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7 회: 주목 -- >
신체복제 능력.
마력을 이용해 가상의 팔, 혹은 다리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신들 중에는 실제로 팔이 여럿 달린 자들도 있는지라 상현은 더 멋진 능력을 기대했으나 결국은 마력으로 이뤄진 덩어리를 다루는 개념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위력만큼은 결코 얕볼만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 거대 육각봉, 김용덕의 마력손은 그것을 붙잡아 부드럽게 회전시켰다.
'아무리 재생 능력자라고 해도 제대로 맞으면 숨쉬기조차 힘들지!'
김용덕은 상현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먼저 그의 하체를 집중 공략했다. 위협을 느끼고 기권할 기회를 주는 한편, 다리 정도는 맞아도 쉽게 복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공방을 주고 받는 순간 김용덕은 생각을 수정해야만 했다. 눈앞의 작은 6레벨 전사의 방어는 의외로 단단했다.
빠각-
심상치 않은 소리, 방패 너머의 팔을 부러트릴 정도의 충격에도 상대의 눈빛이 죽지 않았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결국 손을 조금 독하게 쓰기로 마음먹은 김용덕은 거대한 발을 만들어 자신의 몸을 높이 들어올렸다.
순식간에 신장 6미터의 거인이 된 김용덕은 육각봉을 높이 치켜들고 상현이 서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난타를 시작했다. 그의 마력팔은 무려 20개, 두 손당 하나씩 들린 열 개의 육각봉이 바람을 가르며 지면을 연타했다.
쿠구구구궁!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육각봉의 향연을 보며 상현 역시 생각을 고쳤다. 아무리 맷집을 기르러 왔다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었던 것이다.
방금 전 방패로 교환했던 상대의 근력은 사이클롭스와 엇비슷했다. 게다가 무기가 열 개에 달했으니 위력이 수 배라 할 수 있는 상황, 능력키우러 왔다가 골병이 나는 것은 사양인지라 상현은 적당히 회피하며 김용덕의 다리 하나를 잘랐다.
네 개의 다리 중 하나가 잘리자 김용덕을 체크하던 스카우터들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안경을 고쳐쓴 그들은 점수를 수정하며 보완사항들을 체크했다.
-김용덕, 방어력이 낮음. 변수를 만들기에 용이한 능력.
-환상현, 탱커지만 딜러로서의 가능성 존재. 6레벨 치고는 준수함.
대련에 불이 붙은 것은 한순간이었다. 다리가 잘려서 스카우터에게 밉보였다 생각한 김용덕은 손과 팔을 가리지 않고 상현에게 마구잡이 공격을 퍼부었다.
방패를 넘어서서 뼛속을 울리는 충격, 상현은 속에서 울컥하니 올라오는 핏덩이를 다시 삼키며 다리를 움직였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서는 버티기 힘들었다. 누가 봐도 수세에 몰린 상황, 상현의 주치의가 봤으면 기겁할만한 장면이었다.
기껏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주의를 줬더니 다진고기 신세를 자청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상현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의 몸이 현재 부하가 걸린 이유는 오직 신성때문, 결코 능력으로 인한 무리가 아니었다.
재생 능력을 향상시키면 더 빨리 치유되리라.
그렇게 생각한 상현은 방패에 힘껏 마력을 주입하고 김용덕의 공격에 맞섰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능력자들과 스카우터들이 점점 더 전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현재 훈련장에서 대련중인 팀은 셋, 그 중에서 상현의 대련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수십개의 팔로 찍어누르는 괴력의 능력자와 방패 하나로 고속이동을 하며 철저하게 방어하는 능력자, 다들 쓸만한 인재였다.
'6레벨 청년이 더 낫군.'
'6레벨 쪽이 디펜스가 너무 좋은데.'
'팀 없으면 우리팀에 오라고 얘기해볼까?'
훈련장의 분위기가 기울기 시작했다. 김용덕은 무기 열 개를 가지고 공격을 퍼부었지만 단 한 개의 정타도 맞추지 못했다. 그에 비해 환상현은 방패 하나로 엄청난 속도를 보이며 상대의 무기를 전부 쳐내거나 흘렸다.
누가 보더라도 상현의 압승이었다.
"이익!"
악에 받친 김용덕은 전신의 마력을 몽땅 끌어모아 무기에 불어넣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련, 자신의 실력을 겨루기 위함이지 상대를 죽이기 위함은 아니었다. 하지만 김용덕은 그 간단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가공할 거력을 투입한 것이다.
