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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레전드-58화 (58/123)

< -- 58 회: 피닉스 -- >

"그래. 이래야 상급 던전답지!"

이플라임 로드.

그리고 로드를 수호하는 정예 정령들을 보며 백종현이 외쳤다.

간간히 마른 풀포기들만 드문드문 보이는 메마른 대지, 황량한 모래바람이 바닥을 쓸어담는 그곳에 거대한 몸을 이끌고 대지를 불태우는 최상급 정령대장이 있었다.

"중급 보스급 녀석들이 10마리가 붙어있는데 어쩔 수 없어. 저녀석들은 절대로 로드에게서 떨어져 나오질 않거든."

백종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상현이 강행돌파 할 것을 지시했다.

열기에 대항하기 위해 재후는 전방에 나서는 탱커들에게 아이스실드를 걸었다. 차가운 냉기가 기분좋게 열기를 차단했다.

"돌격!"

상현의 좌우로 탱커들이 붙으며 진형을 갖췄다.

일행이 300미터 안으로 접근하자 불의 정령들이 시선을 돌리며 공격대에게 무수한 화염을 퍼붓기 시작했다. 불의 해일이 밀어닥치는 것과 같은 대공격에 일행은 바싹 긴장했다.

"축복 점화."

열일곱 명의 대원에게 간단한 축복을 부여한 상현이 먼저 쏘아져 나갔다.

"탄!"

거대한 검기탄이 화염의 불길 한가운데를 뚫어내자 일행들은 주저 없이 그 공간을 탈출구 삼아 간단히 불의 장벽을 지나쳤다.

순식간에 적들의 무리에게 도달한 상현이 제일 먼저 검을 휘두르자 이플라임들은 비명을 지르며 몸이 두동강났다.

중간보스 이상의 정예 정령들이라곤 하지만 상현의 상대가 되기는 역부족이었다. 보스를 제외한 부하 정령들을 철저히 파괴하면서도 상현은 신성을 끌어올리지 않기 위해 신경을 컨트롤 했다.

그것은 어떤 한 가지 가능성 때문이었다. 만약 던전의 관리자, 히든 보스들이 신성체로 내정이 되어 있다면 자신의 신성에 반응했기 때문에 그동안 대사고가 일어났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만약 그 가정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일행들이 그 고생을 한 것은 전부다 상현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신성 없이 최상급 정령들을 상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심안.

마음 속으로 제 3의 눈을 불러일으킨 상현은 불의 정령들이 지닌 핵을 사정 없이 공격했다. 검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이플라임들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고 부상당한 정령들의 마무리를 대원들이 책임졌다.

이 지경이 되자 당연히 보스가 분노를 토해내며 사정없이 불을 뿌리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그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염력계 능력자인 이수연과 빙속성 전문인 신재후가 철저하게 방어를 전담했기 때문이었다.

날아드는 거대한 불길들은 모두 염력에 의해 파해되거나 얼음 방패에 의해 틀어막혔다.

원거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로드는 괴성을 터트리며 육탄공격을 시전했다.

"죽어라 인간!"

하지만 로드의 거대한 불주먹은 팀의 탱커들이 펼치는 철벽에 의해 번번이 가로막혔다. 혼자서는 버거운 공격이었지만 둘이서는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게다가 현재 탱커 담당인 김현성과 김재식은 S급 화염내성 장비를 걸친 상태라 오히려 화염공격을 받으면 마력이 회복되는 패시브까지 보유한 상태였다.

상대가 상급 던전의 보스인지라 체력이 소모되긴 했지만 만약 어중간한 중간 보스였다면 웃으면서 불 속으로 걸어들어갈 정도였다.

"제법이구나."

이플라임 로드는 말투가 어눌하지도 않았고 거대한 몸을 가졌지만 느리지도 않았다. 곧바로 놈의 몸이 화살처럼 가늘어지더니 하늘로 치솟았고 무슨 짓을 하는지 깨닫기도 전에 화살비로 변해 공중에서 불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을 찢어 화살로 만들어 떨구는 공격이라 할 수 있었는데 그 파괴력이 아주 대단했다. 만약 저 패턴을 모르고 당했다면 큰 피해를 입을 법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일행에겐 이미 던전 공략을 한 번 클리어한 경험이 있는 백종현이 있었다. 미리 정해진 대로 탱커들과 이수연, 신재후가 강력한 방어진을 펼치며 일행을 보호했다.

그 사이 일행에서 떨어진 상현은 놈이 맨처음 솟구쳤던 장소에서 검을 빼들고 일격을 날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종현의 말에 의하면 놈은 다시 이곳으로 떨어질 터였다.

과연, 브리핑때 알렸던 패턴 그대로 이플라임 로드의 본체가 다시 땅에 내려앉았다. 예상대로 놈의 몸은 정확히 상현의 앞에 위치해 있었다.

쾅-!

신성을 쓸 생각이었으면 다크 프레셔급의 공격을 사용했겠지만 일부러 신성을 제한시킨 상태라 상현의 공격은 검기탄 정도가 최대였다.

