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나이트 레전드-53화 (53/123)

< -- 53 회: 충돌 -- >

종현과 상현이 없어진 게스트 하우스의 분위기는 썰렁했다. 큰 사건을 겪은 뒤라 상현에게 말을 조금 뜸하게 붙이긴 했어도 대원들은 다들 상현을 의지하고 좋아했다.

공격대장이 자리를 비우면 부대장이라도 집을 지켜야 했는데 훈련 담당인 그마저 아예 없으니 분위기가 늘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돈이 없을 때는 뭐살까 엄청 고민하고 그랬는데 막상 돈이 생기니까 사고 싶은게 하나도 없어지는 기분 아냐?"

"저도 요즘 딱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마음이 잘 맞죠?"

"게스트 하우스 졸업하면 집도 보러 다녀야지."

남자대원들은 1층 거실에 모여 잡담을 떨었고 여자 대원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며 간만의 휴식을 즐겼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무려 4일째 소식이 없자 편한 것보다도 걱정이 앞섰다.

"예? 병원이요?"

정부에 연락해 공대장과 부대장의 소식을 묻자 병원이라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팀원들이 전부 능력자 종합병원으로 향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비밀로 해달라고 했는데 대체 누가 알려준 거야."

백종현은 병실에 들이닥친 팀원들을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한 팀인데! 이런 사실을 숨겨요?"

종현이 크게 다쳤다는 것을 숨겼다는 사실에 다들 크게 화를 냈다.

"상현 오빠는요?"

입을 다물고 있던 한솔이 상현의 이야기를 꺼내자 종현은 대답하기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성난 대원들에게 끝까지 비밀로 하는 것은 무리였다.

정부에게 노출을 되도록 삼가달라는 말은 들어왔지만 기업이란 곳이 이렇게 심한 짓을 할 줄 몰랐던 그들은 큰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그래서...상현 오빠는 지금 혼자 기업 팀과 싸우러 간 거에요?"

"아마도 그렇겠지. 내가 이 꼴이라 어디로 가는지도 못 물어봤어."

"실망이에요."

대기업 능력자들이 얼마나 이기주의적이고 포악한 행동을 서슴치 않는지는 일반 능력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런 사람들과 싸우러 상현 혼자 나섰다는 사실을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야, 어디가!"

재후가 묻자 그녀는 상현을 도우러 갈 거라며 휑하니 등을 돌렸다.

"미안하다. 상현이 절대 알리지 말라고 신신 당부했거든. 그래도 알렸어야 하는 건데...."

백종현은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이었다. 그의 말에 괜찮다며 고개를 흔든 대원들은 그를 안심시켰다.

"저희가 지원하러 갈게요. 같은 팀인데 누구 혼자 고생하는 건 안되죠. 안그래요?"

"그럼 부탁한다."

4일간 집중치료를 받았지만 아직도 백종현은 전투에 나설 상태가 아니었다. 얼마나 고문을 심하게 했는지 속이 다 곪아 있었다.

"염려 마세요. 반드시 공대장하고 같이 올 테니까."

재후는 엄지를 치켜들며 그 길로 장비를 세팅해서 팀원들과 함께 상현이 있을 디멘션홀 장소로 향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정부에서는 상현의 능력자 메신저의 위치를 자세히 알려줬다.

상현이 기업팀과 싸우려고 한다는 사실은 정부에서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재후의 연락을 받은 정부는 필요한 정보를 알려준 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담당 감시관인 정석영을 찾았지만 그 또한 무단 외근중이었다.

정부는 빠른 일처리를 위해 가장 빠른 공항까지 일행을 헬기로 이동시킨 후 전세기를 태웠다. 확실히 가장 빠른 이동 수단이었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순식간에 날아간 일행은 차량을 빌려 도심을 전력 질주 했다. 광란의 도심 질주가 이어졌다.

보통 5급 디멘션홀 경고가 발령되면 반경 3킬로 미터 이내의 시민들만이 대피하기에 차가 전혀 없을 수는 없었다.

물론 역주행은 하지 않았기에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능력자의 동체시력 레벨은 일반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고도로 집중하면 시내의 차량들이 전부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 순식간에 차선을 변경하며 내달린 그들은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차에서 내려 건물 옥상위를 질주했다.

예전 같았으면 힐러와 여자 대원들이 남자 대원들에 비해 이동에서 크게 쳐졌겠지만 강도 높은 훈련 과정을 통해 그 차이를 최소화한 상태였다.

