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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레전드-41화 (41/123)

< -- 41 회: 알바리아 거미둥지 -- >

어린 소년 웨일이 두꺼운 황금표지의 책을 넘기자 그곳에는 던전에 관한 이야기들이 쓰여져 있었다.

「천신들이 마신들과 전쟁을 치르고 난 뒤 붙잡은 마신들의 신성을 억누르기 위해 지하 깊은 곳에 감옥을 만들어 아무도 닿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이것이 던전의 시초다.」

「마신의 흉포함을 봉인하기 위해 그들의 몸을 수 갈래로 찢어 봉인석으로 누르니 던전이 지켜지는 동안에는 감히 그들이 다시 지상으로 기어나올 수 없었더라.」

훗날 마신들에게 잡힌 천신들 역시 던전에 파묻히게 되는 수모를 겪는다.

이렇듯 던전은 불사에 가까운 신들을 봉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감옥의 연결체다.

"우어어어아아아앙!"

밑도 끝도 없이 떨어지자 정석영이 괴상한 소리를 질렀고 소리가 사방으로 왕왕 울렸다.

"재후야. 속도 줄여!"

상현이 침착하게 명령하자 재후는 일행들이 모두 밟고 설 수 있는 커다란 얼음 방패를 만들더니 그 크기를 더욱 키웠다. 이윽고 방패가 통로 양편에 맞닿을 정도로 폭이 넓어지자 큰 충격과 함께 낙하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엄청난 굉음이 던전을 덮쳤다. 던전에 살고 있는 모든 거미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 새카맣게 달려올 정도의 큰소리, 재후를 돕기 위해 힐러들이 그의 몸에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6레벨에 오른 힐러들은 이제 다친 상처 뿐만 아니라 마력 순환을 돕도록 활력주입까지 할 수 있었다.

이것은 대형 기술을 쓰는 딜러진들의 피로도를 줄여주고 마력 소모를 원할하게 하는 아주 효과적인 지원이었다.

쿠구구구구-

퍼서석.

얼마나 깊게 추락한 걸까, 캄캄해서 떨어져 내린 통로의 위를 확인할 순 없었지만 엄청난 높이를 내려온 것은 분명했다.

혹시라도 얼음이 깨질까 싶어 일행들은 재후의 눈치만 살폈다.

"예. 완전히 멈췄어요. 이제 움직이셔도 되요."

재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굳어있던 일행들이 허리를 토닥이며 일어섰다.

"재후 아니었으면 그냥 죽을 뻔 했네."

"고맙다."

다들 재후의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하는 바로 그 때, 현재 위치를 추정하던 정석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모두 조용히 하시죠."

심상치 않은 그의 목소리에 모두들 숨을 죽이고 그의 입술을 주시했다.

"현재 몇 층으로 나옵니까."

정석영의 손에 든 위치탐지기를 본 백종현이 물었다.

"45층입니다."

던전 보스방은 바로 2층 아래라는 소리였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서 불길함을 읽은 상현은 재후에게 명령했다.

"재후야.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발판만한 크기로 지붕 만들어서 수직 통로 막아버려."

상현의 명령에 군말없이 재후는 마력을 모아 자신들이 떨어진 통로의 바로 위를 막았다. 그렇게 투명한 얼음지붕이 설치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투둑 거리는 소리가 대량으로 울렸다.

소리가 나는 곳은 방금 전에 설치 된 지붕 위에서였다. 작은 거미, 큰 거미 종류를 가리지 않고 거미들이 지붕위로 스멀스멀 몰려들기 시작했다.

"뛰자."

거미 위에 거미들이 밟고 올라가 무게가 누적되기 시작했고 얼음이 쩌적거리는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괴기스러운 광경에 일행들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들이 떨어진 26층부터 45층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수의 거미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폭약 더 없습니까?"

백종현이 다급하게 묻자 정석영은 고개를 저었다. 설치형 폭탄 같은 아이템은 그도 준비를 하지 않은 터였다. 누가 알았겠는가. 던전이 무너져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으리라.

"일단 뒤로 물러섭시다."

그러나 뒤로 물러서는 순간 크기가 4~5미터에 달하는 거미들이 붉은 눈을 빛내며 통로를 막아섰다. 수천, 어쩌면 수만에 이를지도 모르는 거미들이 일행을 포위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아무리 일행의 실력이 향상됐다고 해도 상위 던전의 20층 어치 몬스터에게 협공을 당한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한없이 0에 가까웠다.

거미들의 독발린 다리가 달그락 거리며 일행을 향해 달려들기 바로 직전, 상현은 원형으로 방어진을 유지하고 있는 일행을 전부 재웠다.

