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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바람과 차분하고 깔끔한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새하얀 노천 카페. 키리안의 주장에 따라 일행은 이곳의 한 테이블을 차지하게 되었다.
"너, 이번에도 거대 길드랑 척을 지게 되는 거 아냐?"
천령은 게임 속이라 부담없이 콜라를 홀짝이는 키리안을 보며 물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정말 요점만 추려서 들었지만 이해엔 문제가 없었다.
스틸. 키리안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 중 하나였다. 그 친하던 사이에 금이 가게 했던 자유전투장에서의 일, 그 원인이 바로 스틸이었기 때문이다. 스틸범을 자유 전투장에서 만나 시작 됐으니 자신이 잘못했다 하더라도 원인이 스틸이었단 사실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상관 없어. 그런 놈이 아무리 날뛰어도 길드가 들고 일어날 일은 없을 테니까. 뭐 개념없는 놈들이 날뛰어서 사건이 커지면 모르겠지만, 어차피 그런 놈들 때문에 길드가 대규모로 움직일 정도면 그 수준이야 뻔하지. 어느 쪽이든 문제없어."
키리안은 천령의 물음에 별 거 아니라는 듯 변함없는 모습으로 답했다. 레벨 높은 놈들이 덤빈다고 해도 어차피 PK면 약간 귀찮을 뿐이고 실력을 키워서 그 배로 복수하면 될 일이고 자유 전투장이야 안가면 그만이다. 놀 거리가 자유 전투장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더욱, 보통 그런 놈들은 근성이 없어서 상대를 안해주면 제풀에 지치기 마련이다.
"뭐, 확실히 너 혼자라도 커다란 문제는 없겠지. 다만 힘들면 말해라. 얼마든지 도와줄 테니까."
천령의 말에 키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은 필요없어' 따위의 정이 팍팍 떨어지는 똥폼잡는 소리는 필요없다. 힘에 부치면 도와주겠다는 호의에 그딴 말투를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띵- 듀얼 토너먼트 8강전을 5분 후 시작하겠습니다.]
"자, 그럼 이동하지."
25분. 짧다면 엄청나게 짧지만 학교에서의 쉬는 시간 개념으로 볼때는 그럭저럭 긴 시간이다. 일단 그 시간동안 말은 놓게 된 천령이었다.
천령이 먼저 일어나자 다른 일행도 차례대로 일어났다. 첫 경기는 이번에도 키리안이다. 메자르 녀석, 큰소리 친 만큼의 실력을 보여줄지 기대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카페는 콜로세움과 아주 가까웠기에 여유롭게 경기장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경기장 가운데엔 사라졌던 디카릭이 서서 주변을 확인하고 있었고 선수들도 속속 자신의 자리를 채웠다.
디카릭은 대부분의 유저들이 돌아오자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이 됐다.
"여러분 푹 쉬셨나요?"
와아아아아-!
마이크를 들고 외치는 디카릭의 질문에 유저들은 함성으로 그 답을 대신했다. 원기 회복 완료. 이제 다시 분위기를 띄울 차례다.
"좋습니다! 그럼 다시 한 번 가보죠! 8강전의 시작은 요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화제의 유저 키리안님과 최강의 길드 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는 츠아스 길드의 마스터인 게인즈 츠아스님의 동생 메자르님의 대결입니다!"
와아아아아-!
"츠아스 길드의 콧대를 눌러주라고!"
"위시 에이전트의 주인다운 모습을 보여봐!!"
키리안은 주변에서 날아오는 열화와 같은 성원에 몸둘 바를 몰라 했다.
'아하하. 이런 반응이라니.'
관객들에 의해 형성된 괜히 헤헤 웃는 기분은 저쪽에서 검은 오오라를 풍기며 경기장 위로 올라오는 메자르에 의해 가라앉았다. 이를 빡빡 가는 모습이 꽤 독이 오른 모습이다.
'흐응, 츠아스 길드 마스터의 동생이라…… 믿는 구석이 있었네. 하지만 그걸로 날 어찌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지. 이미지 관리부터 다시 하라고. 쯧쯧.'
모두에게 미움받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거대한 길드면 뭐하나. 민심을 잃었는데. 힘이 있을 땐 그래도 어찌어찌 무마가 가능하다지만 한 번 무너지게 되면 다시는 재기가 불가능할 지경이 될 것이다.
"각오는 됐겠지?"
"글쎄. 이래저래 치이는 거 보니까 맘 약한 나로선 꾹 눌러줄 각오를 하기가 쉽지 않은데?"
