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동행하게 된 아스타나 일행은 확실히 유능한 유저들이었다. 아무리 초중급 단계의 미로와 함정이라지만 힘든 기색 하나 없이 가볍게 그것들을 처리하곤 했다. 과연 레인저 로드(3차 직업)의 직업을 가진 아스타나다운 실력이었다.
그녀의 파트너는 그 유명한 닌자 클래스였는데, 보라색 천으로 눈을 제외한 모든 것을 가리고 있었다. 거기에 망토까지 더해지니 금상첨화다. 그 덕분에 아스타나가 조금은 건성으로 움직이면서도 모든 함정이나 미로를 잡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음, 과연 극에 달한 육감(오감과 기감(氣感) 모두 포함)을 지닌 닌자 답네요. 아아, 심심하다아아아……"
별다른 일도 없이 그저 걷기만 하자 키리안이 지겹다는 듯 유하에게 들러붙었다. 어퍼컷 이후 아리에에겐 쉽게 장난을 걸 수 없게 된 키리안은 요즘 대상을 바꿔 유하에게 자주 들러붙었다. 그녀의 난처한 표정을 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었다.
"유하야아아아, 나 심심하다아. 재미있는 얘기 없어어?"
"죄송하게도……."
"아냐아냐."
키리안은 유하의 모습에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아리에완 달리 상당히 정상적인 씰이었기에 당연한 것이다.
대외적인 이유가 '아리에가 무서워서'이지, 기실 그의 목적은 유하와의 친화도를 올리는 것이다. 아리에와는 농담과 장난까지 주고 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지만 유하와는 겨우 합체기를 쓸 수 있는 정도다. 너무 무심했던 것이다.
"주인님, 숙녀의 등에 마음대로 달라붙어서 부비적거리지 말라고."
키리안이 유하의 등에 라시드가 시전한 것을 보고 문득 깨달음을 얻어 사용할 수 있게 된 부비부비신공을 시전하자 아리에가 그의 목덜미를 잡으며 말했다.
"익익, 놔놔."
아리에가 잡아끌자 키리안은 껌딱지가 되어 유하의 등에 달라붙었다. 아리에는 유하가 힘겨워하자 별 수 없이 손을 놔버렸다. 아아, 점점 애가 돼가는 것 같아. 골치가 아파오는 아리에였다.
"음, 장난은 잠시 멈춰 주세요. 정면에 몬스터가 있네요. 가볍게 가고일 네 마리입니다. 레벨은 100 전후. 길은 하나 뿐이니 피할 수 없겠군요."
"제가 잡을 게요~~"
몬스터라는 말에 키리안이 반색을 하며 왼손을 흔들었다. 아스타나는 뒤에서 노닥거리고 있던 키리안이 손을 들자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음, 레벨 차이가 있을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무리 실력이 있다해도 40에 가까운 레벨 차이를 어쩌기는 힘들었다. 그녀는 그것을 지적한 것이다.
"에, 괜찮아요. 디엔트도 있고 카디안 형도 있으니까. 가고일은 가슴 부위의 핵석(核石)만 파괴하면 되니까."
"언니, 나도 싸울 거야."
키리안이 말을 끝내자 아스타나의 뒤에서 한 명의 소녀가 나타났다. 아스타나의 친동생인 아르니아였다. 그녀의 곁엔 두 명의 푸른색 경갑을 착용한 발키리가 양쪽에 서 있었다.
"흐음, 괜찮을까요?"
함께 싸워도 괜찮겠냐는 물음이었다. 키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긍정의 표시를 해 주었다.
"직접 전투는 나와 아르니아님이 맡고 디엔트와 카디안 형은 적절히 지원해 주는 게 어때요?"
아르니아는 그녀의 언니와 마찬가지로 시프 클래스였지만 씰은 발키리, 근접 전투 클래스였기에 직접 전투로 분류했다(그녀는 빠지겠지만). 디엔트와 카디안은 모두 직접 전투보단 근접 전투에 능했기에 키리안은 대충 이렇게 분류하며 함께 싸울 동료들에게 의견을 말했다.
"괜찮군."
모두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자, 그럼 가볼까요?"
키리안이 가볍게 검을 뽑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 옆으로 유하와 아리에가 따랐다. 유하는 프리 캐스트로 미리 주술을 외워 기습을 준비했다.
