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2 회: 충돌 -- >
헬기의 로터 소리가 들리자 상현은 기다리고 있던 인간들이 오고있음을 깨달았다. 검을 뽑아든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선두에 있던 헬기를 격추시키는 것이었다.
전차가 포를 쏘는 듯한 굉음이 검끝에서 터지며 800미터 밖에서 저공비행 중이던 수송헬기를 덮쳤다. 뜻밖의 기습에 놀란 삼상 공격대는 부랴부랴 헬기 바깥으로 뛰어내렸지만 부상을 피할 수는 없었다.
고도 100미터 이상, 그나마 방어계통의 능력을 가진 능력자들은 경미한 부상만을 입었지만 힐러들은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즉사할 수밖에 없는 높이였다.
살아남을 능력이 되는 능력자들이 다른 대원들을 붙잡으며 피해를 최소화시켰지만 추락 과정에서 2명의 대원이 치명상을 입었다.
그들의 표정에 당혹감과 굴욕이 어렸다. 우는 괴수도 뚝 그치게 만든다는 삼상공대가 언제 이런 취급을 받아봤겠는가. 이를 갈며 딜러진들이 몸을 추스리던 바로 그 때 저편에서 검을 뽑아들고 달려드는 이가 있었다.
"놈이다!"
공격대장 이혁준이 소리치자 그들은 미리 정해둔 대로 진형을 짜며 적을 맞을 준비를 했다. 방패와 장창을 들고 전면에 나서는 탱커 부대, 그리고 그 뒤에서 마법사들이 대마법을 위한 주문 영창에 들어갔다.
상대의 반응이 재빠른 것을 확인한 상현은 건물 벽을 타고 오르며 순식간에 빌라건물의 지붕 위로 올라섰다. 상현의 머리 위로 아직 멈추지 못한 다른 공격팀들의 헬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들도 방금 전 눈앞에서 삼상의 헬기가 터진 것을 확인한 참이다. 로프를 내리기 위해 서서히 속력을 줄이는 순간 4대의 헬기를 향해 상현이 검기를 뿌렸다.
금빛 섬광이 날아들자 그들은 삼상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헬기 밖으로 뛰어내려야 했다.
콰콰쾅!
붕붕붕 꼬리를 흔들며 이리저리 회전하던 헬기들은 주택가 위로 추락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가장 먼저 공격을 당한 것은 삼상이지만 되려 다른 팀들의 피해가 더 컸다. 능력자의 레벨이 낮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7레벨 탱커와 8레벨 탱커의 방어 능력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적들을 모두 추락시킨 상현의 머리 위로 삼상의 원거리 마법이 쏟아졌다. 불의 비를 내리듯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 불꽃 산탄이 상현이 서 있던 옥상을 휩쓸며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공격은 신경을 한껏 곤두세우고 전투모드로 돌입한 상현에겐 너무나 느렸다. 거대 괴수들, 어딜 쏴도 맞을 정도로 커다란 녀석들에겐 매우 효과적이며 파괴적인 공격이겠지만 상현에게는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화염 마법은 상현의 옷깃을 스치지도 못했다. 순식간에 건물 아래로 내려와 대지를 박찬 상현이 돌진해오자 탱커들은 함성을 질렀다.
어디 한 번 부딪쳐 보라는 듯이 말이다.
"실드!"
"파워업 스트렝스!"
"리쥬베이션 힐!"
뒤에 서있던 마법사들이 전방의 탱커진에게 강력한 보호마법을 부여했다. 그 후 마법사들은 손을 멈추지 않고 좀 전의 실수에서 경험을 얻어 탄속이 빠르고 크기가 작은 소형 마법으로 주력을 전환시켰다.
큰 데미지를 줄 수 있더라도 느린 마법은 상대게 통하지 않으니 차근차근 데미지를 누적시키는 속공 마법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다.
투두두두-
기관총이 불뿜는 것과 같은 무수한 마법화살들이 탱커의 틈바구니 사이로 비집고 나와 달려드는 상현의 정면을 향해 쏟아졌다.
