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1 회: 신들의 비밀, 그리고 스카디 -- >
중국의 유명 방송사들을 포함해 세계의 많은 외신들이 레이드 현장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몰려들었다. 저번 토벌 때는 안전을 이유로 중국정부가 허가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촬영을 허락했기 그 수가 대단히 많았다.
물론 사전 인터뷰 같은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그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생한 토벌 진행을 담을 수 있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할 따름이었다.
"돌격!"
상현이 돌격 신호를 내리자 미쏠로지 대원들이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중 단 두 명 만이 무리에서 이탈해 다른 방향으로 꺾어져 나갔는데 이수연과 스카디였다.
공주님 안기를 하듯 스카디를 가슴에 안고 외곽을 달리는 이수연의 임무는 전투가 끝날 때까지 그녀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스카디라고 합니다. 나이는 열일곱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환상현의 적극 추천으로 스카디의 미쏠로지 입단은 아주 빠르게 처리되었다.
그녀의 자기소개를 듣고 있던 신지혜는 벌떡 일어서서 농담이죠? 를 연발했다. 신지혜 역시 열일곱 살로 스카디와 동갑(가짜 나이지만)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잘 봐줘도 스카디는 중학생 외모였던 탓에 그녀는 강한 불만을 토로했지만 어쩌겠는가. 본인이 열일곱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는데 소용 없었다.
그녀의 나이가 열일곱이 된 것은 사실 상현이 많이 배려해줬기 때문이었다. 본래 상현이 추천한 나이는 열 다섯이었는데 팀의 막내가 된다는 소리에 스카디는 절대 그럴 수 없다며 가장 막내인 신지혜의 나이에 맞추게 된 것이다.
"스카디는 냉기 능력과 냉기속성 에너지 드레인이라는 특수능력을 지닌 복합능력자야."
꽤나 희귀하다는 복합능력자 중에서도 쓸만한 전투유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원들이 박수를 쳤다.
그녀의 능력이 프로스트 자이언트 토벌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다들 짐작하겠지만 우리는 타 공격대가 했던 것처럼 정석으로 프로스트 자이언트를 공략할거야. 단, 여기 있는 스카디가 프로스트 자이언트의 에너지를 흡수해 재생을 막을 테니까 무한정 레이드를 하게 될 거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브리핑을 같이 듣고 있던 류이페이는 적잖이 놀랐다. 단순히 생각하면 냉기 속성만을 흡수할 수 있다는 스카디의 유틸은 보통의 레이드라면 별 소용이 없어보였지만 이번 토벌에서만큼은 엄청난 도움이 될 터였다.
보이지 않는 손이 꼭 한국팀을 돕는 것처럼 여겨졌다.
재후를 비롯한 원거리 딜러진의 마법이 빛살처럼 날아 프로스트 자이언트의 얼굴을 때렸다.
쿨쿨 자고 있는 거인의 얼굴을 가장 먼저 노린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공격이었다. 그동안은 스카디의 힘을 빌린 엄청난 재생력으로 신체 어느 곳이든 순식간에 재생되는 탓에 문제가 심각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얼굴을 얻어맞은 거인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더니 주변의 건물들을 닥치는 대로 손에 잡아 사방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방송국 인원들이 날아오는 건물 잔해를 피하기 위해 대소동이 빚어졌다.
"효과가 있어요. 재생을 하지 않아요!"
한솔이 외쳤다. 미쏠로지 팀의 선제공격으로 코가 무너진 거인은 엄청난 분노를 토해내며 거대한 냉기 브레스를 뿜어내 사방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산개!"
상현이 외치자 다들 당황하지 않고 훈련 받은대로 사방을 향해 흩어졌고 거대한 얼음 기둥은 빈 대지 위를 때리며 도로를 완벽하게 뒤집어 엎었다.
빌딩이 무너지고, 도로의 거대한 아스팔트 조각이 공중으로 튀어오르며 떨어지는 전장.
대원들이 목숨을 걸고 공격을 하는 동안 이수연의 품에 안겨있던 스카디는 프로스트 자이언트 쪽으로 손을 내밀고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이 푸른빛으로 번쩍이더니 거대한 마력의 기류가 프로스트 자이언트의 전신으로부터 튀어나와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급속도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미리 주의를 받긴 했지만 엄청난 냉기가 스카디로부터 뿜어져 나오자 이수연은 깜짝 놀라며 더욱 전속력으로 달렸다.