신성이 퍼져나가며 그들의 정신을 제압했고 육체의 힘을 빼게 만들었다. 그렇게 모든 인원이 쓰러지자 그의 몸에서 전력으로 신성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신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나라.』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환상현의 몸에서는 금빛 후광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의 잔잔한 말에 거미들은 벼락이라도 맞은듯 몸을 부들부들 떨며 간격을 벌렸다. 가장 앞에서 신성을 맞은 거미들은 상현을 본 것만으로 죽어버렸다. 상현이 일행을 잠재운 이유였다.

그러나 거미들은 완전히 물러서지 않았다. 애초에 이곳은 그들의 집이었고 달리 물러설 곳도 없었다.

일행들의 몸을 꽁꽁 묶은 상현은 그들을 끌어당기며 길을 텄다. 열두 명에 달하는 인원을 끌고가는 것보다 신성력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더 힘들었다.

이 신성력을 꺼트리는 순간 몸을 사리고 있는 거미들이 달려들 것을 알기에 상현은 이를 악물었다.

이제 대원들의 목숨은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쿨럭."

일행들의 몸이 완전히 선을 넘어섰을 때 상현의 몸을 밝히던 환한 빛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코피를 주르륵 흘리고 있던 상현의 몸은 털썩 하고 무릎을 꿇더니 그대로 축축한 바닥 위로 기울어졌다.

'아....'

눈앞이 가물가물 거렸다. 이건 심각했다. 크라켄과 싸웠을 때보다 훨씬 상태가 좋지 않았다. 환상현이라는 육체 자체가 부서질 정도의 신성을 사용했기에 그는 완전히 죽어가고 있었다.

까마득한, 그 끝을 알 수 없는 절벽 위에 선 기분이었다. 한줄기 바람이 등을 밀기만 해도 앞으로 떠밀려 저 어둠에 삼켜지리라.

상현이 일행을 끌고 온 장소는 눅눅한 공기가 흐르는 대 습지였다. 주변으로는 이름 모를 보라색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있었으며 하늘 역시 보랏빛으로 꼭 독구름을 연상시켰다.

어느 이름 모를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하다가 귀찮은 나머지 보라색 물감으로만 치덕치덕 칠한 것 같은 공간이었다.

그들은 방금 전에 상현의 희생으로 47층 보스방, 완벽히 다른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다. 다행히 거미들은 보스방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만약 바깥의 거미들이 이곳까지 들어올 수 있었더라면 지금쯤 독에 전신이 녹아 고기 덩어리만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임무를 완수했다는 생각에 상현은 그나마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깊은 잠에 빠지기 전, 상현은 어렸을 때 읽었던 황금의 책을 떠올렸다.

바깥에 한 번도 나가본 적 없는 그를 위해 여신이 직접 선물한 고급스러운 책, 만물사전이라 불리는 황금의 책은 많은 지식을 상현에게 선물했다.

숨넘어가기 직전인 상현이 떠올린 페이지는 던전에 관한 내용이 적힌 부분이었다.

「천신들이 마신들과 전쟁을 치르고 난 뒤 붙잡은 마신들의 신성을 억누르기 위해 지하 깊은 곳에 감옥을 만들어 아무도 닿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이것이 던전의 시초다.」

'그렇다면 이곳의 던전들은 누가 만들었을....'

거기까지 떠올린 상현은 더 이상 생각을 잇지 못하고 잠들었다.

사사사삭-

풀을 헤치는 가벼운 발걸음, 깊은 잠에 든 채 숨만 쉬고 있는 미쏠로지 팀의 머리 위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인간들입니다."

따각따각 거리며 그림자는 거미 언어로 대화를 나눴다. 기절한 그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은 킬롭, 킬롭은 상현과 종현, 일행들의 주변을 돌며 그들을 관찰했다.

"죽여버릴까요?"

킬롭은 두 다리를 비비며 공손하게 물었다. 놈은 이곳 알바리아 거미둥지의 대표 보스다. 그런 킬롭이 굽신거리며 공손하게 의도를 묻고 있었다.

"강한 신성이 느껴진다 했더니 반신인 모양이구나. 혹시나 도망친 신의 아이일지도 모르니 그분에게 알려드리면 좋아하시겠구나."

그렇게 말한 존재는 천천히 상현의 목덜미를 잡아 붙들어올렸다. 상현의 뒷목을 잡은 것은 손이 아닌 칠흑의 발톱이었다.

킬롭의 숭배를 받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과 흡사한 체격에 팔과 다리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지만 인간에게는 없을 제 3의 눈이 이마에 박혀 있었고 등 뒤로는 거대한 발톱이 달린 다리가 여덟 개나 달려 있었다.

상현을 붙잡은 놈은 앙칼지게 웃었다.

'오래 살다보니 이렇게 쉽게 복이 굴러들어오는 날도 있구나.'

모든 거미들을 다스리는 자, 모든 거미의 시초, 신들을 증오하며 저주하는 자인 그림자의 이름은 아라크네였다.

