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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아아-
고요한 허공을 울리는 시원한 파도 소리. 밝게 내리쬐는 햇빛의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 푹신한 백사장. 그야말로 최상의 조건에서 키리안을 제외한 일행은 노동 후의 댓가를 받고 있었다.
"아아, 좋군."
카디안이 백사장에 흐물흐물 녹아들며 말한다. 그에 답하는 듯 디엔트가 꾸물거린다. 아르니아 역시 멍한 모습으로 고양이마냥 백사장에 드러누워 있다.
"우웅, 이대로 자고 싶어."
모두가 뻗어버린 상황. 씰들은 가끔씩 다가오는 몬스터를 함정까지 오기 전에 열심히 처리하고 있는데 유저들은 백수마냥 뒹굴거리고 있으니 '악덕주인'이란 이름에 딱 걸맞는 모습이었다.
"제길, 몬스터나 떼로 몰려왔으면 좋겠네."
카디안 등의 모습에 아리에가 투덜투덜거리며 샤크리크 하나를 신경질적으로 '탄(彈)'과 '폭(爆)', '격(擊)'의 검결을 동시에 터뜨려 날려버렸다. 그야말로 타격의 정점에 선 검결들의 연타에 샤크리크는 완전히 걸레가 되어 저멀리 날아갔다.
아리에의 화풀이 상대가 된 불쌍한 샤크리크는 불행이 끝나지 않았는지 그 상태가 되어서도 목숨이 끊어지지 않아 정글에 처박히는 고통까지 겪어야 했다.
"흐갸갸갸갹~!"
"…응?"
사망이 확실한 샤크리크에게서 신경을 꺼버렸던 아리에는 익숙한 소리에 약간 당황하며 샤크리크가 날아갔을 장소로 시선을 돌렸다.
정글에서 꽤 커다란 규모의 모래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앞엔 눈썹이 휘날리게 달리고 있는 키리안이 보인다. 조금 시선을 뒤로 돌리면 아리에가 날려버린 샤크리크가 희미하게 변해 사라지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아아, 도망치는데 저게 날아온 건가.
"여, 주인님. 많이 끌고 왔어?"
아리에는 뒹굴거리는 일행의 얄미운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반갑게 키리안을 맞았다.
"으아아아, 그냥 많이가 아니라고~~!"
키리안은 아리에의 목소리에 겨우 일행이 있는 곳에 왔음을 알고 안도할 수 있었다. 꽤 멀리 나갔기에 뛰어서 돌아오는 것이 상당히 부담이었던 것이다.
"자자, 이제 일할 시간이야. 모두 일어나!"
몬스터가 속속 정글에서 등장하고 있었다. 아리에는 꾸물거리는 일행을 들어올려 탈탈 터는 것으로 일으켜 세웠다. 모두가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파워 워드 임포텐스의 빛을 잠시 보여주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아르니아는 덩달아 깼다).
두두두두두-!!
소리만으로도 적은 수가 아님을 일행은 깨달을 수 있었다. 몰려오는 파레트와 원령들이 마치 눈사태로 인해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눈을 연상시킬 정도로 많았다. 이거, 장난이 아니다.
"키리안 녀석, 도대체 얼마나 끌고 온거야?"
카디안이 졸린 눈을 비빈 뒤 다시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보며 기가 질려 말한다. 이거, 정말 장난이 아닌 수다. 함정의 힘을 빌리고 다수라는 이점이 있다해도 잘못하면 압사 당할 정도다.
"으다다다다, 세이프!"
그야말로 열나게 달린 키리안이 겨우 함정 지대를 넘어 일행 쪽에 도착했다. 주문을 외우고 시위를 거는 일행. 그리고, 몬스터들이 함정 지대에 들어섰다.
가장 앞에서 오던 파레트 몇이 그대로 구덩이에 처박힌다. 여러마리가 연속해서 빠지다보니 구멍이 금방 매워지고 그 위를 몬스터들이 다시 달려든다.
