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3…2…1
파아아앗-!!
정확히 5초 후 강렬한 빛과 함께 아리에가 등장했다.
"짠! 어디든 5초 안에 고객의 곁으로 다가가는 초광속 아리에 서비스 등장이요~!"
"……."
등장까지 좋았다. 딱 놀라고 감탄해 주려는 차에 터진 그녀의 대사만 아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끙. 이건 그냥 접자.'
상황이 상황인만큼 농담 따먹기를 할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하나는 물어야겠다.
"아리에, 어떻게 온 거야? 이곳 좌표도 모를 텐데."
키리안의 질문에 아리에는 씨익 웃으며 답해 주었다.
"별 거 아냐. 간단한 마법 '출두'를 사용한 거야. 유저에게 쓰는 거라면 그 동의를 먼저 얻어둬야 하지만 씰이 그 마스터에게 가는 데엔 아무런 장애가 없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구세주로 등장하는 데 쓰기 딱 좋은 마법이지."
"헤에, 그런 거냐."
그러고보니 그 방에 들어가기에 앞서 아리에와의 대화에서 부르면 5초 안에 가겠다고 했던 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뭐, 지금은 한가하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겠지?"
"응."
간단한 대화를 끝으로 둘의 기세가 변했다. 유로아의 검과 레드 슬레이어를 뽑아든 둘은 갈대처럼 가벼웠던 분위기를 잘 벼려진 칼과 같은 기세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변함없이 고요한 유하가 퇴마봉을 들고 그 곁에 섰다.
"주인님, 못 이긴다는 건 알고 있지?"
"응."
"어쩔 거야?"
"최대한 타격을 주고 밑으로 숨을 거야. 그런 식으로 해나가면 간단히 이길 수 있겠지. 꼭 정면으로 부딪치란 법은 없잖아?"
정말 쉬운 방법이었지만 이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드물었다. 좁은 다리를 사이에 두고 수 배에 달하는 적을 격파한다는 이야기는 꽤 흔한 것이다. 지금의 상황이 그와 비슷하다.
아리에는 키리안이 나온 출구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용암을 들이부을 것도 아니니 충분히 가능한 전법이다. 웬만한 건 사이 배리어로 막아낼 수 있으니까.
대충 작전을 짠 뒤 그것을 시행하기 위해 공격을 시작하려던 차였다. 갑자기 아래가 시끄러워졌다.
"으아아악!!"
"빨리 밖으로 튀어나가!!"
크롸롸롸롸롸-!!!
"이, 이 소린?!"
경악하는 키리안. 그리고 그와 유하가 나왔던 문이 거칠게 열리고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꾸역꾸역 몰려나오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엔 공포가 서려있었다.
"젠장, 거기에 하브라스는 없었는데!"
소리치는 그의 말을 부정하기 위해서였을까. 갑자기 그의 주위에 있던 지반에서 거대한 주먹 하나가 굉음과 함께 튀어나왔다. 그와 함께 무너지는 지반. 그리고 튀어나온 것은 또 한 마리의 하브라스였다.
"빌어먹을! 그러고보니!"
보스가 있던 방이라 생각했던 곳에 있던 하브라스! 그놈이 남아 있었다. 녀석 말고는 달리 생각나는 놈이 없다.
크롸롸롸롸!!
놈이 온전히 튀어나와 몸을 일으키며 음습하게 울었다. 그 소리에 키리안은 이를 갈았다.
적이 하나 더 늘었다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적이 등장하며 해놓은 일이었다. 사람들이 적에게 그대로 노출 되었고 안전한 장소마저 잃게 되었다.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으로 치달았다.
"젠장! 더 이상은 모르겠다. 그냥 막가보자고!"
키리안이 그대로 기검을 시전해 돌진하려는 것을 아리에가 막았다. 그리고 한 곳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곳은 절벽이었는데, 그 사이 동굴이 하나 있었다.
"일단 저곳까지 가자. 공격은 어떻게든 내가 막아볼 테니까 길은 주인님이랑 유하가 뚫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지."
차분한 그녀의 말에 키리안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놈의 성격은 쉽게 고칠 수 없나보다. 여유롭게 행동해왔지만 막상 극에 이르니까 깽판을 치던 예전 상태로 돌아갈 뻔 했던 것이다.
"알았어. 유하야, 파사의 태도 부탁해!"
"예."
유하가 키리안의 말에 바로 기세를 올렸다.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류테스들이 몰려들었다. 아리에가 이를 악물고 사이 배리어를 펼쳤다.
"사이 배리어-트리플!!"
카가가가강-!!
힘을 쓸 수 없는 두 종족의 사람들까지 보호해야 했기에 평소의 배로 힘이 들었다. 갑자기 다량의 마나가 빠져나가 키리안은 허탈감을 느껴야했다.