크라켄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고위 신성체인 그녀는 상현의 심장을 꿰뚫어버리기 직전 그의 고개를 들어올렸다.

여기까지 굴러들어온 멍청한 먹잇감의 얼굴을 확인할 겸 해서였다.

"으음?"

코피를 흘리며 그저 숨만 간당간당 붙어있는 상현을 쳐다보던 아라크네의 눈이 가늘어졌다.

인간과는 다른 심미안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현을 훑어 그녀의 뇌에 감상을 전달했다.

신이 신을 알아보는 것처럼 비록 신이 아니라지만 격이 높은 신성체 역시 신을 알아볼 수 있다. 자신의 발에 붙잡혀 축 쳐져 있는 자는 인간의 몸을 하고 있지만 분명한 신이었다.

'신이지만 신의 육체를 타고나지 않았으니 반신이라 해야하는가?'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육체가 인간인지 아닌지가 아니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상현의 육체 속에 있는 밝은 신성,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환하게 빛나고 있었을 그의 영혼이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처음 느끼는 생소한 감정에 아라크네는 심장이 옥죄는 것을 느꼈다.

순간 그녀의 다리가 풀리자 킬롭이 재빨리 다가와 그녀를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괘, 괜찮느니라."

킬롭의 부축을 받은 아라크네는 심히 당황스러웠다. 심장을 도려내고 신성만을 봉인해 자신의 상관에게 바치려던 생각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그를 계속 쳐다보고 싶다는 생각만이 남았다.

'이렇게 아름다움도 세상에 존재할 수 있구나.'

아라크네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다시 상현을 붙들었다. 하지만 좀 전과는 다르게 여러 개의 다리가 부드럽게 그를 떠받치고 있었다.

"킬롭, 저들을 묶어 내 방 옆에 두거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킬롭이 앞다리 두개를 탁탁 두드리자 거대한 왕거미들이 튀어나와 일행들을 질긴 거미줄로 돌돌말아 고치로 만들었다.

약 천 년 전.

밤의 여신 아이라발디아와 삼류 용사 라그나로드 베일 사이에서 한 명의 아들이 태어났다.

반신이지만 한없이 신에 가깝게 태어난 아이, 다른 신들의 축복도 없이 홀로 아이를 낳은 여신은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처음엔 그것이 기쁨의 눈물인줄 알았던 베일은 여신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알아차리고선 당황해서 물었다.

"어찌하여 이 기쁜 날에 그리 슬피 우는거요."

여신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나 울지도 않고 버둥거리는 이 아이가 세상에 파멸을 가져다 주는 모습을 예견한 것이다.

"장차 이 아이는 모든 여신들의 마음을 빼앗아 재앙을 불러일으킬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세상의 평화를 지켜야할 성신으로서 이 아이를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 마땅하나 차마 내가 낳은 아이를 죽일 수 없으니 어찌하면 좋습니까."

베일은 기가 막혔다.

여신들의 마음을 빼앗으면 그걸로 끝일 것이지, 그것이 거대한 불화를 일으켜 세상이 반으로 나뉘고 싸우다 멸망한다는 말에 울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으면 그만이오! 평생 우리 셋이서만 같이 행복하게 삽시다."

삼류에 머무르긴 했어도 그 역시 세상을 구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용사, 혹여나 그가 아이를 죽이자고 할까봐 가슴졸였던 여신은 아이와 남편을 끌어안고 그제서야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 때 부터 그는 세상에 없는 신이 되었다.

분명히 존재하나 운명에 거스르기 위해 존재를 지워버린 신, 그것이 라그나로드 웨일, 아라크네의 등에 업혀 신전으로 끌려가는 환상현의 운명이었다.

============================ 작품 후기 ============================

히든보스이긴 히든보스인데....

이번 편은 작품 전체에서 아마도 가장 큰 떡밥이 될 겁니다.

환상현이 천년동안 아무도 못 만나고 산 이유와 던전의 존재 이유등 많은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잘 공략하다가 왜 뜬금포 이야기로 튀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전부 필요한 내용이 적절한 타이밍에 개시가 되었습니다.

"아 작가님 대체 여캐를 얼마나 안겨주시려고 모든 여신 매혹을 주십니까."

라는 댓글이 달릴 것 같아 사족을 붙이자면 저건 그런 좋은 능력이 아닙니다. 만약 여신이 상현을 숨겨서 기르지 않고 다른 신들에게 소개시켰다면 라그나로크 이전에 여신전쟁으로 세상이 파멸할 정도의 개쓰레기 패시브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p.s 12시에 올리려고 했는데 하루 4편씩 올린게 아깝기도 하고...3편씩 올려도 아쉬워 하는 나란 인간...슬픈 인간...고로 12시에 못올려드리니 푹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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