콰아아아앙-!!
전우의 시체(죽진 않았지만)를 넘고 넘어 다가오던 몇 마리의 파레트들이 지뢰지대에 들어서자 커다란 굉음과 함께 모래와 파레트들이 허공을 날았다. 아르니아가 설치한 '빈 수레가 요란해~'라는 폭탄 함정이다. 그 이름대로 소리가 엄청나게 크고 당한 자는 커다란 타격을 입은 듯 높이 떠오르지만 실제로는 그저 '높이 떠오르기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고수를 상대할 땐 치명적이다.
"좋아, 라이트닝 필드(Lightning Field)!"
"멀티 샷(Multi Shot)!"
허공을 나는 파레트들의 배를 노리고 디엔트가 뇌전을 쏟아 부었고, 네피엘과 아세리아가 동시에 여러발의 화살을 날렸다.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파레트들이 그것을 제대로 막을 수 있을 리 없다. 순식간에 여러마리가 공중에서 운명했다.
"좋아! 역시 준비하고 싸우니까 편하잖아! 블레이드 블래스트(Blade blast)!"
순식간에 픽픽 죽어나가는 녀석들을 보며 아리에가 쾌재를 부르며 검을 내리쳤다. 대지를 따라 검기가 휘몰아치며 몬스터들을 갈랐다. 이미 레벨이 180을 훌쩍 넘어선 아리에에게 있어서 이곳의 몬스터가 방어력이 좀더 특출나다는 장점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HP 드레인!"
카리나는 카디안의 명에 따라 지속해서 HP 드레인으로 몬스터들의 체력을 흡수해 나갔다. 장시간 전투를 해야 하니 최대한 체력을 유지할 수 있고, 상대의 힘을 빼는 부수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HP 드레인을 몬스터들을 상대로 걸며 가끔 공격을 하곤 했다.
콰과과광-!
또다시 아르니아의 폭탄이 터졌다. 비산하는 몬스터들. 그와 함께 내리꽂히는 번개와 화살. 함정에 빠지고 속박에 걸려 허우적대는 몬스터를 향해 나아오는 아리에의 검기. 그야말로 난전을 방불케하는 전투였다.
캬아아아-!
난전을 뚫고 원령 하나가 안전지대에 도착했다. 녀석은 도착하자마자 마염포를 날려대고 있는 카디안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카디안이 급히 몸을 빼려 했지만 원령이 좀더 빨랐다.
"어딜! 오라 크로스!"
막 카디안이 당하려 할때 키리안이 나타나 검을 십자로 그었다. 백색 궤적과 함께 원령이 검게 변하며 흩어졌다.
"휴우, 땡큐 키리안."
"아아, 아냐. 함정도 이제 곧 뚫릴 거야. 뭐, 몬스터도 그만큼 줄었으니 대충 맞아떨었다고 해야 할까?"
키리안이 데려온 몬스터가 생각 이상이었기에 넉넉하게 파놨던 함정 대부분이 발동된 상태였다. 상당한 몬스터가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고 거길 넘고 넘어오는 몬스터를 상대하는데만도 벅찬지라 구덩이에 빠져있는 몬스터는 무시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뭐가 이렇게 많냐고! 빛이여, 나의 앞을 가로막는 적에게 폭풍의 잔혹함을! 스톰 라이트!"
막 안전지대로 들어서는 몇마리 몬스터를 향해 아리에가 급히 스킬을 날렸다. 빛과 같이 번쩍이는 백색의 검기들이 폭풍이 되어 휘몰아치자 다가오던 녀석들 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던 몬스터들까지 함께 휩쓸려 조각이 났다.
"연환검!"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함정을 통해 꾸역꾸역 넘어오자 원거리 공격을 하는 인원을 제외한 모두가 근거리 공격으로 방식을 바꿨다. 키리안은 연환검을 시전하고 몬스터들을 교란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가끔 틈을 보이는 파레트가 보이면 바로 기력을 최대한 모아 턱을 갈겨 배를 드러나게 하고 유하의 폭염 연타로 저승으로 보내 주었다.
