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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마른 대지. 적갈색의 죽어버린 대지 위엔 풍화되어 새겨진 글을 알아볼 수 없는 대리석과 말라비틀어진 나무만이 존재하는 이곳은 '망자의 대지'라 불리는 사냥터이다.
노비스 시티의 남쪽에 위치하는 시티 오브 시프(City of thief)의 북서쪽에 위치하는 곳으로, 이름 그대로 공동묘지나 다름없는 사냥터이다. 등장하는 몬스터는 뻔하게도 언데드와 유령 계통이다.
우우우우우-!!
이히히히히-!!
적막한 대지의 허공을 내리누르고 찢어발기는 소음이 있었다. 생기(生氣)가 느껴지지 않는 둔하고 탁한 언데드의 괴성과 반투명한 백색의 망령이 내는 찢어지는 듯한 울음. 듣는자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소음이지만 그 중심에 서있는 소년과 그 씰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흠, 유하야?"
엉망진창인 그 소음연주를 더이상 들어줄 수 없었는지 소년, 키리안이 곁에 있는 유하를 보며 나직히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곤 한발짝 앞으로 나서서 주술을 외웠다.
"사악한 것을 단죄하는 성령들의 장군이시여, 지금 그 힘을 내려주시어 부정한 것들을 조아리게 하소서. 사자후(獅子吼)!"
우오오오오오오!!!
주술을 외운 뒤 은빛의 방울을 꺼내 흔들자 영롱한 방울소리가 아닌 주변을 진동시키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사(邪)를 멸하는 신성한 외침. 그것에 주변을 떠돌던 언데드가 부르르 떨었고 유령들이 미쳐서 날뛰었다.
"조오으아~ 그럼 '성령(聖靈)의 가호(加護)' 부탁해!"
"예. 천계의 빛 아래 노니는 성령들이여, 사를 멸할 힘을 빌려주소서 성령의 가호!"
파아앗-
언데드와 유령들이 날뛰는 사이 유하가 키리안에게 마법으로 치자면 '홀리 인첸트(Holy enchant)'에 해당하는 주술을 걸어주었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검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키리안을 위한 주술이다.
현재 키리안의 레벨은 69. 검기는 레벨이 100이 넘어서야 배울 수 있는 검사의 고급 스킬이었기에 그에겐 아직까지 무리다. 그런 그가 검기나 마법이 아닌 이상 피해를 줄 수 없는 유령들이 깔려 있는 이곳에 올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유하 덕분이다.
그 존재감이 흐릿해 거의 잊혀진 존재였지만 그녀는 엄연한 무녀다. 퇴마가 주업무인 그녀에게 있어서 이곳은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멋진 장소인 것이다. 아이템도 잘 떨어지지 않고 기분이 괜히 찝찝한 이곳을 키리안이 사냥터로 선택한 것은 모두 유하의 능력을 알고 높이기 위해, 그리고 친화도를 올리기 위해서다.
아스타나의 질문에 아리에가 묵비권을 행사하고 빛이 되어 도망친지 삼일째. 그녀는 그 후로 다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키리안이 아무리 불러보고 흔들어도 그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키리안의 레벨로 불러낼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버그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에 전혀 이상한 상황은 아니었다.
'에효효, 아스타나님이 괜히 그런 걸 질문 해가지고…….'
키리안도 이제 대충의 시스템은 모두 파악했기에 이리저리 날뛰진 않았다. 물론,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만 해도 한숨을 푹푹 쉬고 있지 않은가.
매일 아리에를 여러번 불러보지만 그녀는 응답이 없었다. 결국 키리안은 그녀를 다시 보기 위해 레벨업에 전력투구를 하게 되었고 동료들이 없는 지금도 열심히 홀로 사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그는 본능에 가까운 모습으로 캐릭터를 컨트롤하고 있었다. 밝은 백색 빛을 머금은 그의 검은 그 자체만으로 언데드를 움츠러들게 했기에 키리안은 수월하게 언데드 하나를 반으로 조각낼 수 있었다.
푸쉬이이이-
상극인 성속성의 검에 맞았기에 언데드는 반토막나는 것으로 먼지로 변해 버렸다. 그 모습에 소극적이던 언데드들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죽어버린 주제에 생명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것이다.
"캬아아아악!!"
듣기 거북한 소리와 함께 언데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수는 일곱. 유하의 서포트가 없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물론, 무식하게 부딪쳐가면 바로 사망이다)
키리안은 달려오는 놈들을 확인하며 크리에이티드 스킬(Created Skill. 유저가 스스로 스킬들을 조합해 만든 것으로, Created Skill창에 저장된다)을 시전했다.
"연환검(連環劍)."
연환검. 처음 아리에와 만나고 사냥할 때 시도했던 것이었다. 딱히 '기술'이라 부르기엔 뭐한, 그저 키리안의 검술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물 흐르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검술. 그것이 키리안식(式)의 검술이었다. 처음 저레벨의 캐릭터로 시도했을 때 캐릭터가 굳어버리는 황당한 경험을 했던 키리안. 그때의 일을 교훈 삼아 만든 스킬이 연환검이었다.