일행 중 가장 빠른 것은 신재후였다. 새가 날듯이 지붕을 뛰어넘은 신재후가 저 멀리 주저앉아 있는 상현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적들의 공격이 시작된 상태였다.

그는 이를 악물고 달렸다. 저대로 상현이 죽기라도 한다면 그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이스 실드!"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 상현의 화염구가 충돌하며 거대한 먼지기둥이 피어오르는 순간 재후의 두꺼운 얼음방패가 그 충격을 받아냈다.

그러나 포격은 좀처럼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열 명도 넘는 원거리 딜러들이 전력으로 공격을 뿜어냈으니 당연했다. 게다가 그들 모두 7레벨 이상의 실력자였다.

속에서 비린한 것이 울컥 넘어오려는 순간 재후의 양옆을 지나쳐 탱커 김재식과 김현성이 바람같이 내달렸다.

얼음 방패가 무너지기 전에 상현을 지키려는 움직임이었다. 결국 방패가 무너지기 전에 탱커 둘이 상현의 앞을 완벽하게 막아서자 재후는 마력을 줄이며 얼음 방패의 면적을 최소화 시켰다.

마력을 좁은 면적에 집중시킬 수록 방어력이 세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뒤를 이어 힐러들이 활력을 주입하며 다친 상현의 몸에 원거리 힐을 강력히 시전했다. 이 모든 것이 첫발로 먼지 구름이 솟아나고 폭격이 끝나기 까지의 짧은 사이에 이뤄진 연계였다.

폭발의 여파로 일어난 먼지 구름이 사라졌을 땐 이미 미쏠로지 대원들 전원이 상현을 둘러싸고 방어진을 구축한 상태였다.

"우리 공대장을 공격했으니 곱게 돌아갈 생각하지 마라."

재후가 분노로 이를 갈며 말했다.

"대장, 명령을 내려주시죠."

사석에서는 형, 동생 하는 사이지만 지금은 철저하게 상현을 대장으로서 모셔야 하는 상황이었다.

'미안하다.'

상현은 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려야 하는 것을 매우 미안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누군가를 죽여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상현은 전쟁을 통해 사선을 여러 번 넘나든 경험도 있었지만 이들이 죽여본 것이라고는 몬스터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상황, 이곳에서 애매하게 멈출 수는 없었다.

'나중에 꼭 갚아줄게.'

눈을 질끈 감았다가 부릅 뜬 상현의 입이 열렸다.

"전부 죽여."

가장 먼저 공격을 시작한 것은 한솔이었다. 그녀는 상처입은 상현의 모습에 조용한 분노를 품고 있었는데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그녀의 석궁에 걸린 마법 화살이 굉음을 토하며 날았다.

"뇌광의 화살!"

전격의 힘을 담은 화살이 검을 들고 있던 KD딜러의 목을 꿰뚫었다. 피를 송송 뿜으며 아군 한 명이 뒤로 넘어가자 기업측 공격대는 다들 악에 받쳐 소리질렀다.

"돌격해!"

그러나 그것은 학살의 시작이었다. SJ 공격대가 뒤로 빠져 있는 상황에서 남은 인원은 34명, 그 중에서도 반 수 이상이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러나 미쏠로지 측은 숨이 조금 차긴 했어도 전력을 온전히 보존한 상태인데다가 이번 전투를 위해 대량의 특급 소모품들을 잔뜩 챙겨 완전 무장한 상태였다.

만약 지금 달려드는 대기업 공격대가 조금만 더 차분하게 상대방을 파악했더라면 그들의 장비가 자신들보다 급이 더 높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막무가내로 달려들었기 때문에 상대의 장비가 전부 S급을 상회한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블리자드!"

일시적인 마력증폭 스크롤을 찢어 거대한 마력을 손에 넣은 신재후의 양손이 가공할 눈보라를 불러일으켰다. 방어구를 뚫고 침투하는 한기에 느려진 공격대에게 이주혁을 비롯한 근접 딜러들이 달려들었다.

콰지직-

얼어붙은 신체 위에 날붙이가 지나치자 순식간에 얼음결정들이 깨져나가며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처음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지만 그들의 손속엔 자비가 없었다. 병원에 꼼짝없이 누워있던 백종현, 대체 얼마나 심하게 고문을 했으면 집중치료를 4일이나 받은 능력자가 여전히 침상신세를 진단 말인가, 게다가 환상현 역시 피를 한껏 토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분노를 안하는 것이 이상했다.

