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앱솔브-60화 (6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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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르르-

"미, 미치겠군. 액운 꼈나? 뭐 이따구야?"

키리안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소리쳤다. 아무리 긴박감 넘치는 전투를 좋아한다지만 어느 정도 승산이 있고 게임이 돼야 '긴박감 넘치는 전투'가 성립되는 법이다. 하지만 이건 뭔가? 9클래스 마법만 날아와도 위태위태한 일행에게 드래곤이라니?

파아앗-

템플 나이트들은 어느새 드래곤의 양쪽에 서서 홀리 오라(Holy aura)를 피워올리고 있었다. 얍삽한 것들. 드래곤이 보이니까 그대로 태도를 바꿔 가디언 행새를 하고 있다.

"쳇, 도망치자!"

이 상태에서 방법은 단 하나 뿐이다. 36계 줄행랑!

후다다다-

들어온 통로로 잽싸게 몸을 돌려 다리를 놀리는 일행. 하지만 이 전법은 몇 초만에 분쇄되어 버렸다.

쿠우웅-!

무형의 거대한 힘이 작용해 통로를 때렸다. 강력한 힘에 일행은 그대로 튕겨 나갔고 통로는 단숨에 무너져 내렸다. 유일한 출구가 봉쇄된 것이다.

"글렀군. 싸울 수밖에."

디엔트가 몸을 툭툭 털며 말했다. 파트너는 어느새 데미시온과 아세리아로 바뀐 상태. 싸워보겠다는 말이다.

"승산 전무(全無)지만 별 수 없군. 템플 나이트 놈들 하나는 저승에 보내고 죽을 거다!"

키리안 역시 전의를 불태우며 검을 곧추세웠다.

"흐음, 승산이 전무이지만은 않아. 꼴 보니까, 저놈 포스 드래곤(Force dragon)이야. 진다고만은 할 수 없어."

배수진을 치고 싸우려는 듯한 일행에게 아리에가 잠시 드래곤을 살피더니 말했다.

"응? 포스 드래곤? 그건 또 뭐야?"

생소한 단어가 나오자 키리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은 아직은 경험이 부족한 카디안도 마찬가지. 하지만 디엔트와 아르니아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에는 키리안이 역시 모른다는 얼굴을 하자 설명에 들어갔다.

"포스 드래곤. 녀석은 다른 드래곤에 비하면 마법 실력이 일천해. 겨우 7클래스 마스터 정도지. 마력도 여타 드래곤에 비해 좀 떨어져. 대신, 육체 능력이 엄청나. 엄청난 비행 능력, 공격, 방어 능력을 지니고 있어. 맨몸에 검기를 맞아도 흠집밖에 나지 않아서 유저들의 거품을 물게 한 적이 있는 녀석이지."

"흐음, 마법이 서툴단 말이지? 그럼 녀석을 피해 템플 나이트를 요격하며 살길을 모색해 봐야겠군."

엄청나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냥 절망적인 상황으로 호전되었다. 일행의 사기가 올라간다. 뭐, 그래봐야 바다에 빠진 것에서 동정호(중국의 바다를 연상시킬 정도로 큰 호수)에 빠진 정도로 호전되었을 뿐이지만 이게 어딘가.

크오오오오-!

드래곤이 울부짖자 템플 나이트가 후다닥 일행에게 달려든다. 드래곤은 템플 나이트를 생각해서인지 직접 움직이진 못하고 자잘한 마법, 이를 테면 플레임 스피어라든가 아이스 스피어 등의 마법을 날려댔다.

화르륵-!

화염의 창이 키리안을 노리고 일직선으로 날아온다. 급히 몸을 굴리는 키리안. 그리고 덤벼드는 템플 나이트. 직선으로 찔러 들어오는 검에 키리안은 몸을 뒤로 젖혀 피해낸 뒤 그대로 누워버렸다. 그 후 컨트롤 바이틸리티로 기력을 폭발적으로 쏘아보내며 발차기를 시도했다. 목표는 발목의 옆부분!

파앙-!

진각을 밟은 왼발 대신 오른발을 쳤기 때문에 템플 나이트는 멋지게 땅을 굴렀다. 그 뒤에 내리꽂히는 아리에의 은빛 잔상!

"강림(降臨)!"

검기를 잔뜩 돋우고 아래로 내리꽂히는 아리에! 낙하의 힘과 검기의 힘이 더해진다면 충분히 템플 나이트를 요절낼 수 있다!

콰앙-!

"앗! 사이 배리어!"