모퉁이가 나타나자 키리안은 까치발로 살금살금 이동해 눈을 빼꼼히 내밀어 상황을 살폈다.
플레임 데몬과 조우했던 홀보단 약간 작은 원형의 공터에 다섯 개의 조각상이 배치되어 있었다. 가운데의 조각상을 두고 네 개의 조각상이 보호하듯 세워져 있었다.
외부의 네 개의 조각상은 작은 드래곤의 모습하고 있었는데, 그것의 눈이 조각상이라곤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붉게 빛나고 있었다. 가고일이었다. 가운데의 것은 나머지와는 다르게 둥근 제단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가운데 작은 단검이 꽂혀 있었다.
"못생긴 조각상 네 개가 있어요. 분명한 가고일이지요. 가운데의 것은 제단 같았는데 가운데 단검이 꽂혀 있네요."
"단검이라…… 분명히 뭔가가 있을 거에요. 그것의 입수를 최우선으로 하죠."
키리안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내심은 그냥 '치고 박으면 알아서 하겠지'였지만 침묵이 금이란 말에 입각해(핀트가 어긋났다) 생각으로 끝냈다.
"가고일은 마법 저항력이 최상에 가까우니 어설픈 것은 통하지 않아요. 근접 전투 인원의 물리 공격력 상승에 중점을 두는 게 좋을 겁니다. 그것으로 목 아래의 핵을 노리는 거죠."
판타지의 기본 상식은 디 앱솔브에서 대부분 통용이 되었다. 그것은 가고일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기초 상식에 해당하는 것을 아르니아가 읊어주었다.
"아리에, 인첸트 마법 걸어줘."
"샤프 플러스(Sharp plus)."
아리에는 말 대신 키리안의 검에 검의 예기를 높여주는 마법을 걸어주는 것으로 대답을 해 주었다.
"아르니아님에게도 걸어 드릴까요?"
"괜찮아요. 에리와 에린도 쓸 수 있는 마법이니까요."
그녀는 키리안의 물음에 싱긋 웃으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녀의 파트너인 발키리들은 스스로 검에 인첸트 마법을 거는 것으로 아르니아의 말을 증명해 주었다.
"그럼 나가죠!"
탓-!
그는 아리에와 함께 단숨에 코너를 돌아 가고일들에게 달려들었다. 실제의 조각상인듯 굳어 있던 가고일들이 키리안이 달려들자 눈을 돌리며 육중한 몸을 움직였다.
"유하야!"
"대기여, 나의 의지에 따라 그 존재의 무게를 보여라! 중압(重壓)!"
막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던 가고일들이 갑작스럽게 생겨난 힘에 의해 기우뚱했다. 중력 상승 주술에 의한 효과였다.
"오라 스플리트, 오라 콘센트레이트!"
키리안은 멋지게 뛰어올라 가고일의 목 아랫부분을 노리고 검을 찔러들어갔다. 컨트롤 바이탈리티까지 혼합된 검극엔 상당한 파괴력이 자리잡고 있었다.
콰앙-!!
검으로 찔렀다고 생각하기 힘든 충돌음이 일었다. 그리고 키리안이 튕겨져 나왔다.
"크, 뭐야 저 돌탱이!!"
키리안은 상상 이상의 방어력을 지닌 그것을 향해 투덜거렸다. 검을 내질렀던 손목이 시큰거린다. 부러지거나 하진 않았지만 꽤 충격이 컸다.
"단월(斷月)."
키리안의 검이 완전히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닌듯 가고일 역시 휘청거렸다. 약한 타격과 틈이었지만 아리에에겐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이름대로 달을 가를 듯한 시린 검기의 궤적이 가고일을 반으로 갈랐다. 그 진로에는 핵 역시 포함되어 있었기에 가고일은 반으로 갈라진 뒤 그대로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대단하군요. 키리안님의 레벨을 훠어어얼씬 상회하는 능력을 지닌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죠?"
아르니아는 과연 정보 길드 마스터의 친동생답게 아리에의 능력에 의문을 표했다. 기본 상식만 있어도 이상하게 여길만한 것이었으니 그녀는 오죽하겠는가.
키리안은 난감하게 웃으며 말했다.