"탄!"
아리에는 직접 베기보다는 지속적으로 탄의 검결을 사용해 파레트들을 띄웠다. 그것을 아르니아가 줄을 맨 독단검으로 배를 찔러 무력화시키고, 발키리가 마무리해 나갔다.
"유하야, 속박 범위계!"
"예, 속박, 산(散)!"
잠시의 틈을 이용해 키리안은 유하에게 속박의 확장 주술을 걸게 하곤 그녀를 살짝 뒤로 물렸다.
"원령 녀석들, 안되겠어. 파사의 태도 부탁해!"
"예."
파레트는 '배'라는 커다란 약점이 있었기에 집중 공략해 쉽게 처리할 수 있었지만 원령은 기를 사용하지 않는 물리 공격은 그 데미지가 반감되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게다가 연환검으로 어떻게 하는 것도 불가능했기에(반 영체다) 한꺼번에 처리를 해줘야했다.
"어스 웨이브(Earth wave), 어스 버스트(Earth burst)!"
디엔트가 키리안의 목소리를 듣곤 대지의 정령의 힘을 빌어 도움을 주었다. 순차적으로 대지를 흔들고 몬스터들의 균형이 무너지자 폭발시켜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그 틈을 이용해 일행의 스킬이 시전되었다.
"기우(氣雨)!"
아리에가 높이 떠올라 검기를 압축한 뒤 떨쳐내는 것으로 검기의 비를 뿌렸고 발키리들은 검끝에 기의 구체를 형성시켜 쏘아보내 몬스터들 사이에 터뜨렸다.
"찬란한 광휘 앞에 사한 것은 멸해지리니, 파사(破邪)의 태도(太刀)!"
몬스터들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유하의 파사의 태도였다. 태양빛마저 무색케하는 정화의 빛이 터지고 강력한 한줄기 검기가 그것을 갈랐다. 원령들은 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소멸했고, 파레트들도 그에 담긴 물리력과 검기에 버티지 못하고 옅게 변해 흩어졌다.
"휴우, 이걸로 대충 끝난 건가?"
한 부대를 쓸어버리고 주변을 살펴보니 함정에서 허우적거리던 녀석들을 제외하고 멀쩡히 일행을 향해 달려오는 것은 몇마리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일행의 적극적인 공세에 얼마 버티지 못할 거 같았다.
"으아아, 레벨업 했네."
전투 중이어서 몰랐는데, 경험치 창을 확인하기 위해 스테이터스 창을 열어보니 어느새 레벨업을 하고도 15% 정도 경험치 바가 차 있었다.
대충 공격이 가능한 몬스터들을 모두 끝내고 함정에 빠져 무력화된 잔여 몬스터를 처리하기 위해 일행은 잠시 상태를 점검하고 다시 움직였다. 배를 뒤집고 있는 녀석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얼마 걸리진 않았다.
크워어억-!
마지막으로 남은 파레트의 배에 두 가닥 검기를 교차시켜주고 키리안은 검을 멋들어지게 검집에 꽂았다. 전투가 끝난 것이다.
"휘유, 힘들었다."
키리안은 격렬한 전투에 한숨을 크게 내쉬곤 백사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조금 쉬어줄 때다. 하지만, 바다에 시선을 돌린 뒤 키리안은 얼굴을 일그러뜨리곤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워야 했다.
크우우우우우-!!
아베스 던전의 해룡이 장난으로 느껴질만큼 위압적인 푸른빛의 용 하나가 몸을 반쯤 드러내고 일행을 향해 울부짖었다. 블루 비치의 보스인 해룡, 아쿠아 드래곤(Aqua dragon)의 등장이었다.
2차 전직(1)
아아=_= 귀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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