쿠앙-!
훈련장의 모든 이들의 시선을 집중시킬 정도의 폭음, 상현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공중으로 날아 벽에 강하게 부딪치고 나서야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들것!"
심판은 상현의 상태가 위중할 것이라 판단, 대기하던 응급요원들을 다급히 불렀다.
그러나 의외로 멀쩡하게 상현이 일어나자 그들은 깜짝 놀랐다.
"괜찮으십니까?"
"예...허리가 좀 아픈거 말고는 멀쩡하네요."
허리를 툭툭 두드리며 일어난 상현이 말했다.
"그럼 저 장외패 당한건가요?"
"예, 규정상 장외...패 되겠습니다."
집중에서 대결을 관람하던 심판은 아쉽게 됐다며 상현을 위로했지만 상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김용덕에게 간단히 인사하고 그를 지나쳐 다시 접수대로 향했다.
'이 사람이 왜 또 왔지?'
접수처의 직원들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웃으며 상현을 맞이했다.
"또 오셨네요."
보통 대기업의 스카우터가 온 날은 능력자들이 몸을 사리는 편이다. 괜히 실력이 모자랄 때 안좋은 인상을 심어줄까 걱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행여 대련에서 지는 경우엔 부끄러움을 감춘채 조용히 훈련장 밖으로 사라진다.
그녀들은 상현의 몸상태를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척 하는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련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보기드문 충돌이었다.
스카우터들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다음 상현의 입에서 나온 말이 그녀들의 표정을 바꿔놓았다.
"대련, 또 신청해도 되죠?"
"네?"
"또 신청하면 안되나요?"
뭐가 문제냐는 눈빛으로 자신들을 빤히 바라보는 상현의 눈빛에 그녀들은 차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언니, 언니."
"응?"
한 소녀가 다른 여성의 소매를 잡아끌며 쾌활한 어조로 말했다.
"A동에 대단한 사람이 나타났데요. 우리도 보러 가요."
"A동은 대기업 스카우터들이 참석하고 있다면서...지혜야, 우리는 여기서 인력을 구해야 돼."
"벌써 계약서 보낼 인원들 대부분 체크했잖아요. 가서 보면 안돼요?"
소녀가 꼭 보고싶다는 투로 애원하자 여성은 알겠다며 체크 중인 서류를 정리했다.
그녀는 기업의 스카우터였다. 그녀는 본래 대기업에서도 인정할만한 실력의 능력자였다. 충분히 입단이 가능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친구들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하기 위해 대기업 입단을 포기했고 지금의 자리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녀가 열심히 뛴 덕분에 팀도 전년도에 비해 월등한 성과를 내고 있었다.
소녀에게 이끌리듯 도착한 A동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우와 사람 되게 많네. 죄송합니다. 길 좀 비켜주세요오."
요리조리 인파 사이를 헤치고 지나가며 앞쪽에 도착한 그녀들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 화제의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사람인가봐요."
많은 흉터가 할퀴고 지나간 방패를 든 남자, 그리고 거대한 불을 쏘아내는 원소계열 능력자. 두 사람의 싸움이 이 많은 시선을 붙잡아두고 있었다.
"저 사람 6레벨이에요."
소녀는 여성의 귀에 대고 소근거렸다. 전광판에 표시된 이름과 레벨이 그의 신상을 간략하게 알려줬다.
'환상현? 처음 듣는 이름인걸.'
슈우웅-
직경 2미터가 넘는 불줄기가 지면을 휩쓸자 순식간에 일대가 후끈 달아올랐다. 보기만 해도 뜨거운 열기 속에서 방패를 들고 환상현이 저돌적으로 뛰쳐 나왔다.
"좀비네, 좀비."
"저게 재생능력자야 좀비 능력자야."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은 꽤나 오래전부터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무대위의 두 사람에 대해 열심히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그들이 방패 전사에 대해 좀비라고 부르는 이유가 궁금했던 소녀는 남자들에게 다가가 질문했다.
"저 방금 도착해서 그러는데요. 저기 저 6레벨 능력자가 왜 대단하다는 건가요?"
"벌써 다른데서도 구경오나보네. 저 사람 대단한 사람이야. 벌써 11연패거든."
"11연패요...?"
그렇다는 것은 벌써 11번을 싸웠다는 얘기인데 남자는 아직 팔팔해 보였다. 물론 11번을 싸워도 지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문제는 상대가 전부 7레벨 이상의 능력자라는 점이었다.
