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나이트 레전드-60화 (60/123)

< -- 60 회: 피닉스 -- >

피닉스는 전설의 새다. 죽을 때가 다가오면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 뒤 재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고들 한다.

물론 이것은 사실과는 조금 달랐다. 미쏠로지 일행과 싸울 때부터 피닉스는 이미 온몸에 불을 달고 다녔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한 가지 전설과 한 가지 부합하는 점이 있다면 다시 살아난다는 점이었다.

커다란 알껍질을 깨고 나온 것은 주먹만한 작은 아기 새였다. 온몸이 홍옥처럼 붉었고 꼬리 끝의 금빛 꽁지는 아름다웠다. 주먹만한 그 새는 자신을 감싸줬던 상현에게 총총걸음으로 한아름에 달려갔다.

재후는 알에서 새가 튀어나온 줄도 모르고 상반신만 남은 상현의 몸을 붙들며 울고 있었는데 아기 새는 상현의 몸을 타고 올라가 재후의 가슴을 사정없이 때려 단번에 밀어냈다.

주먹만한 아기 새가 가냘픈 날개로 때려대자 재후의 몸이 수 미터 이상 날아간 것이다.

"이런 망할 놈!"

정신을 차린 재후는 빨간 아기 새를 본 순간 귀엽다는 생각을 하기는 커녕 놈을 찢어죽일 듯 노려봤다. 아기 새가 피닉스가 부활한 것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상현이 죽은 것도 다 저 놈 때문이었다. 재후는 이미 온 힘을 다써서 힘이 빠진 상태였지만 남은 힘을 끌어모으자 어떻게든 얼음 창 한 자루를 만들 수 있었다.

창으로 자신을 찌르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은 어린 피닉스가 날갯짓을 하자 주변에 일진광풍이 몰아닥쳤다.

사나운 바람에 재후는 몸도 가누지 못하고 더 밀려갔을 뿐더러 높다랗게 쌓여있던 보석산들이 사방으로 눈 날리듯 흩어졌다. 도저히 주먹 만한 새가 했다고는 믿기 힘든 일이었다.

일행이 보석 한가운데 자빠진 재후를 구하러 가는 사이 피닉스는 상현의 상반신에 대고 눈물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하도 눈물이 나오지 않아서 스스로 깃털을 조금 뜯어야 했는데 생 깃털이 뽑히자 슬슬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피닉스는 본래 흉조였다. 성품은 애교 부리기 좋아하고 누군가를 따르기 좋아했지만 온 몸에서 작열하는 열기를 내뿜는 특성상 아무도 새를 가까이 두려 하지 않았다.

이곳 던전 최하층도 마찬가지였다. 본래는 강이 흐르고 숲이 우거진 기름진 땅이었는데 피닉스가 알을 깨고 한 번 부활하자 순식간에 풀포기도 자라지 않는 땅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해서 남은게 이플라임 같은 불 정령들 뿐이었다. 이번에도 결국 눈을 뜨고 나면 주변이 죄다 잿더미로 변해있겠다 생각했던 피닉스는 의외로 주변이 멀쩡하자 새삼 놀랐다.

그리고 그것이 알을 깨고 나오기 전 상현이 몸을 던져 자신을 감쌌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메마른 대지에서 눈을 찔리고 날개가 부러졌던 고통은 다 잊어버렸는지 피닉스는 열심히 상현의 몸을 재생시켰다.

다 날아갔던 하반신이 발톱까지 완벽하게 자라나는 것은 겨우 수 초 만이었다. 신체를 재생시킨 피닉스는 상현의 가슴을 부리로 쪼았다.

피가 튀며 심장이 드러나자 피닉스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떨어지자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고 피가 돌기 시작하니 머리에 숨통이 트였다.

"쿨럭."

얼마 지나지 않아 상현은 기침을 했다.

어린 피닉스는 깔끔하게 심장 위의 가슴을 다시 닫아주며 깔끔하게 뒷마무리를 하고서는 꾀꼬리처럼 울었다. 아직 어린지라 몸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진 않았다.

몸에서 불을 피우려면 적어도 천 년은 살아야 하리라.

상현의 시체라도 수습하려 했던 일행은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 광경을 지켜보고서는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전설상의 영물이 상현을 완치시키며 죽음에서 구해낸 것이다.

성하나와 신채은이 울음을 터트리며 살아난 상현에게 다가가려는 찰나 피닉스는 다시 날개를 휘둘러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우리를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군."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닌 듯 하여 백종현은 일행들을 추슬러 크라켄 때와 마찬가지로 던전 공동에 캠프를 차리기로 했다. 옆에 거대한 보석 산을 두고도 잠이나 자야 한다니 아이러니해 보이는 광경이었지만 그들은 너무 지쳐 있었다.

