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앱솔브-93화 (93/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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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아아아앗!!"

고요하고 음습한 동굴. 언제나처럼 소음 하나 없어야 할 이곳에 난데없이 몬스터의 괴성이 울려퍼졌다. 그것도 하나 둘이 아닌 수십의 괴성이.

이 난감한 소음을 일으킨 것은 한 쌍의 류테스, 아니 류테스로 변신한 키리안과 유하였다. 현재 둘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뛰어다니는 중이다.

증표가 없으면 지나갈 수 없다는 몬스터의 말에 무단 침입을 택했던 키리안. 조금만 달리면 몬스터를 따돌릴 수 있다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다.

적이 안으로 들어가자 놈은 바로 호각을 불었고, 그 소리에 여기저기서 몬스터가 튀어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시작되는 피말리는 추격전.

길은 정말 미로와도 같았다. 막다른 길이 나오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천운에 가깝다. 하지만, 같은 길을 계속 돌고 있다는, 길치 특유의 직감은 키리안을 답답하게 했다.

'이대로 가다간 끝이 없다. 스테미너 포션에도 한계가 있는 법, 결국 자멸할 거야. 할 수 없나…….'

또다시 나오는 갈림길. 키리안은 유하와 함께 멈춰섰다. 그리고 점핑을 사용해 몬스터 무리들의 머리 위로 날았다. 스킬을 사용했으니 당연히 폴리모프가 풀린다.

"유하야, 파사의 태도다! 실드 브레이크(Shield break)!!"

도망치다가 자멸할 바에 모든 것을 동원해 돌파구를 찾는다!

콰아아아앙-!!

유로아의 검을 뽑아든 키리안은 실드 브레이크를 시전하며 아래로 검을 내리쳤다. 낙하에 의해 파생되는 힘과 그 자체로 육중한 스킬 실드 브레이크, 그리고 컨트롤 바이탈리티까지 동원해 내리친 그것은 아래에 있던 몬스터 세 마리는 물론, 주변으로 퍼진 압력에 근처에 있던 몬스터들까지 날려버렸다.

스킬을 사용함과 동시에 키리안은 다시 점핑으로 우측으로 몸을 날렸고, 때를 맞춰 유하의 파사의 태도가 터졌다.

파아아아앗-!!

사(邪)를 멸하는 성화(聖火)가 어둠을 몰아내고, 몬스터를 몰아낸다. 그리고 그 사이를 가르는 한줄기 강력한 검기! 그것은 소리없이 몬스터들을 갈라버렸다.

"좋았어!"

대부분의 몬스터가 쓸려버렸고 남아 있는 놈들도 맛탱이가 가서 비틀거린다. 남겨두고 도망치기 보단 쓸어버리는 게 지금은 더 유리하다.

"오라 스플리트."

오라 스플리트를 시전하며 단 번에 몬스터들의 명줄을 끊은 후 키리안은 갈림길에 섰다. 두 갈래. 일단 왼쪽을 택했다. 그리고 들어가기 전에 실드 브레이크를 이용, 벽에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길찾기 방법. 그것을 사용한 것이다.

이미 풀려버린 변신. 키리안은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나오는족족 처리해 버렸다. 놈들이 강하다 해도 한두 마리는 식후 운동거리도 안되고 다수라 해도 키리안이 시간을 끄는 사이 유하의 파사의 태도로 모두 날려 버릴 수 있었다. 친화도가 쭉쭉 올라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 후에도 갈림길이 여러 번 등장했다. 계속해서 실드 브레이크를 이용해 흔적을 남기며 길을 걸었다. 중간에 마나가 부족해 마나 포션을 마시며 걷길 이십 분 정도. 두 번 정도 되돌아와야하긴 했지만 막혔던 적은 없었다.

"아, 다 온 건가?"

마나 포션이라고 만능은 아니었다. 마나 포션을 사용한 마나는 그 질과 최대치가 떨어진다. 그러니까, 본래의 마나가 스킬을 사용할 때 10이 든다면, 마나 포션을 사용한 것은 같은 스킬을 사용하는데 15가 든다. 거기에 최대 마나치는 조금씩 줄어들었기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슬슬 지쳐갈 때쯤 드디어 갈림길은 끝나고 커다란 문 하나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RPG 매니아로서의 직감으로 알 수 있다. 저거, 보스가 있는 문이다.

일단 잠시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피로, 스테미너, 마나, 기력 등을 자연치유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 휴식. 키리안은 유하와 함께 벽에 기대고 앉아 떨어진 능력을 회복했다.

{아리에, 뭐하고 있어?}

그냥 있긴 지루하다. 그렇다고 뭐 딱히 할 게 있는 건 아니다. 남는 건 대화 뿐. 키리안은 바깥에 남은 아리에에게 말을 걸었다.

{아아, 별달리 하는 건 없어. 주인님은 어때?}

{일단 보스가 있는 방 바로 앞까지 온 거 같아. 확인은 안해봤지만 미로 통과 후 나타나는 거대한 문짝 하나. 딱 느낌이 오잖아?}

{그래? 아, 지금은 안따라간 게 살짝 후회된다. 그럼 필요하면 불러. 5초 안에 달려가 줄 테니까.}

{하하. 그래그래.}

과장이라 생각되는 그녀의 말에 키리안은 한 번 웃곤 대화를 끝냈다. 그리고 잠시 고민.

'지면 어떻게 될까?'

여긴 저장도 없는데, 설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아니면 기절했다 일어나는 형식으로 진행될까?

툭-

'응?'

반쯤 멍한 그의 어깨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얼른 고개를 돌려보니, 유하가 고른 숨을 내쉬며 자신의 어깨에 기대고 있다. 즉, 잠들었단 말이다.

'헤에, 귀엽다.'

디 앱솔브의 특성상 원하면 얼마든지 잘 수 있다. 어차피 캐릭터는 정신으로 움직이는 것. 못할 것이 없다. 다만, 게임에서의 피같은 시간을 잠으로 보낼 유저는 거의 없다. 캐릭터가 한계 상태라 기절 형식이 아니라면 말이다.

씰도 잠드는 경우가 있다. 유저와 마찬가지로. 다만, 그걸 용납해줄 마음 착한 유저가 많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그러고보니…… 유하에겐 스테미너 포션을 준 적이 없잖아! 이런 실책이!!'

자신은 스테미너 포션을 마셔가며 이동했는데 유하는 그저 순수 체력으로만 자신을 따라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워낙 정신이 없다보니 또 자신의 단점 중 하나, 건망증이 일을 저지른 것이다. 이거, 유하에게 엄청 미안해진다.

다시 한 번 유하의 얼굴을 살폈다. 곤히 자는 모습에 피곤이 묻어난다. 미안해서라도 못 깨운다.

키리안은 인벤토리에서 한 손으로 담요를 꺼내 조심조심 덮어주었다. 아무래도, 1시간 정도는 이대로 있어야 할 것 같다.

[띵- 친화도가 올랐습니다. 지금부터 합체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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