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1 회: 격변 -- >
미국. 세계 괴수 산업을 선도하는 파워레벨 1위의 국가.
보유한 능력자의 숫자, 질과 양 그리고 괴수의 사체를 이용한 무기개발과 응용능력까지 모든 면에서 세계의 기준이 되는 나라다.
그 다음을 꼽으라면 기준에 따라 의견이 나뉘게 된다. 미국 다음으로 산업이 발전된 나라는 일본이다.
디멘션 홀이 출현하기 이전부터 마이크로 산업으로 힘을 실어온 일본은 괴수 산업에서도 미국 다음으로 꼽히는 국가였다.
만약 기술능력이 아닌 능력자 보유 파워로 중점을 둔다면 중국이 2위였다.
한국엔 단 세 명 밖에 없다는 9레벨 능력자가 8레벨처럼 많은 동네였고 불과 6개월 전에는 미국의 뒤를 이어 10레벨 능력자를 배출함으로서 명실공히 2위의 능력자 대국이었다.
주변 국가들이 이렇게 치고 달리니 한국은 생각보다 세계 레벨이 많이 낮은 편이었다.
일본보다도 능력자 순위가 밀렸으니 국경 근처의 나라 중에 한국보다 등급이 낮은 나라가 한 개도 없었다.
심지어 디멘션 홀 첫 등장으로 박살이 난 러시아조차 한국보다 레벨이 높았다.
그러나 그것은 불과 며칠 전까지의 이야기일 뿐, 데이터는 완전히 바뀌리라 정석영은 확신했다.
외부에 공표하진 않았지만 환상현이 국내 최초의 10레벨 능력자가 됐다는 사실은 정부에 특급 기밀사항으로 윗선에 알려졌고 연말을 앞둔 이 시점에서 그는 거액의 연봉 갱신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외부 FA시장에 맞춰 12월 달에 연봉 협상이 마무리 되는 것이다.
처음에 5레벨로 시작했던 다른 대원들 역시 엄청난 몸값 상승이 이따를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들은 이제 7레벨에 도달한 상위 능력자였다.
5레벨의 조무래기 중급 능력자들과 비교하는 것은 실례였다.
하지만 그런 거액의 연봉 갱신도 상현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보스칸 화염동굴에서 얻은 수익은 엄청났다. 마력핵은 얻지 못했지만 쏟아져 나온 재물의 반 이상이 보석과 마석덩어리였기 때문에 그 가치가 클 수밖에 없었다.
시가 2조원 어치, 17명의 대원들이 분배를 받았더니 천억 이상의 거금이 개인 몫으로 돌아왔다. 마력핵과는 달리 보석은 상당히 빨리 처분이 가능했다. 정부도 세금으로 상당한 수익을 올렸으니 서로 윈윈이라 할 수 있었다.
현재 상현의 개인 통장에 들어있는 돈만 2천억원에 달했는데 이런 거금을 쥐고 있으니 연봉 계약을 하던 말던 신경이 쓰이지 않을 만도 했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큰 돈을 벌면 이제 목숨이 위태로운 던전공략 따윈 그만두고 은퇴해서 편히 살고 싶어할만도 했지만 아직까지 그런 낌새를 보이는 대원은 없었다.
개인이 평생 쓰기에 넘치는 돈을 벌었음에도 그들이 아직까지 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훈련에 임하는 것은 환상현이란 존재가 가지는 무게가 컸다.
세계 최강이 될 지 모르는 남자의 성장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 뛸 수 있다는 것, 그것만큼 능력자로서 기대되고 흥분되는 일이 많진 않을 것이다.
깡-
유창식이 마력을 담아 전력으로 내리쳤지만 상현의 피부에는 흠집도 나지 않았다.
피닉스가 그의 몸을 치료한 이후로 재생력 뿐만 아니라 힘만 주면 몸에 보석이 갑옷처럼 돋아났다. 대원들에게 시험삼아 공격을 부탁한 결과 보석 갑옷의 방어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보석갑옷을 장시간 유지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몸속에 잠재된 보석의 힘을 끌어다 쓰는 것은 본래 그의 주특기도 아니었고 피닉스의 주특기도 아니었다.
하지만 개발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한 능력이라 요즘 상현은 다른 것을 제쳐두고 열심히 보석갑옷 능력 개발에만 열중하는 중이었다. 이 능력을 자유자재로 발휘하며 지속까지 할 수 있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단단한 인간이 될 수 있을 터였다.
