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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마을이라면 대부분 존재하는 중앙 분수. 그것은 씨티 오브 나이츠도 크게 예외가 아니었기에 멋지게 무장한 기사상이 세워진 커다란 분수가 도시의 중앙 광장에 존재하고 있었다.
파아앗-
중앙 분수의 근처에서 갑자기 백색의 빛이 터졌다. 텔레포트가 시전되었다는 증거인 백색의 빛. 하지만 크게 신경쓰는 유저는 없었다. 대부분의 게임이 그렇듯, 마을의 중앙 광장은 쉽게 말해 '시장통'이라 할 수 있는 곳. 텔레포트 정도야 흔해빠진 풍경 중 하나인 것이다.
빛이 사라지고 등장한 것은 당연히 키리안 들이다. 그 중 아리에는 씰 중에서도 확 튀는 외모를 지녔기에 유저들이 한 번 더 시선을 던지게 했다.
"어? 저 검사 말이야, 그 말도 안되는 레벨로 포스 드래곤을 잡았다던 유저 아냐?"
"어라? 진짜네. 캬, 딱 아니랄까봐 포스 블레이드까지 차고 있다."
그 '한 번 더 시선을 던진' 유저들은 공지나 홈페이지에 꽤나 관심이 있었는지, 바로 키리안을 알아보았다. 게임 내에서 이름이나 얼굴을 알리는 건 절대로 쉬운 게 아니다. 아닌 것 같지만 유저들은 꽤나 무심하다. 게임 내 최고 지존쯤 되는 천령 정도가 아닌 이상 아이디나 캐릭터의 모습을 거의 외우지 않는다(지존이라도 진짜 무심하면 모른다).
키리안이 아무리 공지를 한 번 탔다 해도 별로 유명해지지 않는 것은 그런 유저의 특성 때문이다. 게임이든 현실이든 이벤트는 잠깐의 흥미거리일 뿐인 것이다. 흥미가 식으면 곧 잊혀지는 게 '당연지사'다.
이런 특성에도 불구하고 거의 잊혀졌을 키리안을 알아본다는 건 그 유저들이 이슈에 꽤나 관심이 많다는 뜻이 된다. ……이야기가 잠시 삼천포로 빠졌다.
유저들이 수군거리자 키리안은 잠시 당황했다가 이내 빠른 걸음으로 중앙 광장을 벗어나며 대장간을 찾았다. 녀석, 생각보다 내성적이다. 그런 키리안의 특성을 잘아는 카디안이 큭큭거리며 그 뒤를 따른다(덕분에 네피엘과 카리나가 주인이 미친 것은 아닌가 잠시 걱정해야 했다).
후끈한 대장간에서 키리안은 잠시 무기를 맡겨두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2D의 싱글 게임처럼 '따당-'하는 효과음과 함께 바로 고쳐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리얼리티를 살린답시고 하루 이상 맡겨둬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적당히 15분 간의 시간이 필요할 뿐. 마나 포션을 사오면 수리가 완료되어 있을 것이다. 보통의 검사라면 방어구도 맡겨두지만, 힘과 민첩에 투자하는 일격필살 민첩형의 검사인 키리안은 그것 때문에 들어가는 민첩이 아까워 방어구를 거의 착용하지 않았다. 어차피 맞을 일도 별로 없으니까(위험한 놈이다).
고층 건물이기에 백화점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시티 오브 나이츠는 상당히 길정리가 잘 돼 있는 곳이기에 더욱 쉽다. 쭉 뻗은 길을 따라 걷는 키리안과 카디안, 아리에. 그런 그들의 눈에 익숙한 유저 하나가 눈에 띄었다.
녹빛의 정령사 로브는 흔한 것이지만, 깃털 달린 모자 사이로 선명한 붉은 머리카락이 보이는 유저는 그리 흔치 않다. 게다가 키리안에게 상당히 익숙한 팻말까지 꽂혀 있다면 말할 것도 없다.
[디엔트 레이(Dient Ray)의 멋지구리한 물품 상점]
"…아레? 디엔트다."
"응. 디엔트네."
"디엔트야."
키리안을 시작으로 아리에와 카디안이 한 마디씩 내뱉었다. 마치 바보처럼 멍하게 뱉은 말. 전혀 예상 외의 곳에서 동료를 발견한 그들이었다.
"어~이, 디엔트!"