영리한 자라면 정면 대결을 피할 것이고 계략에 뛰어난 자라면 이들의 처리를 뒤로 미뤄둔 후 다른 곳에 떨어진 약팀을 먼저 처리할 것이다. 그러나 상현은 코뿔소 같은 기세로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발에 담긴 위력이 얼마나 강했으면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땅에 크레이터가 생길 정도였다. 그 무시무시한 기세에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탱커진이 침을 꿀꺽 삼키는 순간 상현의 뒤로 거대한 백색의 날개가 솟았다.
천사의 날개처럼 보이는 순백의 날개, 그것은 아주 거대했고, 또한 빨랐다.
백색의 날개가 구부러지며 힘찬 날갯짓을 하는 순간 상현의 몸이 잔상을 뒤로 남기며 그대로 탱커진을 들이받았다.
인간의 몸으로는 절대 낼 수 없는 파괴력, 부서진 헬기에서 떨어져 나온 다른 기업팀들은 입을 벌리고 그 광경을 바라봤다. 소형 전술핵이라도 터진듯 거대한 공기의 충격파가 1차로 주변을 때렸고 2차 발생한 빛의 에너지가 탱커진을 그대로 '부숴버렸다'.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다 깨진 갑옷과 함께 실끊긴 인형마냥 사방으로 날아가 쓰러지는 탱커들을 보며 공대장 이혁준은 아래턱을 덜덜 떨었다.
방금 공격에 나가떨어진 탱커 셋은 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최고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능력자들이다. 단 한 명을 내놔도 어느 기업팀에 들어가든 메인 탱커를 맡을 수 있는 자가 세 명, 게다가 마법의 효과로 방어력과 근력증가 효과를 받은 상태가 아닌가.
말그대로 철벽이나 다름없는 절대 방어선, 그것이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뚫려버렸다.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 사망한 듯 보였다. 힐러들도 너무 놀라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이익!"
그나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이 이혁준이었다. 이래선 안된다고 생각한 그가 검에 힘을 주는 순간 복부를 지지는 것과 같은 통증이 일었다.
"크헉!"
검을 제대로 잡기도 전에 상현의 붉은 장검이 그의 배를 관통했다.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검에 마력을 불어 넣자 거대한 화염이 타오르며 이혁준의 몸을 거대한 불길로 밀어넣었다.
한 번 움직인 검은 멈출 줄을 몰랐다. 연함팀 최대 전력이라는 삼상 1군의 B팀이 무너지는데 걸린 시간은 엘즈보다도 빨랐다. 14명의 대원의 숨이 끊어지는데 걸린 시간이 고작 3분이었다.
애초에 탱커가 무너졌고 딜러들은 순식간에 베였으며 거리를 좁힌 상태에서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 마법사였으니 몰살은 당연했다.
"괴, 괴물...."
남은 정규팀 SJ, KD, 한산, 현도의 대원들은 삼상의 충격적인 파괴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멍청히 서있을 뿐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놀란 것은 SJ측 전력으로 파견나온 2군 대장 이영수였다.
그는 과거 만티코어 레이드에서 상현을 처음 만났고 그에게 사례금으로 5억 6천만원을 지급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상현을 기업쪽으로 입단시키려고 수를 쓴 것이었는데 그 뒤 상현에게서 연락을 받지 못했기에 보기 좋게 물을 먹었던 이영수였다.
그 뒤로 완전히 잊고 지냈었는데 근래에 환상현에 대한 이름이 쉴 새 없이 거론되더니 드디어 오늘, 기업 왕족의 심기를 거스르는 미꾸라지를 잡기 위해 기업 연합팀이 움직였다.
당시 이영수는 환상현에 대해 S급 재능을 가진 능력자라고 판별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보니 그것이 큰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누군가의 잣대로, 적어도 인간이 세운 기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였다. 한국 최강이라는 9레벨 능력자들이 와도 저렇게 압도적으로 1군 정규팀을 박살내진 못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어느 기업에도 속하지 않은 저 청년이 한국 능력자의 정점에 올라설 자격을 갖췄다는 것을 의미했다.
