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5 회: WEC 개막 -- >
플로리다에 세워진 거대한 종합운동장, 관객 8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거대한 스타디움의 주변엔 발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세계 최고의 팀들을 직접 볼수 있다는 점 때문에 WEC 본선 대회 입장권은 암표로도 구하기 힘들었다. 경기장 바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앞에도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이처럼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자 주최국인 미국은 보안에 상당한 신경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1시 방향, 갈색 트렌츠 코트에 선글라스를 낀 남자. 붙잡으세요."
주변을 관찰하던 경호원 들이 서로 의견을 전달하며 의심이 갈만한 사람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능력자들 중에서는 단순히 전투계열 능력을 벗어나 다른 쪽으로 도움이 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 가령 예를 들면 테러를 일으키기 전에 가지는 인간의 격한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자들도 있었다.
전투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각종 수사나 테러 예방엔 무척 도움이 되는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이거 놔!"
아니나 다를까 붙잡힌 남성의 몸에서는 위험한 폭발물이 발견 됐다. 자세한 것은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과격한 테러를 일삼는 사이비 종교 단체의 소행이라 생각됐다.
디멘션홀이 출현하고 난 후, 세상의 종말을 예고하며 능력자들은 모두 악마의 힘을 빌려쓰는 거라고 주장하는 헛소리를 내세우는 종교도 소수나마 있었다.
능력자 때문에 디멘션홀이 나타났다고 까지 생각하는 인간들이 있었으니 그들에게 WEC는 테러를 벌이기 아주 좋은 무대로 보였을 것이다.
"와아-!"
귀를 먹먹하게 만들 정도의 함성이 뒤에서 들려오는 것을 느끼며 상현을 비롯한 한국 공격대는 특별석에 자리를 잡아 경기를 관람중이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예선전 마지막 경기들이 치뤄지고 있었다.
레이드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WEC에서 도입된 장비는 사람이 들어가 몸을 누일 수 있는 거대 캡슐이었다.
흔히 가상현실 게임을 체험을 할 때 쓰는 그런 물건이었는데 공간구현 능력자들의 힘이 더해져 캡슐안의 능력자들은 실제와 같은 괴수를 눈앞에 둘 수 있는 기술이었다.
"저거 훈련용으로 엄청 좋겠는데? 한국은 저런거 못만드나?"
"가동하는데 다양히 많은 종류의 능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 숫자도 많아서 미국 아니면 제작에 엄두도 못낸데요. 기껏 만들어 둬도 작동을 못 시킬 정도라더군요."
고통, 전장을 움직이는 감각, 그 모든 것이 실제에 가깝게 제작된 공간 속에서 공격대는 땀을 흘리며 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미쏠로지팀이 지켜보고 있는 경기는 포르투갈과 가나의 경기였다.
의외로 가나가 선전중인 탓에 관객들은 가나가 포르투갈을 따라붙을 때마다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스타가 없다면 강자보다는 약자가 이변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호응을 얻는 법이다.
WEC에서 팀을 떠나 맹목적인 응원을 받을 정도의 인물은 아직 에딕손 뿐이었다. 그의 인기는 전 세계적이었으니 말이다.
삐비빅-
"와아아!"
두 개 설치된 대형 스크린은 각기 팀이 진행중인 레이드 영상을 전송하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시간도 함께 표시되고 있었다.
방금 전 포르투갈 팀의 타이머가 10분 추가되자 가나와의 격차가 더 줄어들었고 관객들은 경기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WEC의 룰은 단순했다.
각 팀은 동일한 괴수를 사냥한다. 레이드에 걸리는 시간이 적은 팀이 승리. 단, 레이드 중에 대원 한 명이 리타이어 할 때마다 10분이 타임스코어에 추가 된다.
능력자들의 구현기술 덕에 VRT라 불리는 캡슐 기술은 괴수의 데미지와 능력자가 버틸 수 없는 데미지를 실제와 똑같이 측정해서 그가 사망할 인원인지, 힐을 받고 전투를 지속할 수 있는 인원인지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빨리 잡는게 능사가 아니라 얼마나 안전하면서도 빠르게 잡을 수 있는 지가 관건이었다.
삐빅-
잘나가던 포르투갈 쪽의 힘이 살짝 무너지고 있었다.
그들이 상대하는 괴수는 7급 괴수 중에 가장 어려운 대상 중의 하나라는 콜로서스였다.
검과 방패를 든 거대한 청동거인은 무자비하게 공격대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위험한 공격은 효과적으로 쳐내면서 힐러진을 먼저 타격하는 지능이 보통이 아니었다.
