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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안내해 준 던전 내부는 별달리 특별한 것이 없었다. 천정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발광체가 박혀 있어 시야 확보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초반이라 그런지 함정이나 몬스터도 없었다. 단지 길만이 미로처럼 여기저기 뻗어있거나 구불구불할 뿐.
"우우, 길치에게 미로라니. 최악이야."
키리안이 다섯번째 코너를 도는 시점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밖에 나가는 경우가 워낙에 드물어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에 대한 경험이 적은 키리안인만큼 길치는 너무나 당연한 직업(?)이었다.
"카이실, 뭔가 이상한 거 없어?"
라시드는 길을 걸으며 간간히 카이실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고위 던전에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로에 빠지는 것이 허다하게 일어나곤 했다. 그 방법이 마나나 SP에 의한 것이 아닌, 착시와 기관에 의한 것이 많았기에 잠시만 정신을 놓으면 고수라도 얄짤없이 미로에 당하곤 한다. 라시드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엘프인 카이실에게 주변을 잘 살펴달라고 해 두었던 것이다.
"별다른 이상은 없다. 아, 50m 앞에서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진다. 끈적하고 어두운 이 기운을 보니 마(魔) 계열 몬스터로군."
"그래? 어떤 녀석인지 한 번 확인해 볼까나."
카이실의 말에 라시드는 일말의 걱정도 없는 모습으로 걷는 속도를 높였다. 디 앱솔브에 현존하는 최강의 몬스터인 에인션트 드래곤을 제외하면 그 어떤 몬스터에게도 죽지 않을 자신이 있는 라시드였기에 당연한 행동이었다.
얼마 걷지 않아 몬스터를 만날 수 있었다. 약간 넓은 원형의 홀이었는데, 사방에 몬스터가 서 있었다.
극에 다다른 우람한 근육과 3m에 달하는 거대한 키. 피처럼 붉은 피부와 눈동자, 등에 달린 거대한 박쥐의 날개가 외향만으로도 엄청난 마족임을 알리고 있었다.
"플레임 데몬(Flame demon)이군. 귀찮은 녀석들이 다섯이라…… 디엔트, 입구로 물러나."
"오케이."
플레임 데몬. 레벨 150의 일반적인 고위 마족보다 레벨이 20은 더 높고 화염계에 관해선 스페셜 매직 마스터(그 분야에 관해선 일반 유저보다 모든 면에서 앞선다. 유저는 될 수 없다)이기에 일행이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라시드에겐 별 거 아닌 몬스터였지만 일행에겐 아니었다. 더불어, 데몬의 수는 총 다섯. 잘못하다 일행에게 떨어지기라도 하면 게임 오버는 순식간이기에 입구로 물러난 뒤 라시드가 그곳을 막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일행 모두 수준급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단숨에 그 의도를 알아차리고 플레임 데몬들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천천히 입구를 향해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노력은 허사였다.
"쿠아아아-!!"
단숨에 그들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일부는 화염을 내뿜고 일부는 그 화염을 타고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빌어먹을 녀석들!"
라시드는 단숨에 왼쪽 허리에 차고 있던 푸른빛의 장검을 뽑아들어 2m 길이의 검기를 생성시키고 휘둘렀다. 순식간에 두 자리 수의 검기가 허공과 함께 화염을 갈라버렸다. 그와 동시에 카이실이 물의 정령의 힘을 빌려 수막(水幕)을 쳤다.
공격이 시작되자 일행은 순식간에 입구로 뛰었고 라시드와 카이실이 그 앞을 막았다.
"처음부터 플레임 데몬이라니. 저레벨은 다 죽으란 거잖아."
키리안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레벨 150짜리가 하나도 아니고 다섯이다. 초보는 던전 밖에서 사냥이나 해야할 지경이니 키리안의 투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아아, 그건 아냐. 디 앱솔브에서 캐릭터들은 그 수준에 따라, 그러니까 50 단위의 레벨에 따라 고유의 데이터를 지니는데, 그에 따라서 몬스터가 나타나곤 해. 지금의 경우엔 라시드 형의 데이터에 이끌려 플레임 데몬이 등장했다고 볼 수 있지."
"그, 그런건가. 멋진데?"
