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앱솔브-58화 (58/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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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드래곤은 커다랗고 푸른 눈동자로 자신의 거처에 들어온 침입자들을 훑어보았다. 너무나 약한 인간들 몇과 거처의 주위를 지키라고 명했던 가디언 몇 마리.

크르르-

기껏 가디언을 배치해서 침입자를 막으라 했는데, 그 쉬운 것 하나를 못해서 편히 쉬고 있는 자신의 거처를 시끄럽게 만들다니…… 실버 드래곤은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브레스에 휩쓸리지 않았던 몇 마리 남은 가디언들이 허둥댄다.

파아앗-!

자신의 주인이 화가 났다는 것을 느낀 덴드론과 템플 나이트들이 갑자기 흉폭해졌다. 앞서 죽은 두 마리의 덴드론과 한 마리의 템플 나이트가 그들의 생존 본능을 더욱 자극했다.

템플 나이트는 볼 것 없이 홀리 오라(Holy aura)를 최대로 발휘했다. 성스러운 검기인 그것은 단숨에 2m 이상으로 뻗어나갔고, 놈은 앞뒤 젤 것 없이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쳇."

일행으로선 전력을 다하는 템플 나이트의 검을 받아낼 수 없었다. 그나마 아리에가 놈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지만, 뒤에 있는 녀석들도 폼은 아니었다. 본래 따라오던 녀석들 말고도 다른 템플 나이트와 덴드론이 몰려오고 있었기에 싸울 수 없는 것이다.

이곳 저곳에 나 있던 통로로 몬스터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덴드론과 템플 나이트 뿐만이 아니라 오우거, 미믹(평소엔 보물상자로 변신해 있다가 유저가 다가오면 본래의 모습으로 변해 습격한다. 거미와 투구 벌레의 모습을 섞어놓은 듯 하다), 헬하운드 등. 모두 쉽게 상대할 수 없는 것들이다.

"상황 최악이군. 라시드 형 정도 되지 않는 이상 빠져나가는 것도 불가능이다."

카디안이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이 정도 되는 전력에서 빠져나가려면 적어도 텔레포트나 비행이 가능한 씰(혹은 유저)이 있어야 하고 레벨이 드래곤을 잠시 막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더불어, 이놈들과 싸우려면…… 마스터 랭커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즉, 일행에겐 확률이 제로란 소리다.

크오오!

말이나 상황이 어쨌든 포위가 약한 곳으로 달리는 일행. 할 수 있는 일은 한다. 앉아서 나 죽여주쇼, 하는 건 절대 일행의 성격이 아니니까. 그런 일행의 앞을 오우거 두 마리가 막아섰다.

"비켜!"

놈들을 처리한 건 아리에였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힘을 아낀다는 건 바보짓이다. 맞설 수 없다. 그렇다면 전력을 다해 탈출한다!

"중검(重劍), 연(連)!"

마나가 그녀의 검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의 끊어치기! 한 줌의 감소도 없이 그대로 전해진 강력하고 무거운 검에 두 마리가 동시에 떡이 되어 날아갔다. 놈들의 거대한 덩치에 의해 다가오던 몬스터들 역시 쓸려 가버린 것은 계산된 행운이다.

"좋아. 이대로라면 빠져나갈 수 있어. 어차피 통로는 드래곤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니까 통로에 들어서기만 하면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질 거야."

아르니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으로 말했다. 통로만 빠져나가면 어떻게든 살 수 있다. 그것이 그녀의 계산이었고 정확했다.

느리지만 일행은 조금씩 조금씩 출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방어력이 높은 것은 스피드로 회피하고, 속도가 좋은 것은 중검으로 쳐내버렸다. 드래곤을 제외하면 산발적으로 달려드는 놈들을 피하는 것은 크게 무리가 없었다.

곧 출구가 눈앞에 보였다.

"조금만 더!"

얼마 남지 않은 거리. 일행은 성공이라는 생각에 다리를 좀 더 힘차게 놀렸다. 그때였다.

크오오오오-!!

분노에 찬 드래곤의 포효가 일행의 귓가를 때렸다. 그리고 굳어지는 몸. '마비'의 이상상태를 유발하는 드래곤의 대표 스킬 중 하나인 '드래곤 피어(Dragon fear)'였다.

"제길!"

