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2 회: 신들의 비밀, 그리고 스카디 -- >
약 6시간 정도를 자고 일어난 대원들은 팔짱을 끼고 득의양양한 웃음을 짓고 있는 스카디를 보며 눈을 비볐다.
"스카디...씨?"
절로 씨 자가 붙게 만드는 이유는 불과 오전만 해도 중학생처럼 보였던 스카디가 조금 더 커졌기 때문이었다.
분명 커진 것이 확실했다. 원래부터 장발이라던지 늘씬한 체형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볼륨감이 살아나더니 이제는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몸이 되어 있었다.
"원래 이 나이 때 소녀는 눈 깜짝할 새 자란다고들 하니까."
대원들의 믿을 수 없다는 시선을 받은 스카디가 뽐내듯 말했다.
'그건 콩나물처럼 아침과 저녁이 다른 사람을 두고 쓰는 표현은 아닐 텐데....'
대원들은 다 같은 생각이었지만 워낙 해괴한 능력을 가진 능력자들이 많다보니 그러려니 했다.
대원들 중에서 가장 힘겹게 몸을 일으킨 것은 상현이었다. 새로 개발한 기술을 교전중에 무려 다섯 번이나 썼더니 체력적인 부담이 굉장히 심했다.
만약 신기술이 아닌 다크블레이드를 다섯 번 사용했다면 체력적인 부담은 커녕 피를 토하고 죽었을 확률이 백퍼센트에 가까웠다.
안개가 낀 듯 어지러운 머릿속을 맑게 하기 위해 상현은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 뒤를 스카디가 따랐다.
"난 네가 무척 강하길래 신인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그녀의 말에도 상현은 가타부타 대답이 없었다.
사람 한 명 없는 텅빈 수영장 근처를 배회하던 상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프로스트 자이언트에서 흡수한 힘으로 몸을 키운 거야?"
"응. 다들 너무 어리게 보는 것 같아서 적당하게 키웠지. 나 예뻐졌어?"
"글쎄. 난 인간의 미적 기준을 아직도 잘 모르겠더라고."
"그럼 네 기준으로 대답하면 되잖아."
스카디는 수영장의 물을 바싹 얼리더니 그 위로 천천히 미끄러지며 살랑살랑 움직였다.
"힘은 어느 정도나 흡수했어?"
"아주 조금."
본래 퍼주긴 쉬워도 되찾긴 어려운 법이다.
프로스트 자이언트는 능력자들의 무수한 공격을 받아내며 재생하는데 스카디의 힘을 이미 다 써버린 상태라 달리 흡수할 만한 것도 없었다.
"오늘 봐서 알겠지만 우리 공격대는 평범한 인간들이 잡기 어려운 괴수들을 잡는게 일이야. 당연히 던전도 많이 돌아다니는 편이고 그러다보면 북구 신족의 봉인도 많이 찾을 수 있겠지."
"착한 인간들인 것 같아 마음에 들었어."
운동화를 신고 더블 악셀 점프를 하며 스카디가 빙글빙글 얼음위에 꽃무늬를 새겼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뭐든지."
"넌 다른 세상에서 온 반신이지?"
"그래."
"마신들하고 같은 세상의?"
스카디는 상현이 블랙드래곤하고 맞붙었을 때부터 그가 다른 세계에서 온 신이며 마신과 같은 차원에서 넘어왔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에게선 단 한번도 맡아본 적 없는 이질적인 신성의 냄새가 났던 것이다.
"난 마신과 전쟁중이었거든. 아마 그들이 날 쫓아서 이 세계에 온게 아닐까 생각중이야."
"그래? 그럴만큼 세 보이진 않는데."
스카디는 상현이 반신 치고는 강하다고 인정했지만 마신의 강함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살고 있던 아스가르드로 올라오는 마신의 군단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그들이 부리는 하위 신성들마저 압도적일 정도로 강했던 것이다.
그런 마신들이 굳이 상현을 잡으려고 떼거지로 몰려다닐 이유는 없어보였다.
"이래뵈도 전성기땐 한가닥 했던 몸이야."
"회복하는데 얼마나 걸리는데?"
스카디가 묻자 상현의 말문이 턱하니 막히고 말았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최소 백오십 년."
"꽤 오래 걸리네? 재수 없으면 그 전에 마신들한테 잡혀서 죽겠는걸...그래도 당분간은 괜찮을 거야. 우리 북구 신족이 놈들의 대장격으로 보이는 신에게 꽤나 타격을 줬으니까.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마검신?"
스카디의 말에 상현은 눈을 부릅뜨더니 살기를 피워올렸다.
"마검신이라고?"
"뭐야. 무섭게 왜그래."
차원틈으로 도망치기 직전 수많은 마신들을 앞세워 연합공격을 펼치고 결국엔 힘이 빠진 상현의 심장에 최후의 일격을 날린 놈이었다.
정말 가까스로 차원 이동의 술법을 펼쳐 도망칠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꼼짝없이 영멸할 뻔 했던 위험천만한 기억이 상현의 뇌리에 아직도 선명했다.
