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앱솔브-56화 (56/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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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키리안 일행은 지상에서 봤던 그 수많은 유저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던전의 어느 한 곳을 걷고 있었다. 고요함만이 지배하고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 전혀 알 수 없어 답답함만을 느끼고 있는 일행이었다.

오늘로서 던전을 헤맨지 R.T(Real Time)로 3일째 되는 날이다. 그동안 여러번 함정에도 빠져보고 몬스터와 피 터지게 싸움도 했다. 하지만 얻은 거라곤 약간의 돈과 아이템, 그리고 경험치 뿐이었다.

현재 레벨 66. 정말 물약 써가며 피터지게 싸워서 올린 레벨이다. 딱 키리안의 레벨에 맞는 몬스터들이 몰려오니 동료들이 있었다지만 정말 죽을 맛이었다. 게다가 지도가 없어서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소모전을 하고 있자니 그야말로 정신적으로 상당히 지친 상태다.

이벤트를 위해 들어온 이곳은 다시 나가지도 못하게 되어 있었다. 나가려면 죽어야 했다. 그 외엔 어떤 수를 써도 나갈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 번 죽고 말지! 였던 키리안이었으나 지금에 와선 3일간의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죽지 못하고 있었다.

"아르니아, 여기 나가려면 누구든 이벤트를 클리어 해야 한다고 했지?"

3일 동안 고립된 곳에서 함께 싸워온 정 덕분에 넷은 상당히 친해진 사이가 되었다. 키리안이 아르니아에게 친근한 어조로 물을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응. 아아 집에 가고 싶어어어어."

아르니아가 한탄조로 말했다. 집이란 길드를 말하는 것, 집 떠나 고생(?)을 하고 있는 그녀는 여러모로 길드가 심하게 그리웠다. 빵빵하게 챙긴 아이템 덕분에 버티고 있긴 했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가 오고 있었다.

"우우, 도대체 사방 5m가 탐색의 한계라니. 이건 사기라고오오."

그녀는 손바닥 위에 떠있는 반투명한 푸른빛을 띤 마나 맵(Mana map)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나 맵. 트레져 헌터가 필수로 12레벨 마스터 해야 하는 스킬이다. 주변으로 기력을 풀어 그 능력이 닿는 범위까지 주변을 탐색한다. 그리고 그 정보는 손바닥 위에 '마나 맵'이란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기력을 이용하는 것이긴 하지만 어감상 마나 맵으로 결정됐다).

다른 스킬이 모두 그렇듯 마나 맵 역시 스킬 레벨에 따라 그 범위가 결정된다. 스킬 레벨이 1일땐 사방 5m의 내의 지형 탐색 가능, 스킬 레벨 3일 땐 6m 내의 지형, 몬스터까지 포착 가능, 5일 때는 10m 내의 지형, 몬스터, 함정까지 감지할 수 있다.

현재 아르니아의 마나 맵 스킬 레벨은 9. 이 정도라면 주변 20m 내의 지형, 몬스터, 함정이 포착이 가능한데, 이곳엔 무언가 있는지 기껏해야 5m 내의 범위를 탐색할 수 있는 것이 전부였다. 함정을 포착할 수 없었다면 진작에 시전을 멈췄을 것이다.

끼우웅-

한창 길을 걷던 도중 디엔트의 왼쪽 어깨 위에서 곤히 졸고 있던 작은 여우 루아가 갑자기 고개를 들곤 작게 울었다. 근처에 몬스터가 있다는 경고의 울음이었다.

"헤유, 원래는 내 역할인데."

아르니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라면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루아가 하고 있었다. 이게 전부 마나 맵이 먹통이기 때문이다.

일행은 익숙한 모습으로 무기를 점검하고 진형을 짰다. 키리안과 아리에, 그리고 아르니아의 파트너인 발키리 둘, 카디안의 파트너 카리나가 앞에 서고 뒤에 유하와 디엔트, 카디안이 서서 보조한다. 그 뒤엔 아세리아와 네피엘이 활을 준비한다. 아르니아는 그 중간에 서서 혹시 모를 암습에 대비한다. 이것이 전투를 치르며 저절로 이뤄진 진형이었다.

