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7 회: 충돌 -- >
상현이 뛰어들자 사자는 맥을 추지 못했고 KD 인원들의 협공에 의해 금방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커다란 황금 사자의 시체를 눈앞에 둔 KD 공격대는 상현에게 고맙다는 말은 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물론 상현도 고맙다는 소리를 듣자고 뛰쳐 나온 것은 아니지만 상황이 묘했다.
상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여전히 멍하게 정신 팔고있는 힐러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습니까?"
"예,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상현 덕분에 목숨을 건진 힐러 김정훈만이 유일하게 상현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그리고 잠시 뒤 상현과 눈을 마주친 그가 유심히 얼굴을 쳐다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어...혹시 성함이 환상현씨 되십니까?"
"어? 어떻게 아셨죠?"
상현이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김정훈의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다.
"어서 자리를 피하셔야...."
끝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할 때 KD의 잔존 대원들이 귀를 쫑긋거리며 없던 관심을 드러냈다.
"아, 안녕하세요? 이거 인사가 늦었네요."
아예 인사를 할 생각도 없어 보였던 그들이 일단 인사를 건네자 상현은 떨떠름하게 인사를 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방금 이야기를 들었는데 성함이 환상현씨라구요?"
"그런데요?"
이거 잘됐다는 듯 KD 2군 공격대장 김형우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는 대원 한 명을 가리켜 손짓했고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저희 대원을 구해주셨는데 말이죠. 네메안 라이온에 대한 사례를 드리고 싶은데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별로 안 그러셔도 됩니다."
돈 때문에 끼어든 것도 아니었고 방금 전 인사를 나눈 힐러가 자리를 피하라고 했던 소리도 마음에 걸렸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상현이 은근슬쩍 자리를 뜨려 하자 김형우는 어허! 그냥 가시면 어떡합니까 라며 상현의 앞을 막았다.
다른 대원들 역시 은근슬쩍 주변 방위를 점했는데 딱 봐도 자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상현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이러십니까?"
"왜 이러냐니요. 당연히 환상현씨가 도와주신 부분에 대해 사례를 하려고 그러는거지요. 곧 지급액을 평가해주실 분이 오실 겁니다."
그러나 상대의 목적이 사례가 아니라는 것을 상현은 어렴풋이 눈치챘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감정, 콕 찝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호의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상현이 그의 말을 무시하고 가려 하자 급기야는 검을 뽑아 상현의 어깨를 툭툭 찌르며 사람 말이 말같지 않냐는 식으로 협박도 서슴치 않았다.
이미 도시는 사람들이 모두 대피해 완벽한 유령의 도시였다. 이곳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알 수 없으리라. 상현은 문득 박현도가 자신을 차량으로 치고 뺑소니 했던 것이 떠올랐다.
기업을 등에 업은 능력자들, 그들은 현대의 무법자나 다름없었다.
"검 치우시지요."
"아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리라니까요?"
"기다릴 생각 없어."
그렇게 말한 상현은 불의의 기습을 하며 앞을 막고 있던 김형우의 무릎을 발로찼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선공을 가한 것이다.
"으아악!"
무릎이 기괴한 각도로 꺾이며 공격대장이 주저 앉자 KD 대원들은 욕을 뱉으며 무기를 빼들었다.
"씨발놈이!"
좋은 일 하려다가 코 꿴 상현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공격해 들어오는 인간들의 팔을 잘랐다. 붉은 장검에 인간의 피가 공중을 향해 무섭게 튀어올랐다. 그래도 단면을 매끄럽게 잘라 나중에 붙이기 편하라고 자비를 베푸는 것을 잊지 않았다.
상현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공격대는 뒤로 물러서서 원거리 공격을 시작했다. 상대는 지금 방어구 하나 없이 맨 몸으로 떨어진 상태, 다른 동료도 없이 혼자 이곳에 온 것으로 보였다.