몸이 떨리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나마 몬스터들마저 피어에 걸리지 않았다면 몰매를 맞아 죽었을 것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절망하지 않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것도 좋은 상황은 아니다.

차차차창-

허공 중에 거대한 얼음창들이 생성되었다. 하나하나가 오우거 몸통에 맞먹는 크기를 지닌 것 수십개가 일행의 머리 위에 생성된 것이다.

"쫄따꾸들이 영 시원찮으니 드디어 보스가 나선 건가. 빌어먹을."

카디안은 잘 움직이지 않는 머리를 들어 얼음창을 노려보며 말했다. 과연 드래곤. 최강의 존재답게 일행은 단순하고도 가벼운 한 번의 공격에 완전히 끝장나게 된 것이다.

"쳇. 라이트닝 브레이크(Lightning break)!"

디엔트가 이를 갈며 정령력을 끌어올렸다. 몸은 굳었지만 마나와 기력은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정령력을 끌어올리는 것엔 전혀 무리가 없었다.

파지직-

필사적으로 끌어올린 뇌전은 평소보다 훨씬 막강한 위력이었다. 디엔트는 그것을 몰아치는 폭풍과 같은 모습으로 쏘아보냈다.

콰과과광-!

물리력이 담긴 뇌전은 강력한 힘을 담고 얼음창에 부딪쳤다. 하지만 얼음창은 그 크기에 비해 약한 피해만을 입었을 뿐, 뇌전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스러져 갔다.

"드래곤의 힘에 비하는 건 역시 무리란 건가……."

디엔트가 픽 웃으며 말했다. 마법의 조종(祖宗)이란 말은 역시 허명(虛名)이 아니었다. 가벼운 마법마저 어쩌지 못하는 것이 현재 일행의 현실이었다.

"이봐, 힘 빠지게 하지마. 곧 마비가 풀린다고. 잠시만 버티면 돼."

키리안이 축 늘어지려하는 디엔트에게 질책의 뜻을 담아 말했다.

"일단 저것부터 막자고. 아리에!"

떨어지고 있는 시린빛의 창을 노려보며 키리안이 소리쳤다. 그리고 펼쳐지는 반투명한 푸른 빛의 막!

"사이 배리어-트리플(Psi barrier-triple)!"

일행을 덮는 세 겹의 방어막. 그것은 마법에 관해 최고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사이 배리어였다. 그것도 유일무이하게 단 하나의 씰만이 이룬 3스킬 12레벨 마스터의 사이 배리어다. 와보라고!

차차차차차창-!

마치 크리스탈이 잘게 부숴지듯 얼음의 창들은 사이 배리어와 부딪치며 허공을 수놓는 빛이 되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여유가 일행에겐 없었다. 영롱한 소리 속에 사이 배리어 하나가 이미 파괴되었고 두 번째의 것을 힘차게 두들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실버 드래곤에 의해 끝없이.

"빌어먹을 녀석, 즐기고 있는 건가?"

키리안이 마나 포션을 마시며 이를 갈았다. 실버 드래곤 녀석, 금방 끝낼 수 있으면서도 마치 장난이라도 하듯 얼음의 창들만 줄기차게 떨어뜨리고 있었다.

차앙-!

두번째 사이 배리어도 깨졌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의 막. 일행의 상태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에 비견할 수 있었다.

차차창-

줄기차게 떨어지는 얼음창 속에서 아리에가 살짝 휘청였다. 그와 함께 금이 가는 사이 배리어의 막. 역시 무리였다. 레벨차가 그렇게도 심한 상황에서 여기까지 막아낸 것만 해도 대단한 것. 키리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모두 이제 움직일 수 있지? 사이 배리어가 깨지면 전속력으로 달리는 거야. 디엔트, 부탁해."

"알았어."

디엔트는 키리안이 원하는 바를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휘잉-

바람이 불어와 일행의 다리를 휘감았다. 헤이스트의 효과를 주는 바람의 정령의 힘이다.

"길은 내가 뚫지."

"위쪽의 거슬리는 얼음들은 내가 막을게."

카디안이 스태프를 들고 일행의 앞에 섰다. 통로까진 70m. 전력으로 달리면 8초 안에 주파할 수 있다. 주변의 몬스터를 쓸어버리면 방해 받지 않을 수 있다. 디엔트는 일행의 중심에 데미시온과 함께 섰다.