크르르-

진형을 유지하며 걸은지 얼마 되지 않아 루아의 경고대로 몬스터가 나타났다. 붉은색 핏빛 눈동자와 피냄새를 풍기는 듯한 혓바닥, 강철을 찢을 듯한 이빨을 지닌 거대한 일곱 마리의 개. 지옥의 사냥개 헬 하운드였다.

"귀찮은 녀석이군."

재빠른 속도와 강력한 완력을 지닌 녀석으로, 속전속결로 끝낼 수 있다면 쉽게 이길 수 있는 녀석들이지만 기회를 주면 귀찮음을 감수해야 하는 놈들이다.

크르르-

놈들은 노련한 사냥개답게 일행의 모습이 심상치 않게 보였는지 슬금슬금 자리를 옮기며 경계했다. 길은 키리안 열명이 늘어서서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었기에 기동력과 기습에 능한 사냥개들이 움직이기에 꽤 유리했다.

'선공을 줄 필요는 없겠지.'

"유하야!"

"폭염!"

키리안은 대충 일행들과 눈으로 의사를 대충 교환하고 순식간에 공격을 시작했다. 유하의 폭염이 허공을 가르고 사냥개들을 노렸다. 곧 놈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몸을 날린다.

쉬이이익-!

달려드는 사냥개들을 맞은 것은 네피엘과 아세리아의 화살이었다. 성력의 화살이 허공을 난 사냥개들을 꿰뚫자 깨갱하는 개과 특유의 신음소리가 울린다.

"오라 스플리트, 오라 크로스!"

"단월."

활에 맞아 주춤하는 사냥개들에게 키리안과 아리에가 각각 검을 휘둘렀다. 십자로 교차하는 날카로운 검기와 한줄기 시린 검기에 반으로 갈라지는 두 마리의 사냥개. 보통의 야생동물이라면 주춤하겠지만 헬 하운드라는 놈들은 다른지 피를 보자 오히려 눈을 더욱 붉게 빛내며 키리안과 아리에에게 달려들었다.

"콜 라이트닝(Call lightning)!"

콰광-!

키리안과 아리에에게 달려드는 사냥개들을 막은 것은 디엔트의 뇌전이었다. 사냥개들의 진로 앞에 떨어지는 뇌전에 잠시 주춤하는 놈들에게 카리나가 달려들었다. 악마의 날개를 펼친 그녀는 빠른 속도로 사냥개에게 붙어 기다란 손톱을 휘둘렀다.

카앙-!

사냥개는 동물과도 같은 감각으로 몸을 틀며 앞발을 휘둘러 카리나의 손톱을 막아냈다. 손톱끼리의 부딪힘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금속의 충돌음이 들린다.

"마염포!"

여러 마리의 사냥개가 카리나를 노리자 카디안이 검붉은 화염구를 연속으로 날려댔다. 카리나가 날아오르고 사냥개들은 재빨리 흩어졌다.

"이거나 먹어!"

키리안은 자신이 있는 곳으로 사냥개가 뛰어오르자 컨트롤 바이탈리티로 신속하게 이동한 뒤 다시 기력을 검으로 보내 사냥개를 후려쳤다.

깨갱-!

강력한 힘에 의해 커다란 덩치의 사냥개가 허공을 날아 벽에 부딪쳤다.

콰아앙-!

"엥?"

사냥개가 부딪친 벽이 금이 갈 틈도 없이 박살이 나버렸다. 키리안은 이 예상 외의 결과에 당황했다. 고수도 아닌 자신이 친 검에 사냥개가 날아간 것만 해도 용한데 벽이 아주 아작이 나버리다니? 버그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현상이었다.

끼우우우-

벽이 부서지자 루아가 다급함이 담긴 울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아르니아 역시 마나 맵을 보더니 사색이 돼서 소리쳤다.

"모두 피해야 해! 함정이야!"

"응? 무슨 소리야? 함정이라니?"

카디안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사냥개가 날아가 부딪친 벽은 아르니아가 있는 곳에서 5m 범위 내에 있었다. 함정이라면 그녀가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 것이다.

"내 레벨을 훨씬 넘는 함정이야. 즉 우리로선 감당하기 힘든 함정일 거라는 결론이 나오지!"

