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 회: 일어서다 -- >
"서울 B-3 발생 1분전."
"서울 A-2 발생 1분전."
"평양 C-5 발생 1분전."
"원주 A-8 발생 1분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오퍼레이터들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핵공격에도 버틸 수 있도록 지하 깊숙히 지어진 오라클 본부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능력자들과 D.SWAT팀에게 지령을 내리느라 언제나 손이 모자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반 직원들보다는 예지능력, 오라클 타워를 유지시켜줄 능력자가 부족했다.
오라클 시스템은 미국의 MIT공대 과학 연구팀에서 처음으로 개발, 지금은 세계에 널리 보급된 조기 경보체계인데 예지능력을 가진 능력자를 센터, 핵으로 삼아 미리 디멘션홀의 발생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센터를 담당하는 능력자의 능력이 뛰어날수록 더 세심한 조기경보가 가능했다. 한국이 경보 시간을 1분전으로 잡은것도 부족한 능력을 메꾸기 위함이었다.
미국처럼 예지능력자가 풍부한 국가는 2분전, 3분전에도 얼마든지 국가 전역에 경보를 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예지능력자는 많은 능력자들 중에서도 희귀한 케이스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중계를 위한 능력자를 찾기에 허덕였다.
일단 오라클체계를 완성하려면 예지능력 능력자가 꼭 필요한데 예지능력을 가진 능력자들은 굳이 국가에 헌신하지 않아도 자신 혼자 잘 먹고 잘 살만큼의 돈을 벌 수 있는 자들이었다. 능력자가 되면 자는 시간까지도 뇌를 혹사해야 하는데 굳이 그런걸 하겠다고 지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국의 오라클 체계 완성에 핵심적인 기여를 한 레벨 7의 예지능력자. 그의 도움으로 한국은 그동안 많은 위험을 피했고 전세계 안전레벨 기준 상위권에 머무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그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올해들어 디멘션 홀의 발생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고 예지능력자가 추가로 영입되지 않는 이상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는 것은 예견된 사실이었다.
한 번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자 그 뒤로는 속수무책, 결국 센터장은 어쩔 수 없이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캡슐안에 들어가있는 박한석 능력자 연결 커트시켜."
"하지만 소장님 그렇게 하면 광역시 이외는 커버가 불가능하며 심지어 5등급 이상만 감지하는 쪽에 리소스가 전부 소모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디멘션 홀의 위험도는 1급부터 8급, 5급 이상이면 충분한 고위험도 괴수가 도시에 나타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디멘션홀에 의한 사상자는 지금까지 1~4급에서 훨씬 더 많은 수를 기록했다. 고위험군이라는 5급 이상의 출현 빈도는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1~4급 디멘션 홀은 그 빈도가 매우 잦았다. 게다가 1급에 속하는 최약의 디멘션 홀이라 한들 민간인이 감당해내기엔 힘들었다.
1급에서 튀어나오는게 고블린이라 할지라도 던전에서 마주치는 고블린하고는 질이 틀렸다. 놈들은 영리했고 무장했으며 숫자까지 더 많았다.
괜히 디멘션 홀이 지나간 자리는 모든 것이 파괴된다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니다.
"커트시키게."
소장의 말에 캡슐실 관리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알겠다고 대답하며 연결기에 손을 올렸다.
'오늘은 한국에 재앙이 닥치는 날이겠군.'
그렇게 생각한 관리자는 온 힘을 다해 붉은 손잡이의 차폐기를 내렸다.
쿠웅-
캡슐의 불이 꺼지고 링크가 해제되는 것이 모니터로 확인되었다. 박한석은 한국 정부에 지원한 능력자중 가장 뛰어난 예지능력을 가진 사나이, 그의 링크가 해제되었으니 이제 한국은 주요 거점의 대위험만을 방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신이시여."
링크 해제 5분 뒤, 동시 다발적으로 울리는 전국의 디멘션 홀 발생 목격 전화에 그는 두 눈을 감았다.
바람을 가르며 달려나가는 인부, 거대한 폭발에 환상현은 이를 악물었다.
'무사해야 한다!'
재후랑 알고 지낸지는 벌써 6개월, 어느새 친한 형동생 사이가 된 재후가 만약 몬스터의 위협을 받는다면 상현은 그것을 결코 두고볼 수 없었다.
삽시간에 슈퍼에 도착한 상현은 슈퍼부터 살폈다. 슈퍼는 멀쩡했다. 하지만 그 안에 사람은 없었다. 주인은 대피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대체 재후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가게 바깥으로 튀어나온 상현의 눈에 거대한 다리를 움직이며 사방에 불을 뿜는 거대한 '게'가 포착됐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대 꽃게, 카르키노스였다. 크기는 가로로 약 50미터, 저런 무식한 놈이 4급 괴수였던 탓에 오라클에서는 해당 지역의 위험을 간파하지 못했다.
