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 회: 일어서다 -- >
능력자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하지만 큰 갈래로는 일반 능력자와 특수 능력자로 구분되는데 신체를 강화하는 방식의 능력자를 일반, 그 외의 능력자를 전부 특수 능력자로 구분했다.
환상현처럼 신체의 재생능력이 뛰어난 부류는 신체능력의 강화로 판단, 일반 능력자의 범주에 속했다. 만약 남에게 치유의 주문을 걸어줄 수 있거나 염력을 써서 원거리의 적을 공격할 수 있다면 그건 특수 능력자다.
재후가 능력자로 각성한지도 일주일, 재후는 특수능력자였다.
"하압!"
기합을 넣자 재후의 손 위로 푸른 얼음 결정들이 솟아났다. 빙계열 능력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마력 측정 완료 했습니다. 2레벨 능력자로 등록 되셨습니다."
능력자 협회에 들러 마력을 체크하고 이름을 등록한 재후의 표정은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축하해."
"고마워요 형. 다 형 덕분이야."
눈물을 글썽이는 재후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상현은 일거리를 받아왔다. 처음 시작은 간단하게 1급 디멘션 홀 처리였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디멘션홀은 예고도 없이 나타나지 않는다. 특히 하급 디멘션 홀의 경우 마력 전조 현상이 뚜렷하기에 많은 민간능력자들이 사냥을 하고 수입을 얻는 주요 수단이었다. 탐지를 하려고 마음만 먹으려 들면 미리 나타날 시간과 장소를 예측할 수 있었다.
"막공 지원 오셨나요?"
막공은 정규 레이드팀이 아닌 임시 레이드팀을 부르는 다른 말로 게임에서 파생된 언어였다. 정규레이드팀은 정식으로 협회와 정부에 등록된 처리부대를 말하는데 괴수 처리시 부득이한 재산피해, 인명피해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으며 세금감면의 혜택도 있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국가적 재해가 발생했을때 강제로 일을 도와야 한다는 점이었지만 한국은 거대괴수 청정지대라 할만했기에 크게 문제되는 조항은 아니었다.
여러가지 이점 때문에 많은 능력자들이 정규레이드팀을 만들기 원하지만 생성조건은 제법 까다로웠다. 상위능력자의 첫계단이라 불리는 레벨 7이상의 능력자가 최소 1인 이상, 총인원수 10인 이상, 그리고 가입비 명목으로 10억이 필요했다.
레벨 높은 능력자들에게는 10억은 껌값이겠지만 대다수의 능력자들에게 10억은 큰 돈이었다.
그런 이유로 당연히 상현 일행도 막공 출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예."
"제가 산 정보에 따르면 이곳에서 1시간 뒤에 1급 디멘션 홀이 나타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1급에서 튀어나오는 놈들이라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특히 초보자들은 목숨을 잃을수도 있죠."
긴장감을 조성하며 남자는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저런 식으로 팀원들의 긴장감을 높여 미연에 벌어질 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상현은 전혀 긴장한 기색이 없었지만 옆에 서있던 재후는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긴장돼?"
"조금요."
그는 분명 자신의 생각보다 많이 떨고 있었다.
"좀 적어 보이지 않나요?"
재후가 상현의 귀에 대고 소근거렸다. 디멘션홀이 나타날 위치에 모여있는 인원은 총 10명, 1급 평균적정인원이 15명임을 감안하면 조금 적은 수치였다.
재후의 고민을 다른 초보 레이드 인원들도 했는지 손을 들고 주최자에게 질문했다.
"인원이 조금 부족한것 아닌가요?"
"1급 디멘션 홀에서 튀어나온 괴수들을 깔끔하게 정리해도 마석의 순도는 그리 높지 않습니다. 인원이 많아질수록 분배해야할 금액도 많기 때문에 최대한 인원을 줄이는게 여러분에게도 이득입니다. 물론, 사고만 나지 않는다면요."
그렇게 말한 주최자는 왼쪽 눈을 찡긋 감으며 윙크했다.
"게다가 제 옆에 있는 이 친구는 벌써 호흡을 맞춘지 6개월이나 되는 베테랑 친구입니다. 4레벨의 근력강화 능력자죠."
"오."
남자의 설명에 주변에서 믿음직스럽다는 호응이 흘러나왔다. 팔뚝이 상현의 허벅지만한 남자는 엄청나게 거대한 양날도끼를 들쳐메고 몬스터들을 살육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숨막히는 한시간이 흐르고 열 명의 인원이 긴장하며 몸을 일으켰을때 10미터 상공에서 디멘션 홀이 열렸다.
주최자는 디멘션홀이 하늘에서 열리는 것을 보고 눈을 부릅뜨며 식은땀을 흘렸다.