"공격...합시다."
어렵사리 말문을 연 것은 한산 공격대장 김원군이었다. 국내 유일의 8레벨 오라스킬을 가진 자로 적절한 범위를 유지하면 공격대의 전투능력을 크게 올릴 수 있었다.
"저런 괴물을 상대로 공격하잔 말입니까?"
"놈은 지쳐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명령은 저 자를 처리하는 것 아닙니까? 삼상이랑 엘즈 1군을 처리했다면 놈이 인간인 이상 멀쩡할 리가 없습니다."
김원군의 말에는 다른 이들도 수긍하는 바가 있었다. 바로 그 때 타이밍 좋게 상현이 한쪽 무릎을 꿇고 피가래를 토하며 연신 콜록거리자 핼쑥하던 대원들의 안색에 화색이 돌았다.
'그럼 그렇지!'
연합팀은 김원군의 말과 상현의 기침소리에 자극을 받아 당장이라 뛰어나갈 것처럼 기세를 올렸다.
"어떻게 할까요."
의중을 묻는 대원의 말에 이영수는 크게 고민했다. 5억 넘는 돈을 받고도 연락 한 번 없던 환상현에게 조금 감정이 남아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다른 이들의 뒤를 따르기엔 뭔가 찜찜했다.
"갑시다! 우리 대기업의 저력을 보여줍시다!"
김원군이 선동하자 다른 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사기를 북돋았다.
자신을 노리는 공격대가 함성을 지르는 소리를 들은 상현의 안색은 매우 좋지 않았다. 전신의 마력이 용암처럼 들끓었다.
처음부터 상현은 자신을 치러 올 자들을 상대할 방법으로 단기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무리 거미의 힘으로 육체가 강화됐다고 한들 인간의 몸을 기반으로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삼상의 공격대를 처참하게, 그리고 압도적으로 박살을 낸 것이다. 먼저 압도적인 무력으로 제일 껄끄러운 녀석들을 처리하면 나머지는 천천히 상대할 수 있었을 터, 그러나 막판에 피가 섞인 기침을 하면서 계획은 완전히 어그러지고 말았다.
땅바닥으로 떨어졌던 적의 사기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이다.
'50명 조금 넘게 남았나.'
개별 팀의 실력으로만 본다면 방금 쓰러트린 삼상이 제일 강했고 그 다음이 엘즈였다. 둘을 합친다면 지금 남아있는 인원 50과 비슷할 정도.
그러나 이미 상현에겐 나머지 인원을 처리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큰 소리 쳐놓고도 결국 이 꼴이었다. 멀리서 정석영 일행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가세한다 한들 전황을 뒤집을 순 없었다.
애초에 D.SWAT 인원이 현재 눈앞의 정규팀을 상대할 실력이 있었다면 정부는 미쏠로지 계획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쓸만한 능력자는 전부 대기업의 밑으로 들어갔기에 환상현에게 그리 매달린 것이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고 일어선 환상현은 동귀어진할 기세로 힘을 끌어모았다. 적어도 여기 있는 50의 인원은 전부 길동무로 삼을 참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자신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터, 환상현의 몸으로 쌓은 인연들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것은 그들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본 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두고두고 놈들은 미쏠로지 일원들을 괴롭힐 것이다.
"와라."
상처입은 호랑이가 으르렁 거리듯 상현의 검에 잔존 마력이 부어졌다. 검이 울음을 토하는 것을 신호로 한산을 비롯한 공격대가 뛰어들었다.
가장 먼저 상현과 충돌한 것은 KD 공격대장 김형우였다. 힘들게 잡은 네메안 라이온의 마석을 빼앗겨 분노한 그의 검이 상현과 부딪치자 금속과 금속이 마찰하며 불똥이 튀었다.
"이 도둑놈아!"