"재후야!"
"어, 형!"
상현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재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재후는 도피는 커녕 폰을 들고 괴수의 영상을 촬영중이었다.
상현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느꼈지만 당장 심한 소리는 하지 못했다.
"당장 도망치자."
"형! 이거 이제 막 나타난 놈이야! 찍어서 방송국에 넘기면 큰 돈을...."
"신재후!"
환상현이 버럭 소리지르자 재후는 그 기세에 찔끔 놀라 입을 다물었다. 공사장에서도 사람 좋기로 소문난 상현이지만 이렇게 화가 나자 굉장히 무섭게 느껴졌다.
"아 알았어요. 안 찍을게."
"내가 너 촬영한다고 뭐라 그러는게 아냐. 위험하다고, 일단 몸을 피하자."
카르키노스라면 전에 상대했던 킹슬라임이나 메탈슬라임하고는 질적으로 다른 괴수였다. 신화시대에 이름을 올린 놈들은 특히나 강한 축에 속했는데 지금 자신의 몸만 가지고는 승산이 없었다.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신성의 사용을 자제하기로 한 상현은 오로지 육체의 수련에 매달렸는데 현재 그는 그 흔한 검 한자루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재후를 지키면서까지 거대꽃게와 싸운다는 것은 몇 번을 생각해봐도 그저 무리였다.
레벨 3의 재생 능력자, 그것은 눈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4급 괴수를 상대하기엔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능력이었다.
은둔해서 수련만 한지 일년이 지났는데 대체 왜 저깟 괴수 하나 못 잡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인 마력각성자들과 비교해도 불가능한 이야기다.
몸의 마력회로를 이용하는 마력유저들은 보통 1년 정도를 수련하면 무기에 마력을 불어넣어 파괴력을 높이는 단계에 이른다.
간혹 재능이 좋다면 마력을 무기에서 떨어트려 발출, 원거리에 있는 적을 살상할 수도 있다.
고작 검기나 날려대는 마력유저가 4급 카르키노스와 맞짱을 뜬다는 것은 자살행위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 기준에서의 이야기, 상현은 반신으로 이룩했던 지고한 경지와 지식을 그대로 기억으로 보존하고 있지 않던가?
문제는 그가 익힌 심법이 특이한 종류의 것이라는 점이었다. 신들은 본래 수명이 없다. 자신을 따르는 신앙이 세계에 남아있다면 불로불사의 삶을 누릴 수 있다.
때문에 신중에서는 들으면 깜짝 놀랄 정도로 오래 산 녀석들이 많았는데 그런탓에 대부분의 수련법도 무식할 정도로 '길었다'.
상현이 익히고 있는 수련법은 일정 경지에 도달하는데 최소 300년이 걸리는 수련법이었다. 물론 상현은 이미 그 길을 전부 건넌 상태이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150년!
상현은 자신의 몸이 예전의 성세를 되찾기 위한 발판으로 가는 시간을 최소 150년 정도로 예상하고 있었다.
이제 1년 쌓은 걸로는 어디 명함 내밀기도 곤란한 것이다.
때문에 150년 동안 위험을 넘기기 위해서는 신성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라면 신성을 함부로 사용하면 그 전에 상현의 육체가 파괴되버릴 것이란 점이지만.
'1단계 각성만 됐어도....'
상현은 아쉬움에 침을 삼켰다. 150년 수련으로 오르는 1단계는 인간에 불과한 자신의 몸을 반신과 같이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며 신성을 융화시켜 더 높은 차원으로의 길을 열어줄 터, 오늘따라 옛 몸이 그리워지는 상현이었다.
재후를 이끌어 공사현장 반대편으로 도망치는데 특이한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검정색 SUV차량 3대를 나란히 세워놓고 관전자 같은 태도로 카르키노스의 도시 파괴를 유유자적하게 구경하는 사람들. 다들 검정 양복에 가죽장갑을 낀 폼새가 딱봐도 민간인은 아닌듯 싶었다.
"형, 저 사람들 누구죠? D.SWAT은 아닌 것 같은데."
그들의 얼굴을 훑어보던 상현은 의외의 인물을 알아보고서는 눈썹을 찡그렸다.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는 기척을 느껴서일까, 상현의 시선을 받은자 역시 상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순간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대체 저놈이 여기에 어떻게?'
상현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은 분명 박현도였다.
'씨발 죽은게 아니었나?'