사막하곤 비교도 안되는 열기내린 땅에서 수 시간동안 격전을 펼쳤으니 지치지 않는게 오히려 이상했다.

일행들이 곤히 잠든 사이 피닉스는 상현의 가슴위에 고개를 파묻고 수면을 취했다. 그러면서도 귀신 같이 주변을 잘 살폈는데 재후나 한솔이 가끔 상현의 상태를 보기 위해 가까이 올려고만 하면 고개를 들어 끼룩 울면서 경계했다.

그렇게 무려 7일이 지났다.

일주일이나 지나자 일행들은 슬슬 이곳에서 상현을 데리고 빠져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급해하는 일행들과는 반대로 정석영은 기운이 없이 땅에 주저앉아 있었는데 170만 급의 마력핵을 잃어버린 탓이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저딴 불탄 치킨 한 마리 주자고 핵을 가져가십니까."

피닉스가 알을 깨고 나오는 바람에 상현이 죽은데다가(지금은 재생됐지만) 마력핵까지 날아갔으니 정석영이 빡이 칠만도 했다.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걸 보면 죽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상현은 분명 숨을 쉬고 있었다. 반짝이는 보석산 위에 누운 상현의 신체는 분명 생명활동을 유지중이었다. 그저 죽은 듯 잠만 자고 있다는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혹시 저 새 때문이 아닐까요? 저렇게 상현 오빠 위에 올라타서 에너지를 흡수 중이라거나...."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지만."

"시도는 해보죠."

한솔이 강력하게 주장하자 일행은 그녀의 의견에 동의하여 피닉스를 상현의 몸에서 떼어내 보기로 했다.

일행들은 슬그머니 무기를 집어들고는 진형을 갖췄다. 그러나 사람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지 피닉스는 이미 결전을 불사할 태세를 갖추고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날개로 상현을 덮을만큼 피닉스는 무척 거대해져 있었다. 처음에는 주먹만했던 새가 7일 동안 상현을 지키며 보석을 가끔씩 삼키더니 이제는 거의 성인 남성 크기만해진 것이다.

"더럽게 빨리 자라네."

뺨을 맞은 기억이 있는 재후는 이번에야 말로 혼쭐을 내주겠다며 마력을 끌어모았다.

"끼루루룩!"

순간 피닉스가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부리로 상현의 심장을 쪼을 기세로 날개를 펼치고 목을 당겼다.

"어어? 저, 저거!"

피닉스의 돌발 행동에 일행들은 감히 더 접근하지 못했다. 기껏 되살린 상현의 심장이 날아갈 판인데 접근은 불가능했다.

일행이 다시 보석산 아래로 내려가자 새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영악하게 울었다.

'두고보자.'

다들 같은 마음으로 이를 갈며 저녁을 준비했다.

그러나 일행의 예상과는 달리 상현의 몸은 날이 갈수록 더 좋아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원래 상태로 되돌아간 것 뿐이었지만 가슴 위에 올라탄 피닉스에게서 따듯한 에너지를 꾸준히 공급 받기 시작한 것이다.

피닉스는 미약하게나마 신성을 갖춘 신성체, 일행이 보지 않을 때마다 피닉스는 상현의 입술에 보석을 녹인 물을 토해 그의 기도로 흘려넣었다.

보석과 신성이 녹은 물이 그의 신체를 인간하고는 점점 다르게 바꿔놓고 있었다. 상현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강해져 갔고 재생강화가 이루어지던 7일 째 새벽이 되자 그는 눈을 뜰 수 있었다.

"아이고 허리야."

딱딱한 보석 침대 위에서 7일을 누워있었더니 온몸이 쑤시는 것 같았다.

상현이 정신을 차렸다는 것을 깨달은 피닉스는 조심스레 그의 몸 위에서 내려와 얼굴을 부볐다.

7일이나 기절해 있었지만 의식은 살아있었기 때문에 상현은 피닉스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자신을 지켜주려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는 그동안 상처를 많이 받았겠구나."

주변을 몽땅 태워버리는 신체 때문에 친구를 만들지 못하고, 주인을 만들지 못한 새를 위로하며 상현은 천천히 일어서서 산을 내려왔다.

넘어질 듯 비틀거리는 상현의 어깨 아래로 피닉스는 긴 목을 집어넣어 부축했다.

새벽인지라 일행은 전부 잠을 자고 있었다. 단 한 명을 빼고는.

그날 번을 서고 있던 사람은 정석영이었다. 아라크네 동굴에서 큰 일을 겪고 난 뒤로는 그는 낮과 밤이 바뀌어 몹시 불규칙한 생활에 힘이 들어했는데 대 공동에서 일주일을 넘게 보내자 다시 밤낮이 바뀐 것이다.