한솔과 이예나는 후방에서 쉴 새 없이 화살을 날리며 생명이 남아있는 적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었다. SJ는 그 모습을 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11대 34의 대결, 비록 기업 정공팀이 온전한 전력이 아니라곤 하나 숫자의 우세라는 것이 있었는데도 결과는 처참했다.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몰아친 미쏠로지가 SJ를 제외한 모든 기업팀을 도륙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10분이었다.

전신에 피를 묻히고 무서우리만큼 차가운 시선으로 전장의 시체를 내려다보는 그들의 모습은 흡사 악귀처럼 보였다.

이영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원들을 이끌고 전장을 이탈했다. 저건 완전 괴물들이었다. 대기업에서 내쳐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는 일단 살고 봐야했다.

"쫓을까요?"

대원들의 물음에 상현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이런 일을 시켜서."

상현의 말에 대원들의 눈이 글썽거렸다. 혼자서 이 모든 짐을 지려고 했던 남자다. 상현이 단독행동을 한 이유가 자신들이 걱정할까봐, 자신들이 다칠까봐 그래서였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결코 사과할만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젠장 조금만 늦었으면 우리 애한테 삼촌 죽었다고 말할 뻔 했잖아!"

무거운 분위기를 김재식이 전환시켰다. 그는 전에 한 번, 아들을 데리고 하우스에 온 적이 있었는데 대원들은 남자면 삼촌, 여자면 이모로 호칭을 통일시켰다.

그의 농담에 분위기가 조금 풀어지며 일행들은 조그맣게나마 웃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하죠."

재후는 그렇게 말하며 주변의 참상을 둘러봤다. 피웅덩이는 말할 것도 없고 늘어진 시체들이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저 분이 다 알아서 해주실 거니까 걱정하지마."

"저 분이요?"

환상현은 저 멀리 떨어진 건물 옥상에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정석영을 쳐다보며 말했다. 만약 오늘 기업이 목적을 달성했다면 환상현의 시체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을 테지만 이제는 입장이 반대였다.

SJ의 증인들이 살아돌아가긴 했지만 그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증거가 전혀 남지 않을테니 말이다.

그동안 그들이 했던 짓을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순간이었다.

그 날 이후, 대기업의 반응은 의외로 조용했다. 그들은 이 사건을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아하는 눈치였다. 물론 미쏠로지의 힘에 두려움을 느끼고 꼬리를 만 것은 절대 아니었다.

11년 전, 디멘션 홀 출현 이후 그들은 능력자들을 흡수해 이 사회의 왕으로 군림했다.

절대로 쉬이 물러날 위인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시 연합공격을 하는 것은 당분간 어려울 듯 보였다. 2강 4중 4약으로 분류되던 10대 기업의 세력구도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2강의 자리를 맡고 있던 삼상은 1군 B팀의 몰살로 강에서 중으로 하락을 면치 못했고 중에 있던 엘즈는 약으로 떨어져 버렸다. 연합팀에 참가했던 기업 중에 가장 득을 본 것은 SJ였다. 그들은 전력을 온전히 보존한 것에 힘입어 국내 1강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1강 4중 5약.

급격한 세력구도 변화에 대기업들 사이에서도 미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잘만 이용하면 자신들의 등급을 한 번 올려 볼만하겠다 싶었던 것이다.

"엄충호!!!"

삼상의 부사장 사무실, 순식간에 1군 전력의 반을 잃어버린 우성진은 사무실 안의 집기들을 전부 파괴하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신궁 엄충호, SJ의 부사장이며 우성진과 맞먹는 9레벨 능력자, 이번 연합팀 작전에서 가장 득을 본 것은 SJ였다. 우성진은 분노했다. 분명 작전 전날에 엄충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1군팀중 하나를 내달라는 부탁을 했고 그러겠다고 확답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이게 웬걸, SJ는 2군팀을 출동시켰고 그나마도 전력보존을 하며 발을 뺐다. 우종현으로서는 뒤통수 한 번 거하게 맞은 격이었다.

'네 놈을 가만두지 않겠다.'

이를 빠드득 가는 우성진의 분노가 사무실 안을 지배했다.

============================ 작품 후기 ============================

우성진 뒤통수가 얼얼하겠네요.

열심히 썼습니다 여러분...추천을 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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