"놈은 혼자였어?"
"강하더라. 혼자서 북구신족을 다 박살내고 우릴 전부 봉인시켰으니까."
그녀의 말에 상현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마검신의 실력은 자신이 직접 겨루어봐서 잘 알고 있었다.
일대일로 붙는다면 전성기의 상현은 마검신에게 결코 질 일이 없었다. 그런 녀석이 혼자서 북구 신족을 다 쓸어버렸다면 봉인석에서 지구상의 신들을 전부 다 찾아 구해내도 마신의 세력을 이기기 쉽지 않을 듯 했다.
봉인석에서 나오면 약해진 상태라는 것을 감안해야 하는 것이다.
"지구의 신들은 무척 약하네."
"라그나로크 때문에 그래. 우리 쪽은 다들 태어난 지 얼마 안됐으니까. 그래도 그리스 쪽은 우리보다 사정이 좋아. 늙은이들이 많으니까."
스카디는 묻지도 않은 신들의 사정을 자세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제우스만 있었어도 그렇게 허무하게 지진 않았을 거야."
제우스라면 그리스의 주신이 아니던가.
"어디로 갔는데?"
"다른 차원으로 떠났어. 새로운 모험을 하고 싶다고 헤라 여신이랑 떠난지 천 년도 넘었어."
전승에 의하면 올림포스의 신들을 전부 합친 것 만큼이나 제우스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대장이 자리를 비웠으니 제대로 된 반항을 하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당장 미쏠로지만 해도 상현이 없어지면 전력이 절반 이상 뚝 떨어질 것이 뻔했다.
"이집트도 늙은이들이 많긴 한데 거긴 너무 늙어서 정신이 다들 오락가락해. 아마 봉인을 당하는지도 모르고 봉인석 안에 자러 들어갔을걸."
스카디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 수록 믿을 건 자신 뿐이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네 생각에 마신들이 힘을 회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어느 정도일 거라고 생각해?"
"음."
상현의 질문에 스카디는 신중하게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길면 십 년 정도? 짧으면 좀 더 빠를지도 모르지."
"그리 긴 시간은 아니네. 그건 그렇고, 한 가지 네게 부탁할게 있는데...."
십 년이면 자신이 각성을 하는 것은 무리더라도 대원들을 강하게 단련시켜 줄만한 시간은 됐다. 상현은 자신이 생각해둔 계획을 서둘러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방으로 향했다.
날이 밝자 중국 정부와 미쏠로지팀은 회의실에 모였고 간단한 축하 인사를 주고 받으며 중국 레이드의 마무리 단계를 진행했다.
"이번에 프로스트 자이언트에서 얻은 마력핵은 잔해마력이 310만K로 측정되었습니다."
류이페이가 유창한 한국어로 레이드 결과를 대원들에게 알렸다.
본래 500만 급으로 예상되던 핵의 출력이 크게 낮아지자 정석영을 비롯한 한국 관계자들은 실망한 눈치가 역력했다.
그러나 상현은 이미 핵의 출력이 줄어들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기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프로스트 자이언트의 잔해마력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타났던 것은 옆에 있는 스카디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막대한 신성력을 불어넣어 거인의 재생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으니 그런 수치가 나온 것이다.
"아울러 저희 정부에서는 기존에 약속드렸던 토벌에 대한 보상금액으로 미쏠로지 여러분께 5천억을 지급해드릴 예정입니다. 메신저를 확인해 주십시오."
다들 메신저를 확인하자 개인당 167억이라는 돈이 입금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환상현에게는 보너스 옵션이 붙어 200억의 돈이 입금되어 있었다.
"다시 한 번 중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류이페이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중국 정부의 관계자들도 일행을 향해 고개를 숙여 감사함을 표시했다.
국가 기반이 휘청거릴 정도의 위협이었다. 그것을 목숨 걸고 막았으니 대영웅이라 할 수 있었다.
속마음 같아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쏠로지 팀을 중국에 주저앉히고 싶었지만 워낙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이라 곧바로 손을 쓸 수는 없었다.
앞으로 한국은 미쏠로지로 인해 엄청난 관심을 받게 될 터, 당장 그들을 붙잡을 수 없다면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도 최선이었다.
마력핵이 워낙 큰 가치를 지닌 물건이기에 공항도 못 빠져나오고 갇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들은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세계의 열렬한 반응보다도 더 뜨거운 것이 국내 반응이었다. 전세기를 타고 나름 비밀리에 입국했는데 어떻게 알고 온건지 기자와 시민들이 만리장성을 쌓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불쌍하게도 그들은 미쏠로지 대원들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 전세기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헬기로 갈아타고 공항을 떠버렸으니 볼 수 있을 리 없었다.
"환상현 씨, 잠시 얘기좀 할 수 있을까요."
숙소로 돌아온 상현을 붙잡은 정석영은 곧바로 그를 방으로 끌고 들어가 조용히 대화를 나누길 원했다.