보통의 경우든 이벤트든 결국엔 레벨제가 적용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제도라면 별다른 일만 없다면 자신의 레벨에 맞춰 이벤트를 즐길 수 있게 된다. 키리안이 감탄하는 것도 당연하다.
싸움 구경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다. 쪽수가 아니었으면, 그리고 카이실이 입구를 지키기 위해 발이 묶이지만 않았어도 간단히 끝났을 정도로 전투력의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레벨 차이가 100이나 나니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데몬들이 코너에 몰려 전투가 거의 끝나갈 때였다. 라시드가 막 대범위 스킬을 사용해 사방에 검기가 난무하던 그때, 갑자기 저쪽에서 몇 명의 유저가 나타났다. 여성 유저가 둘, 남성 유저가 하나인 혼성 파티였는데 그들은 넓은 곳으로 들어서자마자 날아오는 수많은 검기에 기겁했다.
"으아앗, 사이 배리어!"
남성 유저가 급히 사이 배리어를 시전해 검기를 막았다. 하지만 랭킹 5위의 검기를 급조한 배리어가 버텨줄 리 만무했다. 결국 금이 가는 배리어. 라시드는 자신의 검기에 유저들이 게임 오버 당할 듯 하자 스킬 시전을 중지했다. 시전한 스킬을 다시 거두는 것은 상당한 부담을 주지만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었기에 큰 부담은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라시드는 키리안들이 있는 입구와는 반대의 입구에서 나타난 유저들을 보며 물었다. 그들은 허공에서 라시드가 내려서자 잠시 움찔했다가 이내 신색을 회복했다.
"갑자기 검기를 날리는 건 무슨 이유입니까?"
앞에 나서서 말한 것은 푸른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를 지닌 평범한 인상의 18세 가량의 유저였다. 푸른색의 활동적인 로브로 봐서 마법사 계열인 듯 하다.
라시드는 따지듯 말하는 그에게 살짝 웃으며 해명하기 위해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그에 앞서 뒤쪽에 있던 여성 유저 중 하나가 나서며 먼저 말했다.
"푸른색의 장검과 플레임 다섯을 상대로 꽤나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는 실력, 금발금안의 엘프를 파트너로 두고 있다면…… 혹시 드래곤 마스터이자 티어스 오브 루시퍼라 불리는 라시드 카인님이 아닌가요?"
목 언저리에서 반듯하게 자른 검은 머리카락과 약간은 차가워 보이는 검은 눈동자가 꽤나 정보를 중시하는 듯한 타입으로 보이게 한다. 타이트하고 활동하기 편해 보이는 복장과 착용하고 있는 단검으로 봐서 시프(도적) 클래스인 듯 하다.
위험한 순간임에도 당황하지 않고 주변의 상황을 파악한 듯 순식간에 라시드의 정체를 맞춘 모습이 평범한 유저는 아닌 듯 했다.
라시드는 그녀를 보며 씨익 웃곤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유수청풍(流水靑風) 길드의 마스터다운 관찰력이군요. 맞습니다. 제가 바로 라시드 카인이지요."
"그건 당신도 만만치 않군요."
"과찬입니다. 그래도 꽤 오랜 시간 디 앱솔브를 플레이 했는데 그 유명한 유수청풍 길드의 마스터를 못 알아볼 리가 없잖습니까."
유수청풍. 츠아스 등의 초거대 길드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게임 내에서 꽤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길드였다. 정보와 무력 두 부분 모두를 만족하는 곳이기에 어떤 곳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길드 중 하나였다. 길드의 표식은 푸른 물방울과 그 주위를 멤도는 한 가닥 바람이다.
"캬아아악-!!"
라시드가 새로 나타난 무리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플레임 데몬들이 검기에 의한 타격을 떨쳐 냈는지 괴성을 지르며 라시드에게 달려들었다.
"흐음, 대화는 일단 저 놈들을 처리한 후에 하도록 하죠."
그는 대답을 듣지 않고 바로 몸을 날렸다. 불을 뿜으며 달려드는 플레임 데몬들. 라시드는 한 방에 끝내기로 마음을 먹고 막대한 양의 기력을 터뜨리며 검을 곧추세웠다.
"승룡천검세(昇龍天劍勢)!"
캬우우우-!!!
