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앱솔브-95화 (95/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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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이 아닌데.'

키리안은 유로아의 검을 꽉 쥐었다. 흐릿하게 보이는 윤곽과 눈빛이 하브라스임을 알게 해 주었다. 유로아의 검을 쓸 수 있고 기검을 어느 정도 쓸 수 있다고 했으니 에인션트 골드 블레스터와 아리에가 없어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리를 끊는다.'

거대한 몬스터인 이상 자신을 쉽게 맞출 수는 없다. 일단 그 다리를 베어 균형을 무너뜨리고 미간을 꿰뚫기로 했다.

"유하야, 놈이 쓰러지면 볼 것 없이 미간에 파사의 태도를 먹여. 알았지?"

"예. 무리하지 마세요."

"헤헤, 그래!"

대사가 한문장 늘어나니까 기분도 좋다. 키리안은 유하의 말에 그대로 기분 200% 업 되어 힘차게 달려나갔다. 급속히 줄어드는 거리. 그리고 낙하. 응? 낙하?

"켁?"

위를 살펴봤다. 어둠에 겨우 적응된 눈으로 사물의 윤곽 정도는 알 수 있게 됐는데, 아뿔사…… 하브라스가 있던 곳과 키리안, 유하가 있던 곳은 끊어져 있었다. 즉, 절벽과 비슷한 구조다!

"으갸아아아아~"

"키리안님!"

키리안의 비명에 유하가 급히 아래로 뛰어내렸다. 하지만 따라잡기엔 무리가 있다. 키리안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토록 깊다면 떨어지면 100% 사망이라 할 수 있다. 무언가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 그거다!'

번쩍 스치는 아이디어. 키리안은 급히 유하에게 소리쳤다.

"유하야, 중압이다! 스스로에게 중압을 걸어! 벽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예. 대기여, 나의 의지에 따라 그 존재의 무게를 보여라! 중압(重壓)!"

그녀는 키리안의 말대로 몸을 비스듬히하고 중압을 스스로에게 걸었다. 급하강하는 그녀의 몸. 곧 키리안과 그녀의 몸이 닿았다. 둘은 함께 벽쪽으로 밀려났다.

"좋아. 해보자고!"

키리안은 한 손으로 유하를 꽉잡고 벽을 노려봤다. 타이밍을 놓치면 최하 하반신 불구다. 아니, 게임이니까 게임 오버다.

벽이 다가왔다. 키리안은 유로아의 검을 꽉쥐고 컨트롤 바이탈리티로 최대한 손을 보호했다. 그리고 스킬 발동!

"실드 브레이크!"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굉음. 기력으로 보호받는 손에 감각이 사라졌다. 그와 함께 아래로 떨어지는 유로아의 검. 하지만 거기에 한눈을 팔 틈은 없었다.

"점핑!"

충격을 최대한 줄인 후 바로 점핑으로 벽을 박차며 한 바퀴 회전했다. 그와 동시에 부셔진 벽의 튀어나온 부분을 이를 악물고 오른손으로 잡았다.

'큭!'

하지만 역시 무리였다. 감각이 사라질 지경인 손으로 자신과 유하의 무게를 버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손이 정상이라도 힘든데 지금은 당연히 불가능. 그대로 둘은 아래로 떨어졌다.

'쳇. 이걸론 무리였나.'

최대한 충격을 줄인다고 줄였지만 그 엄청난 낙하속도를 어찌해 보는 건 무리였다.

티잉-

유로아의 검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얼마 안남았단 뜻이다. 낙하하는 힘은 꽤 줄였으니 살아남을 수는 있을 것이다. 아직 방법이 남았으니까.

"유하야. 위를 보고 우리에게 중압을 시전해."

"예. 대기여, 나의 의지에 따라 그 존재의 무게를 보여라! 중압(重壓)!"

중압은 위에서 아래로 시전된다. 시전자를 기준으로 말이다. 현재 둘은 머리가 아래로 향한 상태. 스킬을 둘에게 시전하면 낙하하는 힘과 반대되는 압력이 작용할 것이다. 당연히 낙하하는 힘이 줄어든다. 이거라면 살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대기가 충돌하며 키리안과 유하의 낙하 속도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땅이 보인다. 키리안은 그대로 몸을 돌린 뒤 안전하게 착지했다.

"사, 살았다."