"자, 이제 중국에서 저한테 하셨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군요."
"마력핵에 관련된 이야기 말이죠?"
"대체 그걸 어디에 쓰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설마 해외에 불법 수출이라도 하시려는건 아닐테구요."
마력핵은 비밀리에 구해진 크라켄핵을 제외하면 공식적으로 단 두 개 밖에 나온 적 없는 초 희귀물품이었다. 당연히 처분할 루트를 마련하는 것조차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터였다.
"정석영 검사관님. 저를 믿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저는 언제나 교주님을 신뢰하죠."
"가까운 시일 내에 인류가 감당하기 힘든 위협이 닥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때가 되서 대비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상현의 말에 정석영의 얼굴이 심하게 어두워졌다. 신이 하는 말이었으니 엄청 위험한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그거 설마 교주님이 믿는 신이 내린 예언입니까?"
"예. 빠르고 늦음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위협은 분명 옵니다."
"핵이 있으면 그 위협에 대처할 수 있다 이 말씀이시죠?"
"예."
상현이 신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이건 고민할 것도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국내 최고의 능력자임과 동시에 신의 자격을 지니고 있는 환상현이 하는 말이라면 그 무게감이 이 세상 어느 인간이 하는 말보다도 무거웠다. 가볍게 흘려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중국에서처럼 공개 레이드를 하고 난 뒤의 핵이라면 무리겠지만 던전에서 나오는 핵을 빼돌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상현과 자신이 입을 맞추면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문제였다. 문제는 그것이 얼마만큼의 효과를 보여주느냐는 것 뿐이었다.
"대충 얼마나 들어갈 거라고 보십니까?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핵의 개수 말입니다."
상현과 스카디를 제외하고 핵이 개인당 하나씩은 필요했으니 열여섯 개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리고 그 답을 불러주자 정석영이 까무러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재후야."
"네."
자신의 방을 찾아온 상현을 보며 재후는 무슨 일이냐는 표정을 했다.
"형이 많이 고민하고 생각한 건데 말이야."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요."
"너 당분간 훈련좀 해야겠다."
훈련이라는 말에 백종현의 지옥훈련부터 떠올린 재후는 안색이 급격히 안좋아졌다. 그의 안색이 변한 이유를 알아차린 상현은 종현 선배에게서 받는 훈련은 아니라고 미리 말해줬다.
그것만으로도 구원을 받은듯 재후의 표정이 금새 평온함을 되찾아갔다.
"널 가르칠 사람은 스카디야."
"예?"
전혀 뜻밖의 인물이 나오자 재후는 조금 당황한듯 했다.
"형 저 7레벨 능력자에요."
"알아. 하지만 스카디의 현재 마력을 다루는 수준이나 냉기 능력에 대한 이해도는 지금 너보다 훨씬 높아. 분명 배울점이 많을 거야."
"형이 그렇게 까지 말하면 확실하겠죠."
상현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재후였다.
"그리고 한 가지 명심할게 있는데 앞으로 스카디를 대할 때는 스승님으로 모셔."
"그, 그렇게까지 해야되요?"
그녀가 신들 중에는 꽤나 유연한 사고를 가졌다고 해도 재후가 어린애 대하듯 한다면 지식을 전수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고 심한 경우엔 재후가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남들 앞에서는 상관없지만 둘만 있을때라도 격식을 지키란 이야기야."
"알겠어요."
재후에게 확답을 두 번이나 받아낸 상현은 그를 데리고 스카디를 찾았다. 이제 막 자신의 방을 배정받아 푹신한 침대 위를 뒹굴고 있던 스카디는 상현이 재후를 데리고 들어오자 의미 심장한 웃음을 짓더니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의 가르침을 받는 것을 영광으로 알거라~."
한껏 거드름 피우는 듯한 자세에 재후의 입술과 눈썹이 씰룩거린 것은 사소한 문제였다.
============================ 작품 후기 ============================
제우스 : 차원여행은 나 혼자 다녀오면 안될까...?
헤 라 : 헛소리!
제우스 : (시무룩)
마검신은 갑툭튀한 신이 아니라 1화에 반짝 출현했죠. 기억 못하시는 분들이 더 많겠지만...
본래 반신이 주인공이기에 앞으로도 신과 얽히는 줄거리가 많이 나올 예정인데 내용이 산으로 간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 듯 합니다.
혼자서 생각해주시는건 상관없지만 저도 폭참으로 살얼음판을 걷는 중인지라 공격적인 코멘트에 일일이 대응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요즘 잘 읽고 있던 작품 하나는 벌써 코멘트 문제로 크게 터졌더군요...
되도록이면 원색적인 비난은 하지 말아주셧으면 합니다.
이 글이 독자님들과 제게 해피해피한 장소가 될 수 있길 바라며...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오전 혹은 오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p.s 이번화 한줄 요약. 스카디 볼륨~~ UP!!
-p.s2 형 저 7레벨 능력자에요는 사실 유명한 패러디인데...하드웨어는 메이자리그급이라는 그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