일행을 공격하던 프로스트 자이언트의 관심이 그녀에게로 돌려졌던 것이다.
"꺄악!"
이수연은 비명을 지르며 죽어라 염력을 운용했고 한바탕 목숨을 건 술래잡기가 벌어졌다.
"조금만 버텨요!"
일행들은 전력으로 도망치고 있는 이수연에게 달라붙는 프로스트 자이언트의 속력을 늦추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자이언트의 다리를 박살내기 위해 최고급 마법 화살이 하늘을 갈랐고 근접 딜러들의 묵직한 검기가 번쩍이며 불꽃을 튀겼다.
그리고 건물의 옥상 위, 토벌을 시작했을 때부터 머리 위로 검을 치켜들고 힘을 충전시키고 있던 상현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들끓기 시작했다.
마력이 대회전을 시작하자 아이리도 그에 맞춰 화염의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중국에 온 동안 약 3일에 걸쳐 만들어낸 새로운 기술이 지금 막 선보이려는 참이었다.
"저쪽, 저쪽으로 날아봐."
눈치 빠른 기자들은 옥상위의 상현이 심상찮은 기세를 뿜어내고 있다는 것을 파악, 그쪽으로 헬기의 방향을 선회했다.
상현의 주변으로는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며 사방을 달구고 있었다. 얼어붙은 도시에 그가 서 있는 자리만 눈이 전부 녹아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으니 뭔가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어둠의 힘을 받은 불이여."
상현의 입이 열리자 주변의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만약 근처에 주문을 외던 마법 능력자가 있다면 마력을 제어하지 못해 큰 부상을 입었겠지만 마력을 자유자재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상현에게는 오히려 기술의 위력을 높이는데 유리한 이점으로 작용했다.
"모든 것을 사르는 무한의 불꽃으로 내 앞의 부정한 것을 지울지어다."
아이리의 성화가 급속도로 상현에게 빨려들어가며 은색 검에 엄청난 화염이 솟구쳤다.
기존에 쓰던 붉은 장검은 마음에 들었었지만 블랙드래곤과 결전을 치루며 깨져버린 탓에 새 무기를 들고온 것이다.
"플레임 아레나!"
상현의 어둠의 힘과 아이리의 불의 힘이 대단한 기류가 일대를 휩쓸었다. 곧이어 폭음과 함께 검붉은 섬광이 검끝으로부터 뿜어졌다.
도시의 상공을 번쩍 가르는 그 힘은 마치 검푸른 새벽을 밀어내는 태양처럼 프로스트 자이언트의 주변을 물들이더니 소리없이 명멸하며 흩어졌다.
쿠구구구-
하반신을 정통으로 직격당한 얼음 거인이 서서히 주저앉기 시작했다. 다리가 부서져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된 것이다.
그야말로 대단한 위력,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전 세계의 능력자와 시민들이 경악했다.
토벌 시작부터 약 10분.
10분 동안이나 힘을 충전시켜야 한다는 것은 기술로서는 심각한 단점이었지만 신성력을 개방하지 않고도 이런 위력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큰 수확이라 할 수 있었다.
"수고했어."
성공적으로 타격을 준 것을 확인한 상현은 잊지 않고 보석을 꺼내 아이리에게 먹였다.
"자 그럼 가보실까."
마무리를 짓기 위해 빌딩 벽을 타고 내려간 상현이 프로스트 자이언트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상현이 거인에게 막 달려들었을 때는 능력을 풀로 가동한 이수연이 헥헥거리고 있을 때였다. 때마침 타이밍 좋게 상현이 놈의 다리를 부숴놓지 않았다면 기력이 달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상현이 가세하자 근접딜러들의 딜량이 폭발적으로 올라갔다. 원거리 딜러들은 충격의 여파가 튀지 않도록 머리쪽을 겨냥했고 근접 딜러들은 무너진 다리쪽을 집중 공략했다.
그러나 반항이 만만치 않았다. 걸어다니지 못하게 되자 더욱 난폭하게 굴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맞지는 않더라도 공기를 진동시키며 머리 위를 스치는 직경 수십미터의 주먹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근접 딜러는 간이 커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었다. 원거리 딜러와 달리 직접 적과 맞붙어야 하는 탱커와 근접딜러들이 받는 압박감은 상상 초월이었다.