하지만 기대는 포스 드래곤에 의해 무너져 버렸다. 놈은 다시 한 번 대기와 관련된 마법으로 아리에를 공격했고 그녀는 별 수 없이 공격을 포기하고 사이 배리어를 쳐 그 공격을 막아내야 했다.

퍼엉-!

압축된 공기가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아리에가 튕겨졌다. 키리안이 급히 그녀를 받았고 둘은 주르륵 밀려난 뒤에야 멈출 수 있었다.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템플 나이트는 넷, 일행도 넷이었지만 아르니아는 전투력이 높지 않았다. 아르니아의 부족한 것을 디엔트와 카디안이 겨우겨우 채우고 있는 중이었다. 하나도 상대하기 힘든데 둘이서 셋을 상대해야 하니 금방 한계가 드러날 것이다. 그나마 실력이 출중하지 않았다면 뻗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후웅- 후웅-!

"나, 날았다?"

멀리 밀려났기에 잠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던 키리안은 눈을 크게 떠야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포스 드래곤이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순식간에 가속해 키리안 쪽으로 급강하했다.

"으, 으갸아아아아!!"

키리안은 기겁하며 아리에와 함께 몸을 날렸다.

쿠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소음.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급강하 후 주변으로 밀려나는 공기에 의해 키리안과 아리에는 원치 않게 땅을 굴러야했다.

키리안은 품에 폭 안긴 아리에의 체온을 느낄 사이도 없이, 아리에는 키리안에게 응징을 가할 사이도 없이 서로 반대로 몸을 날려야 했다.

콰앙-!

압축된 공기의 탄환이 키리안과 아리에가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과연 빌어먹을 드래곤답게 썩어도 준치라는 건지 파이어볼을 상회하는 물리력을 지닌 압축탄이 계속해서 키리안과 아리에를 노리고 쏘아졌다. 그것만이면 말도 안하지, 꼬리가 지속적으로 땅을 쓸어와 원치 않는 엽기 줄넘기를 해야 했고, 날개에 얻어맞을까봐 뛴 뒤엔 바로 컨트롤 바이틸리티를 이용, 땅으로 내려서야 했다.

"갸아아아악! 빌어먹을 녀석아아아아!!"

다시 날아오는 꼬리. 키리안은 발작을 하며 몸을 띄웠다. 그리고 날아오는 날개. 키리안은 활활 타오르는 눈동자로 그것을 응시하며 몸을 낙하시켰다. 그냥 낙하한 것은 아니었다. 검을 머리 위로 들어올린 상태였다. 그것의 날은 오라 스플리트와 콘센트레이트 오라의 수법으로 인해 엄청나게 날카로워져 있었다.

슈아아악- 카아아앙-!!

곧 날개가 날아오고 키리안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폭풍이라도 만난 듯 미친듯이 펄럭였다. 그리고 검과의 충돌!

휘이이잉- 콰앙-!

역시 키리안의 일천한 실력과 기력으론 무리가 있었다. 검이 가뭄에 의해 갈라진 논처럼 갈라졌고, 그 충격에 키리안은 훨훨 날아 벽에 처박혔다. 그나마 검에 대부분의 충격이 가 죽지는 않았지만 꽤 큰 타격이었다.

"주, 주인님. 괜찮아?"

아리에가 달려와 엉망인 키리안의 상태를 살핀다.

"에, 에고고. 빌어먹을 드래곤 녀석. 역시 무리였나."

승산이 없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무언가 반전을 바라고 공격했는데 결국 드래곤이 더욱 유리하게 되었다.

"일단 포션부터 마셔라."

아리에는 바로 키리안의 인벤토리를 연 뒤(이것도 다른 유저가 보면 그대로 눈이 뒤집힌다) 특제 화이트 포션(체력, 마력을 꽉꽉 채워준다. 물론, 느리게)을 꺼낸 뒤 한모금 들이부었다.

"후우……."

그나마 좀 나아지자 키리안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포스 드래곤은 이제 다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여유롭게 발을 구르며 키리안과 아리에에게 다가왔다.

포스 드래곤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는 키리안. 막 걸음을 떼려는 그의 발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고개를 숙여 살펴보니 이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금빛의 이쁘게 생긴 큐브가 하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응? 웬 큐브래?"

키리안이 그것을 잡아들며 의아함을 가득 담아 말했다.

"여기에 있던 건가 보네."

주변을 살피던 아리에가 뒤쪽에 있는 작은 제단을 발견하곤 말했다. 어쩐지 꽤 심하게 무너졌다 했는데 원래 뚫려있던 곳이었나 보다.

슈아아앙-!!

주워든 큐브를 살피려던 때에 포스 드래곤이 다시 한 번 압축탄을 날렸다. 키리안은 쾌속하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아리에가 그의 허리를 잡고 압축탄을 피했다.