고열의 화염구가 자신의 옆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피부가 화끈거렸지만 직격을 하지 않는 이상 금새 아물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던 상현은 신성을 끌어올려 KD공격대 전체를 잠재워버렸다.
단 한 명, 이 광경을 놀랍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는 김정훈을 빼고 말이다.
상현은 김정훈에게 팔이 잘린 사람들의 치료를 부탁했고 그는 군말없이 공격대를 치료했다.
"이유나 좀 묻죠. 제가 왜 공격당한 겁니까?"
"처, 처음에는 저들도 당신을 무시하려고 했습니다. 괜히 외인에게 5급 괴수 사냥 보상금을 나눠주기 싫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곧바로 태도를 바꿔 친한 척 말을 걸었다.
"당신이...환상현이기 때문입니다. KD가 엘즈랑 친한건 아시죠? 엘즈가 인맥을 동원해 당신의 뒤를 쫓고 있습니다."
상현에게 물을 먹고도 그의 정보를 좀처럼 얻지 못한 엘즈는 인맥을 총동원, 환상현을 발견하는 즉시 자신들에게 알려달라고 청탁을 넣었다.
정보를 제공하는 곳에는 큰 사례를 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기업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현대판 무법자들, 그중에서도 가장 무섭다는 대기업 1군이 상현을 완전히 찍은 것이다.
"아까 통화는 분명히 엘즈에 연락을 넣은걸껍니다. 곧 당신을 붙잡기 위해 사람을 보내오겠죠. 아니면 죽이거나."
"함부로 사람을 죽인다구요?"
환상현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김정훈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들은 능력자니까요."
심지어 상현은 자신이 엘즈가 자신을 미워하는 이유도 몰랐다.
"제가 듣기로는 상급던전 경매에서 충돌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본래 엘즈 차례였는데 환상현씨 팀에게 물을 먹었다더군요. 본보기로 혼쭐을 내주려고 했는데 워낙 보이질 않으니까 열이 바싹 올랐겠죠."
환상현이 지금까지 뛴 상급던전 경매라고 해봐야 블랙세이펄 한 개 뿐이었다. 그는 그제서야 평균가를 훨씬 상회하며 액수를 올린 기업이 엘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겨우 그런 일로 원한을 갖는다니 상현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 죄송하지만 저도 좀 재워주시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오늘 팀원들에게 배신당했다고 볼 수 있는 김정훈이지만 그는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은 없었다. 만약 오늘 위험에 노출된 것이 자신이 아닌 다른 팀원이었더라도 똑같이 행동했을 거란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기업팀의 눈밖에 나서 쫓겨나게 되면 더 이상 이바닥에 발을 붙이기 힘들었다.
"엘즈나 KD에서 왜 혼자만 잠이 들지 않았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거든요."
상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재워줬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사람마다 가진바 생각과 가치관 모두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깨달은 상현은 발걸음을 돌렸다. 그 때 몸을 돌린 상현의 시야에 눈깔을 뒤집고 죽어 있는 커다란 사자가 보였다.
'좋아.'
그냥 가기는 괘씸하다고 생각한 상현은 거미 다리를 동원, 순식간에 사자의 몸통을 해체했다.
뒤늦게 도착한 엘즈의 1군 대장 엄지웅은 눈앞의 사태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통화가 이루어진지 겨우 30분이었다. 전용 고속 헬기까지 동원해 달려왔더니 환상현이란 놈은 코빼기도 안보였고 속살을 드러내고 죽은 사자와 기절한 KD인원들만이 덩그러니 누워 있었다.
"정신 차려봐."
자초지종을 들어야만 했다. KD 2군에는 8레벨 능력자 김형우를 포함해 7레벨 능력자가 14명이나 포진해 있었다. 설마 팀대 팀으로 싸워서 압도 당한 것일까. 그러나 남아있는 전투의 흔적은 적이 단 한 명이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으윽."
엘즈측에 의해 정신을 차린 김형우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엄청난 두통이 머리를 흔들었다.