"김상수라고 알아? 7레벨 유망주라고 불리는."
"네. 속도가 엄청 빨라서 신속의 김상수라고 불린다는 그사람이요?"
"저 사람 김상수랑도 붙었는데 여전히 멀쩡한 편이야. 말이 11연패지 지금 7레벨 중에 저 인간이랑 싸운 11명이랑 연속으로 붙어서 멀쩡하게 걸어나갈 사람 없을걸?"
그들의 말에 여성 역시 조금은 놀랐다. 스테미너가 능력자 중 탑클래스라는 소리였다. 동시에 아쉽다는 생각이 마구 솟구쳤다.
'대기업에 입단하고 싶었으니까 A동으로 찾아왔겠지.'
저런 훌륭한 탱커를 팀원으로 받고 싶은건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다. 6레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잠재가능성이 중요한 것이다.
설령 지금보다 더 흉한꼴이었다고 해도 11번 연속으로 대련을 펼칠 정도면 그 근성을 높이살 터, 그녀는 건녀편 대기업 스카우터들의 안색을 살폈다.
이미 그들의 눈은 맹렬하게 움직이며 남자에 대한 평가를 글로 기록중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몸을 돌려 접수처를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아리아 컴퍼니 소속 스카우터 이수연이라고 합니다."
"어머, 안녕하세요?"
8레벨 염력 능력자 이수연.
안내원들은 그녀를 보고 반갑다며 인사했다. 아리아 컴퍼니 소속 스카우터 보다는 국내 최단시간 8레벨 능력자로 더 유명한 여성, 올해의 신인상 수상자로 예정되어 있다는 소문이 쫙 깔렸을 정도로 그녀는 업계 유명인이었다.
"뭘 도와드릴까요?"
"저기 싸우고 계신 환상현씨가 상대한 능력자분들 명단, 잠깐만 확인할 수 있을까요?"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닌지라 직원들은 금방 11명의 이름을 체크해서 그녀에게 건넸다.
'김용덕, 이성렬, 박영송, 유정훈, 김상태....'
스카우터들이라면 한 번쯤 눈여겨봤을 만한 유망주들도 몇 있는 명단이었다. 6레벨이 7레벨을 상대로 11연전, 이건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특급 신인이 아무 예고도 없이 수면 위로 불쑥 튀어오른 것이다.
'되든 안되든 말이라도 붙여 봐야겠는걸.'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뒤 편에서 거대한 폭발과 함께 화염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천장을 덮으며 관람석 쪽으로 뿜어졌다. 다행히 관람석의 바로 앞에는 훈련장을 사각으로 둘러싼 배리어가 존재했기에 피해는 전무했다.
"와아!"
"대박이네!"
다들 크게 수근 거리는 것이 또 한 번 예상을 뒤집는 결과가 나온 것 같았다. 수연이 안내원들에게 받은 서류를 정리해서 다시 건네주는 사이 화제의 주인공이 불에 그슬린 채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설마 또?'
직원들과 주변 관람객들의 시선이 모두 집중된 가운데 너덜너덜한 방패를 들고 있는 상현이 접수처 앞에 우뚝 섰다.
'과연 12연패를 넘어서서 13번 째 대련에 도전할 것인가.'
모두가 상현의 입술을 집중한 바로 그 때, 전혀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어?"
상현의 시선이 향한 곳은 직원들이 아닌 그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이었다.
"이수연 씨?"
상현의 말을 들은 이수연은 적잖이 당황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이제 상현에게서 분리되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관심을 받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지만 그녀는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이 익숙하지 않았다. 이렇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자리에 있으면 저도 모르게 긴장을 할 정도였다.
"아, 안녕하세요."
자신을 TV나 인터넷을 통해 봤겠거니 생각한 이수연은 가볍게 상현에게 인사했다.
"아 잠시만요. 펜 좀 빌리겠습니다."
접수처에 놓여있던 볼펜을 집은 상현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백지수표 한장을 꺼내 숫자 1과 함께 동그라미를 그려나갔다.
"잘 썼습니다."
볼펜을 내려둔 상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수연에게 구겨진 수표를 건넸다.
"이자 쳐서 갚습니다."
수표에는 천만원을 나타내는 숫자가 제법 반듯하게 적혀있었다.
============================ 작품 후기 ============================
열 배로 돌려주는 남자. 환상현.
주치의가 무리하지 마라고 했음에도 제 멋대로 움직였으니 그를 혼내줄 누군가가 필요하겠군요?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