상현이 번개같은 몸놀림으로 검을 받아치며 나머지 손에 들린 검으로 김형우의 심장을 노렸지만 다른 탱커들이 달려나와 김형우를 보호했다. 삼상과 싸우기 전이었다면 탱커들의 방패를 가르고 김형우를 조각냈을 테지만 지금은 체력이 너무 많이 빠진 상태였다.
퍼퍼펑!
상현의 몸을 전격과 불꽃의 탄환이 두들기고 지나갔다.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친 상현은 이를 악물며 전력으로 신성을 끌어올렸다.
"다크 프레셔!"
다크 블레이드의 하위 호환격인 이 기술은 어둠의 힘으로 적을 압박하는 견제용 기술이었다. 그러나 신을 상대로 견제에 쓰이는 기술이라면 인간을 상대로 했을시엔 의심할 여지 없는 살인 기술이었다.
어둠의 발톱이 전방의 탱커들을 감싸며 무자비하게 도륙하자 김형우는 히익- 하는 신음소리를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아직도 저런 힘이 남아있다는게 무서울 정도였다.
"씨발! 원거리 공격으로 숨통을 끊어버립시다."
겁에 질린 누군가가 소리치자 마법사들과 궁수들이 일제히 전력을 담아 연사를 시작했다.
'끝이구나.'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상대는 신도 아니었고 신살무기를 지니지도 않았다. 운이 좋다면 갓난 아기가 아닌 성인 남성의 몸에 정착할 수도 있으리라.
단지 아쉬운 것이라면 이 몸으로 만든 인연들, 그들과의 연결고리가 끊기는 것이 아쉬웠다.
하늘을 덮으며 쏟아지는 마법과 화살의 비를 보며 환상현은 죽음이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상현이 포기했다는 것을 깨달은 아라크네는 비명을 질렀다. 그는 환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상현의 몸안에 빌붙어 사는 아라크네는 이대로 상현이 죽으면 꼼짝없이 소멸행이었다.
'이러지마요!'
아라크네가 눈물을 짰지만 상현으로서도 별 도리가 없었다. 거대한 불기둥과 매캐한 연기속으로 사라지는 화살들, 상현이 있던 자리에 떨어진 대마법의 파괴력을 지켜보며 공격대는 주먹을 불끈쥐며 환호했다.
그들이 기뻐하는 사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이영수는 이상함을 느꼈다. SJ인원들이 뒤로 빠져 있었다고는 해도 3개 기업팀이 뿜어낸 화력이라고 치기엔 조금 약했다.
'설마?'
불안함을 느낀 이영수는 대원들에게 손짓하며 슬그머니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공격을 담당했던 나머지 팀들은 기쁨에 겨워 아직 상황을 냉정하게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SJ가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했을 때 연기가 서서히 걷히며 그들이 만든 거대한 참상이 드러났다. 무너진 거리, 아스팔트를 난도질한 마법 화살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환상현은 놀랍게도 건재했다.
그의 양 옆으로는 타워실드를 든 탱커 둘이 버티고 있었고 정면으로는 거대한 얼음 방패가 푸른빛을 뿜고 있었다.
다들 얼마나 달려온 것인지 어깨를 들썩이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우리 공대장을 공격했으니 곱게 돌아갈 생각하지 마라."
상현을 둘러싼 대원들이 으르렁거렸다.
============================ 작품 후기 ============================
영화보면 경찰들은 모든 사건이 해결된 후 사이렌을 울리며 등장하기 마련인데...
현재 전장에 투입된 기업팀 전력은 이렇습니다. 실력순 나열입니다.
삼상 1군 B팀( 1군 A팀보다는 실력이 떨어집니다. 1군 A는 우성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엘즈 1군 (여긴 1군이 딱 한 팀입니다)
SJ 2군 A팀
KD 2군 A팀
한산 2군 A, 현도 2군 A
삼상과 엘즈는 전멸 했으며 나머진 헬기 추락시 다수 부상, KD는 탱커 2명이 죽었습니다.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