상현은 재생능력자지 딜에 도움이 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효과는 뛰어났다. 심안에 의해 드러난 정령 핵을 가격하자 이플라임 로드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충격파를 뿌렸다.

"인간이! 인간이!"

인간에게 치명상을 입었다는게 너무 분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상현은 인간도 아니었고 애초에 보스칸 화염동굴을 클리어한 팀은 이전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저 새로 태어난 보스라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 뿐이다.

꼬리에 불이 붙은 말처럼 뛰어다니는 이플라임 로드의 뒤를 바싹 쫓으며 상현이 다시 한 번 검을 찔렀다. 당연히 발악의 정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졌다.

놈도 이제는 누가 더 강한지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다른 인간들의 방어력과 힘도 만만치 않았지만 자신을 그림자처럼 쫓으며 연신 핵을 건드리는 상현 때문에 로드는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원거리 딜러들이 로드의 몸통에 계속해서 딜을 꽂아넣었다. 차분하고 확실하게, 그리고 빠른 속도로 데미지가 누적되자 불꽃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상현님 누군가 저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나도 알아.'

이제는 거의 다 쪼그라들어 처음 크기의 삼분의 일도 되지 않는 이플라임 로드에게 마무리 일격을 가하려는 찰나 아라크네가 누군가의 시선을 경고했다.

자신도 느끼고 있는 은밀한 시선, 그것은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상현을 염탐중인 세력이 있음을 의미했다. 다른 대원들은 몰랐겠지만 심안을 개방하고 마력에 의해 극대화된 감각이 놈의 위치를 대략적으로나마 잡아냈다.

그곳은 아무 것도 없는 커다란 바위의 위였다. 아무 것도 없는 바위 위를 상현이 주시하자 은밀했던 시선이 점점 더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상현의 시선이 아무래도 거슬린 모양이었다. 기세가 노골적으로 변했기에 상현은 잔뜩 긴장하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상현이 시선을 돌리면서 숨통이 트인 이플라임 로드는 쏜살같이 구석으로 달려가 메마른 대지의 저편으로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쫓아야 돼!"

백종현이 소리쳤을 때 상현은 손을 들어올리며 일행에게 대기할 것을 명령했다.

"왜 중지야?"

상현의 명령을 이해하지 못해 소리친 종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을 꾹 다물고 주변을 살폈다.

던전에 처음 입장했을 때 느꼈던 자연스러움, 그것이 전부 없어지고 어떤 오싹한 느낌이 피부를 스쳤다.

'너무 조용하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주변의 풍경이 사진처럼 느껴졌다. 거짓된 공간에 갇힌 기분이었다.

'설마...아니겠지?'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종현이 제발 그러지 말라고 빌고 또 비는 사이 저 멀리 떨어져 있던 바위의 위가 이글거리며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이윽고 불기둥은 거대한 차원의 틈새처럼 벌어졌는데 그 모양새가 꼭 디멘션 홀이 열리는 것 같았다.

"이런 개같은!"

이번에도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백종현이 소리쳤다. 다른 대원들의 얼굴도 핼쑥해지자 이수연을 비롯한 신참 대원들은 대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들은 이제 막 상급던전에 처음 나섰으니 알 도리가 없었다. 지금까지 그들이 쉽게 상급 던전을 거쳐가는 법이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차원틈이 진동하며 거대한 울음소리를 토했다.

그것은 분명한 새가 우는 소리, 차원틈에서 고개를 내밀고 천천히 몸을 빼내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불멸의 새, 피닉스였다.

"끼루루룩!"

크라켄에 버금갈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새가 천천히 틈을 빠져나오자 일행들은 좌절했다. 상현이 히든 보스인 크라켄을 잡았다는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 실물을 본 적이 없으니 설마 저 정도로 컸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것이다.

그리고 설령 크라켄과 피닉스가 동급의 상위 괴수라는 것을 알았더라도 긴장이 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피닉스가 날개를 펴는 것만으로 주변의 풀이 모조리 불타며 일대가 화염에 휩싸였다.

"일단 피하죠."

상현은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아직 무너지지 않은 메마른 대지의 입구를 향해 전력으로 튀었다. 그러나 피닉스가 훨씬 더 빨랐다.

그들이 수십걸음을 걸어야 되는 거리를 폴짝 뛰어 한 걸음에 이동한 피닉스의 날개가 일행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것은 거대한 불의 장벽이었으며 S급 내성 장비를 입고 있다 한들 통과할 수 없는 초열지옥이었다.

"곱게 보내주지 않겠다는 것 같은데?"

김재식이 비지땀을 흘리며 말했다.

"선배, 지금 당장 대원들 데리고 피하세요. 놈이 원하는 건 아무래도 저 뿐인 것 같으니 시선을 끌어보겠습니다."

"어차피 싸울거면 함께 싸워야지!"

"싸우지 않고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러분이 있으면 힘을 제대로 쓸 수 없어요."

제대로 신성을 끌어올리면 그들은 상현의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상현의 말에 대원들의 주먹이 꾹 쥐어졌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옆에 서 있는 것조차 못하는 처지라는 것에 속이 쓰렸다. 그런 대원들의 감정을 눈치챈 상현이 재빨리 피닉스의 날개를 뛰어넘어 공중을 밟고 날아올랐다.