"으득."
키리안의 한 마디에 이미 화약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상태가 되었다. 디카릭이 왠지 좋지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바로 경기를 시작하려 했다.
"자, 준비해 주십시오."
메자르는 이미 곁에 스테인을 둔 상태였다. 키리안은 잠시 고민했다.
'유하를 하자니 아무래도 이동력이 너무 부족하고 아리에를 부르자니 역시 반칙 같단 말이야. 적여는 덩치 때문에 불리할 거 같은데…….'
이것저것 드는 생각에 이대로 가다간 결정을 못할 것 같았다. 주변의 시선도 부담스럽고 말이다.
'뭐 좋아! 덩치가 있지만 스피드도 있으니까, 그래 이녀석이다!'
"정했어요. 씰, 아리에. 씰, 유하."
키리안은 곁에 있던 아리에와 유하를 역소환했다. 그리고 품속에서 화려한 붉은색의 깃털을 꺼내 들었다.
"앱솔브, 적여!"
파아아아앗-!!
화려한 붉은빛 속에서 등장하는 화염의 성수 피닉스, 적여. 키리안이 이번에 선택한 파트너는 바로 적여였다.
적여는 소환되자 키리안의 뒤쪽에서 그를 보호하는 곳에 위치했다. 시선은 언제든 메자르를 공격할 수 있는 정면이었다.
"좋아. 잘해보자고!"
{알았다.}
"자, 그럼 레벨을 통합하겠습니다."
파아아앗-!
이미 여러번 봐왔던 레벨 통합이 시행되었다. 이미 그 감각엔 어느 정도 적응된 상태. 키리안은 크림슨 템페스트의 손잡이에 손을 얹으며 전투를 준비했다.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듀얼 토너먼트 8강전 제 1 경기, 시작!"
{성스러운 불꽃!}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전음으로 공격을 지시했던 키리안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피닉스의 성스러운 불꽃이 메자르에게 날아갔다. 가벼운 견제 공격이라 하기엔 꽤 커다란 공격에 메자르와 스테인이 급히 피한다.
"기검!"
키리안이 바로 점핑으로 따라붙으며 힘차게 기검을 휘둘렀다.
"일렉트리서티 실드!"
메자르가 바로 실드를 펼쳐냈다. 일렉트리서티 실드. 닿으면 전기를 방출하는 실드. 키리안은 살짝 물러났다.
"디그!"
키리안이 물러가자 바로 메자르가 딜레이가 거의 없는 디그를 시전했다. 작은 구덩이를 파는 마법. 일견 보잘것 없다 할지 모르지만 진짜 실력자라면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마법이다.
구덩이는 바로 키리안이 밟을 바닥에 파였다. 밟을 지점을 바로 바꾼 키리안이었지만 순간의 딜레이가 있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스테인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타아앙-!
커다란 총성. 총알은 정확하게 키리안의 심장을 노리고 쏘아졌다. 휘청하는 키리안. 키리안의 뒤에 위치한 관객석이 잠시 술렁인다.
"헤에, 위험했어."
키리안은 에인션트 골드 블레스터를 저글링하며 말했다. 그는 멀쩡했다. 아니, 왼손이 조금 얼얼한 것 빼곤 문제가 없었다.
총구와 자신의 위치를 가늠한 뒤 바로 에인션트 골드 블레스터를 뽑아 심장 부위에 띄운 뒤 왼손을 펴서 그것을 밀어내듯 쳤다. 거기에 총알이 부딪친 것이다.
잡생각없이 바로 실행했기에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거기에 손바닥 전체로 막았으니 충격은 최소화. 위기를 넘긴 것이다.
"제법인데?"
진짜로 몸을 움직이게 하다니 확실히 저번과는 다르다. 생각없이 움직였다간 좋은 꼴은 볼 수 없을 것 같다.
메자르는 대답없이 바로 다음 주문을 시도했다.
"그리스!"
주변을 미끄럽게 만들어버리는 메자르. 키리안은 피식 웃으며 점핑으로 몸을 띄웠다. 바로 스테인의 총구가 키리안에게 향한다.
"적여!"
파아앗-!
눈부신 속도로 피닉스가 키리안을 등에 태우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와 함께 쏘아진 성스러운 불꽃에 메자르와 스테인이 하던 일을 중단하고 몸을 날려야 했다.
"무차별 난사다!"
콰과과과과광-!