카디안의 물음에 아르니아는 급한 어조로 답했다. 그녀의 레벨은 현재 75. 일행 중 가장 높은 레벨의, 그리고 트레져 헌터인 그녀가 탐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위험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그 함정의 정도가 그녀가 느끼지 못하는 능력의 범위인 레벨 100 이상의 것이라는 뜻이 된다.

일행이 잠시 갈팡질팡하는 사이 그 함정이 발동되었다. 벽면에서 순간 백색의 빛이 번뜩였다. 그리고 다시 어둠이 내려앉은 부숴진 벽 저편에서 붉은 빛이 번뜩였다. 귀기(鬼氣)가 서린 그 섬뜩한 눈빛에 일행은 물론 헬 하운드마저 움찔했다.

쿵- 쿵-

놈들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서서히'이긴 했지만 쿵쿵거리는 소리로 짐작할 수 있듯 그 덩치가 상당해서 놈들은 금방 일행이 있는 통로로 나왔다.

콰앙-!

거치적거리는 벽면을 뚫고 동시에 등장하는 멋들어진 갑옷을 착용한, 아니 그 갑옷 자체가 몸인 거인들. 함정이 소환한 것은 츠아스의 네 명의 유저와 대립할 때 상대했던 덴드론이었다. 붉은 화염을 피워올리는 놈들은 처음부터 방어력을 최고조로 올린 상태로 등장한 것이다.

"덴드론! 무리야. 게다가 템플 나이트(Temple knight)까지 있잖아!"

아르니아가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상대가 안되는 레벨의 녀석인데 동등한 수준의 몬스터 중에선 그 방어력을 능가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고 평가되는 덴드론이 넷이라니. 이건 승산이 없다. 거기에 더해 검과 신성 마법에 능통한 던전 키퍼(던전을 지키는 존재)의 대표격 몬스터 템플 나이트까지 둘이다.

{주인님, 내가 한 방 날릴 테니까 도망칠 준비해.}

모두가 이제 죽었다고 생각했던 이때, 아리에가 키리안에게 전음을 보냈다. 키리안은 막대한 마나가 소모되는 것으로 아리에가 무엇인가를 준비한다는 것을 알았고 곧 전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도망칠 준비해. 신호가 터지면 곧바로 저쪽으로 달리는 거야."

"어떻게? 멀리 떨어지기도 전에 템플 나이트의 마법에 끝장난다고. 덴드론 뿐이라면 도망칠 수 있겠지만 헬하운드에 템플 나이트까지 있는 이상 무리야."

"쳇. 보면 알거야. 그러니까 준비나 하라고!"

키리안이 일행들에게 말을 전하자 아리에는 준비했던 스킬을 터뜨렸다.

"여섯 힘의 정점. 그 정점의 중심에 존재하는 근원의 빛. 지금 나의 검이 되어 강림하리라. 세인트 블레이드(Saint blade)!"

함정이 발동되고 강력한 마나가 움직이는 것을 느낀 아리에는 그대로 세인트 블레이드를 준비했던 것이다.

육망성의 빛과 함께 아리에의 세인트 블레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격!

"이글 오브 라이트닝!"

파지직-

세인트 블레이드의 검신(劍身)에 막대한 마나가 모여 들었다. 언젠가 그녀가 덴드론을 상대로 쓴 적이 있는 스페셜 스킬 이글 오브 라이트닝이었다. 세인트 블레이드로 시전한 이글 오브 라이트닝은 그 파괴력의 수준이 달랐다.

"이거나 먹으라고!"

아리에가 세게 검을 떨치자 푸른빛 뇌구(雷球)가 몬스터들에게 날아갔다.

"뛰어!"

그와 동시에 터지는 키리안의 외침. 일행은 죽어라 발을 놀려 우측의 길로 도망쳤다. 뒤에서 굉음이 터지는 것으로 이글 오브 라이트닝이 터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중검(重劍)!"

아리에는 일행이 모두 지나가자 곧바로 양쪽의 벽을 쳐서 무너뜨리는 것으로 입구를 막았다. 이것으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벌 수는 있을 것이다.

"저런 허접한 놈들에게서 도망쳐야 하다니…… 처량해 처량해."

투덜거리는 아리에. 하지만 그녀는 최강이었던 그때엔 느끼지 못했던 재미에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고대 유적 탐험

히이=_=

..최초로 경찰서에 가겠군요.

내일 조퇴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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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Fifteen - 고대 유적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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