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앱솔브-76화 (76/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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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아-

부드럽게 백금색의 백사장을 훑고 지나가는 녹빛에 가까운 깨끗한 바다. 적당히 눈을 부시게 하는 따듯한 햇빛. 더위를 느끼지 않게 해주는 포근한 바람. 그야말로 이상향에 가까운 피서지의 모습이었다.

"헤에…… 여름에 따로 피서갈 필요없이 여기 접속하기만 하면 되겠는걸?"

키리안이 기분 좋은 바람에 나른한 몸을 쭈욱 늘여주며 말했다. 부담되는 사냥터란 느낌은 전혀 들지 않을 만큼 평화로운 곳이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사사사삭-

백사장을 가느다란 다리로 기어오는 검은색의 녀석은 보통 가재라 부르는 녀석을 닮았다. 하지만, 그 크기가 하마에 가깝다면 농담이 아니다. 검은색 일색의 녀석은 둥그스름한 얼굴이 귀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악하게 생긴 입술과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거대하고 거무튀튀한 집게손을 보면 그런 생각은 싹 사라지고 만다.

"해산물 등장인가. 파라트라고 했지, 저녀석?"

키리안이 다가오는 녀석을 가리키며 묻자 아르니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응. 검은색 녀석은 방어력 중심이야. 붉은색이 공격력 중심이지. 일단 둘다 속도는 느린 편이니까 뒤집어서 배때지를 두들기면 될 거야. 위시 에이전트를 제외하면 우리가 타격을 주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니까 일단 저놈을 끝내고 난 뒤에 방법을 생각하자고."

그녀의 말속엔 '저녀석은 위시 에이전트가 끝내주길 바란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키리안은 그것을 알고 아리에를 쳐다보았다.

"아아, 알았다고."

일행의 무언의 압박에 아리에는 귀찮은 듯한 몸동작으로 앞으로 나섰다. 소원은 이미 해제된 상태. 따져본 결과 기껏해야 3분이 한계다. 물론, 웬만한 고수는 한방에 보내버릴 수도 있고 좀 힘든 상대도 한방 승부를 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녀와 동급인 상대다. 그쯤되면 그저 요행을 바라거나 도망칠 수밖에 없다.

"검기."

파아앗-

레드 슬레이어를 뽑아든 그녀는 검신에 가볍게 마나를 주입해 검기를 생성시켰다. 이곳이 2차 전직 후 알맞은 사냥터라 불리는 것은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바로 '검기'와 같은 스킬의 유무.

블루 비치의 몬스터들은 그동안 상대해온 몬스터와는 그 방어력이 전혀 틀리다. 키리안의 어설픈 검기 등으론 상처를 내기가 극히 힘든 것이다. 하지만 진짜 검기를 사용할 수 있는 2차 직업부터는 다르다.

검사라면 검기, 궁수라면 마나 애로우(Mana arrow), 스나이퍼라면 마나 샷(Mana shot)의 사용이 가능해진다. 격이 다른 공격이 가능한 것이다. 기력을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 2차 직업이다.

팟-!

레벨도 현격하게 차이나는데다 겨우 한 마리 뿐인 파라트는 아리에의 레드 슬레이어에 가볍게 두 동강이 났다.

방해꾼이 사라지자 곧 아르니아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해변은 초승달 모양으로 경계를 나누고 있었고 넓은 백사장의 뒤엔 커다란 활엽수들이 작은 정글을 이루고 있었다. 몬스터는 저쪽에 많이 분포해 있을 것이다.

"좋아, 이 정도면 지형 조건도 상당히 좋은 편! 그럼, 모두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는데 들어볼래?"

즐거운 듯 웃는 그녀의 표정엔 장난기와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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