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조용했다. 아스타나의 질문이 있은 후 모든 시선은 아리에에게 집중되었고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리 아리에라지만 정적 속의 시선은 부담스러운지 조용히 눈을 감고 등 뒤의 벽에 기대고 침묵하고 있었다.
그녀는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무언(無言) 속에 담아 강렬히 풍기고 있었지만 아스타나는 간단히 넘겨버리고 대답을 듣고 말겠다는 기세였다.
'버그 아니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
아스타나는 답을 크게 두 가지로 갈라놓은 상태였다. 정말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듣자하니 레벨 5때부터 아리에와 함께 해왔다는데 이건 정말 버그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경우다. 아니, 마스터 랭커의 파트너였던 레벨 302의 최강의 씰이 겨우 레벨 5짜리의 유저의 부름에 답하고 명령을 들어줬다? 이런 말도 안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거의 버그로 확정한 아스타나였지만 혹시 자신이 모르는 새로운 히든 피스(Hidden piece. 게임 내에 존재하는 숨겨진 시스템 등을 말한다) 등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기에 물어보는 것이다. 키리안은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듯 했기에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건 아리에 뿐이다.
결국 시선을 이겨내지 못했는지 아리에가 벽에 기대고 있던 등을 떼며 모두를 둘러보았다. 드디어 반응을 보이는 그녀에게 느슨해졌던 시선이 다시 팽팽해졌다. 그녀는 과연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모두가 긴장한 가운데 그녀의 무거웠던 입술이 열렸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묵비권을 행사할게."
파아아앗-!
그녀는 무심하게 한 마디를 던지곤 빛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일행 모두가 허탈, 분노, 경악에 빠져 아스트랄한 표정이 되었다.
"이, 이런 게 어딨어어어!!!"
가장 기대했던 아스타나는 광분하며 키리안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곤 뒤흔들었다. 지적인 미녀의 모습이지만 그녀는 레인저 로드. 그 가느다래 보이는 팔에는 키리안 정도는 분질러 버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숨어 있었다.
"사, 살려……"
키리안은 호흡 곤란에 팔을 허우적거렸지만 반쯤 눈이 뒤집힌 아스타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분풀이에만 집중했다.
"그, 그만 하세요!!"
결국 키리안이 생명의 위험을 느끼자 유하가 주술까지 동원해서 아스타나를 떼어내기 위해 움직였고 라시드까지 가세함으로써 키리안은 겨우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
"왜, 왜, 왜자꾸 내 모가지만 잡고 흔드는 거냐아아아아아……"
저승사자와 끝말잇기를 하는, 아무리 이겨서 돌아왔다지만 별로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한 키리안은 언제나 자신의 모가지가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한탄했다. 유하가 그의 등을 토닥여주었지만 싫은 건 싫은 거다.
"역시 아리에로군. 또 몇 명을 보내버렸네."
"응. 쯧쯧, 키리안 녀석. '왜'라고 할 거 있나. 다 아리에 때문이지."
카디안과 디엔트가 비르적거리는 키리안과 발작을 하고 있는 아스타나를 보며 혀를 찼다. 아스타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기에(시티 오브 나이츠 때의 사건 참고) 둘은 유수청풍의 길드 마스터가 망가지는 것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개판이 되었던 상황은 아스타나의 스테미너가 모두 떨어지고, 그들의 눈앞에 공지창이 떠올랐을 때 겨우 끝이 났다.
띠딩-
맑은 소리와 함께 떠오른 공지창 덕분에 모두는 잠시 행동을 멈추고 그것에 집중했다.
[안녕하세요, 디카릭입니다~ 이벤트는 즐거우셨나요? 고대 유적엔 보물 상자도 여럿이고 고대의 주술을 배울 수 있는 곳도 여럿이었는데 말입니다. 대박 나셨길 빌며,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몇 분의 유저께서 배치된 가디언들(그러니까 두 마리 드래곤과 몬스터 떼거리죠)을 물리치고 고대 유적의 유물을 얻는데 성공하셨습니다. 목적이 달성되었으니 이벤트가 쫑나는 것이죠. 뭐, 그렇다고 실망하진 마세요. 이벤트는 끝이지만 이곳 고대의 대지는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요. 아직 발견되지 못한 고대의 주술과 보물 상자들 역시 남을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 이곳 많이 사랑해 주세요~
그럼 이벤트 당첨자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놀랍게도, 놀랍게도 말입니다…… 고대의 유물을 얻고 최종 가디언이었던 포스 드래곤을 무찌른 것은 바로! 바로!
