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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네. 주홍색이 섞인 옅은 붉은 머리카락이 어깨에서 찰랑거리고, 그 옅은 붉은색의 눈동자는 순수함이 가득한 붉은 날개 일족의 소녀였다. 일족의 현 족장인 카일의 손녀딸로서, 이제 열 살이 된 꼬마 숙녀다.
아이가 귀한 편인 붉은 날개 일족에게 에리네는 보물과도 마찬가지였다. 그 또래의 유일한 아이였기에 여기저기서 귀여움을 받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하고 착해 어디 흠잡을 데 없는 그야말로 마을의 마스코트이며 보물이었다.
그녀의 취미는 희귀 약초 재배였다. 그 때문에 언제나 깊은 숲까지 들어가곤 했다. 깊은 숲엔 류테스들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어른들은 그녀가 숲에 들어가는 것을 극구 말리곤 했다. 가끔 그녀가 그 성격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에게 떼를 쓸 때서야 많은 어른들과 함께 가는 조건으로 보내주곤 했다.
그렇게 어른들의 엄중한 보호 속에 취미를 영위해 나가던 그녀. 어느 화창한 봄날에 또 한 번 숲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번에도 일족의 건장한 전사 몇을 대동한 채.
꽤 깊은 숲속까지 들어가게 된 그녀는 곧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마을로 돌아가려 했다. 그때, 류테스들의 습격이 있었다. 마을 전사들의 수는 일곱. 류테스들은 스물. 살쾡이와 늑대의 중간 형태의 모습을 보이는 놈들의 손톱은 그 자체로 날카로운 검이며 낫이었다.
세 배에 달하는 차이를 극복하기엔 무리가 있었기에 그들은 날개를 뽑아 하늘로 달아났다. 놈들은 그런 그들을 제지하지 못했고 도주는 성공한 듯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류테스들이 노린 것은 바로 그 방심이었다.
크롸롸롸롸-!!
갑자기 숲속에서 거대한 생명체가 떠올랐다. 이곳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두려워하는 류테스들의 살인생체병기 하브라스. 놈이 숲속에서 몸을 일으킨 것이다!
"피, 피해라!!"
기겁하며 몸을 더 높이 띄우려했던 그들이었지만 두 마리의 하브라스가 휘두르는 팔에 모조리 얻어맞고 땅에 처박혀버렸다. 에리네를 붙잡고 날아올랐던 전사가 그녀를 푹 감싸안아 죽는 것만은 유일하게 면한 그녀였지만 커다란 충격에 정신을 잃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캇캇캇! 작전은 성공이다. 퇴각이다!"
놈들은 그 모습에 걸맞는 웃음소리를 흘린 뒤 기절한 에리네를 데리고 으슥한 숲속으로 사라졌다.
밤이 늦도록 에리네가 돌아오지 않자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에리네는 물론이고 전사들마저 돌아오지 않으니 무언가 변고를 당한 게 확실하다 여긴 족장은 급히 수색대를 편성해 그녀를 찾도록 했다.
숲은 그들의 날개와 횃불로 밝게 빛났지만 사라진 에리네들을 찾을 순 없었다.
며칠동안 수색은 계속 됐지만 진전은 없었다. 오히려 마을 사람 몇이 더 사라져 사태는 악화될 뿐이었다.
그렇게 마을의 분위기가 흉흉하게 변해갈때 인간들 몇이 찾아왔다. 그들은 족장을 만나 자신들의 마을에서도 실종 사건이 일어났음을 말하곤 함께 협력할 것을 제안했다. 딱히 교류가 없긴 했지만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었기에 족장은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이런 짓을 할 종족은 역시 류테스들 뿐이라 하며 그들의 본거를 찾아 급습할 것을 제안했다. 족장 역시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동안 힘이 부족해 꺼려했는데, 인간들이 도와준다 하니 흔쾌이 수락했다.
그렇게 붉은 날개 일족과 인간들의 연합이 손을 잡고 숲을 뒤진지 일주일째. 드디어 그들의 본거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고 탐색에는 속도가 붙게 되었다.
마침내 발견한 류테스의 본거지는 그들도 알지 못했던 숲속의 커다란 공터에 존재하는 낮지만 광범위한 돌산이었다. 인간에 의해 발견된 그곳으로 인간과 붉은 날개 일족 연합의 대대적인 공격이 가해졌다.
그날, 여섯 마리의 하브라스가 죽었고, 수십 마리의 류테스가 흙으로 돌아갔다. 엄청난 타격. 하지만 연합도 무사하진 못했다. 두 종족 합쳐 세 자리 수에 달하는 생명이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되었다. 피해로 따지자면 류테스 쪽이 더욱 막대했지만 에리네와 기타 납치당한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습격은 실패였다.
처음의 전쟁 이후 지옥같은 나날이 계속되었다. 양쪽이 서로 침공하길 몇 번. 둘다 극심한 타격을 입고 잠정적인 휴전 상태가 되었다. 까딱하면 종족을 보존하지 못할 정도로 세 종족의 피해가 막심했던 것이다.
에리네 실종 후 3년이 지났다. 2년간 지속된 지긋지긋한 전쟁이 휴전 상태에 돌입한지는 1년. 평화가 꽤 길었던 것일까? 키리안이 도착한 날, 인간들은 그들의 힘만으로 침투 작전을 시도했고, 류테스들에게 발각 돼 하브라스들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거기에 붉은 날개 일족까지 말려들어 또 한 번 큰 피해를 입은 것이다.