푸른빛 장검에서 막대한 양의 기력이 터져올랐다. 그것은 전설 속의 환수, 거대한 용의 모습을 그리며 단숨에 데몬들을 감싸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 이름대로 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보이는 그것은 휩쓸린 적을 속에서 분쇄해 버리는 검사 최강의 스킬 중 하나였다.
파아앗-!
구름 속으로 용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리고 허공에서 천천히 라시드가 내려섰다. 어깨가 살짝 들썩이는 모습이 순식간에 꽤 많은 기력을 소모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꽤 많은 기력이 남은 라시드였지만 지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순간적으로 상당량의 기력을 뽑아냈기 때문이었다. 전력질주를 100m쯤 하면 숨이 차기 마련이다. 그것이 곧 회복된다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은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헤에, 저게 바로 승룡천검세구나아."
"어? 주인님, 언제 승룡천검세를 본 적이 있었어?"
아리에는 디 앱솔브에 관한 경험이 미천한 키리안이 검사 최강의 스킬 중 하나인 승룡천검세를 아는 듯 말하자 의아해하며 물었다.
"저번에 말해줬잖아. 승룡천검세의 모습이 상당히 멋있다고."
키리안의 대답에 아리에가 알겠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과거에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있었다. 별 거 아닌 스킬에 감탄하는 키리안의 모습에 살짝 심통이 나서 툭 던지듯 말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키리안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헤, 주인님 기억력이 상당하네. 그런 것도 기억하고 있고."
"저쪽으로 가보자."
디엔트가 가만히 서있던 일행을 이끌고 홀로 들어섰다. 갑자기 나타난 그들과 라시드가 대화를 하고 있었기에 그냥 멍청히 서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흐음, 저쪽이 라시드님의 일행인가 보군요."
라시드와 대화하고 있던 유수청풍의 길드 마스터인 그녀가 다가오는 키리안들을 보며 말했다.
"현재는 그렇습니다. 일단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이 녀석이 디엔트, 그리고 디엔트의 현재 일행인 키리안, 카디안이죠."
라시드는 다가오는 일행 중 순식간에 디엔트를 잡아 그녀의 앞에 세우며 일행을 설명했다.
"반갑습니다. 유수청풍의 현재 길드 마스터 '아스타나 사야카'입니다."
그녀가 고개를 살짝 까닥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저레벨의 유저들인 일행에게 고개나마 까닥인 것은 라시드를 생각해서였다.
"반갑습니다. 저는 디엔트 레이입니다."
"키리안입니다."
"카디안입니다."
키리안과 카디안은 간단히 자신들을 소개했다.
일행의 소개가 끝나자 저쪽에서 키리안 또래의 소녀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허리까지 기른 머리카락을 제외하면 아스타나의 17세 버전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닮아 있었다.
"아르니아 사야카입니다. 아스타나 언니의 친동생이죠."
예상대로 친자매였다. 그녀 다음 자신을 소개한 것은 라시드의 검기를 막기 위해 사이 배리어를 시전했던 마법사였다. 에버리스 블루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유수청풍의 부길드 마스터였다.
"흐음, 이것도 인연인데 잠시 함께 다니는 게 어떨까요? 트랩 등에 관해선 우리가 크게 도움이 될 것이고 혹시 모를 몬스터에 대해선 라시드님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사실 아스타나가 간단히 지나칠 수도 있었던 인연을 일행의 소개까지 끌고 간 것은 모두 라시드와 동행하기 위해서였다. 급수에 맞는 몬스터가 나오는 것이 보통이긴 했지만 이벤트 몬스터 등은 그것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특히 드래곤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그녀의 일행으론 대적할 수 없다. 하지만 라시드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라면 드래곤 하나 정도는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시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확실히 기관 등에 관해선 그녀들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계속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도 상당히 피곤한 일이었으니까.
"좋습니다. 그럼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저희 역시."
그렇게 일행은 유수청풍 길드의 일행과 동행하게 되었다.
고대 유적 입성
압. 힘들어도 한 편 써야겠죠..-┏
내일 하드와 램을 사면 글 한 편 쓰고 게임하고 애니 보고..
좋아-_-);;
...히나군 생일이라서 연참 해야 하지-_-)...
다녀오면 3시쯤 되려나..
솔직히 8kb 5연참은 현재 내공으론 무리데스[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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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Fourteen - 고대 유적 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