키리안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며 디엔트를 불렀다. 한가하게 차양 밑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디엔트는 익숙한, 하지만 예상 외의 목소리가 들리자 살짝 놀라며 그 진원지로 시선을 돌렸다. 과연 낯익은 모습들이 보인다.
"어라라, 키리안이랑 아리에, 카디안 형이잖아. 어쩐 일이야? 지금쯤 한창 사냥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디엔트의 물음에 카디안이 반박한다.
"누가 할 소린데 그러냐. 한창 열렙(열심히 레벨업……으로 이해하자)해야 할 때 한가하게 장사라니? 너 지금도 레벨 제일 낮은 상태잖아."
숫자로 따지면 기껏해야 2지만 시간으로 따지면 꽤나 큰 차이였다. 하지만 디엔트는 걱정없다는 듯 웃었다.
"아아,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요새 장사가 잘 된다니까 지금 해두는 게 오히려 이익이야."
"무슨 소리야?"
알지 못할 말을 하는 디엔트에게 키리안이 질문을 던졌다. 아마 아르니아가 있었다면 바로 눈치를 채고 설명을 했겠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전직 퀘스트 수행 중이었다.
"음, 그러니까 말이지. 내가 2차로 선택하려는 것이 정령사의 상위 직업인 '스피릿 샤먼(Spirit shaman)'이거든. 근데, 그쪽으로 전직하려면 '정령주'라는 아이템이 필요하걸랑. 문제는 그놈의 '정령주'가 심하게 비싸다는데 있어. 그에 대한 댓가가 있긴 하지만 상당히 부담이 가는 가격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구하기도 힘들고 가격도 비싼 녀석이기에 미리미리 준비해 두는 거야. 돈도 벌고 정령주를 파는 유저가 있나 확인도 하고 있어. 요샌 경기가 활성화 된 상태라(압박이다) 운만 좋으면 쉽게 구할 수도 있을 거야. 그러니까 여기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거지."
디엔트의 약간은 황당하지만 확실한 설명에 일행이 '그, 그냐?'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내 대답은 여기까지. 키리안이랑 형은 왜 마을로 돌아온 거야? 레벨이 레벨인만큼 다시 들어가는 게 쉽긴 하겠지만 그 귀찮음은 그대론데 말야. 큰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아아, 마나 포션이 떨어져서 말이지."
키리안의 간단한 대답에 디엔트가 김이 빠져 표정을 살짝 구겼다가 무언가를 생각해내곤 다시 활짝 웃었다.
"그런 큰 일이 있었군! 좋아, 내가 도와주지!"
"어떻게?"
무언가 낌새가 느껴지는 디엔트의 모습에 키리안은 반쯤 짐작을 하고 물었다.
"바로 이거야! 친구니까 특별히 10% 싸게 해줄게! 아아, 싸다싸다!"
"……."
마나 포션을 꺼내 흔드는 디엔트. 역시 예상대로다. 이놈, 장사꾼 맞다.
일행의 반응이 영 시원찮자 오바를 떨던 디엔트는 이내 조용해졌다. 다른 인간들은 모르겠는데, 아리에는 발작하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
"저, 저기요?"
불안함에 떨던 디엔트가 참지 못하고 일행을 불렀다. 이거 무섭게 왜들 이래?
무언가 일어날지 모른다고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디엔트. 하지만 키리안은 별말없이 마나 포션 중(中)을 30개 주문했다. 디엔트는 그런 그의 정상적인 행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특별히 가격을 15%나 깎아주었다.
"고마워어~"
정말로 고마워하는 디엔트. 그런 그에게 포션을 받아 인벤토리에 챙긴 후, 키리안과 아리에는 '훗'하고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역시 대단하다니까. 넌 천재야!"
키리안이 아리에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운다. 그런 그의 모습에 아리에가 흡족하게 웃으며 답한다.
"아아, 주인님 역시. 15% 세일이라니. 이런 봉은 또 흔하지 않다고. 대단한 연기였어!"
"흐음, 생각해보니 30개는 너무 적었나?"
둘의 대화를 들으며 디엔트는 단 하나의 생각만을 할 수 있었다.
'다, 당했다!!!!'
키리안과 아리에. 이 커플에겐 장사꾼도 먹이에 불과했다.
2차 전직(2)
흠냐리=_=
글빨 안 받습니다..ㅡㅜ
젠장, 그냥 좀 조용하게 평안하게 살고 싶은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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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Twenty two - 2차 전직(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