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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군인가!"
아리에가 절벽 위에서 나타난 붉은 날개 일족들을 보며 소리쳤다. 거의 포기 상태였는데 절박한 상황에 맞춰 원군이 도착한 것이다. 게다가, 그들 만이 아니었다.
"쏴라!"
피피피피핑-!!
숲속에서 사람들이 나타나 화살을 쏘아댔다. 마력석을 사용해 만든 화살촉은 마법이 아니었지만 류테스들에게 치명적인 것이었다. 또다시 무더기로 류테스들이 픽픽 쓰러졌다.
"캇캇-!!"
류테스들은 이대로 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느꼈는지 다급한 소리와 함께 물러났다. 그 틈에 붉은 날개 일족과 사람들 역시 전열을 정비했다.
붉은 날개 일족 중 하나가 키리안을 조심스럽게 땅에 내려놓았다.
"아아, 고마워요."
키리안은 많이 지친 듯 했지만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기에 부축은 사양했다. 대신 성직자를 불러달라 했다. 그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인 뒤 사라졌고, 잠시 후 성직자들이 그들에게 다가와 회복 마법을 '퍼'주었다.
힐링, 힐링, 힐링, 리커버리.
회복 마법 공세에 키리안과 아리에, 유하는 어느 정도 상태가 나아졌다. 완전히 끝이라 여겼던 상황에서 희망이 생긴 것이다.
"하아, 이거 진짜 게임 같은 상황이구만."
키리안은 상태가 호전되자 주변을 살피며 고개를 저었다. 타이밍이 미묘해도 이렇게 미묘할 수가 없다. 아리에 또한 그의 생각에 동조해 고개를 끄덕인다.
"뭐, 일단은 살았고 다시 플레이 해야 하는 불상사는 넘겼으니 좋게 생각하자고."
그렇게 죽다살아난 키리안에게 보디빌더도 한 수 접어줄 탄탄한 근육의 소유자가 다가왔다. 붉은 날개 일족의 대장장이, 바로 데린저였다. 그는 키리안이 들고 있는, 검날이 박살나버린 유로아의 검을 보곤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내 이럴 줄 알았지. 검 받은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부러먹는 게야?"
"헹. 그렇게 약한 검으로 어떻게 버티겠어요? 게다가 이 상황에서."
키리안의 반박에 데린저가 씨익 웃었다.
"그래. 내 검이 그렇게 약했단 말이지? 그 말, 책임질 수 있냐?"
"물론이죠! 제 생각을 철회시키고 싶다면 탄탄한 녀석으로 줘봐요."
"오냐 그래. 어디 이 녀석을 쓰고도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나 두고보자."
데린저는 확신이 가득한 말과 함께 키리안에게 두 개의 검과 하나의 작은 케이스를 꺼내 주었다. 그것을 본 키리안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감탄의 목소리가 나왔다.
붉은빛 검의 주위를 연청색의 빛이 휘감고 있었다. 곧게 뻗은 검신(劍身)을 감싸고 있는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런 검집과 그 아래에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가드. 그리고 검을 잡는데 최적화된 힐트. 실용성과 미(美) 두가지를 만족하는 그야말로 예술품이었다.
"이것이 포스 블레이드란 말이에요?"
키리안의 물음에 데린저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촌스런 이름은 잊어버려! 이제부턴 붉은 화염의 폭풍우, 크림슨 템페스트(Crimson Tempest)다!"
"헤에, 크림슨 템페스트라……. 멋지네요."
키리안은 그것을 허리에 차고 한 번 쓰다듬어 준 뒤 이번엔 에인션트 골드 블레스터를 쥐어보았다. 외관상으론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은은하게 뿜어져나오는 금빛은 훨씬 더 따듯하고 밝아져 있었다.
"겉으론 별달리 변한 게 없어. 하지만 능력은 많이 좋아졌어. 먼저 탄환을 쏠 때의 반동을 줄였고 그 파괴력은 더 높아졌지. 게다가 검날 자체도 날카로워졌어. 케이스에 들어있는 건 탄환이야. 총 열다섯 발이다. 유용하게 쓰도록 해."
열다섯 발의 탄환. 거기에 키리안이 지니고 있던 한 발을 더해 총 열여섯 발의 탄환이 그의 수중에 있는 것이다.
에인션트 골드 블레스터를 품 속에 꽂는 것으로 다시 무장을 끝낸 키리안이 다시 전투가 벌어진 곳을 보았다.
류테스들은 역시 상대하는데 무리가 없었지만 하브라스들, 그 중 적색 하브라스가 너무나 버거웠다. 그 거대한 몸뚱이를 바탕으로 한 무식하도록 강력한 공격도 공격이지만 적색 하브라스의 브레스는 한 번 쏘아질 때마다 큰 피해를 낳고 있었다.
"아리에, 유하야. 가자!"
"오케이!"
"예."
무장도 이젠 완벽하고 체력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충분히 싸울 수 있게 되었으니 제대로 뜨거운 맛을 보여줄 생각이다.
