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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고대 은신의 주문을 써달라고 불렀단 말이지?"
키리안을 17토막 내버릴 기세로 달린 디엔트는 목표의 앞에 와서 완전히 탈진해 버렸다. 결국 겨우 체력을 회복했을 땐 불같은 기세마저 재만 남은 상태였다.
디엔트의 질문에 키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숨어 있다가 녀석이 오면 바로 개패듯 패는 거지. 일단 날지만 못하게 하면 승산이 있어. 특수 기술이란 것도 체력이 받쳐줘야 쓸 수 있는 거니까 단숨에 체력을 빼놓으면 쉽게 잡을 수도 있을 거야."
"흐음, 알았어. 그럼 모여봐."
따로 무언가 할 의욕도 없었기에 디엔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키리안이 지정한 자리로 이동했다.
둥지의 옆에 세워진 커다란 기둥. 피닉스가 내려 앉으면 바로 합체기를 시전하며 아래로 떨어져내릴 작정이다.
일행이 모두 옹기종기 바위틈 사이에 자리를 잡자 디엔트가 주문을 외웠다.
"잊혀진 고대의 힘에 의해 수호받을지니, 허락된 시간 동안 그대를 노릴 발톱 없으리라. 에인션트 인비지블(Ancient inbisible)."
파아아앗-
시동어를 읊조리자 디엔트의 몸에서 연한 은색의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행을 뒤덮더니 이내 조용히 허공 중에 흩어졌다. 은신의 영역이 형성된 것이다.
{좋아. 이제 기다리면 돼.}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벌써 몇 시간이 지났으니 곧 나타날 거야. 거처를 옮기기 전엔 꼭 한 번 나타나니까.}
아르니아의 설명이 무기한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없애 주었다.
지루한 마음에 저글링을 시작한지 몇 분이나 흘렀을까. 일행이 모두 빈둥거릴 때였다. 드디어 피닉스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왔다!}
키리안이 귓속말로 소리치자 모두가 벌떡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과연 그의 말대로 저쪽 하늘에서 피닉스가 날아오고 있었다.
화려하고 우아하게 뻗은 깃털. 붉은색과 주황색이 멋지게 조화된 피닉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붉은빛은 마치 허공에 뿌려지는 투명한 물방울과도 같았다. 다른 수식어는 필요없었다. 그저, 멋지다!
{좋아좋아. 모두 준비!}
아르니아와 카디안이 합체기를 준비했다. 마나를 뿜어내면 바로 들킬 것이기에 바로 뛰쳐나갈 수 있는 준비만 한 상태였다.
촤악- 촤악-
한쪽의 날개 길이만 2.5m에 달하는 녀석 답게 날개를 휘두를 때 나는 소리부터가 달랐다. 그에 따라 펄럭이는 깃털과 흩어지는 붉은빛은 그야말로 환상! 키리안이 완전히 맛이 가버린 눈으로 그것을 응시하고 있었다.
피닉스가 천천히 둥지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날개를 접고 둥지에 몸을 기댈 때, 바로 이때 모두의 눈이 빛났다.
"지금!!"
"하아! 태고적부터 존재하는 빛의 근원. 세상의 모든 빛을 관장하는 생명의 바람. 그 바람이자 빛의 대리자의 권한으로…… 네피리아!!"
가장 먼저 터진 것은 카디안과 네피엘의 합체기였다. 폭풍에 가까운 바람이 몰아치며 피닉스를 난자하기 시작했다. 무방비로 그것을 얻어맞은 피닉스가 휘청였다.
결정타는 아니었기에 다시 일어나려는 피닉스. 하지만 공격은 이제 시작이었다.
"신성한 검에 투신의 힘이 깃들지니, 푸른 뇌전의 힘이 적을 내리치리라! 천뢰검격(天雷劍擊)!"
아르니아의 외침과 함께 발키리 중 하나가 검을 내리치며 떨어져 내렸다. 검의 궤적에 따라 내리 꽂히는 거대한 푸른 뇌전의 검이 피닉스를 때렸다.
콰아아아아앙-!!
뇌전이 폭발하며 고개를 쳐들었던 피닉스를 다시 땅에 처박았다. 이번엔 타격이 컸는지 휘청거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격!