"주인님, 회피는 나한테 맡기고 그거 한 번 살펴봐. 이런 곳에 있는 것이 평범한 물건일 리는 없을 테니."

"알았어."

아리에의 말에 키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큐브를 살펴봤다.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큐브를 만지작거리는 키리안.

[띵- 위시 큐브(Wish cube)를 획득하신 당신! 지금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고민하고 계시겠죠? 네~ 그것을 위해 등장했습니다! 메뉴얼을 참고해 주세요!]

"헤에?"

그의 질문에 화답한 것일까? 갑자기 눈앞에 메세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아래엔 '메뉴얼'이란 글자가 보였다.

무언가 흥미가 생겨 키리안은 손가락으로 메뉴얼을 꾸욱 눌러주었다. 그와 함께 설명서가 떠올랐다.

[위시 큐브 사용법.

혹시 이 큐브를 그저 장난감이라 생각하고 계신 건 아니겠죠?! 그럼 참으로 곤란합니다! 이 다재다능하고 멋지구리한 큐브를 그저 장난감이라 생각하시다니! 흠흠, 그것은 아닐 거라 믿고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위시 큐브는 2x2의 사이즈부터 최고 6x6의 사이즈까지 변형이 가능합니다. 2x2는 어린애라도 맞출 수 있겠죠? 그리고 보통의 3x3의 사이즈는 뭐 인연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은 만져봤겠죠. 하지만, 4x4부터는 만져본 분이 없을 겁니다. 당연하죠.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여기가 어딥니까? 환상의 게임 속이 아닙니까?! 그런 고정관념은 버리세요! 여기엔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바로 당신의 손 위에요!

당신이 원한다면 그에 맞춰 큐브는 변화합니다 2x2에서 6x6까지 말이죠. 지금부터 그 효과를 말씀 드리죠.

위시 큐브는 소원을 들어주는 큐브입니다. 단, 그것엔 확률이 있습니다. 2x2는 2%의 확률, 3x3은 5%의 확률, 4x4는 10%의 확률, 5x5는 15%의 확률, 마지막으로 6x6은 기가 막히게도 50%의 확률을 자랑합니다. 물론, 그만큼 맞추기 어렵습니다.

큐브를 모두 맞춘 후 자신의 소원을 말해보세요! 운이 좋다면 그것이 실제로 이뤄질 겁니다!

단!! 말도 안되는 소원은 '즐!'입니다! 이를 테면, 자격 레벨 영원히 해제! 잡는 몬스터마다 경험치 10배! 이따구(!)로 말하면 소원은 무시되고 큐브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음, 어느 정도 밸런스 파괴 정도는 봐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일시적이지만 말이죠. 어느 정도 선까지는 소원을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럼, 처음으로 개시되는 것이니 서비스로 앱솔루트 위시(Absolute wish)를 발동해 드리겠습니다(아, 이건 랜덤입니다. 확률 무지하게 낮으니 한 번으로 만족하세요). '내 소원은 ~다' 라는 형식으로 말하시면 됩니다. 그럼, 소원을 말씀해 주세요.]

"오호, 그렇단 말이지?"

아리에의 입가에 필설로 형용이 불가능한 미소가 걸렸다.

"후후후, 주인님."

무언가 오한이 돋는 목소리로 아리에가 키리안을 불렀다.

"응? 왜?"

키리안의 대답에 아리에가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우리에 한해 일시간 자격 레벨의 효력 무효를 빌어."

"…호오, 그런 게 가능했네."

키리안의 입가에도 아리에와 비슷한 미소가 걸렸다. 그 자신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아리에의 본래의 위력. 그것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알 수 없는 흥분에 몸이 떨린다.

"좋아! 내 소원은, 나와 아리에에 한한 일시간 자격 레벨의 효력 무효다!"

파아앗-!

키리안이 소원을 외치자 큐브가 눈부신 금빛을 뿜어냈다. 그것은 키리안과 아리에를 감싼 뒤 강렬하게 자신의 힘을 방출하고 사라졌다.

……

변한 건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다만, 보이지 않는 면은 확실히 달라졌다. 아리에, 그녀는 어느새 위시 에이전트를 뽑아들고 있었다. 포스 드래곤을 깊디깊은 푸른빛 눈동자로 응시하는 그 모습에 주눅 따윈 보이지 않았다.

"자, 오랜만에 드래곤 슬레이어(Dragon slayer)의 솜씨를 발휘해 보실까?"

그녀의 미소엔 절대자의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이실직고(以實直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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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seventeen - 이실직고(以實直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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