대원들이 휴식을 취하며 능력향상에 힘쓰고 있을 때 게스트 하우스의 문을 벌컥 열며 정석영이 쳐들어왔다.
"빅 뉴스입니다!"
1층 거실이 시끄러워지자 쉬고 있던 대원들도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살피러 나왔다.
정석영은 시계를 보더니 곧 나온다며 TV를 틀었다. 드라마를 재탕하고 있던 채널은 그의 말대로 갑자기 긴급 뉴스라며 속보를 전해왔다.
중국 기자가 처참하게 파괴된 도시를 배경으로 인터뷰를 진행중이었다.
"저게 뭡니까? 뭐가 쓸고 지나간 거에요?"
태풍보다 훨씬더 강력한 무언가가 쓸고 지나간 흔적이었다.
"두 번째 8급 괴수가 중국 남부 도시 광저우에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광저우는 중국 광둥성의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그런 곳의 한복판에 8급 괴수가 떨어졌으니 대재앙이 일어났으리라.
뉴스에서는 현재 밝혀진 사망인원이 수만에서 수십만에 이를 것이라 보도중이었다.
"설마 아직 못잡은 겁니까?"
"중국은 저런 긴급 상황에 대비하는 능력이 한국보다 더 안좋습니다. 한국이 대부분의 능력자들을 기업이 잡고 있다면 저쪽은 능력을 숨기고 활동하는 프리랜서들의 숫자가 어마어마합니다. 당연히 정부에서는 그들을 밑으로 끌어들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죠. 중국에선 레벨 높은 능력자가 소리없이 지역의 패권을 쥐고 있다는 말이 돌 정도입니다."
구심점이 없다면 8등급 괴수를 잡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 된다. 희생정신이 투철하지 않은 이상 누구도 목숨을 내던지고 싶어하진 않을테니 말이다.
"어떤 녀석인가요."
"프로스트 자이언트라고 합니다. 크기가 얼마나 큰지 도시 바깥에서도 보일 정도라더군요."
무너진 건물들과 거대한 빙산 조각들, 통째로 얼어붙어 숨도 쉬지 못하고 죽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이 여과없이 화면으로 전달됐다.
"저희가 저걸 처리하게 될까요?"
어떤 국가에 감당하기 힘든 고등급 디멘션 홀이 발생할 경우 해당 정부에서는 외부에 지원을 요청해 거금을 들여 레이드를 부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상현의 말에 정석영은 고개를 저었다.
"미쏠로지 팀이라면 분명 저 프로스트 자이언트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번에는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을 겁니다."
정부는 아직 세계에 자국의 힘을 드러낼 생각이 없었다. 좀 더 완벽한 기회를 노리기 위해서다.
지금도 미쏠로지팀은 충분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국가의 능력자 파워 레벨은 일개 팀으로 상승시킬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진 않았다.
"아마 녀석의 처리는 미국이 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벌써 중국과 미국이 비밀리에 협상테이블을 열었다는 소리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놈의 토벌이 끝나고나면 중국에 한차례 피바람이 불겁니다."
미국 다음으로 능력자 레벨 2위의 강대국이라 자랑하고 다녔던 중국이 타국의 능력자들 손을 빌려 괴수를 처리하게 된다면 당연히 피바람이 불고도 남았다.
"정부는 더욱 힘을 키워야 할 때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의 핵심은 여러분들이죠. 그래서 말인데 다음 던전을 선정하는 작업이 좀 골치아프게 됐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는 거죠?"
보스칸 화염동굴을 클리어하고 난 뒤 일행은 본격적으로 상위 던전 공략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처음에 점찍어 놓은 3개 던전을 제외한 나머지 일반 던전을 타겟으로 말이다.
현재 정부가 미쏠로지를 위해 단독으로 지급한 던전 중 미공략된 곳은 샹굴라 대무덤 하나 뿐이었는데 기존 던전 자체의 난이도가 높아서 보류된 상태였다.
던전의 난이도에 따라 그곳에 배치된 히든 보스가 더 강력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실제로 보스칸 화염동굴에서 만난 히든보스인 피닉스는 크라켄보다 약했다.
75층에 달하는 던전을 무려 2일만에 돌파하지 않았던가. 상현이 기절하지만 않았어도 올라오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겨우 5일 밖에 걸리지 않을 시간이었다.