"이봐."
김형우는 자신앞에 서있는 남자, 엘즈 1군 공격대장 엄지웅의 얼굴을 보고서는 정신이 번쩍 들어 자세를 고쳤다.
"오셨습니까."
같은 8레벨 능력자, 그러나 신분은 하늘 땅 차이였다. 엄지웅의 실력이 김형우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고 해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대우가 달랐다.
"환상현 그 새끼 어디갔어. 붙잡아 두라고 했잖아."
엄지웅의 말에 김형우는 당황하며 주변을 살폈지만 환상현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 것이 한 개 더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절하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사자의 배가 깔끔하게 갈라져 있었다. 그 안에 들어있어야 할 마석, 그것은 이미 상현의 소소한 용돈으로 사라진 뒤였다.
'이 사람도 아쉽네.'
'이 사람도....'
쉽게 자리를 구할 수 있는 3~4급 레이드를 뛰면서 상현은 어딘가에 있을 옥석을 찾아내기 위해 발품을 팔았지만 쓸만한 인재는 보이지 않았다.
간혹 근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지만 백종현은 꼭 최고의 재능을 가진 사람을 데려와주길 원했다. 키워서 쓸만한 사람은 자신이 데려올테니 상현에게는 최고의 재능을 가진 사람을 데려와 달라 부탁한 것이다.
상현이 최고 등급의 재능을 가진 능력자이니 동류를 잘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최고 재능의 사람을 데리고 가려면 어느 정도여야 되지?'
중요한 것을 간과했다는 것을 깨달은 상현은 레이드 보상금을 받으며 생각했다.
만약 자신 정도의 재능을 가진 능력자를 찾으려고 한다면 한국을 다 돌아다녀도 헛수고할 확률이 높았다.
'그럼 적당히 종현 선배 정도로 타협할까.'
1년만에 7레벨을 달성한 백종현, 천재소리까지 불렸던 그가 들었으면 발끈할만한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나랑 재후가 지금 얼마나 활동한 거지?'
카르키노스 사건 이후 재후와 이 세계에 뛰어든 것이 4월 무렵, 초여름이었던 그 때부터 현재 9월 말, 계산해보니 약 5개월이었다.
'이것 밖에 안됐나?'
신재후는 5개월 만에 6레벨에 도달했고 자신은 무려 7레벨에 도달한 셈, 종현은 상현과 처음 만날 당시 어느 정도 경험을 쌓은 사람인 줄 알고 있었으며 다른 미쏠로지 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약 5개월만에 7레벨을 찍었다는 사실을 알면 대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다른 대원들이 영약을 먹을 때 상현은 신체의 부작용을 염려해 영약을 입에 대지도 않았었다.
'어라, 재후의 능력이 종현 선배보다 잠재력이 높다는 이야기가 되나?'
물론 종현과 달리 재후는 정부에서 지급한 영약까지 복용했으며 1년이 되기까지 남은 기간동안 7레벨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달성해야 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재능이 출중하다는 점은 틀림없었다.
그동안 연거푸 반쪽짜리 성공을 거둬서 그렇지 알고보면 미쏠로지도 재능만 놓고 봤을때 상당한 드림팀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첫날 완벽한 허탕을 친 상현은 좀 더 기준을 낮게 잡아야 되는지를 진심으로 고민하여 인터넷을 뒤졌다.
하루 종일 지상레이드를 다녔으니 이번엔 던전 막공에 참여해볼 생각이었다.
마우스를 드래그하며 쓸만한 중급던전 파티가 있나 검색하며 상현은 느긋하게 녹차를 즐겼다.
상급던전은 대기업 팀이 꽉 잡고 있다고 했고 재능있는 사람이 상급던전에서 특정 세력에 가담하지 않고 막공을 뛸 수는 없었다.
한국은 능력자 세계의 판이 너무 좁았다. 너무 좁기 때문에 어제와 같은 막장짓이 벌어지는 것이다.