"혼돈의 강에 흐르는 대지를 가르는 붉은 황혼의 다섯 개의 별. 신조차 멸하는 어둠! 대지를 유린하는 광란의 빛! 자비에르 기가데인!"
디엔트의 파트너인 데미시온이 칠흑의 마기로 마법진을 형성했다. 그리고 떨어지는 무수한 빙정과 암뢰가 피닉스를 강타했다.
콰과과과과과과광-!!
엄청난 폭발. 하지만 죽지 않았을 피닉스라는 것을 안다. 먼지가 난다고 공격을 끝내는 만화에서의 바보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
"가자, 유하야!"
"예."
공중에서 유하와 키리안이 뛰어내렸다. 먼저 시전된 것은 유하의 파사의 태도였다.
"파사의 태도!"
파아아앗-!!
강렬한 빛이 먼지를 밀어내며 피닉스를 덮었다.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이 덮친 뜨거운 빛. 그리고 드러나는 피닉스를 강렬한 한줄기 검기가 때렸다.
콰아아아앙-!!
{끄와아아아아악!!}
일행의 귀를 때리는 피닉스의 울음. 연속되는 공격을 별다른 방비도 못하고 맞은 탓에 압도적인 레벨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키리안은 유하가 카리나에 의해 안전하게 착지하는 것을 확인한 뒤 피닉스를 보았다. 이 정도면 대부분의 체력을 깎았을 것이다. 이제 마무리다!
"기검, 일리오스!"
파앗, 콰아아앙!
크림슨 템페스트를 따라 피어오르는 백색 찬란한 기검. 그리고 그 기검을 따라 터져오르는 일리오스의 불꽃!
"실드 브레이크!!"
거기에 더해진 실드 브레이크! 키리안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의 보스 몬스터를 한 방에 보내버릴 엄청난 공격이 낙하하는 힘까지 더해져 피닉스를 때렸다!
콰아아앙!!!
엄청난 굉음. 그리고 피닉스의 비명. 속성이 같은 화(火)였기에 화염 데미지는 없었지만 그 자체의 물리 데미지만 해도 엄청났다.
{끄와아아아악!!}
"으갸아아아아! 손 아파 죽겠네!"
그 엄청난 공격을 한 키리안 역시 무사할 리가 없다. 검을 내리친 두 손목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기에 신경 쓸 사이가 없다. 바로 포션을 꺼내 손목에 바른 후 키리안은 인벤토리에서 화염석을 꺼냈다.
"헤에, 많이 아프지? 미안해."
키리안은 바로 표정을 '헤헤 모드'로 바꾸곤 피닉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화염석을 꺼내 가루로 만든 후(힘을 조금만 주면 가루로 변한다) 피닉스에게 뿌리며 친근하게 말을 건냈다.
"그냥 말을 걸면 도망칠 거 같아서 별 수 없이 힘을 쓰고 말았어. 이해해주고 친구가 될 수 없을까?"
순진하고 간절한 표정으로 말하는 키리안. 하지만 돌아온 건 피닉스가 뿜어낸 화염 뿐이었다.
"흐갸갸갸갹!!"
급히 몸을 굴리는 키리안. 다행스럽게도 머리카락이 조금 타는 것으로 그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울컥하는 감정을 꿀꺽 삼키며 키리안이 다시 다가갔다. 그리고 다시 화염석을 뿌려주며 말했다.
"헤헤, 모두 이해해. 그래 화내는 거 이해해. 하지만 한 번만 봐주라아."
화르르르륵-!!
다시 뿜어지는 화염. 다시 기겁하며 피하는 키리안.
"미안해."
화르르르륵-!!
"미안해. 미안해. 내가 모두 잘못했어."
화르르르르르르르륵-!!
몇 번이나 같은 패턴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열 번 정도 반복되었을 때, 드디어 키리안의 퓨즈가 끊어졌다.
"이노무 스키. 좋은 말로 하니까 안되겠구나. 모두, 이놈 조져."
{끄와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다시 한 번 화려한 매타작이 시작되었다.
씰 콘테스트(Seal contest)(2)
으냐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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