만약 가설이 맞는다면 상현으로서는 신중히 던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샹굴라 대무덤에서 크라켄보다 강한 초월체, 아라크네급의 신성을 지닌 보스가 튀어나온다면 대원들 중 사상자가 나오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피해를 입은 대기업들 있지 않습니까. 삼상, 엘즈, KD, 한산, 현도 말이죠. 전쟁을 불사할 기세입니다. 정보부 말에 따르면 요즘은 거의 레이드도 안하고 미쏠로지 팀에 대한 정보만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우리를 찾아내는 대로 최고 정예 전력들을 내세워 한 판 벌이려고 들겁니다."
상현은 인간들과 싸우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신체적인 부담도 인간들과 싸우는 쪽이 훨씬 더 심했다.
가령 크라켄 같은 거대 괴수를 잡기 위해서는 다크 블레이드급의 강력한 한 방 기술을 사용함으로서 단번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사방에서 달려드는 인간들을 상대하려면 잔기술을 오래동안 사용하며 지속 전투를 해야했다.
단일 개체의 초월급 괴수를 잡는 것보다 날파리 여럿 잡는게 더 힘들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피하기만 해서는 언젠가 부딪치지 않을까요?"
한솔의 말에 정석영이 입을 열었다.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저번 충돌에서 SJ가 전력을 보존하지 않았습니까? 삼상과 SJ를 중심으로 파가 갈리고 있습니다. 저번에 피해를 입은 팀들의 대부분이 삼상에게 붙었고 소수 기업이 SJ쪽으로 돌아섰는데 덩어리만 보면 삼상쪽이 유리한 상태죠."
만약 둘이 붙어서 서로 큰 피해를 입는다면 더 이상 미쏠로지를 건드릴 세력은 한국에 남지 않게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국가 안보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음."
오가는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던 백종현이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어차피 미쏠로지 인원만 가지고는 전국의 국토방어를 담당하는 것은 무리지 않습니까. 차라리 그럴바엔 비교적 감정이 덜 얽힌 SJ쪽에 정부가 힘을 실어서 반대편을 제거해 버리는게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SJ에 힘을 실어줘서 삼상 중심의 능력자 파벌을 두동강 내자는 소리였다.
"그렇게 된다면 현재 대기업 공격대가 반 이하로 줄어들겠지만 한국 전체 방어를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능력자 파워가 떨어지진 않겠죠. 우리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삼상편 능력자도 쓸어버리게 되는 셈이니 일석 이조 아닙니까?"
"좋은 의견이지만 그렇게 하려면 한 가지 문제가 있죠."
SJ에 어떻게 힘을 실어주느냐 하는 것이었다. D.SWAT의 인원들을 비밀리에 투입하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세력이 밀리기 시작한 SJ를 지원하려면 결국 미쏠로지가 나서야만 했는데 그것은 결국 정체를 드러내자는 소리와 같았다. 그렇게 되면 미쏠로지의 배후에는 정부가 있다는 것이 드러날테고 그 다음은 국가 기반을 흔드는 10대 기업의 보복이 남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원래 계획대로 밀어붙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능력자들이 도심에서 충돌한다면 엄청난 피해가 일어날 터, 상현은 피해를 감수하기로 결정했다.
"미쏠로지가 삼상 편에 선 10대 기업의 주력 능력자들을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지상 레이드에 나타나면 놈들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오겠죠."
그러나 세상 만사 뜻대로 되진 않는다고 했던가. 바로 다음날 저녁, 일이 터지고 말았다.
향후 행방에 대해 가닥을 잡은 바로 다음날, SJ 정규 공격대 본사건물이 테러를 당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들의 습격으로 건물 내부에 있던 SJ측 능력자들이 전원 몰살당했으며 더욱 충격적인 것은 신궁 엄충호가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검성과 더불어 한국 최고의 딜러라 불리던 그가 하루아침에 싸늘한 시신으로 변한 것이다.
모든 채널에서 이 사건을 긴급속보로 내보내는 중이었고 기사 내용에 시민들은 경악했다.
대기업 능력자들이 품고 있던 불안요소가 터지는 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능력자 레벨이 한국보다 높은데 괴수한테 털리는 중국..
능력자 레벨은 중국보다 낮은데 심각한 막장이 벌어지는 한국..
박현도 같은 망나니가 사람 치고 다닐 때부터 이 사회는 문제가 있었죠.
-p.s 환상현 : 통장에 잔고도 많은데 장기팔이 안하면 안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