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회: 웨일 -- >
그는 최강의 전설을 지닌 영웅이었다.
제아무리 강자라 하여도 그의 앞에서 꼼짝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무적이라고까지 불리던 남자, 신조차 베고 만다는 남자의 이름은 '라그나로드 웨일'.
이제 막 한국에 도착한 어둠의 기사였다.
다크나이트레전드
환상현. 나이 스물둘. 2025년 통일한국에 살고있는 젊은 청년. 그는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사지육신 멀쩡한 젊은이었다.
그러나 오늘 불행한 사고를 당했다.
불규칙적으로 발생하는 디멘션홀이 환상현의 이십미터 앞에서 아가리를 벌렸고 무시무시한 몬스터들이 거리바깥으로 뛰쳐나오며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의 육체를 난도질했다.
"자, 자이언트 맨티스!"
크기가 3미터에 달하는 사마귀가 흉흉한 눈을 빛내며 앞발을 들어올렸다가 내려치는 순간 환상현은 끔직한 고통을 느꼈다.
오른팔이 잘려나간 것이다.
"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지만 주변에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부 죽어서 모가지만 데굴데굴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으니 도와줄 수 있을리 없지않은가.
"살, 살려줘."
피를 콸콸 흘리며 어기적 어기적 기어가던 환상현의 등 위로 자이언트 맨티스의 대낫이 뚝하고 떨어졌다.
푸왁
살을 관통하는 끔찍한 파육음이 울리고 몸을 바들바들 떨던 환상현은 그대로 죽고말았다.
"모두 소각해라."
사건이 진압되기 시작한 것은 약 2분이 지났을 때였다.
디멘션홀을 담당하는 특수부대 D.SWAT이 거리에 나타났다.
몬스터의 두꺼운 갑옷을 뚫을 수 있는 특수무기를 들고 나타난 부대원들은 총을 발사하며 적들을 진압했다.
"생존자는?"
"없습니다."
"젠장할."
요즘들어 전세계의 디멘션홀 발생 빈도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현상, 디멘션 홀. 특히나 10년 전에 발생한 초창기의 거대 디멘션홀은 러시아 북부지방에 열려 엄청난 피해를 냈다.
수천만에 달하는 괴수가 검은 구멍에서 튀어나와 러시아를 파괴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각은 변동을 일으키며 새로운 구조물들을 창조했다. 그것은 소설속에서나 볼 수 있던 던전이었으며 대기중엔 마력이라는 새로운 성분도 유입됐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 하지만 인간은 적응하는 생물이었고 10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그럭저럭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괴현상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장점이라면 인간끼리의 전쟁을 종식시켰다는 점 정도였다.
공통의 적을 눈앞에둔 인류는 잠정적인 평화협정을 맺었고 전 세계가 하나가 되서 몬스터의 퇴치에 주력했다.
그중 한 가지가 바로 D.SWAT의 존재였다. 한국지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성식 대위는 담배를 꼬나물고 주변을 살폈다.
자이언트 맨티스에게 난도질당한 일반인들의 시체가 피를 흘리며 사방으로 처참하게 널부러져 있었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지만 여전히 얼굴 찌푸리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씨발놈의 몬스터들."
담뱃불을 군화로 비비며 불을 끈 대위에게 부대원이 소리쳤다.
"생존자입니다!"
"그래?"
보통 디멘션홀이 도심에 열렸을 때 생존자들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1분으로 상정한다. 이번 출동은 2분, 조금 느렸던 탓에 생존자를 찾기는 힘들거라고 생각했는데 살아있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대단한 놈이군."
오른팔이 잘리고 가슴을 맨티스의 대낫에 관통당했는데도 살아있는 청년, 환상현의 반 시체를 쳐다보는 김성식의 눈이 빛났다.
"능력자인가."
능력자란 몬스터에 맞설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지칭했다.
이를테면 초능력자 같은 것이었는데 손도 대지않고 몬스터를 밀어낸다던지 불을 일으키는 등의 여러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마다 그 능력이 천차만별에 달했고 만약 몬스터를 죽일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국가에서 후한 대접을 하며 스카웃을 하려고 들었다.
"재생계열 능력자인가?"
"이제 막 각성한 것 같습니다. 이 정도 재생능력이면 최소 3레벨급 능력자입니다. 국가에 보고되지 않은걸로 봐서는 확실합니다."
전자수첩을 만지작거리며 환상현의 정보를 파악한 그는 국가 능력자 데이터베이스에 환상현의 이름이 없는 것을 보고했다.
"일단 병원으로 데려가자고. 운도 좋은 놈이군, 이런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았으니까."
D.SWAT 소속의 치료능력자가 환상현의 잘린팔을 들고서 그를 들쳐멨다. 이곳에서는 무리겠지만 병원에 가면 강력한 의료시스템으로 팔을 고쳐줄 수 있을 터였다.
"여긴 어디지."
정신을 차린 환상현은 흐릿하게 보이는 백색 천장과 형광등을 보며 신음소리를 뱉었다. 자신의 오른쪽으로는 팔이 잘린 부분의 상처를 지속 관리하는 로봇이 열심히 상체 위를 움직이고 있었다.
순간 그는 머리가 깨질듯이 아픔을 느꼈다.
"이런 빌어먹을!"
분명 그는 방금전까지 마검신의 공격을 받고 있던 참이었다. 개같은 일이었다. 일대일이라면 능히 이길 수 있는 상대였지만 연합공격을 받아 힘이 빠진 나머지 결국 전투에서 패배하고 만 것이다.