"묵비권을 행사할래요. 몬스터나 잡읍시다아아아~"
그가 남은 가고일들을 향해 달려가자 그녀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발키리들을 보내 가고일과 대적했다. 시프인 그녀로서는 그다지 데미지를 줄 수 없었기에 씰만을 보낸 것이다.
"홀리 캐논!"
콰아아아-!
혼전 중에 하늘로 가고일이 하나 날아올랐다. 아래로 낙하 공격을 감행할 기세로 날아오른 것이었다. 하지만 놈의 시도는 카디안의 파트너 네피엘이 신성력의 레이저 덕분에 무산되었다. 암(暗) 속성을 지닌 가고일이었기에 마법에 가까운 공격이었음에도 꽤 데미지를 줄 수 있었다.
홀리 캐논에 얻어맞은 가고일이 쇠 긁는 비명과 함께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엥? 으갸갸~!"
한창 히트 앤드 런의 형식으로 핵이 있는 부위를 지속적으로 가격하고 있던 키리안은 갑자기 그늘이지자 의아해하며 허공을 힐끔 살폈다가 거대한 돌덩어리가 떨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곤 기겁하며 유하와 함께 물러났다.
쿠우웅-!!
두마리의 가고일이 부딪히며 쓰러졌다. 그 모습에 키리안은 씨익 웃으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했다.
"아레, 그 단검이잖아?"
키리안의 우측엔 가고일들이 감싸고 있던 제단이 있었다. 그 위엔 금빛의 고풍스런 힐트(Hilt. 검손잡이)를 지닌 검이 깊숙히 박혀 있었다. 검신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단검이라 할 수 있는 것은 힐트의 길이 때문이다.
"흐음, 뽑아 봐야지."
키리안은 단검의 손잡이를 쥐어 보았다. 착 달라붙는 것이 꽤나 고급 아이템임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합!"
짧게 숨을 들이쉬곤 전력으로 검을 들어올렸다. 쑤욱- 그리고 쿠당.
"뭐, 뭐야."
키리안은 뒤로 넘어지며 찧어 살짝 얼얼한 엉덩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보통의 경우 이런 건 전력을 다해도 뽑히지 않아야 하는데 단검은 너무나 쉽게 빠졌다. 진흙에 박혀 있던 것을 뺀 기분이었다.
"헤에, 그래도 이쁘네."
드러난 검신은 마치 백금(白金)으로 만든 듯 잡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완만하게 휜 그것은 시린 빛을 머금고 있어 척봐도 상당한 명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봉 잡았다는 기분으로 검집은 없나 살펴 보았다. 꽤 휘어 있어 검집이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그래도 날카로운 검날을 쌀 것은 있을 것이다.
"얼레, 제단이 좀 높아졌네."
키리안은 자신의 허리께까지 오던 제단이 어느새 가슴 높이까지 솟은 것을 보곤 의아해하며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쩌저저저적-
바닥이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그리고 소름이 쫘악 돋는, 바닥 갈라지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뭐, 뭐죠?"
제단 근처로 이동하던 아르니아가 단숨에 키리안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에에, 아무래도 이게 함정을 작동시키는 열쇠였던 것 같네요."
키리안이 고풍스런 단검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하, 함부로 뽑으면 어떡해요?!"
"이미 저질러진 일이니 어쩔 수 없네요 헤헤."
"이, 일단 피하고 보죠."
아르니아가 다급한 표정으로 달릴 준비를 했다. 하지만 키리안은 유하의 등에 달라붙으며 말했다.
"이미 늦었네요."
콰과과과과과-!!
"꺄아아아아~!!"
단숨에 바닥이 내려앉아 버렸다. 가고일과 싸우느라 몸을 빼지 못한 디엔트와 카디안이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비행이 가능한 라시드와 아스타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둘은 당황한 다른 일행과는 달랐다.
"흐음, 기력이 움직이지 않는군요. 왜일까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이 함정과 함께 기력, 마나 동결의 마법이 발동된 것 같네요."
"…어이. 지금 우리 위험한 상태라고."
휘이이이잉-
엄청난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이때 여유로운 라시드와 아스타나를 보며 일행은 심심하지 않게 추락을 즐길 수 있었다.
고대 유적 탐험
으아아..ㅠㅠ
어제 못쓰고 말았습니다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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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Fifteen - 고대 유적 탐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