"카리나."

"예에~"

그의 파트너 중 하나인 귀여운 서큐버스 카리나가 그의 부름에 애교있게 답하며 앞에 섰다.

카디안은 검붉은 스태프를 들고 마나와 기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주문을 외워나갔다.

화르륵-

곧 스태프의 앞에 지옥의 불꽃이 소환되었다. 악마들의 아버지, 로드 오브 다크니스의 권능의 일부분인 억겁의 불꽃이 피어오른 것이다. 그것은 주문과 함께 점점 그 크기를 키워나갔다. 그리고 절정에 달하자 그 힘을 개방하며 카리나를 뒤덮고 타올랐다.

차아앙-!

겨우겨우 버티던 마지막 사이 배리어가 깨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쓰러지는 아리에를 키리안이 업었다.

쏟아지는 얼음의 창들. 그리고 펼쳐지는 두 개의 합체기!

"혼돈의 강에 흐르는 대지를 가르는 붉은 황혼의 다섯 개의 별. 신조차 멸하는 어둠! 대지를 유린하는 광란의 빛! 자비에르 기가데인!"

디엔트의 외침과 함께 데미시온이 막강한 마기를 뿜어내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들어올린 오른손의 주위로 마기의 역오망성이 그려지며 막대한 힘이 응집되었다. 그리고 뿜어지는 무수한 빙정과 암뢰.

콰과과과과과과-!!

그것은 잠시지만 훌륭히 얼음의 창을 막아냈다. 그리고 그 사이 카디안의 합체기가 작렬했다.

"심연의 그림자 속에 감추어져 있는 혼돈. 혼돈 속에 존재하는 심연의 불꽃. 그 불꽃의 축제를 벌여라! 아바돈 오브 카오스!"

카디안이 마지막 시동어를 외치자 카리나는 최강의 방어수단이자 공격수단이라 할 수 있는 억겁의 불꽃을 두르고 총알처럼 쏘아져 나갔다. 모든 것을 삼키는 죽음의 불꽃이 꼬리처럼 그녀를 뒤따르며 지나치는 주변의 모든 것을 불태웠다.

콰르르르르-!!

대지가 터져오르고 녹아내렸다. 그리고 뚫리는 생로(生路)!

"달려!"

모두가 필사적으로 카리나가 뚫은 길을 달렸다. 아직까지 강한 열기가 남아있었지만 그것을 따질 여유가 일행에겐 없었다.

크오오오오오-!!!

도망치는 일행을 보는 실버 드래곤의 눈에 막대한 분노가 서렸다.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반항을 한다. 겨우 장난감이. 필요없는 장난감에게 남은 것은 폐기처분, 단 하나 뿐이다!

콰우우우-!

주변의 마나가 벌려진 실버 드래곤의 입으로 무섭게 빨려들어갔다. 그 압력은 일행에게도 느껴졌다. 브레스라니, 조금만 가면 되는데, 조금만 가면 되는데!!

콰아아아아아-!!

결국 일행이 통로에 한 발을 들였을때 브레스가 들이닥치고 말았다. 좁은 통로를 몰아칠 브레스를 막아낼 힘이 일행에겐 없었다.

"끝이군."

키리안은 몰려드는 백색 냉기의 기둥을 보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아직 그들을 버리지 않은 듯 했다.

콰아아아아아아-!!

냉기의 기둥에 저항하듯 막강한 눈보라가 몰아쳤다. 그것은 실버 드래곤의 것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압도하는 면을 보이며 냉기를 밀어내고 있었다!

콰우우웅-

둘은 서로 상쇄되어 사라졌고 후폭풍이 몰아쳤다. 그 강한 바람에 잠시 시야가 가려진 일행.

"응? 라시드 형!"

"앗, 타나 언니!!"

다시 눈을 뜬 일행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실버 드래곤에 전혀 뒤지지 않는 순결한 백색 드래곤 위에 멋진 모습으로 서있는 라시드 카인과 아스타나 사야카였다.

고대 유적의 유물

흐응..

단편 쓰느라 며칠 연재가 늦었습니다-ㅁ-)a

자, 곧 아리에의 본래 풀 파워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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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sixteen - 고대 유적의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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