 상관없지만 우리는 초보라고. 그런 놈들의 방해도 받아가며 즐길 권리가 있어."
약간은 차가운 기색의 어투였다. 고수에 의해 게임을 방해받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라시드가 그런 키리안의 기색을 읽곤 난감해하며 입을 열었다.
"아아, 그 기분을 모르는 건 아냐. 하지만 여기서의 몬스터는 그냥 체력만 높고 지능은 거의 꽝이나 다름없는 녀석이지. 그저 유저의 발목을 잡는 것과 짜증 유발만을 목적으로 하는 놈들이기에 내가 먼저 처리해 버린 거야. 뭐, 확실히 사전에 언급도 하지 않고 경험할 기회도 박탈했다는 점에 대해선 사과할게."
라시드는 해명과 함께 깔끔하게 일행에게 사과했다. 초고수답지 않은 매너에 키리안은 다시 약간은 맹한, 방글거리는 표정으로 되돌아오며 사과를 받아들였다. 어차피 진재미는 던전의 내부이고 라시드와 같은 안목이 확실한 고수가 하는 말이라면 크게 틀린 것도 아닐 테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좋아, 그럼 던전으로 들어가 보자아아~"
키리안이 앞장 서서 짧은 계단을 훌쩍 뛰어넘어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정면에 조작을 위한 기기가 보였다. 키보드를 닮은 것과 계기판 비스무리한 것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하는지 영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것은 키리안의 주변에 선 일행 역시 비슷한 사정이었다.
"흐응, 내가 해볼게."
잠시 그것을 살피던 디엔트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조작 장치의 왼쪽에 세겨진 알 수 없는 문자들을 발견하곤 앞으로 나선 것이다. 그의 예상이 맞다면 그 문자들은 장치를 조작할 수 있는 방법을 언급한 설명서일 것이다.
디엔트는 왼쪽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에 마나를 주입했다. 투명한 마석 주위를 떠돌던 미미한 푸른빛이 선명한 색체를 주변에 뿌리기 시작했다. 그 빛이 왼손을 거의 다 덮자 디엔트는 그 손을 글자가 새겨진 판에 갖다댄 뒤 입을 열었다.
"해석."
파아앗-
빛이 손에서 퍼지며 글자를 뒤덮었다. 디엔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있다가 빛이 다시 손으로 돌아오고, 그것이 팔찌로 스며들어 사라지자 눈을 떴다.
"뭔가 알아냈어?"
조용히 디엔트를 응시하고 있던 키리안이 그가 눈을 뜨고 자신들을 돌아보자 물었다.
"응. 다행스럽게도 해석이 가능했어. 과연 에인션트 로드랄까?"
디엔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라시드를 보며 한 번 씨익 웃어주었다. 고대의 문자를 해석할 수 있는, 그리고 그의 천사 파트너 아세리아의 씰 아이템인 이 팔찌를 선물한 것은 라시드였던 것이다.
"던전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겠지?"
라시드가 그의 웃음에 뿌듯한 표정으로(팔불출의 표정에 가까웠다) 묻자 디엔트는 자신감에 찬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지금 조작할 테니까 모두 마법진 위에 가만히 서 있어."
"옛썰."
디엔트는 모두가 마법진 위에 서자 기계의 여기저기를 만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진에 빛이 들어왔고 기계의 위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그것은 바다 위의 커다란 대륙을 나타내고 있었는데, 모두 다섯 곳이었다. 그 중 적색으로 빛나고 있는 대지가 바로 일행이 서 있는 대륙일 것이다.
"대륙간 이동을 위해 설치된 마법진 같아.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이고, 그저 해저의 던전으로 보내주는 역할만 하는 것 같아. 어이 키리안, 부들부들 떨 거 없어. 방수(防水)는 완벽하니까. 거의 대륙만큼 넓은 거 같으니 미로와 함정을 감안했을 때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곳이지. 자, 설명은 끝났고 이제 이동한다?"
일행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디엔트는 망설임없이 버튼 중 하나를 꾸욱 눌렀다.
파아아앗-!!
마법진이 강렬한 빛을 하늘 위로 뿌렸다. 그것은 잠시간 지속되다가 순간 눈을 뜰 수 없을만큼 강렬하게 변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곤 사라졌다. 그리고 고요해진 마법진의 위엔 누구도 남아있지 않았다.
고대 유적 입성
에효효효-_-)
글쓰기 힘들어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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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Fourteen - 고대 유적 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