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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닉스는 순식간에 날개를 접다시피한 상태로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화살과도 같은 모습으로 빠른 스타트를 해낸 것이다. 순식간에 앞에 있던 몇 명을 치고 선두 그룹으로 나갔다.
창공 계열의 씰은 보통 날개를 펼치는 순간 속도가 떨어진다. 그렇다고 날개를 휘두르지 않으려니 스테미너 소모가 점점 심해질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아래로 떨어져 내리게 된다. 즉, 힘만 엄청 들고 결국 추락한단 소리였다.
피닉스도 지금 점점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있는 상태였다. 다만, 속도는 변함이 없었다. 키리안은 앞의 드리프트 구간까지의 거리를 생각하곤 피닉스에게 날개를 펼치지 말라고 귓속말로 계속 전했다.
'어차피 스테미너는 무한. 드리프트 돌면서 가속한다.'
그의 앞엔 현재 단 다섯명의 유저만이 있었다. 드리프트 구간에서 앞질러볼 생각이다.
오른쪽 허공에 떠있는 작은 메세지창, 아니 이건 작고 반투명한 모니터라고 해야할 상태표시창엔 맵과 속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현재 속도는 무려 500km/h. 짜릿하기 그지없다(물론 실제완 차원이 다르게 약한 느낌이겠지만).
드리프트 구간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처음부터 꽤 까다로운 곳이다. 일단 가장 처음 시작되는 것이 직각 드리프트 구간이며 거길 넘으면 바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드리프트 구간이 있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번개 모양에서 아랫부분이 직각 형태라고 보면 될 것이다.
'좋아. 그럼 실력 발휘를 해볼까나!'
한때 레이싱 게임에 빠져서 논 적이 있었다. 뭐, '흔한 고수' 정도의 실력이었다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드리프트 구간이 눈앞이다. 키리안이 고삐를 세게 잡았다. 아리에가 뒤에서 '제발 안전 운전!!'이라고 소리쳤지만 안 들려!
벽에 딱 붙었다. 마치 안으로 돌진하듯 드리프트!! 피닉스가 벽에 박을 듯 코스를 휙 돌아버린다. 아웃코스로 돌던 둘을 순식간에 제친다.
'좋아! 그럼 이제!'
고삐를 벽과 반대편으로 힘껏 잡아 당겼다. 벽에 박을듯 하던 것이 방향을 반대편 벽쪽으로 휙 돌렸다. 하지만 그게 한계였다. 마치 반대편 벽과 수평이 된 듯해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곧 정면에서 보이던 것이 벽 대신 쭉뻗은 직선 구간으로 바뀌었다. 바로 지금!
"적여야, 가속이다!!"
{라져!}
키리안의 외침에 피닉스가 크게 날개를 떨쳤다. 그와 함께 피닉스의 몸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단숨에 드리프트 구간을 돌파하며 가속한 것이다. 그와 함께 선두 탈환!
"좋았어!"
"아아, 그래그래 다 좋아. 그냥 빨리 가기만 해."
아리에는 완전히 박력을 잃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피닉스의 등에 누워버렸다. 어차피 떨어져도 레비테이션으로 따라오긴…… 무리군.
일단은 직선 구간이었다. 그 앞은 그 이름도 유명한 S 드리프트 5연속 구간이었다.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게 될 구간.
'응?'
이것저것 생각하며 달리던 키리안의 눈에 무언가 이상한 물체가 눈에 띠었다. 스크롤. 붉은 끈으로 가운데가 묶인 돌돌 말린 스크롤 하나가 허공을 날고 있었던 것이다. 백색 천사의 날개 두 개를 달고.
여기저기에 몇 개가 떠다니고 있었는데 키리안이 가는 진로 근처에도 한 개가 떠다니고 있었다. 잡으면 터지는 그런 폭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호기심이 동하니 별 수 없었다. 한 개만 잡아 보자!
"아리에, 저거 잡아줘!"
키리안의 외침에 아리에가 슬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저거'가 곧 스크롤임을 알 수 있었다.
"귀찮아."
아리에는 그것을 흘끔 본 후 바로 의욕없이 고개를 젓고는 다시 누우려 있다. 그때, 키리안이 그녀의 팔목을 덥석 잡은 뒤 말했다.
"내가 잡아줄 테니까 그냥 가만 있어."
날려 주겠단 소리다.
스으으으으-
실제로 난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리에는 분명히 들었다. 몸이 절로 오들오들 떨리는 느낌. 아리에는 팔을 파닥파닥 털어서 키리안의 손을 떨친 뒤 그가 건네는 잠자리채(이딴 걸 언제 주웠을까)를 받아들고 스크롤을 하나 채집했다.
"우우, 내가 왜. 중얼중얼중얼……"
그녀가 키리안의 등뒤에서 다시 중얼거렸지만 역시 안 들려어.
스크롤을 감고 있는 붉은 끈을 풀고 그것을 펼쳐보았다. 글자가 쓰여 있다.
[부스터(Buster)
레이싱 애니메이션에 자주 등장하는 아이템. 그야말로 싸나이의 열혈 본능을 자극하는 희대의 아이템이 아닐 수 없다! 시동어는 "부스터 오오오오오온!!"이다.]
"……."
키리안은 이것을 지금 불태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거 따라했다가 자신도 그 열혈의 세계에 빠지지 않을까 심히 고민되는 악마의 스크롤이었던 것이다.