경기장 위를 난타하는 불꽃에 메자르와 스테인이 허둥댄다. 이대로 경기장 밖으로 밀어내면 도리가 없을 것이다.
"리플렉터!"
파아앙-!
하지만 메자르는 호락호락 당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공격을 반사하는 마법을 사용해 성스러운 불꽃을 피닉스에게 돌려주었다.
키리안은 바로 고삐를 옆으로 끌어 그 공격을 피했다. 그 사이 행해지는 메자르의 마법과 스테인의 공격.
"프레스(Press)!"
육중한 압력이 키리안과 피닉스를 내리누른다. 그 사이 스테인이 피닉스를 노리고 멀티샷의 스킬을 사용했다.
"쉽게 당할 것 같냐! 수호의 화인(火印)!"
화르르륵-!
허공 중에 화염이 수(守)의 한자를 그리자 그 주위로 반투명한 붉은빛의 방어막이 형성되었다. 여러발의 총알들이 그 방어막에 의해 팅팅거리는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갔다.
"고속비행!"
총알을 막아내자마자 키리안은 피닉스를 움직여 빠른 속도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다시 날아오는 마법과 총알을 제자리에서 막아주는 건 지나친 힘 낭비다.
"자, 이번엔 이리저리 다니면서 성스러운 불꽃!"
콰과과과과광-!!
다시 한 번 경기장 여기저기가 터져나갔다. 메자르와 스테인이 속수무책으로 그것을 피해다닌다. 아니, 속수무책이 아닌 무언가를 노리고 피해다니고 있었다.
'아마 내 마나가 바닥나길 기다리고 있겠지?'
경기 중엔 마나 포션의 사용이 불가능하다. 메자르는 아마 키리안의 이런 커다란 마나 소모를 요구하는 공격을 하다가 제풀에 지치는 틈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그럭저럭 두뇌 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꽤 좋은 방법이다. 다만, 그 상대가 키리안이란 점이 불행이다.
키리안은 분명 꽤 덜렁대는 성격이다. 그로 인해 낭패도 꽤 보곤 했지만 전투 때는 아니다. 그 자체를 즐기는 육체파이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 머리도 쌩쌩 돌아가는 녀석인 것이다.
'자, 그럼 끝내자고!'
"가자! 고속비행!"
키리안의 말에 따라 피닉스가 엄청난 속도로 메자르를 향해 하강했다. 한 방이다. 괜히 다가오기 전에 맞추려고 하다간 진다. 메자르도 그 상황을 읽고 있을 것이다.
"기검, 일리오스!"
콰아앙-!
일리오스를 피워올리는 키리안을 보고 메자르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아마 충분히 그것을 피하거나 막아내고 결정타를 먹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네 패배다!'
거리가 가까워졌다. 이제 승부를 볼 시간. 메자르가 외워뒀던 주문을 시전했다. 그와 함께 메자르가 뒤로 튀어나가며 총구를 키리안에게 들이민다.
"블링크!"
"네 패배다!"
콰아아아아앙-!
블링크. 시전자가 근처에 한해 지정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과 무작위로 근처의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켜주는 두 가지 형식이 있는 마법이었다. 메자르는 이것 중 하나를 택해 이동한 뒤 스테인의 저격으로 키리안을 노리려 했다. 키리안이 일리오스를 쓸 것이었다면 꽤나 유효했을 것이다.
키리안의 일리오스가 해제됐다. 그리고 그것에 가려져 있던 에인션트 골드 블레스터가 모습을 드러내며 황금빛 광휘를 터뜨렸다. 목표는 사라지는 메자르 뒤의 스테인. 금빛의 파괴신은 막 방아쇠를 당기려던 스테인을 저멀리 날려버렸다.
촤아아아악-!
찰나에 이뤄진 승부. 그 사이 땅에 닿을 듯 아슬아슬한 거리까지 내려온 피닉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메자르가 경기장의 끄트머리에 나타났다. 이번에도 당해버렸다. 그것도 확실하게. 키리안이 유도한 대로 움직여 버리고 만 것이다.
스테인은 방어조차 못하고 에인션트 골드 블레스터에 맞아 강제 역소환 되었다. 승부가 났다.
"예, 승부가 났습니다! 8강전 첫경기의 승자는 키리안님입니다!!"
와아아아아아-!!
유저들의 우렁찬 환호. 그 아래 메자르가 조용히 콜로세움을 벗어나고 있었다.
씰 콘테스트 - 듀얼 토너먼트(3)
쓰자쓰자쓰자..;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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