파사의 태도를 쓰기 위한 잠깐의 시간 사이 사이 배리어 중 하나가 가볍게 깨져 버렸다.
"파사의 태도!"
파아아아앗-!!!
제 2의 공격이 감행되기 전, 겨우 유하의 스킬이 터졌다. 발검과 함께 뿜어진 사를 멸하는 광채에 류테스들이 녹아내렸다. 그리고 극예(極銳)의 검기가 그 빛과 함께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었다.
"모두 살고 싶으면 달려요!!"
키리안의 커다란 외침에 사람들이 잠시 흠칫했다가 이내 미친듯이 다리를 놀렸다. 가장 앞엔 키리안과 유하가 서서 앞을 가로막는 류테스들을 베어나갔다. 다가오는 하브라스들을 막는 역할은 아리에가 맡았다.
"이글 오브 라이트닝."
아리에는 검에 푸른빛의 마나를 한계까지 뭉쳤다. 청색 마나가 뇌전을 흘리며 두꺼운 마나층을 형성하자 아리에는 검을 크게 휘둘러 그것을 떨쳐냈다.
허공에 뿌려진 청색 마나는 몇 십 등분 되어 하브라스들에게 날아갔다.
콰과과과광-!!
일반적인 하브라스들은 빠르고 연속적으로 타격을 주는 이글 오브 라이트닝의 검기에 주춤했지만 붉은 하브라스는 달랐다.
크롸롸롸-!!
두 개의 머리통으로 불을 뿜어내 푸른 검기를 녹여 버린 것이다. 마법적 공격에 검기가 힘없이 스러진 것이다.
"마법까지 쓴단 말이야? 정말 골때리네. 차라리 하브라스 떼거리가 더 나았다."
그녀와 레이가 퀘스트의 마지막에 상대했던 것은 하브라스 떼거리였다. 그때도 힘들긴 했지만 따로 떼어놓으면 상대하는 것이 수월했던 하브라스완 달리 이놈은 '양'이 아닌 '질'이 월등해 상대하는 것이 훨씬 더 힘들었다.
"이글 오브 라이트닝!"
아리에는 놈들이 주춤하는 사이 점프해 다시 한 번 이글 오브 라이트닝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의 뒤를 쫓으려는 류테스들을 공격했다. 오직 물리적인 힘만을 지닌 류테스들에게 푸른색 검기는 치명적이었다.
화르르륵-!
"…! 사이 배리어!"
검기를 뿌리자마자 날아오는 초고열의 화염. 붉은 하브라스의 브레스에 아리에는 급히 사이 배리어를 전개했다. 하지만 다른 하브라스가 주먹을 날리자 지체없이 사이 배리어를 풀고 아래로 하강해 그 공격을 피해냈다.
"이글 오브 라이트닝!"
그녀는 하브라스들의 공격은 최대한 피하고 류테스들의 수를 줄이는데 주력했다. 지금 수를 줄여놓아야 나중에 정말 하브라스들을 상대할 때 수월해지는 것이다.
정신없이 사이 배리어를 사용하고 이글 오브 라이트닝을 뿌리며 공격을 피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아리에는 점차 힘들어짐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능률 좋은 스페셜 스킬이고 그 극에 다다랐다지만 이 정도 수를 혼자서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던 것이다.
또다시 날아오는 주먹. 아리에는 일단 빠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점핑."
탓-!
높이 날아오르는 그녀의 신형. 그리고 급히 레비테이션의 주문을 외웠다.
"창공을 노니는 자유로운 바람의 마나여, 지금……! 사이 배리어!"
최대한 빨리 외운다고 외웠지만 채 다 외우지 못하고 그녀는 급히 사이 배리어를 펼쳐야했다. 붉은 하브라스의 초고열의 화염이 또다시 그녀를 덮치려 했기 때문이다.
"큭!"
버티는 것도 더 이상 한계였다. 붉은 하브라스의 레벨은 현재 그녀의 능력을 상회하는 것. 급히 펼친 사이 배리어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감히 누굴 익히려는 거야! 실드 브레이크!!"
한계에 이르러 결국 사이 배리어가 깨지려는 차에 그녀를 돕는 존재가 있었다. 허공에서 연청빛의 궤적을 남기며 떨어져 내리는 것은 바로 키리안이었다!
콰아앙-!!
키리안은 붉은 하브라스의 미간을 정확히 조준하고 검을 때렸다. 콘센트레이트 오라까지 더해졌고 그 약점을 노렸으니 미미하게나마 타격을 줄 수 있었다.
크롸롸롸-!!!
고통스러운지 놈은 머리를 흔들어댔고 브레스가 멈췄다. 아리에는 겨우 브레스의 압력에 풀려나 땅에 내려설 수 있었다.
"으다다다, 비키라고! 오라 크로스!"