"일단은 들고 있어야지."
아이템을 어디에 보관해야 하나 고민하던 키리안은 오른쪽 모니터에 비어있는 두 개의 칸을 발견했다. 스크롤의 겉모습과 딱 닮은 모습. 저기다!
그곳에 손을 가져가자 스크롤이 빛으로 변해 그곳에 흡수되듯 흘러들어갔고, 비어있던 칸 하나가 색을 지니게 되었다.
[띵- 아이템을 쓰실 땐 쓸 아이템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시동어를 외치면 됩니다. 아이템은 두 개까지 보관 가능합니다. 그 이상의 아이템은 잡은 즉시 빛으로 변해 사라집니다.]
'헤에, 그렇단 말이지?'
이런 곳에서 소모성 아이템은 잘 써줘야 한다. 무조건 아껴서도 안되고 써서도 안된다. 적재적소에서 '버닝!!'을 외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특히 부스터는 더욱!
아이템은 키리안만 얻은 것이 아니었다. 뒤따르던 무적의 전차 부대, 필살의 기자 부대도 얻었고 유려하고 날카로운 주행의 아스타나도 얻었으며 분노의 오라에 둘러싸인 메자르도 얻었다. 거기에 열혈의 드라이버 라시드는 물론이고 뒤에서 무섭게 추격해오는 유저들도 대부분이 아이템을 얻었다.
처음으로 아이템을 얻은 이때, 드디어 광란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시작은 하위 그룹의 한 유저였다.
'라이트닝 필드'
꽈르르르르르릉-!!
"꽤에에에에에엑!!"
중간 그룹의 유저들이 마른 하늘에서 날벼락을 맞았다. 밀집 대형(한 마디로 몰려서 움직이고 있었다)으로 날던 유저들에게 날아든 번개들은 그야말로 재앙. 번개를 맞은 유저들이 새카맣게 탄 상태로 비실비실 하늘을 날았다. 그 사이 많은 유저들이 앞으로 치고 나갔다.
'크하하하!'
라이트닝 필드를 사용했던 유저가 득의의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복수의 이빨이 웃음이 채 그치기도 전에 날아들었다.
'콩알탄 퍼레이드'
타타타타타타타타탕!
"으갸갸갸갸!"
"으뜨뜨뜨뜨뜨뜨!"
불꽃놀이 할 때 콩알탄을 터뜨려본 적이 있는가? 밟으면 '팍-!'하고 터지는 그것. 화려한 것도 아니지만 장난칠 땐 그만큼 좋은 게 없다. 그것이 허공에서 수십 개가 유저들의 곁에서 터져대고 있었다. 당연히 혼돈의 도가니에 빠져버리는 중간 그룹을 탈취한 하위 그룹.
'핵폭발!!'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순서가 그렇가 막 바뀌려는 차에 결정적인 대재앙이 터졌다. 한 유저가 멋도 모르고 건드린 핵폭발의 아이템. 중간 그룹과 하위 그룹의 중간 부분에 있던 유저들이 실빠진 인형처럼 허공을 날았다.
휘이이이잉- 철푸덕- 꿈틀꿈틀-
어찌어찌 기어서라도 움직이곤 있지만 이들에게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을 듯 하다(묵념).
재앙은 선두 그룹도 피해갈 수 없었다. 재앙을 가장 먼저 부른 이는 라시드였다.
"으흐흐. 키리안, 날 원망하지 마라. 토네이도!!"
휘이이이잉-
"응?"
한창 잘 달리고 있던 키리안은 갑자기 피닉스를 중심으로 도는 한줄기 연청색의 바람이 나타나자 의아함에 그것을 살폈다. 이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데 자연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바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뭐, 뭐지?"
당황해서 묻는 키리안. 바람은 친절하게 행동으로 답을 가르쳐 주었다.
쉬아아아아앙-!!
"으, 으갸아아아아…… 컥!"
"꺄아아아아아아아악!!"
바람은 순식간에 강력한 토네이도로 변해서 피닉스를 세탁기 속 빨래 돌리듯 돌리며 하늘 위로 날려버렸다. 그 공포에 아리에가 키리안을 끌어안으며(사실은 죽일 듯 목을 두 손으로 세게 붙잡으며) 소리쳤고 덕분에 한창 목청을 자랑하던 키리안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야 했다.
1등이 저멀리 하늘로 사라지자 2등으로 달리던 아스타나가 고속의 주행으로 1등을 잡았고, 그 뒤를 마치 호위하듯 흉흉하고도 강철같은 기세의 기자 부대가 따랐다. 그리고 그들의 방어를 뚫기 위해 호시탐탐 라시드가 기회를 노리며 달렸고, 분노의 칼을 갈고 있는 메자르가 저 위에서 비실비실 떨어지는 키리안을 흘끔 본 후 지나쳤다.
{후후. 날 원망하지 마라 키리안.}
라시드의 느끼한 전음이었다. 그 전음에 손에 줄 힘마저 빠져버린 아리에가 반실신 상태인(아리에 때문에!) 키리안의 등에 얼굴을 묻으며 이를 갈았다.
"주, 죽여 버릴 거야아아아아."
레이스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씰 콘테스트 - 스카이 레이스(2)
으하하..;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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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Thirty six - 씰 콘테스트(Seal contest) - 스카이 레이스(Sky rac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