그야말로 생과 사의 중간에서 발버둥을 쳤다. 생으로 가기 위해 무지막지하게 발버둥을 쳤고, 결국엔 무사히 아래로 착지할 수 있었다.

키리안은 일단 품에 안고 있던 유하를 놓아주고 주변에서 유로아의 검을 찾아 검집에 꽂았다. 아직도 오른팔이 저릿저릿한 것이 잠시 동안은 제대로 검을 쓰기 힘들 것 같다.

"쳇. 아리에만 있었다면……."

오른팔 때문에 잠시 앉은 키리안은 아리에가 떠올랐다. 그녀가 있었다면 레비테이션을 이용해서 쉽게 내려올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먼곳에 있는 그녀가 올 수 있을 리 만무하니 그저 아쉬움으로 남을 뿐.

저린 팔을 유하가 주물러 주었다. 그녀의 손이 약손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먹을 쥐었다 펼 수 있었다. 계속해서 손을 움직여주고 주물러주니 곧 검을 잡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중간 보스라 할 수 있는 하브라스 녀석을 조금은 어이없게 피하게 됐다. 그덕에 다른 쪽으로 죽을 뻔 했지만 살아서 이곳에 오게 되었으니 그걸로 된 거다.

어두운 동굴. 유하가 관찰의 눈을 띄워 어느 정도 빛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들이 떨어진 곳은 정말 절벽의 아래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둘이 있는 곳은 절벽의 끝. 앞쪽으론 어둠만이 보인다.

"지금 갈 수 있는 곳은 저곳 뿐인가. 뭐, 좋아. 가보자."

"예."

길고 긴 길. 키리안은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게 힐트(Hilt. 검손잡이)에 오른손을 얹어놓고 있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걸었을까? 길은 도저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곳엔 분명히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지만 이토록 긴 길이라면 조금 문제가 있다.

슬슬 지겨워져서 깽판을 부리고 싶어질 때였다. 키리안과 유하의 곁을 돌던 관찰의 눈 중 하나가 앞으로 쭈욱 뻗어나갔다. 긴장하며 발검(拔劍) 준비를 했다.

팟-!

관찰의 눈은 어둠 속에서 내리쳐진 검에 의해 강렬하게 빛을 한 번 발산하고 사라졌다. 그 잠깐의 빛이 앞의 상태를 알려주었다.

비밀통로에 처음 들어와 만났던 그 머리 덜렁거리는 몬스터들, 그놈들이 열 마리 있었다. 놈들은 양쪽의 푹 패인 곳을 지키고 있었다. 왼쪽엔 붉은 날개 일족의 사람들, 오른쪽은 평범한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헤, 운좋네. 제대로 온 건가?"

딱 잡혀온 사람들을 만나다니. 이거, 수고를 덜었다. 게다가 몬스터들에게 쫓기게 한 원인을 제공했던 놈과 같은 몬스터들이 있으니 이건 정말 좋다.

"자, 분풀이 시작이다!"

키리안은 바로 점핑을 이용해 몸을 날렸다. 몸을 낮추고 각을 낮게 해 마치 돌진하는 듯한 효과를 나타낸다. 점핑의 응용이다.

"오라 스플리트!"

문답무용. 눈앞에 보이는 녀석 하나를 바로 베어버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스킬.

"연환검!"

우측에서 다가오는 검을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회전해 피하면서 찌르기로 반격했다. 그대로 목을 꿰뚫는 검. 동시에 또다시 회전하며 실드 브레이크!

차아앙-!!

뒤에서 공격하던 녀석의 검이 그대로 닿은 부분이 가루가 되다시피 하며 부러졌다. 뒤의 공격을 무력화시킨 후엔 바로 점핑으로 높이 날아올랐다. 그와 함께 그들을 덮치는 빛! 바로 파사의 태도였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놈들은 이승을 하직했다. 생각보다 허술한 방비에 무언가 더 있음을 직감한 키리안이었지만 꾸물럭거릴 그가 아니다.

정말 낭패지만, 유하는 라이팅(Lighting), 그러니까 광구(光球)를 생성하는 마법을 배우지 않은 상태였다. 딱히 쓸 일도 없었고 아리에가 있었기 때문이다. 별 수 없이 키리안은 인벤토리에서 초보 때 주웠던 램프를 꺼내 불을 붙였다.

