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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앱솔브 최고의 진풍경 중 하나를 꼽자면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이오렌 섬을 들 수 있다. 마치 바다와도 같은 푸르디푸른 넓은 호수는 그 위에 떠있는 몇 개의 섬들로 인해 자칫 느낄 수 있는 공허함마저 배제 시킨 멋진 곳이었다.
키리안은 그 멋진 광경을 느긋히 피닉스 위에 앉아 관람하고 있었다. 아니, 관람하고 싶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이 빌어먹을을 반복하고 있는 빌어먹을 피닉스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 성능(?)을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에 유하를 역소환하고 꺼낸 녀석이었다. 멋들어지게 '적여(赤麗. 붉을 적 아름다울 여)'란 이름까지 붙여주었는데, 카디안을 제외한 일행을 태우고 난 뒤부터 계속해서 사념으로 중얼거리고 있다.
"시끄러 이늠아!"
따악-!
키리안은 옆에 두었던 기~다란 봉을 들어 적여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따악, 하는 경쾌한 소리가 하늘 위에 울려퍼진다.
피닉스. 그 주황색과 적색이 혼합된 화려하고도 고귀한 창공 계열 최고의 씰 중 하나인 존재. 허공을 나는 궤적을 따라 흐르는 붉은빛은 화려함의 극치다. 그 피닉스 중 하나인 적여가 지금 중얼거리다가 주인에게 맞은 것이다.
{크, 크흑! 이 고귀한 몸이, 이 고귀한 몸이 이런 야만인에게 그리도 어이없이 당하고 말다니! 하늘이여, 정녕 이 몸을 버리시나이까! 하늘이……}
따아악-!
"거참 시끄럽데두! 너도 아래나 감상해봐. 캬, 경치 좋다~"
또다시 한 대 맞은 적여가 그제서야 사념 보내는 걸 멈추고 조용히 하늘을 난다. 이제 좀 피닉스 다운 티가 나타난다.
불쌍한 녀석이다. 오뉴월에 개맞듯 맞고 키리안의 사악한 수에 이리 당하니 말이다. 그 레벨이 키리안의 수준에 맞춰진 피닉스의 레벨은 113. 꽤 약해진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키리안이 어디선가 구해와 '적여용 사랑의 매'라 이름붙인 저주받을 봉에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키리안이 그 어떤 스킬도 응용하지 않고, 더구나 왼손으론 저글링을 하면서 휘두르는 봉에 그리 큰 타격을 받는 것은 모두 적여가 키리안의 씰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다. 키리안이 마스터였기에 그가 휘두르는 공격에 대해 적여의 방어력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저 고스란히 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키리안과 적여가 투닥거리는 덕분에 그 위에 타고 있는 다른 일행은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그 뒤에서 적여의 뒤에 묶인 끈에 허리를 묶고 딸려오는 카디안 역시 키리안을 보며 이를 뿌득뿌득 갈고 있었기에 심심함 따위는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크아아악! 키리안 놈!! 그 말을 그대로 실행할 줄이야!!'
피닉스를 잡기 위해 산을 오르던 중 중턱에서 쉴 때 했든 그 장난과도 같던 말, '캬악, 피닉스 구하면 두고보자고!! 안 태워줄 거야!' 이 말을 그대로 실행할 줄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다. 덕분에 카디안은 이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이동을 해야 했다.
{여러모로 맘에 안들어. 도대체 내 우아한 꼬리에 줄은 왜 다는 거냐.}
"어허, 마음에 안들면 부리에 달아주리?"
{…젠장. 내가 말을 말아야지.}
이래저래 쉴 새 없이 투닥거리는 둘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었다. 테이밍 과정에서부터 형성된 키리안과 적여의 '사이'였다. 투닥거리지만 친한 친구와 같은 사이랄까? 키리안과 적여의 친화도는 그럭저럭 좋은 편이었다. 말없는 유하완 달리 꽤 잘 떠드는 녀석이기도 하다.
투덜거리면서도 적여의 비행엔 게으름이 없었기에 배를 타고 피닉스의 섬에 갔을 때보다 일행은 훨씬 빨리 이오렌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키리안은 우선 카디안을 적여의 등 뒤에 태워주고(인심 썼다!) 멋드러지게 적여를 타고 부두에 착지했다. 그 보기 힘든 피닉스를 테이밍한 유저에게 잠시 시선이 간다. 그리고 천령과 대화를 했던 바로 그 유저임이 확인되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린다.
"이거, 걸어선 못 가겠네. 적여야 고마웠다. 쉬어. 씰(Seal)!"
그 윤기나는 붉은 목덜미를 한 번 쓰다듬어 준 후 키리안은 적여를 역소환했다. 그리고 유하를 다시 소환했다.
"앱솔브!"
영롱한 소리를 내는 방울을 들고 외친 소환 명령어. 그리고 빛과 함께 유하가 나타났다. 키리안은 그녀가 소환되자마자 안아들고 점핑으로 건물의 지붕을 타고 후다닥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헤헤, 모두 고마웠어. 그럼 즐겁게 놀아. 나는 사라질게!}
달리면서도 고맙단 소리를 잊지 않는 키리안을 보며 모두 한 번 웃고는 각자 할 일을 찾아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