공격 후 키리안은 바로 놈들에게서 떨어졌다. 앞을 막는 류테스들은 가볍게 검을 십자로 그으며 날려버렸다.
"괜찮아?"
"…하아. 안 괜찮아 주인님."
키리안이 마나 포션을 마신 관계로 일단 마나는 괜찮았다. 문제는 그녀 본인의 체력에 있다. 아베스 던전에서 합체기를 막아낼 때 이후 두번째로 이렇게까지 몰려본 그녀였다. 이 정도까지 지쳤으니 오래 버티진 못할 것이다.
"꺄앗!"
"…젠장!"
아리에에게 신경 쓴 사이 유하가 류테스의 손톱에 왼팔을 긁혔다. 검이나 다름없는 그 손톱에 의해 소매가 찢어지고 왼팔에 깊은 상처가 남았다.
키리안과 아리에가 급히 달려가 몰려드는 류테스들을 처리해 그녀의 강제 역소환은 막았지만 근접 전투는 더 이상 무리였다.
"헤, 여기까진가?"
일단 역소환 당하면 게임 내의 시간으로 72시간을 소환할 수 없게 된다. 아리에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고 유하는 근접 전투가 거의 불가능해진 상황. 성직자가 없으니 상황을 뒤집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 상황에선 차라리 키리안이 게임 오버를 당한 뒤 다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리에 역시 이번엔 키리안을 말리지 않았다. 자신도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뭐, 그럼 마지막 발악을 해보실까? 아리에, 유하 잠시만 지켜주라."
"알았어."
키리안은 유하를 아리에에게 맡기고 유로아의 검을 꽉 쥔 채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기력을 끌어올리며 최후의 카드를 빼들었다.
"기검(氣劍)."
파아아앗-!!
상당량의 기력이 검으로 빠져나갔다. 그것은 유로아의 검을 중심으로 뻗어나가 연청색 기검을 형성했다. 극예(極銳)의 기검. 유로아의 검의 능력을 통해 보기만 해도 시린 날카로운 기검이 생성된 것이다.
"내가 진짜 하나라도 더 죽이고 간다! 다 담벼!"
키리안의 외침과 함께 류테스들이 달려들었다.
"연환검!"
정면의 셋을 검을 횡으로 휘둘러 가볍게 양단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방패로 돌진하며 오라 크로스를 시전, 뒤에 있던 류테스들을 처리했다.
양옆과 뒤에서 류테스들이 손톱을 휘둘렀다. 키리안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류테스들의 시체를 왼손으로 쳐내 방어하며 검을 쭉 뻗은 뒤 몸을 숙이며 회전했다. 소리도 없이 갈라지는 류테스들의 하체.
대충 주변을 끝낸 뒤 하브라스가 있는 곳을 찾았다. 마침 가까이에 하브라스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키리안은 그곳을 목표로 잡고 일자무식으로 놈에게 돌진했다. 맞아도 타격이 미미한 공격은 무시하며 치명적인 공격만을 피하며 하브라스의 근처까지 왔다.
크롸롸롸!
놈이 팔로 바닥을 쓸어왔다. 키리안은 점핑으로 공격을 피하며 그 팔뚝 위에 섰다. 그리고 놈이 반응하기도 전에 놈의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바보같이 목을 아래로 향하고 있던 것이 실수였다.
"하아, 하아. 죽어 버려!"
키리안은 마지막 힘을 다해 하브라스의 미간에 검을 찔러넣었다.
콰악-!!
과연 유로아의 검을 통한 기검은 날카로워서 하브라스의 미간을 단숨에 뚫어버렸다.
크롸롸롸-!!!
극심한 고통에 놈은 대가리를 흔들며 비명을 질렀다. 끈질긴 목숨. 하지만 그것도 기검을 버티다 못한 유로아의 검이 박살나며 끝이 났다.
팍-!
검이 부러지며 그 파편이 속을 헤집어놓자 숨통이 끊긴 것이다.
"하아, 이걸로 하나는 죽였다."
키리안은 놈의 숨통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아리에와 유하는 키리안에게 가려했지만 류테스들의 방해에 속만 탈 뿐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쉬쉬쉬쉭-!!
키리안이 떨어질 장소의 아래에 모여있던 류테스들에게 화염 화살이 날아들었다. 강력한 물리력까지 동반한 화살에 류테스들이 퍽퍽거리는 소리와 함께 타오르며 저멀리 날아갔다.
화살이 날아온 것은 숲속과 절벽 위였다. 절벽 위에서 나타나 낙하하는 키리안을 잡아챈 것은 붉은 화염의 날개를 지닌 존재, 붉은 날개 일족이었다!
기검(氣劍), 빛나다!(4)
..할 게 없어 연참...-┏
[사실 글빨도 좀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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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Twenty five - 기검(氣劍), 빛나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