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앱솔브-66화 (66/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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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딱-

분필 소리만이 허공에 내려앉는 조용한 수업 시간. 극악의 선생님 중 하나로 소문난 영어 선생님의 수업 시간이었기에 소음과 잠, 장난질은 용납될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모두 교과서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아니, 표면적으로만 그랬다. 실상은 달랐다.

툭-

괜히 복잡한 심사에 속으로 수십 번도 더 괴성을 지르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하현에게 고이 접힌 흰색의 쪽지가 하나 날아왔다. 살펴보니 좌측 1분단의 세번째 자리에 앉은 녀석이 보낸 것이다.

[오오,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지, 김하현!! 언제 저런 퀸카를 꼬신 거?!!

ps. 주인님이라니…… 므, 므흣~♡]

콰직-!!!

참으려다가 결국 터지고 말았다. 마지막의 므흣이 너무나 심각했다. 그나마 소리를 지르지 않은 것이 하느님이 보우하사 길이 보전하세였다.

별다른 행동도 못하고 그는 그저 살기를 담아 놈을 노려볼 뿐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씨익씨익 웃고는 시선을 휙 돌려 버렸다.

'으아아아아악!!!'

절규하는 그. 하지만 수난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녀석 말고도 쪽지를 보내는 녀석은 얼마든지 있었다. 고련의 시간. 버티지 못하면 육체적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저 득도하길 기다리며 애꿎은 아리에만을 원망했다.

띵동-!

'…됐다.'

드디어 종이 쳤다.

"차렷! 경례!"

"감사합니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인사가 끝나자마자 마치 실성한 고릴라(생긴 건 아니지만)와 같이 무서운 기세로 자리를 박차고 교실을 가로지르는 하현. 그는 자신과 비슷하게 쪽지에 시달린 듯한 아리에의 팔목을 낚아채곤 그대로 교실을 벗어나 인적이 드문 곳으로 달렸다.

강당과 매점을 잇는 통로 사이에 있는 그 만의 비밀장소로 도착해서야 하현은 몸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흘끔 살피니 아리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모습이다. 다만 너무나 하얀 피부 덕분에 더욱 붉어보이는 손목을 흔들거릴 뿐.

"흐음, 주인…… 아, 이게 아니잖아! 이름이 뭐야?"

아리에는 반사적으로 하현을 '주인님'이라 부르려다 곧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괜히 혼자서 버럭 소리를 지르곤 하현에게 물었다. 저녀석……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제대로된 의미를 담긴 한 걸까? 무슨 뉘집 개 부르는 듯한 느낌이 묻어난다.

하현은 아리에의 대사에서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지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하현, 김하현이야. 그럼 너는?"

"음, 하현이구나. 알았어. 나는 연하영. 뭐, 괜히 어렵게 부를 필요는 없으니 하현이라고 할게. 주인…… 아, 미치겠네!"

그녀는 입에 붙어버린 호칭에 머리를 휙휙 저었다. 그에 따라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카락이 하현의 눈을 즐겁게 한다.

"나도 편히 부르라고 하려고 했지? 뭐, 나야 좋지. 그렇고 그런 사이에 또다시 '아 예, 반갑습니다' 라고 하는 것도 영 아니니까."

"어이어이, 주, 아아악! 몰라. 어쨌든 다 좋은데, '그렇고 그런 사이'는 좀 뭐하다."

"사소한 건 신경 끄라고. 그보다, 나 궁금한 게 많은데 말이야……."

그는 정말 궁금하다는 듯 눈을 빛내며 아리에, 아니 하영을 응시했다. 그의 눈빛에 그녀는 난감한 듯 시선을 돌리며 우물거렸다.

말해줄 생각이 없는 건 아닌 듯 해서 하현은 시선을 돌리는 그녀에가 다가가 자꾸 시선을 맞추려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하영이 더욱 당황한 듯 이리저리 피해다니다가 결국 포기했다는 듯 몸을 멈추고 소리쳤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말해줄 테니까 그만!"

그녀의 항복 선언에 하현이 행동을 멈추곤 씨익 웃었다.

"좋아, 그럼 지금은 좀 무리일 테니까 점심시간에 보자. 밥 먹고 들으려면 잡탱이들 때문에 무리니까 그냥 바로 명당으로 가자. 나만 아는 곳이 있으니까. 대신 내가 떡볶이랑 김밥 사줄게~"

"게임에서도 부려먹더니 이젠 밥까지 못 먹게 하려고 들어? 우우, 나쁜 주인님."

이번엔 의도적인 듯 그녀는 괜히 모션을 크게 잡으며 말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하현 역시 약간 바보같은 모습으로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었다.

"그럼 점심 시간을 기약하면서 이만 들어가자."

"예예."

그렇게 하현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방향으로 그녀의 비밀을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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