목각인형 깎는 재주가 있었는지 열심히 상현의 전신 피규어를 조각하고 있던 그는 산에서 데굴데굴 보석들이 굴러 내려오자 음? 하며 산 위를 쳐다봤다.

"허."

은은한 붉은 빛을 뽐내는 피닉스와, 그런 새의 부축을 받아 천천히 산을 내려오는 상현의 모습은 전쟁을 마치고 귀환하는 젊은 영웅처럼 보였다.

"교주님! 내가 이렇게 다시 일어날 줄 알았지!"

이번에는 피닉스도 사람의 접근을 거부하지 않았다. 정석영의 호들갑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일행들은 텐트 밖으로 나와 살아돌아온 상현을 보고서는 다들 환호하며 그를 맞이했다.

"이번에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난 정말 형이 죽은 줄 알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재후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상현이 말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낸 것 같습니다...아직까지는 가설이지만요."

중요한 얘기가 나올 것 같아 일행들의 시선이 모두 그의 입술에 집중됐다.

"제가 아무래도 숨겨진 보스들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상현의 충격 발언에 일행은 벼락맞은 분위기였다.

"그게 정말이에요?"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엄청난 일인데...."

지금까지 그들은 두 번의 히든 보스를 상대했다. 피닉스, 그리고 크라켄.

크라켄은 상현 혼자 처리를 했기 때문에 그 위용을 볼 수 없었지만 이번 피닉스는 모두가 협동해서 잡아낸 최초의 히든 보스 아니던가.

그리고 히든 보스답게 엄청난 재물을 안겨다 주었다. 비록 큰 위험이 따르긴 하지만 히든 보스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아마도 놈들이 제 특이한 기운에 이끌려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거의 정답이었다. 지금까지 모든 던전 지배자들이 상현의 신성에 반응해 고개를 내밀었으니 말이다.

"만약 안전하게 히든 보스를 잡을 전력만 갖추어진다면...."

백종현의 말에 모두가 꿀꺽 침을 삼켰다. 신참대원들도 얘기를 전해 들은지라 초월급 괴수에게서 나온다는 마력 핵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던전 바닥에서 1주일이나 빈둥대고 있으려니 할 것이 무용담을 늘어놓는 것 뿐이었다.

특히 정석영의 눈빛이 빛났는데 그는 벌써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마력핵을 몇 개만 더 얻을 수 있어도 한국이 미국에게서 괴수산업 메카의 주도권을 빼앗아 오는 건 일도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그럼 혹시 상급 던전마다 숨겨진 보스들이 있다는 이야깁니까?"

정석영이 묻자 상현은 그것까진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꽤나 높은 확률로 그렇지 않을까요?"

상현의 말에 정석영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국에 존재하는 상급 던전의 숫자는 42개, 그중에 반, 아니 반의 반만 되어도 10개 이상의 마력핵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미 꽝을 뽑은 보스칸 화염동굴 던전을 빼더라도 말이다.

"형 몸은 괜찮아요? 하루 종일 새가 위에 눌러앉아 있던데 혹시 정기 빨리거나 그런 것 아니죠?"

재후가 자신을 험담하는 소리를 들은 피닉스는 그의 눈을 파버릴 듯 부리를 매섭게 움직였다. 상현이 피닉스의 등을 토닥이지 않았으면 꼼짝없이 애꾸눈이 되버릴 뻔한 순간이었다.

"이 아이는 사람 말을 잘 알아듣는 것 같으니까 되도록 좋은 말만 하도록 해. 몸은 멀쩡해. 아니 오히려 더 좋아졌지."

전보다 더 좋아졌다는 말에 일행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상현은 조금 징그러울지도 모른다며 경고한뒤 자신의 장검을 뽑아들어 왼 손목에 가져다 댔다. 그의 본래 재생 능력은 손목을 베면 출혈이 금방 멎고 상처가 아무는 정도의 능력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상현은 과감하게 장검을 내려치며 손목을 잘랐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자 힐러들이 깜짝 놀라 치료를 하려고 했지만 상현은 남은 손을 들어 그녀들을 말렸다.

그얼마 지나지 않아 피가 뿜어져 나오던 혈관은 더 이상 피를 뱉지 않았고 새로운 손목이 자라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잘린 손목을 가져다 이어 붙여도 놀라운 재생력이라 할 수 있었는데 아예 새 손이 자라나는 것을 본 일행은 경악했다. 상현은 땅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옛 손을 모닥불에 던져넣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내 능력이 조금 많이 오른 모양이야."

한국에서 처음으로 10레벨 능력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옛 손 : 아, 나 버리지 마요! 으아!

프라가라흐 : 님도 죽었어요? 나도 죽었는데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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