혹시라도 그 때 일을 나불거릴까봐 심장이 두근두근한 박현도는 금새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고서 한숨 돌렸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전부 자신의 사람들이었다. 국내 50위 안에 든다는 민간 군수업체 현성코퍼레이션, 현성가문의 아들이 바로 박현도였던 것, 이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전부 4급 카르키노스를 소탕하기 위해 모인 능력자들이었으며 전부 거금의 계약금을 받고 현성과 계약한 용병이었다.
어차피 일개 젊은 청년 하나가 지껄이는 말에 자신을 범죄자로 몰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것을 깨닫자 긴장은 커녕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는 박현도였다.
"여어- 이게 누구신가. 찌질이 환상현 아니야?"
능글맞게 웃으면서 다가오는 박현도를 보며 환상현은 말없이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
"갑자기 학교 그만 뒀다길래 죽은줄 알았지 뭐야. 이렇게 살아있는거 보니까 반갑다."
친한척 다가와 어깨를 툭툭 치는 주먹엔 상당한 힘이 실려 있었다. 일반인이었다면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릴 정도였다.
물론 상현의 표정엔 변함이 없었지만.
"그래 반갑다."
'어쭈 요놈봐라?'
상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자 박현도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감히 네깟놈이 나에게 말을 걸 깜냥이냐는 듯한 표정. 옆에서 보고 있는 재후조차 몹시 분위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거야?"
"흥. 보면 모르겠냐? 사냥이야, 사냥."
"사냥?"
현성코퍼레이션의 산하부서로 설계된 괴수 진압팀, 요즘 시대의 흐름에 맡게 설계된 부서는 사실 박현도의 놀이터였다.
집안의 재력을 이용해 온갖 영약을 퍼먹은 박현도는 레벨 6의 오라 능력자가 되어 있었다. 레벨 6이면 어느 곳을 가도 대접을 받을 만한 레벨임에는 틀림없었다.
심지어 범위 내의 아군의 능력을 증폭시켜주는 오라능력은 희귀한 능력 중 하나였다.
이 자리에 모인 인원들 전부가 최소 5레벨을 넘는 실력파 능력자들이었다.
"저 괴물을 처리하기 위해 모인 것 같은데 어째서 움직이지 않는거지?"
"멍청하기는 당연히 돈 때문 아니겠냐. 생각을 좀 해라."
디멘션 홀에서 나타난 괴수가 날뛰면 인명, 재산 피해는 더욱 증가한다. 때문에 괴물의 출현시간이 장기 지속화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처리 보상금액을 더욱 올려줬는데 박현도 일당은 그것을 악용하고 있는 셈이었다.
"다른 팀에서 채가는 것도 곤란하니까 한 10분 정도만 더 지켜볼까? 괜히 빨리 죽여봐야 돈이 조금 나올 뿐이니까."
카르키노스의 거대한 집게발이 3층 빌라를 후려치는 것을 보며 박현도는 말했다. 상현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꾹 쥐었고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할 박현도가 아니었다.
"요새 좀 힘들게 살았나보다? 굉장히 얼굴이 찌들었네? 꼴을 보아하니 노가다 다니는 것 같은데 맞아?"
상현은 아무 말도 없이 침묵했다.
"요즘 장사가 너무 잘되서 곤란하다니까."
박현도의 놀이터를 위해 특별 부서를 세운 현성코퍼레이션이지만 실제로 박현도가 지휘하는 괴수 진압부서는 투자대비 좋은 순이익을 올리고 있었다.
게다가 이런 사설 진압팀을 운영하는 기업은 현성뿐만이 아니었다. 시대가 변하고 있었다. 기업의 힘이 과거와는 달리 월등하게 올라선 상태였다.
"팀장님, 시간 됐습니다."
메신저로 보상지급액이 오른 것을 확인한 팀원이 박현도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아 그래. 그럼 슬슬 뛰어보자고."
박현도는 뒷주머니에 꾸겨넣고 있던 가죽장갑을 끼더니 상현의 앞으로 한발짝 더 다가와 고개를 살짝 숙여 눈을 마주쳤다.
"열심히 노가다해. 그리고 웬만하면 다음에는 눈에 띄지 말고, 죽여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뒷 말은 작고 소근소근하게 뱉었지만 그 말을 재후가 듣지 못할리 없었다.
"아니 당신 대체 뭐하는!"
앞으로 나서려는 재후를 상현은 왼팔을 올려 제지했다.
"가만있어. 신재후."
"씨발 선배들끼리 얘기좀 하겠다는데 어디서 엉겨. 좆같게. 후배 관리좀 잘 해라. 노가다판에도 선후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하."
팀원들과 카르키노스 사냥을 나서는 박현도를 보며 상현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지구에 온 뒤 처음으로 몹시 차가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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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지적 감사히 받겠습니다.
천공용님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