"어이, 무리하진 말라고."
"물론이죠!"
데린저의 말에 키리안은 가볍게 대답하고 우선 에인션트 골드 블레스터를 빼들었다. 그리고 탄환을 장전한 뒤 날뛰는 하브라스 중 한놈을 목표로 잡았다.
콰아앙-!
주먹을 내리치며 생긴 잠시의 시간. 그것이면 충분했다.
콰아아아아아앙-!!
하브라스의 주먹 따위완 비교가 안되는 굉음. 그리고 주먹을 내리친 하브라스의 미간을 꿰뚫는 한줄기 금빛 뇌전! 그 한줄기 빛에 의해 하브라스는 생을 마감했다.
"휘유, 이거 진짜 괴물이 되었는데?"
파괴력은 전에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동은 엄청나게 줄었다. 이 정도면 한 손으로 사용해도 될 정도다. 오른손으론 포스 블레이드, 아니 크림슨 템페스트를 휘두르고 왼손으론 에인션트 골드 블레스터를 사용한다…… 꽤 멋진 그림이다 이거.
에인션트 골드 블레스터 한 방에 모든 시선이 키리안에게로 집중되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씨익 웃으며 몸을 꼬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살랑거리는 키리안이 아니라, 전투를 치르며 차갑게 웃는 검사인 것이다.
철컥-
키리안은 에인션트 블레스터의 탄창에 탄환을 채워넣은 뒤 왼손에 잡았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크림슨 템페스트를 뽑아들었다.
스르릉-
시리지만 부드러운 검명과 함께 크림슨 템페스트의 검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빛을 발산하는 검신을 날카로운 연청빛의 기류가 감싸고 있었다. 이것이 크림슨 템페스트.
"헤, 멋지네. 그럼 가볼까나."
키리안은 또다른 하브라스를 목표로 한 뒤에 아리에에게 말했다.
"아리에, 잠시만 공격 막아줘. 유하랑 합체기 한 번만 써보게. 파사의 태도 업그레이드 판 같으니까 전체 공격하기 딱 좋을 것 같아."
어차피 장기전으로 갈 것도 아니니 폭발적으로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아리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나섰고 키리안은 유하와 함께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사이 배리어-더블."
잠시간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 잠시간의 시간을 아리에의 사이 배리어가 벌어줄 것이다.
키리안은 우선 유하와의 합체기 주문을 살폈다. 상당히 길다. 뭐, 처음이니 당연한 일. 키리안은 그것을 보고 찬찬히 주문을 외워나갔다.
"…천상의 성스런 빛이 지금 여기 무녀에게 내릴지니, 그 단죄의 검에 머물러 천상의 법도에 따라 사악한 악귀를 벨 지어다. 파사(破邪)의 천태도(天太度)!"
긴 주문이 끝나고 마지막 기술명을 외치자 유하에게서 강렬한 빛이 터졌다. 그것은 퇴마봉에 집중되어 눈을 멀게 하는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그 빛을 머금은 퇴마봉의 검을 유하가 발검술의 수법으로 뽑아내 횡으로 그었다.
파아아아앗-!!!
마치 어둠을 몰아내는 태양빛처럼 그것은 숲을 뒤덮었고, 류테스라는 어둠을 지워나갔다. 그리고 그어진 한가닥 검의 궤적. 그 궤적을 따라 공간을 가르며 나아가는 한줄기 검기. 그것은 하브라스 하나를 양단한 뒤에 허공으로 녹아 사라졌다.
"헤에, 올 클리어(All clear)네 완전히."
막대한 마나가 소모되긴 했지만 파사의 천태도는 그 값을 확실히 해주었다. 그들의 앞에 있던 모든 몬스터들이 싹 쓸렸다. 하브라스까지 말이다.
"좋아! 그럼 여기는 저사람들한테 맡기고 우리는 저놈을 치자고."
키리안이 가리킨 것은 머리통 두 개의 기형 하브라스였다. 저놈만 끝내면 이 지긋지긋한 싸움도 끝이 날 터였다.
한창 불을 뿜어내고 있는 적색 하브라스의 입을 목표로 에인션트 골드 블레스터를 조준했다. 그리고 발사.
콰아아아아앙-!!
놈의 입이 워낙 크고 쩍 벌리고 있어서 맞추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금빛 궤적은 키리안에게서부터 시작 되어 적색 하브라스의 입천장을 뚫었다.
크롸롸롸롸!!!
머리통을 흔들어대며 고통스러워하는 적색 하브라스. 그 와중에도 놈은 총을 쏜 장본인인 키리안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쭈? 노려본단 말이지? 그래,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지. 그럼 붙어보자고!"
키리안은 그런 적색 하브라스의 눈빛에 씨익 웃으며 크림슨 템페스트와 에인션트 골드 블레스터를 들고 녀석에게 돌진했다.
기검(氣劍), 빛나다!(5)
으냐..기검 챕터도 이제 마지막~(-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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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Twenty six - 기검(氣劍), 빛나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