"…오늘의 일 때문에 붉은 날개 일족에서 사자가 오기로 했다네. 최악의 경우 두 종족의 사이는 적대적으로 변할 수도 있어. 잘 이야기해 봐야겠지."
대충 이야기가 끝나자 키리안은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을 질문했다.
"그런데, 그들이 왜 에리네와 기타 사람들을 납치했을까요? 들어보니 그를 빌미로 따로 협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렇다. 납치를 하긴 했는데 그것을 통해 무언가 요구하는 것이 없다니.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브람스는 키리안의 질문에 바로 답을 해주었다.
"그렇지. 우리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조사해 봤다네. 그리고 경악할만한 사실을 알 수 있었지."
"…무엇이죠?"
"자네도 봤다시피 하브라스의 피부 색깔은 암녹색이지. 게다가 머리도 하나야. 하지만, 거기에 있던 한 마리의 하브라스는 붉은색이었어. 피부 색깔은 저주라도 받은 듯 암적색이었고 머리도 두 개였어."
"…그 능력 또한 차원이 달랐겠군요."
시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했어. 엄청나게. 우리들의 에인션트 엘레멘탈의 힘을 일부 부여받은 무기들조차 제대로 된 타격을 입히지 못했어. 기실, 그놈들만 아니었다면 기습은 성공할 수도 있었을 거야. 그만큼 놈들의 능력은 경이적이지……."
에인션트 엘레멘탈의 힘마저 통하지 않는다…… 이건 좀 난감하다. 마력석을 일부 섞어 제련한 무기조차 통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유로아의 검 또한 먹히지 않을 것이다. 별다른 일이 없는 이상 그 붉은 하브라스가 '보스'일 것 같은데 어떻게 깨란 말인지…….
"변종인가요?"
"변종이라면 변종이겠지. 하지만, 자연적으로 태어난 놈은 아니다."
"그럼?"
"…일리오스의 마력석에 의해 개조된 놈이지."
"……!!"
이건 상상 밖이다. 일리오스의 마력검이라니! 척봐도 알 수 있다. 류테스란 놈들에게서 인간과 붉은 날개 일족이 우세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고대의 마력석들 덕분이다. 한데, 그 류테스놈들이 마력석까지 사용하게 되었다면 이건 절대절명의 상황이다.
"일리오스의 마력석. 그것은 땅이나 유적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붉은 날개 일족의 심장이기도 하다."
"……!!"
"……!!"
이번에는 아리에마저 놀랐다. 자신이 퀘스트를 클리어할 때는 듣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일리오스의 마력석이 붉은 날개 일족의 심장이라니?!
"무, 무슨 소리죠?"
살짝 말을 더듬는 키리안. 그런 그를 보며 시장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다. 일리오스의 마력석은 붉은 날개 일족의 심장에서도 얻을 수 있다. 소량이긴 하지만 말이지. 아마 붉은 하브라스는 납치한 붉은 날개 일족의 심장에서 얻은 일리오스의 마력석들을 모아서 만든 것일 게다. 하지만, 에리네는 살아 있다. 왜 그런 줄 아나?"
당연히 알 리가 없다. 키리안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일리오스의 무녀'란 신분을 지니고 있다. 즉, 특별한 혈통이란 말이지. 무녀는 일리오스의 가호를 받는다. 그리고 그 심장에 일리오스의 힘을 축적할 수 있다. 그것은 돌이 아닌 실제 심장이 되는데, 무녀의 의지에 따라 계속해서 그 힘이 증폭되지. 류테스들은 그것을 노리는 것이다."
"…살을 찌워 잡아먹겠단 말이군요."
적절한 그의 비유에 시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리고 인간들을 잡아간 것은, 마음이 여린 무녀에게 인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함으로써 그 힘을 키우도록 종용하기 위해서이겠지. 간악한 놈들."
시장은 분한지 이를 갈았다.
"…류테스들의 본거지는 어디죠?"
키리안의 질문에 시장은 고개를 저었다.
"혼자 갈 생각이라면 버리는 게 좋아. 아무리 그대가 에인션트 엘레멘탈 소드를 사용할 수 있는 검사라 해도 수에서부터 차원이 달라. 게다가, 붉은 하브라스는 절대로 홀로 이길 수 없는 상대야. 놈을 이기려면 '기원의 불꽃 일리오스'를 피워 올릴 수 있어야 할 거다. 그게 아니라면 '미풍의 깃 유로아'나 '금빛 뇌전 라이오스'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해. 에인션트 엘레멘탈의 진정한 힘을 사용할 수 없다면 절대로 무찌를 수 없어."
"괜찮아요. 알려주세요."
그의 확고한 눈동자에 시장은 결국 한숨을 쉬곤 지도 하나를 서랍에서 꺼내 건넸다.
"많은 희생을 치르고 겨우 그릴 수 있었던 놈들의 본거지를 그린 지도다. 내부도 상세히는 아니지만 일부 그려져 있다. 도움이 될 게야."
"감사합니다."
시장은 인사를 한 후 몸을 돌려 떠나는 그의 등을 향해 말했다.
"살아서 돌아오게. 무모한 짓은 하지 말게.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대를 잃는 것은 류테스들에 대적하기 위한 좋은 패 중 하나를 잃는 것이니까."
그렇게, 키리안은 류테스들의 본거지로 향했다.
기검(氣劍), 빛나다!(2)
끙.. 인터넷이 심하게 느립니다.
컴 문제는 아닌 듯 하고.. 결국 모뎀이 문제겠지요.
공유기 숨겨놓고 사람 불러야겠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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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Twenty three - 기검(氣劍), 빛나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