결국 대기업 독점 체제에 의해 재능있는 사람이 뛸 수 있는 막공 던전은 중급던전이 최대였다.
딸칵-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상현은 경매대금을 알리며 인원을 모으고 있는 중급던전 주최자에게 메시지를 넣었다.
나락계곡이라는 중급던전에서는 제법 유명한 불렙던전이었다.
[안녕하세요. 환상현이라고 합니다. 7레벨 재생능력자구요. 장비 A급 이상 풀셋에 근딜, 원딜, 탱커 전부 다 됩니다.]
있는 사실 그대로 메세지를 보냈다. 하지만 답장은 없었다. 상현의 예상 밖의 일이었다. 이렇게 무시를 당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어? 왜지?'
던전에서 포지션이라봐야 근접 딜러, 원거리 딜러, 탱커, 힐러의 네 가지 포지션이 전부다.
그 중 세가지를 담당할 수 있으며 장비도 빵빵하다는데 답장이 안오는 것이다.
혹시나 쪽지를 확인하지 못했을까봐 상현은 다시 한 번 주최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경매대금을 지불할 돈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꼭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약 10분 뒤, 이번엔 답장이 왔다. 그러나 모니터에 적힌 글귀를 읽는 순간 환상현은 땀을 흘려야만 했다.
[구라치지 말고 꺼지세요. 허세가 그냥 개 쩌네.]
그는 몰랐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을 뿐이지만 자신이 적은 스펙은 중급 던전에서 한낱 사기꾼 스펙으로밖에 치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한 상현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키보드가 불을 내기 시작하며 거미 다리까지 이용한 매서운 타이핑이 바람을 갈랐다.
============================ 작품 후기 ============================
상도덕도 없는 현대판 귀족의 횡포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군요.
그나저나 고스펙 실업자...
7레벨에 A급 풀셋이면 기업 정공에서 놀아도 뺨 때릴 스펙입니다. A급 장비 하나가 100억 단위를 넘어가니 주최자의 반응이 과장된 건 아닙니다.
제가 글을 쓰다보면 전체 코멘트를 가끔 확인하는데 자주 보이는 질문이 2개 있습니다.
하나는 말도 안된다는 핫도그 가격, 두 번째는 주인공 레벨 설정입니다.
보통 유원지나 여행을 가서 바가지를 씌워서 파는 음식 사드신 경험 있으실 겁니다.
물론 천만원짜리 바가지를 쓰신분은 없겠지만 능력자들이 상급던전에서 버는 수익이 워낙 거대하다보니 한달에 한 번 정도 트라이하는 상급던전에서 그 정도는 가끔 사먹을 수 있는 가격이다 싶어 책정한게 천만원짜리 핫도그였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 가격에 대한 댓글이 많더군요. 하하...
당연히 상급던전에 음식 싸들고 가도 됩니다. 근데 부자들이 돈 좀 아낀다고 도시락 싸들고 가면 이상하잖아요. 그냥 안사먹던지 배고프면 사먹으면 그만인것을. 이건 중요한 떡밥도 아니니 그냥 재미로 생각해주세요!
두 번째는 레벨인데요.
축복을 받은 이수연도 1년만에 8레벨을 찍는데 대체 주인공 능력이 왜이렇게 구린가에 대한 댓글이 종종 있었습니다. 이번편에 적어드렸습니다!
5개월만에 7레벨! 한국 최고의 천재라 불렸던 백종현이 1년 동안 7레벨을 달성한 걸 생각해보시면 가공할 속도입니다. 현재 한국 9레벨 3인방은 전부 디멘션홀 등장 초기부터 능력자로 활동한 자들로 이 바닥에선 노고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수연에게 부여한 축복은 상당히 공들여서 부여한 것으로 함부로 남발이 불가능합니다. 대원들에게 그냥 다 걸고 쭉쭉 키워서 군단 만들면 안되냐는 댓글도 보여서 알려드립니다.
추천 코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