"저건 우리께 아니잖아!"
1급 디멘션 홀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의 종류는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그중 공중을 날아다니는 몬스터는 없었다.
디멘션홀이 공중에서 열렸다는 소리는 날아다니던지 공중을 떠다니는 놈이 저 구멍을 통해 나타난다는 소리였다.
10미터쯤 찢어진 차원의 틈에서 나온것은 거대한 익룡, 커다란 부리에 번뜩이는 눈을 가진 와이번이었다.
"와이번이다-!!"
주최자는 골목으로 몸을 피하며 겁에 질린듯 소리쳤다.
"캬오!"
먹이를 먹고 싶었는지 능력자 무리로 달려든 와이번의 발톱이 지면을 스치자 단단했던 아스팔트 도로가 부산물을 날리며 파헤쳐졌다.
최소 3급 이상에 해당하는 와이번의 출현에 모두들 겁에 질린듯 몸을 숨기기 바빴다. 한 능력자 커플은 주택가 창문을 뚫고 집으로 들어갔는데 그것을 봤던 모양인지 거대한 와이번이 주택위에 눌러앉아 순식간에 집이 무너지고 말았다.
모르긴 몰라도 근력강화 능력자가 아니면 저 안에서 죽었으리라.
특수능력자의 경우 공격력이나 응용할 부분이 많은 반면 육체의 강도는 일반인과 비교해서 조금 세질 뿐이었다.
주택을 무너트린 와이번은 입맛을 다시며 다른 먹잇감을 찾기 시작했다.
'젠장 정보가 잘못된걸까?'
100만원을 주고 사온 1급 디멘션홀 오픈정보가 잘못됐을 확률도 없진 않았다. 주최자가 재수없게 걸렸다며 안색을 굳히던 그 때, 바로 옆에서 크기 2미터의 차원틈이 열렸다.
그야말로 순식간, 틈바구니에서 튀어나온 것은 고블린 떼였다.
"안돼!"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막공 인원들 중 한 명이 고블린들의 단검과 손도끼에 난도질을 당했다. 열 명중 순식간에 2명이 사망, 공격대는 완전히 패닉상태에 빠졌다.
초보가 주제도 모르고 설쳐서 레이드가 무너진다는 것보다도 더 재수없다는 차원틈 겹침 현상이었다. 워낙 디멘션홀의 발생빈도가 높아지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었다.
와이번 정도의 괴수라면 D.SWAT이 출동할만도 하건만 오라클 시스템이 불량인 상태라 출동이 늦는 모양이었다.
어느새 골든타임인 1분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아이스볼!"
방패를 들고 서있는 상현의 뒤에 딱붙어서서 재후는 방패너머의 고블린들을 향해 얼음 폭탄을 열심히 던졌다.
"캬항!"
아이스볼에 적중한 고블린들은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신체가 터져나갔다. 2레벨 능력자 치고 발군의 위력이었다.
영리한 고블린들이 분노하며 재후를 공격하고 있지만 그 전에 환상현이란 벽을 넘어서야 했다.
그들이 위치한 곳은 주택가 좁은 골목길이었는데 사람이 둘 이상 지나가기 힘들정도로 좁은 곳이었다. 그런곳에 눈구멍만 달린 거대한 타워실드가 길을 막고 있으니 고블린들로서는 재간이 없었다.
텅텅텅텅-!
고블린들이 던지는 도끼와 돌멩이 세례에 방패가 들썩들썩 흔들렸지만 절대로 밀리는 법은 없었다.
'형 조금만 참아요!'
말하는 기운까지 안겨가며 재후가 힘을내자 저 멀리서 진압부대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형! D.SWAT이 출동했나봐요."
"안 돼."
재후의 말에 상현이 대답했다. 대체 뭐가 안된다는 것일까? 재후가 의아해했다.
"뭐가 안 돼요?"
"특수부대가 와이번을 처리하면서 고블린들을 쓸어버리면 우린 무보수야."
아직 홀에서 튀어나온 고블린들은 절반 이상 남아있는 상태, 다른 대원들은 와이번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옴짝달싹도 못하는 상태였다.
"재후야 나가자!"
"혀, 형?"
재후가 당황하는 사이 상현은 커다란 타워실드를 왼손에 들고 등에 메고 있던 백색검을 뽑아들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번 레이드 참가비용으로 지불한 10만원, 새로 구입한 타워실드비용 180만원, 방어력이 약한 재후를 위해 신축성 좋은 보호의류를 입히는데 250만원, 총 440만원이 돈이 들었다.
손가락만 빨고 돌아갈수는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상현의 뒤를 따라 달리며 재후는 열심히 아이스볼을 날렸다.
