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앱솔브-114화 (11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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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휙휙 지나갔다. 좀전의 '악몽'은 분위기를 타고 저멀리 흘러가버렸고, 이제 다시 장내는 화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느새 참가자도 단 셋만을 남겨놓은 상태. 키리안은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간 떨리네에에에!!'

자신의 실제 몸이 아닌 캐릭터였기에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것까진 느끼지 못했지만 느낌이 분명히 그랬다. 아마 현실의 몸이 두근거리고 있을 것이다.

'젠장, 가창 시험 때보다 더 떨리잖아!!'

음악 시간 때 야외에서 가창 시험 치던 때보다 더 심하다. 어떻게 해서든 참가 전에 아리에를 말렸어야 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예,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다음 참가자입니다! 19번 참가자분 나와 주세요!!"

'으아아악, 이제 한 명 남았어!!'

이제 곧이다. 이 다음은 자신이 끌려가야 한다.

절규하며 밖으로 나가는 유저를 흘끗 살펴봤다. 그리고 표정이 절로 살짝 굳는다. 악연. 악연의 그놈이다. 키리안은 현재 라시드를 만나던 그때의 차림이었기에 녀석은 알아보지 못한 듯 했다.

메자르가 밖으로 나가자 키리안은 TV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과연 녀석은 무엇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주인님, 우리도 이제 준비해야지. 가자!"

심각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TV를 바라보는 키리안. 그런 키리안의 팔을 잡아끄는 아리다운 미소녀 씰이 있었으니, 표리부동(겉과 속이 다르다)의 대표주자 아리에였다.

"자, 잠깐만! 이것만 보고 가자아아아아!"

"안돼! 나 옷 입는 것도 주인님이 도와줘야 한단 말야. 시간 없어."

"이, 이것만 보고…… !"

어차피 한 명이 남았으니 버팅겨 보려던 키리안은 아리에의 대사에 그대로 몸을 멈췄다.

'오, 옷 입는 걸 도와 달라고?'

살짝 패닉 상태에 빠린 키리안. 그런 키리안을 아리에는 짐짝처럼 질질 끌면서 탈의실에 들어섰다. 그리고 한 뭉치의 옷과 일부 소품을 키리안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별다를 것도 없는 현대식의 옷과 칼라 콘텍트렌즈 하나가 키리안에게 주어졌다.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 옷이다.

"잔말말고 빨리 입어. 그리고 나도 갈아입을 거니까 필요한 거 말하면 바로 던져 줘."

"예이."

아리에는 말을 남기고 바로 옆칸으로 사라져버렸다. 아무래도 기대하던(뭐를?) 일은 없을 듯 했다.

"흐음, 이거 그냥 평범한 옷이잖아?"

키리안은 옷을 '장착'하며 말했다. 하나하나 빛을 낸 뒤 입혀진 옷은 정말 시내에만 나가도 수십 번은 볼 듯한 그런 옷들 뿐. 그나마 특이한 거 하나라면 눈동자를 붉게 만드는 붉은색 콘텍트렌즈 하나 뿐?

"됐다~"

옷을 다 차려입은 뒤 키리안은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그리고, 표정이 차갑게 굳는 것을 저지할 수 없었다.

검은색 일색의 셔츠와 바지, 그리고 얇은 조끼 하나. 그리고 게임 속 특성상 자세히 보면 공허해보이는 눈동자. 그런 모습의 붉은 눈동자를 지닌 차가운 표정의 유저 하나가 거울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리안…… 에스페르츠.'

기억 속에 묻어버린 이름.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욱 심했던 '어린 날의 치기'를 대표하는 이름. 제멋대로 살던, 어렸던 시절의 기억이 가득 담긴 이름. 그 이름으로 불리웠던 캐릭터의 모습. 그것이 거울 속에서 자신을 공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주인님, 거기있는 작은 주머니 좀 던져 줘."

"……."

리안은 말없이 말랑한 주머니 하나를 위로 던져줬다. 그것은 포물선을 그리며 문 너머의 아리에에게로 날아갔다.

"땡큐~"

그 뒤로 몇 개의 소품을 더 던져주었다.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무언가도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리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안다.

"주인님, 위시 큐브 좀 돌려봐. 곧 우리 차례니까 타이밍 맞게 되면 좋은 거고 안되면 별 수 없지. 이번에도 자격 레벨의 해제다."

리안은 이번에도 말없이 위시 큐브를 준비했다. 3x3등을 돌릴 시간은 없다. 기척으로 메자르가 들어온 것이 확인되었다. 다음 사람이 들어온 뒤에 바로 큐브가 발동되면 성공이다. 아니라면 무대에 서기전까지라도 된다면 성공, 아니라면 실패다.

고요하고 짧은 시간이 끝나고 스무번째 참가자가 대기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드디어 디카릭이 스물 한 번째 팀을 호명한다.

"자, 이제 베스트 드레서도 마지막에 이르렀습니다. 과연 마지막 참가자는 무엇을 보여줄까요. 기대하며 불러봅니다. 스물 한 번째 참가자, 나와주세요!"

리안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큐브를 돌리며 말했다.

"자격 레벨의 일시 해제."

파아아아앗-!

빛이 흘러나온다. 그것은 꺼지지 않고 리안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운좋게도 한 번에 성공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전혀 기분이 좋지 않다. 오히려 '이 빌어먹을 묘한 인연'에 저조해질 뿐.

'또다시 그것을 반복하는 건가.'

헤어지는 마지막에 있었던 바로 그것, '그 연극'이 재현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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