검술의 기본 동작들을 조합해 섞고, 몸을 가볍게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연환검이었다. 검을 휘두름에 있어서 더욱 좋은 몸상태로 만들고 검을 끊어지지 않고 휘두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적인 이것은 딱히 무리가 가는 것이 아니었기에 기력 소모도 미미해 따로 다른 스킬을 쓰지 않는 이상 기력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키리안은 이 스킬을 언데드를 상대로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캬아악-!
가장 빠르게 키리안에게 도달한 것은 좌측의 두 마리. 단순하게 손을 내뻗어 할퀴는 것이 전부인 녀석. 손톱의 독만 조심하면 초보용의 몬스터나 다름없다.
가볍게 몸을 숙이며 좌측으로 180도 회전하며 검을 베어 나갔다. 제자리에서 검을 휘둘렀다간 정면의 언데드에게 당할 판이었기 때문이다.
언데드 두 마리가 동시에 허리가 베어 넘어갔고 정면에서 오던 두 마리가 그 잔해에 움직임이 잠시 막혔다. 키리안은 그 사이 계속해서 몸을 회전해 뒤에서 공격하려던 언데드 하나를 연속으로 벨 수 있었다. 그저 지켜보자면 느린 동작 같았지만 계산된 움직임은 무식하게 빠르게 움직이는 것 그 이상의 위력이었다.
정면에서 멈칫했던 언데드 두 마리에게 키리안의 뒤가 그대로 노출되자 놈들은 바로 괴성을 지르며 몸을 날려왔다. 키리안은 그대로 땅을 살짝 차며 앞으로 나가며 그 진로에 있던 언데드 하나를 살짝 베고 지나갔다. 뒤의 녀석들은 다가오던 다른 녀석과 충돌해 허우적대고 있었다.
'아아, 쪽수 빼면 정말 볼 게 없다니까.'
저급의 몬스터에게 박진감 넘치는 승부를 바라는 것은 심한 욕심이다. 키리안은 볼 것 없이 몸을 회전시키며 언데드들을 베어나갔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효과를. 그것이 목적이다. 성령의 가호가 있는 이상 언데드들을 베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약간의 회전력만 더해주면 힘줘서 휘두를 것 없이 언데드들을 벨 수 있는 것이다. 동작이 크지 않으니 빈틈도 적고 체력 소모도 미미하다. 그야말로 경제력 만점인 방식이다.
캬아아아아-!!!
"유하야, 폭염 부탁해!"
언데드가 다수 재로 변해 흩날리자 이리저리 방황하던 유령들이 달려들었다. 언데드완 달리 상당히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녀석이다.
키리안은 다가오는 세 마리를 시선에 두곤 가만히 때를 노렸다.
캬아악-!
근접한 놈들은 정면과 우측. 키리안은 놈들이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검날을 놈들에게 향하며 좌측으로 뛰었다.
파지지직-!
키리안의 팔과 검은 일(一) 자 모양을 취했고, 유령은 그에 갖다 박은 격이 되었다. 그야말로 손 안대로 코푸는 격으로 유령들을 잡은 것이다.
놈들이 괴로워하며 사라지자 키리안은 뒤로 펄쩍 물러나며 유하를 불렀다.
"유하야, 폭염이다!"
"예! 폭발하는 화산의 힘을 간직한 화염이여, 내 앞의 적을 격(擊)하라. 폭염(爆炎)!"
화르르륵-!
주술이 완성되자 검붉은 빛의 화염 구체들이 떠올랐다. 유하는 그것이 완성되자마자 언데드들에게 날렸다. 유령과는 달리 속도가 느린 언데드들은 대다수 그것을 피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얻어맞아야 했다.
퍼퍼퍼펑-!!
"크오오오오……!"
성속성과 함께 최악의 속성인 화속성에 당한 언데드들이 몸이 타오르며 재로 흩어져갔다.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에 퇴마의 힘이 담기는 무녀의 주술이기에 더욱 치명적이었다.
언데드가 대충 처리되자 키리안은 유령에 집중하며 몸을 날렸다. 몇 마리를 소멸시키자 나머지는 알아서 겁을 집어먹고 저멀리 도망갔다.
전투가 끝난 후 떨어진 아이템을 줍고 상황을 정리하자 작은 메모창이 떠올라 시간이 5분 남았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실제의 시계를 호출해 시간을 확인하니 11시 40분이었다. 대충 정리하고 잘 시간이다.
"음, 시간이 다됐네. 유하야, 그럼 내일 보자."
"예, 기다릴게요."
그동안의 성과가 있어 그녀는 어제부터 로그 아웃 전에 인사를 해주었다. 그것도 상당히 기분을 좋게 하는 멘트를 말이다.
"응, 잘자~"
그녀의 인사에 키리안은 기분 좋게 웃으며 로그 아웃 했다.
이실직고(以實直告) 그 두번째
ㅡㅡ;; 다운 로드 속도 개판 되어 버린..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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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eighteen - 이실직고(以實直告) 그 두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