걱정은 기우였다. 앞에서 자신을 이끄는 상현의 검놀림은 거의 예술의 경지였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군더더기가 없었고 그의 검이 지나갈때마다 고블린들이 두부썰리듯 뎅겅 분리되며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파바바바-
미친듯이 고블린들을 썰어내는 상현의 뒤에서 재후가 할 일이라고는 간간히 날아드는 화살들을 얼음방패를 펼쳐 막아내는 것 뿐이었다. 그마저도 어지간한건 상현이 스스로 해결했다. 그의 다른쪽 손엔 방패가 들려있었으니 말이다.
"키엑!"
마지막 남은 고블린, 수적으로 불리해졌다고 판단되면 도망치는것이 놈들의 습성이다. 놈의 등뒤에 날카로운 얼음화살을 꽂아준 재후는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벽을 짚었다.
"왜그래 재후야."
"마력을 너무 많이썼나봐요. 속이 안좋아요."
초보 마력유저가 힘을 과하게 쓰면 구토증상이나 두통등의 가벼운 부작용이 유발된다. 심한 경우엔 온몸이 뒤틀리며 회로가 절단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렇게 되면 매우 고치기가 힘들었다.
현대 의학으로는 불가능했고 상급던전에서만 나온다는 특수한 포션이나 상위 치료 능력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좀 쉬고 있어."
재후를 부축해 그를 바닥에 앉힌 상현은 고개를 돌려 와이번이 있던 자리를 응시했다.
대낮에 콩볶는 듯한 화기소리와 함께 와이번의 비명이 울렸다. 급수가 약한 괴수에게는 총기의 위력도 상당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능력자들이 총기소유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던전에서 발굴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총기의 소유는 불가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제 능력자들은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집단의 일원이라 할 수 있었다. 능력자 협회가 엄청난 영향력을 갖기 시작하면서다.
정부는 이들의 힘이 더 커지는것을 경계했고 총기 소유 금지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물론 원래부터 총기소지가 가능한 미국같은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달랐지만.
오히려 개인 총기소유가 가능했기 때문에 1급 디멘션 홀 같은 경우는 주민들이 직접 처리하고 돈을 챙기는 좋은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젠장 몇 분 안계십니까."
피칠갑을 한 주최자가 골목길에서 기어나왔다. 그도 나름대로 고블린들과 혈전을 벌인 모양이었다.
"네 명 안보여요."
한 여성이 훌쩍이며 말했다. 겨우 1급 디멘션 홀 사냥에 네 명이나 죽은 것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디멘션 홀 발생 주기가 빈번해지면서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 할 겁니다. 다들 조심하시는게 좋아요. 사망하신 분들에겐 미안하지만 미리 동의한대로 보수는 남은 여섯명 분으로 나누겠습니다. 그럼 각자 수거한 마석을 주시겠습니까?"
고블린은 하급 몬스터, 마석을 좀처럼 떨어트리지 않지만 숫자가 워낙 많았기에 바구니 하나를 채울 정도는 되었다.
"삐빅- 12K 하급 마석이 감지되었습니다."
마석들을 하나하나 기계를 이용해 감정한 주최자는 마석의 시가를 계산해서 표로 보여주었다.
"630만원 정도 나왔네요. 100만원씩 분배하겠습니다. 이의없으시죠?"
정확히 6등분을 하면 105만원이지만 30만원을 주최자가 가지고 간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돈계산이 맞지 않는 것 같아 잠깐 움찔한 재후가 있을 뿐이었다.
"그럼 다들 편안한 밤 보내세요."
주최자는 다친 친구를 부축하며 쓸쓸히 거리에서 사라졌다. 본래 아무 사고도 없이, 기쁜 분배의 시간을 맞이했어야 할 터인데 상처가 남은 하루였다.
백만원을 손에 쥔 재후는 한참동안이나 멍하게 서있다가 상현을 불렀다.
"형."
"응?"
"마음 약해지면 안되요? 우리 이제 막 시작했잖아요. 100만원이면 공사판 열흘 꼬박나간 거보다 더 번거라구요. 하루만에!"
"아 물론이지. 그만둘 생각은 없어."
상현이 아무말도 없이 서 있었던건 레이드의 출혈, 사고를 보고 마음이 약해진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보다 안전하게,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될 수 있는가를 고민했을 뿐이다.
'이왕 일을 시작했으니 시스템을 더 자세하게 알아봐야겠어.'
이왕 시작한거 공부를 해야했다. 목숨이 달린 일인데 공부를 소홀히 할 수는 없는법, 그리고 환상현은 원래부터 학구파 체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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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나서 보니까 한가지 특징을 발견했네요.
코난마냥 가는곳마다 사람이 죽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