"아 그런데 이게 뭐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환상현의 표정이 뜨악하게 변했다.
"내...내 몸이 아니야?"
환상현은 이미 맨티스의 공격을 받았을 때 죽었다. 그렇다면 지금 환상현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누구란 말인가.
그는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자, 라그나로드 웨일이었다. 신들의 전쟁에 끼어서 분전하다가 결국 패배하고 죽기직전에 간신히 차원문을 열어 도망쳤더니 이상한 놈의 몸안에 들어있는 꼴이었다.
"마, 마력도 없다니."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버린 웨일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무려 1천년을 꼬박 수련해 얻었던 모든 강함이 물거품처럼 사라졌으니 그 상실감이 이루말할 수 없었다.
"일어나셨나요?"
"음?"
"환상현씨 맞으시죠? 환상현씨께서는 오후 3시경 성남동에서 발생한 디멘션홀에 말려들어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디멘션홀? 성남동? 환상현? 한가지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한가지 알아들을만한건 간호사 복장을 하고 있는 여자가 그럭저럭 이쁘다는 것 뿐이었다.
"팔이 잘리고 가슴이 관통당하는 큰 부상을 당하셨는데 공교롭게도 레벨3의 재생능력을 각성하신 덕분에 살아남으셨구요. 레벨 3이상의 능력자분들은 전부 국가에 등록되어 임무를 완수할때마다 보조금을 드리니까요. 등록절차는 잠들어계신 사이에 이미 마쳐드렸어요. 어디 다른 곳 혹시 아프신데는 없으신가요?"
"죄송하지만 한마디도 알아들을수가 없군요."
"머리가 어지럽거나 구토증상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그런건 없는데 디멘션홀은 뭐고 능력자는 또 뭔가요."
아무래도 환상현이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판단한 간호사는 불쌍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환상현님 같은 경우가 디멘션홀 피해자분들에게서 종종 보이곤 하니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 기억나는 것부터 천천히 여쭤볼게요? 집주소는 기억나세요?"
"어느 집을 물어보시는거죠? 한 120개쯤 지어놨던것 같은데."
세계는 물론 다른 차원에까지 집을 가지고 있던 웨일은 간호사가 어느 집을 묻는 건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은 간호사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그럼 이름은요? 이름은 기억나세요?"
"웨일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어둠의 기사라고 불렀...."
"아, 예...일단 조금만 더 누워계시겠어요?"
"그러죠."
웨일이 누워있을 때 발아래로 지나간 간호사는 다른 간호사를 붙잡고 얘기를 나눴다. 각성의 탓인지 일반인보다 청력이 나아진 웨일의 귀에는 그 소리가 안들릴리 없었다.
"언니, 지금 3호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 정신이 되게 이상해졌나봐요. 자기 이름도 기억 못하는데요?"
"중증인가보네. 잘 관리해줘. 집주소랑은 잘 알고 있으니까 며칠 더 돌봐주다가 귀가조치 시키면 돼."
"네."
'내 이야기인가?'
자신이 정신병자 취급받는다는 것도 모른 웨일은 일단 우두커니 누워있었다. 그는 아주 착한 영웅이었다.
"환상현인가."
전혀 모르는 나라, 문화도 전혀 다른 세계,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말은 통했고 읽는 것에도 문제는 없었다.
웨일로서는 아주 다행스런 일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병원에서 3일을 더 지내고 나온 웨일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소지품을 돌려받아 귀가조치됐다. 지갑에 들어있는 주민등록증의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본 웨일은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육체의 주인이 환상현이라는 것을 알았다.
병원에 가만히 누워있자 몇가지 기억도 떠올릴 수 있었는데 그것은 가족에 대한 기억이었다.
사고가 일어나서 응급 후송된 병원에는 당연히 환상현 말고도 다른 환자들이 있었는데 가족이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가족과 부둥켜않고 엉엉 울기 바빴다.
하지만 환상현을 찾아오는 가족은 없었다. 가족은 커녕 친구조차 없었다.
휴대폰에 등록된 전화번호가 대학교수와 과 사무실 2개밖에 없다는 것을 처음 알아차린 병원 역시 난감했다.
그는 지독히도 커뮤니케이션이 없는 남자였다.
띠리링-
흐릿한 기억을 얼추 더듬어 집으로 돌아온 그는 디지털 도어락을 열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휑한 방이었다. 가구도 별로 없었다.
"대학생이라고 했던가."
환상현은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경영학과를 다니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이미 학교에 알려두었고 퇴원하는 날까지 학점의 불이익은 받지 않을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디멘션홀의 사고로 학점이 깎인다면 그거야말로 어처구니 없는 일일 것이다.
"이 세상은 무언가 평화롭군."
침대에 걸터앉은 웨일은 환상현의, 이제는 자신의 것이 된 전공서적을 훑으며 중얼거렸다. 몬스터가 뜬금없이 나타나긴 하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조용할 날이 없었던 지난 세계와는 다르게 이곳은 매우 평화롭게만 느껴졌다.
"이곳은 낙원인가."
창밖으로는 거대괴수와의 전투로 꽁무니에 불이붙은 전투기가 열심히 도망을 치고 있었다.
"멋진 세상에 온 모양이야."
베란다 너머의 태양을 응시하며 웨일은 중얼거렸다. 이제 막 어둠의 기사가 발걸음을 뗀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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