검 끝에서 발생한 마력이 길을 열었고 상현은 얼른 바람을 타고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빨리 빠져나가요!"

대원들에게 소리치는 상현의 뒤로 거대한 불새가 날아올랐다. 그 날갯짓에 일대에 화염의 폭풍이 몰아쳤는데 그 충격으로 던전 입구가 불길에 휘말려 타들어가더니 종국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럴 수가."

던전 입구가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한 정석영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이젠 죽으나 사나 저 피닉스를 쓰러트리는 수밖에 없었다. 주변을 돌며 피닉스를 유인하던 상현도 입구가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이를 악물었다.

피닉스는 파괴력만 놓고보면 크라켄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그 때와 달리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크라켄을 상대할 때는 처음부터 힘을 모아 적을 요격할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하고 놈을 끌어들였지만 지금은 쫓기기 바쁜 신세였다. 다크 블레이드를 제대로 펼칠 시간을 주기는 커녕 발을 멈추면 매서운 부리에 몸이 조각날 판이었다.

화르르르륵-

지금까지 맛본 그 어떤 불길보다 뜨거운 화염의 칼날이 피닉스의 입에서 뿜어져 나와 상현이 있던 자리를 덮쳤다. 날개 끝에서 끝까지의 길이가 500미터에 달하는 거대 새를 향해 종현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재후의 얼음창이 하늘을 갈랐고 원거리딜러들의 일제사격이 시작됐다. 피닉스 입장에선 그리 큰 데미지는 아니었지만 무시하기엔 조금 아픈 것도 사실이었다.

"콰루루?"

어디서 건방진 조무래기 놈들이 공격을 하냐는 기색으로 날개를 펄럭이자 거대한 유성우가 쏟아져 내렸다. 그야말로 재앙신이 따로 없었다.

서둘러 본대로 복귀한 상현은 방패를 들고 일행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방패 너머로 스미는 불꽃에 피부가 화상을 입고 재생하기를 반복했다. 환상현이 고통에 익숙한 영혼이 아니었다면 비명을 지를법한 일이었다.

삼격편대로 방어대형을 짠 미쏠로지 팀은 가장 앞에 방어력이 뛰어난 상현을 세워 피닉스의 불길에 맞서 싸웠다. 상현이 일차적으로 불의 힘을 중화시키면 뒤편의 탱커들과 힐러진이 일행을 감싸며 보호하는 전략이었다.

"선배, 저런 거대한 놈을 잡는 공격대 교전수칙 없습니까?"

언제까지 피닉스의 불을 맞아야 되나 싶었던 상현이 물어봤지만 백종현이라고 달리 뾰족한 수는 없었다. 저런 상식 밖의 놈을 상대해본 공격대 자체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비슷한 괴수를 잡아낸 팀이 에딕손 공격대인데 그들은 80명이 넘는 능력자들을 데리고 물량공세를 펼쳐 간신히 8급 디멘션 홀 괴수를 처리했다. 그렇게 준비를 했지만 사상자가 절반도 넘게 나왔던 전투였다.

'제 힘을 써보시지요.'

의외의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아라크네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에 상현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상현은 일행들과 거리를 벌리고 나서서 그동안 눌러놨던 거미의 힘을 다시 끌어올렸다.

보일듯 말듯 작아져있던 거미 다리 여덟 개가 상현의 등에서 순식간에 자라나며 자세를 갖췄다. 그의 거미 폼을 처음 본 신참들은 깜짝 놀랐지만 상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미 다리의 끝을 피닉스의 부리를 향해 겨눴다.

"이거나 먹어라!"

총알보다 빠른 거미줄이 피닉스의 부리를 가격했다. 그러나 그것은 타격용도가 아닌 상대의 제압이 목적이었다. 강철보다 단단한 은빛 실이 부리를 꽁꽁 묶자 피닉스는 더 이상 불을 토하지 못해 버둥거렸다.

커다란 불새 사냥의 시작이었다.

============================ 작품 후기 ============================

이제 확실해졌습니다. 모든 던전에서의 고난은 상현이 불러왔던 것입니다.

물론 고난을 극복해야 좋은 것도 얻기 마련이지만요.

전에 어떤 분이 크라켄도 마신의 종 아니냐고 물어봤는데 아닙니다.

크라켄이나 피닉스는 괴수 최상위 개체일뿐 마신의 힘을 부여받은 녀석들은 아닙니다.

미력하게나마 신성을 가진 녀석들이라 고위 신성체를 흡수하면 강해질 여지가 있죠.

반대로 환상현이 크라켄의 신성을 흡수하는 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미 상현의 신성 수준이 신급 최상위라 흡수로는 개발가능성이 0입니다. 대신 아라크네를 흡수했던 것처럼 육체를 강화시키는 등의 작업은 가능하겠지만요.

(거미다리로도 충분한데 오징어다리까지 만들 수는 없...)

소인 이만 물러갑니다. 오전중에 다시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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