보통 S급 장비를 풀로 세팅한 상위 탱커라면 6급 정도의 괴수의 공격을 정통으로 받더라도 한방에 죽진 않았다. 한방을 버틸 수 있다면 힐러들이 힐을 할 시간을 충분히 벌 수 있지만 8급 이상에 해당하는 녀석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엄지연씨! 피해요!"
상현이 하늘에서 방향을 틀어 내려찍히는 프로스트 자이언트의 주먹을 보며 외쳤다.
그녀는 쏟아지는 얼음 결정이나 원거리 딜러진의 마법 공격에 자잘한 피해를 입은 탱커들을 치료중이었는데 놈이 공격을 돌려 그녀에게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아!"
깜짝 놀란 엄지연을 이주혁이 달려들어 잡아채는 순간 김재식과 김현성, 그리고 미쏠로지 B팀의 탱커 셋이 붙어 거인의 주먹을 받았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듯이 탱커 다섯이 힘을 합치자 강한 거인의 공격을 간신히 받아낼 수 있었다.
"힐!"
"리커버리!"
단번에 무너지기 직전까지 간 탱커들에게 힐이 쏟아졌다. 성하나와 신채은, 그리고 엄지연을 포함한 B팀의 힐러 셋이 힐의 폭풍을 일으켰다.
미쏠로지 대원들의 몸놀림이 워낙 뛰어나서 힐을 줄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위기가 닥치자 마력을 대량으로 풀어 힐을 폭발시킨 것이다.
"다크 프레셔!"
주먹을 휘두르느라 상대의 상체가 낮아진 틈을 타 상현이 놈의 얼굴에 암흑공격을 집어넣었다. 거대한 어둠의 손톱이 거인의 얼굴을 긁고 지나가더니 엄청난 균열과 함께 얼굴 반쪽이 부서져 내렸다.
"우와!"
얼굴이 부서졌다는 것은 보통의 레이드에서 괴수의 숨통이 끊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거인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고 환호하던 미쏠로지 팀의 입가에서 웃음이 빠르게 사라졌다.
"안죽었잖아?!"
"아무래도 핵을 완전 파괴하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모양인데."
투명한 프로스트 자이언트 몸통 중앙에 보이는 크고 아름다운 결정체, 핵으로 짐작되는 것을 파괴해야 한다는 소리에 대원들은 힘이 절로 빠졌다.
다리하나를 끊고 머리 반쪽을 부수기 위해 들인 노력에 벌써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일, 그들은 이를 악물고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다시 마력을 충전하겠습니다. 시간을 벌어주세요."
상현은 다시 한 번 대공격을 준비하며 뒤로 물러섰고 대원들이 거인의 시선을 분산시키며 주의를 끌었다. 지루한 레이드의 시작이었다.
거인 토벌을 시작한지 2시간.
"쿠워어어-."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바닥에 쿵 하고 쓰러진 거인은 더 이상 움직이자 않았다.
토벌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를 자르고 시작했다는 걸 감안하면 정말 질릴 정도의 생명력이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세계 외신들은 다른 의미로 질려 있었다.
히드라를 토벌할 당시 에딕손 공격대의 토벌시간은 1시간 30분, 그러나 당시 공격대의 인원수는 무려 100명이나 됐다.
미쏠로지는 겨우 30명의 인원으로 히드라보다 더 강하다고 평가되는 프로스트 자이언트를 2시간만에 토벌한 것이다.
세계 최고 공격대의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급류를 타고 인터넷에 퍼지기 시작했다.
"한마디만 해주세요! 한마디만!"
기자들의 물살을 가르며 검은 정장차림의 보디가드들이 미쏠로지 팀이 나갈 수 있도록 길을 텄다. 기자들은 단 한마디라도 따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요즘은 보디가드들도 전부 능력자로 구성된 시대였는데 그들을 밀치고 뛰쳐나올 정도로 기자들의 기세가 매서웠다.
대체 일반인이면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오는 건지 의아할 정도였다.
수송헬기를 타고 무사히 처음 묵었던 공격대 전용의 호텔에 도착한 일행은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유일하게 멀쩡한 대원은 이수연의 품에 안겨 전장을 돌아다닌 스카디 뿐이었다.
오히려 그녀는 지나치게 쌩쌩했는데 프로스트 자이언트의 힘을 빨아들여 조금이나마 기력을 회복한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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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브라니...이거 뭐 특별한 날은 아니죠? ㅎㅎ
연참준비나 하러 가겠습니다...
메리크리스마스 인사는 내일 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