화악-

램프의 빛이 주변의 어둠을 몰아내 주었다. 그와 함께 갇혀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키리안에게로 모아졌다.

"사, 사람인가?"

키리안과 유하를 본 오른쪽에 갇혀있던 사람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모습이 갇혀있을 때의 고초를 고스란히 알려주었다.

"예에, 그렇습니다. 일단 철창부터 박살낼 테니까 벽쪽으로 붙어주세요."

그가 유로아의 검을 들고 말하자 모두가 벽쪽으로 몸을 옮겼다. 키리안은 일단 가까운 오른쪽으로 다가가 실드 브레이크를 시전했다.

콰아아아앙-!!!!

'큭.'

강렬한 충격. 손도 확실히 나은 상태가 아니었고 철 자체도 상당히 강력한 것이어서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키리안이 노린 것은 '베는' 것이 아니라 '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충격이 더욱 컸다. 하지만 그 충격을 감수한 것은 헛되지 않아, 철창을 휘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 틈 사이로 사람들이 빠져나왔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두번째 실드 브레이크. 그것으로 붉은 날개 일족의 사람들 또한 나올 수 있었다.

"모두 나온 건가요?"

확인을 위한 질문에 붉은 날개 일족의 사람들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대표로 키리안에게 말했다.

"저 안에 에리네가 갇혀 있습니다. 그분도 구해주세요."

간절한 그녀의 말에 키리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철창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살펴보았다. 더러운 담요를 제외하면 그 어떤 시설도 보이지 않는다(화장실도 없다. 게임이니까 이해하자). 극악의 환경. 그 허전한 공간의 가장 깊숙한 곳에 또 하나의 철창이 보였다. 상당히 좁은 곳이다.

다가가보니 한 명의 작은 소녀가 내부에 웅크리고 있었다. 초점이 사라진 흐릿하고 탁한 붉은 눈동자가 애처롭다. 현실에서 보자면 아직 초등학생일 여자 아이가 보일 눈동자는 아니었다.

'이거, 상당히 좋지 않은데.'

게임으로, 현실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선 재미가 없잖아? 즐길 때는 열심히 즐겨줘야지. 키리안은 그렇게 얼굴을 찌푸렸다.

"실드 브레이크."

콰아아아앙-!!

또다시 터지는 굉음. 하지만 소녀는 반응하지 않았다. 키리안은 왼손으로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잡아끌었다. 그가 이끄는 대로 소녀는 인형처럼 걸었다. 좋은 모습은 아니다.

'…이 아이가 바로 에리네구나.'

이것으로 사람들과의 조우에는 성공했다. 남은 것은 마지막 보스의 처치 뿐.

에리네를 붉은 날개 일족에게 맡긴 뒤 키리안은 나갈 길을 찾았다. 큰 수고 없이 정면에 오르막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 지상으로 통하는 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보스 몬스터가 있겠지.

"모두, 힘을 쓸 수 있습니까?"

혹시나 해서 키리안은 뒤의 무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역시나 힘을 쓸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결국 혼자서(유하 포함) 이들을 지키며 싸워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뭐, 일단은 올라가보죠."

키리안은 유하와 함께 앞장서서 오르막길을 올랐다. 길고 긴 길.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을 만난 곳까지 걸었던 만큼 걸어서야 겨우 길이 끝났다. 위쪽에 밀어서 여는 문이 보인다. 여길 나가면 무언가 있을 것이다.

일단 문을 조금 열었다. 그리고 새어 들어오는 빛. 키리안은 유하와 함께 일단 그 빛에 적응했다. 기껏 폼잡고 밖으로 나갔는데 빛에 적응못해서 '으악~'하면 그만큼 개쪽이자 개죽음이 없다.

어느 정도 빛에 적응되자 키리안은 문을 확 열고 유하와 함께 밖으로 뛰쳐나왔다.

"…예상대로군."

키리안과 유하의 주위에 원형으로 류테스들이 그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하브라스도 세 마리 보인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을 뒤덮은 커다란 그림자다.

무엇인지 이미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키리안은 확인을 위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고개를 돌린 곳엔 예상대로 불길한 붉은빛을 머금은 괴물, 적색의 하브라스가 둘을 노려보고 있었다.

기검(氣劍), 빛나다!(4)

음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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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Twenty five - 기검(氣劍), 빛나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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