레벨 67의 기사와 그 씰이더군요!
정말 놀랐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분의 씰이 다신 등장할 수 없으리라 여겼던 전설의 씰이란 점이지요. 뭐, 이 이상은 포스 드래곤을 잡는 짧은 동영상으로 해결 되리라 보고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ps. 이제 워프 스크롤이나 텔레포트 마법이 먹힐 겁니다. 갇혀 있던 당신, 탈출하세요~]
이벤트의 끝을 알리는 공지창이었다. 더불어, 앞으로 키리안이 살짝 유명해 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공지창이기도 했다. 게임의 특성상 무슨 연예인에 가까운 유명세를 타진 않겠지만 고수나 좀 특별한 유저들 사이에선 '일반'으로 분류되지 않을 유저가 될 것이다.
"여, 키리안. 공지 탔네(≒방송 탔네). 자식, 저번에 이어 이번에도 유명인이 되겠구나."
"시끄러."
장난스럽게 말하는 카디안을 침묵시키며 키리안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 좋지 않은 쪽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허접한 유저가 그 '전설의 씰'을 지녔으니 꽤 귀찮은 일이 생길 것은 자명한 일이다. 물론 신경 끄면 별 것 아니겠지만 그에 무감각하지 못하는 꽤 소심한 자신이니…….
"음, 키리안."
괜히 귀찮게 되었다고 투덜거리고 있을 때 아르니아가 그를 불렀다.
"응, 왜?"
"너 말이야, 유수청풍에 가입하지 않을래? 다른 사람들도요."
그녀는 별달리 망설이는 기색없이 모두에게 제안했다.
"에? 너희 길드에?"
"응. 이것도 인연인데 괜찮잖아? 게다가 너나 디엔트, 카디안 오빠 같은 경우엔 실력도 좋으니까 같이 사냥하기도 수월하고. 무엇보다 너나 라시드님이 있으면 광고 효과도 좋다고."
다른 의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말 키리안들이 마음에 들어서 하는 순수한 제의였다.
'길드라……'
언제나 혼자 놀고 1:다수로 싸워왔던 그에게 길드란 약간 낯선 단어였다. 괜히 귀찮기만 하니까 말이다. 더불어 길드의 후광 등을 업고 거들먹거리던 녀석들을 정말 싫어하던 그였다(덕분에 거대 길드랑 마찰을 일으킨 게 한 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은 왠지 끌린다.
이곳에서의 그는 행동 하나로 게임 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최강의 힘을 지닌 유저도 아니다. 널리고 널린 평범한 유저 중 하나일 뿐인 이곳에서라면 꺼림칙한 일도 없다. 아스타나나 아르니아도 '더러운 유저'로는 보이지 않으니까.
아직 깊이 알지 못하는 자매지만 자신의 판단은 그렇다. 길드의 모든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어차피 모두가 깨끗할 거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는 제의를 승낙하기로 했다.
"뭐, 난 좋아. 둘은 어때?"
"네가 괜찮다면 나도 딱히 반대할 이유는 없지."
키리안이 가입하겠다고 하자 카디안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디엔트 역시 반대하는 기색은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한 명. 라시드 뿐이다.
"흐음…… 뭐, 나쁠 건 없겠지. 길드라는 명목 하에 구속하지만 않는다면 나도 오케이다."
"좋아요! 그럼 이걸로 영입 성공~ 같이 길드로 가요~"
"내가 디엔트와 카디안, 키리안을 데리고 섬 위로 텔레포트 할 테니 아스타나님은 아르니아와 함께 오세요. 그 뒤에 실리에르를 타고 대륙으로 이동하죠."
"알겠습니다."
대충 결정이 되자 라시드는 실리에르에게 부탁해 텔레포트 그룹의 주문을 외웠고 아스타나는 워프 스크롤을 꺼내 주문을 외웠다.
파아앗-
주문이 거의 완성되자 빛이 일행의 주변을 감돌았다.
"아아, 드디어 이 지옥같은 곳을 벗어나는 구나."
모두가 이 삐리리한 미로에 꽤나 시달렸기에 시전되는 공간 이동의 마법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위에서 보자고."
[텔레포트.]
"워프!"
파아아앗-!
주변에 감돌던 밝은 빛은 시동어와 함께 일행을 감싸고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실직고(以實直告) 그 두번째
=ㅅ=a 글 날렸심.
딱 두 줄..--)
[웃긴 상황이었음 ㅋㅋ]
****
Stage eighteen - 이실직고(以實直告) 그 두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