"어쩌면 프로스트 자이언트보다 더 짜증나겠는데."
강력한 원거리 공격은 없었지만 전투를 할 때 어떤 방식으로 적을 잡아야 하는지를 아는 놈이었기에 더 긴장해야 했다.
캡슐 속에 몸을 담고 싸우는 공격대원들은 상대 국가 공격팀이 어떤 방식으로 레이드를 진행중인지, 혹은 끝났는지를 전혀 확인할 수 없기에 그저 눈앞에 주어진 목표를 처리하는 것에만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가나 공격대는 최후의 최후까지 분발했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어떻게든 따라붙고 있던 그들은 콜로서스가 대검을 던지는 예상치 못한 변형 패턴에 다섯 명의 대원이 순식간에 전사하면서 차이가 격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죽은 대원들이 전부 힐러였던 탓에 전투 유지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 문제였다.
결국 100여명의 인원이 국가의 자존심을 걸고 선전했지만 포르투갈과 타임스코어가 5시간이나 벌어지고 말았다.
경기 시간은 1시간 정도였지만 사망자가 많이 나와서 기록상 그렇게 측정된 것이다.
진행자가 앞으로 나서서 포르투갈의 승리를 알리자 승리를 축하하는 경쾌한 박수소리가 가득했다.
캡슐 밖으로 나온 포르투갈 팀은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뿌듯하다는 표정이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관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가슴벅찬 표정을 지은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돌려 특별석에 위치한 한국팀을 주시했다.
남자의 이름은 로페즈, 포르투갈 공격대 1군 공격대장인 그는 중국에서 자국팀이 겪은 수모를 잊지 않고 있었다.
2, 3군이라고는 하지만 단 한 명의 남자에게 40명이 넘는 인원이 박살이 났고 그 광경을 전 세계 팀이 지켜봤다.
팀 미쏠로지의 공격대장 환상현, 그는 중국에서 프로스트 자이언트를 토벌하며 세계 최고 능력자 대열에 합류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받은 치욕이 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반드시 복수한다!'
드디어 본선에 진출하는 16강 팀에 포르투갈은 합류를 마쳤고 1회전의 상대는 바로 한국이었다.
서로 주먹질을 하지 않고도 승패를 겨룰 수 있는 최고의 무대.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사실 혼자서 41명이나 쓸어담는 괴물이 속해있는 팀을 상대로 무력 대결을 벌이라고 했으면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레이드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한국팀의 기존 인원은 29명에 지나지 않았고 나머지는 어디서 구해왔는지도 모를 어중이 떠중이 뿐이었다.
손발을 맞춰볼 시간도 없었을테니 우왕좌왕하다가 대원을 잃고 엄청난 시간을 잃어버리게 되리라.
WEC에서 대원 한 명을 잃는 것은 엄청난 타격, 그대로 승패를 가를 수도 있었다.
10분씩 늘어가는 타임을 보면서 그들은 좌절하게 될 것이며 포르투갈이 승리하는 순간 그들의 거품이 사라지리라 로페즈는 확신했다.
"저 녀석 우리를 꼬나보는데?"
"그러네요."
로페즈와 시선을 맞부딪친 백종현은 코웃음을 쳤고 상현 역시 상대의 승리에 대한 투지를 확인했다.
"가볍게 밟아버리자고."
당장 본선이 모레부터 치뤄졌다. 육체적인 피로는 있을 수 있어도 부상을 당할 염려는 거의 없기 때문에 빠른 대회 진행이 가능했다.
"무조건 이길 생각입니다."
잠들어있는 재후까지 스카디에게 맡기고 날아온 미국 땅이다. 꼴사납게 본선 1차전에서 탈락할 수는 없었다.
그날 저녁엔 본선 진출팀을 대상으로 하는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16개국 능력자 인원만 1600명, 그들을 서포트 하러 따라붙은 인원까지 포함하면 그랜드 호텔의 넓은 홀이 가득차 보일 정도였다.
상현은 파티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이런 자리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실례라며 백종현이 그를 끌고 나섰다.
홀에 모인 사람들의 복장은 다 제각각이었지만 큰 틀은 지키고 있었다. 남자는 턱시도, 여자는 드레스였다.
준비를 하지 않은 팀에게는 미국 측에서 직접 최고급으로 지급했기에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나 어때요?"
"완전 쉣이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는 이런 때에...욱!"
티격태격하는 대원들을 보며 상현은 피식 웃다가도 이내 무표정으로 변해 주변을 살폈다. 일말의 과장도 없이 파티장의 절반 이상의 사람이 환상현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호의를 비롯한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여 그에게 복잡한 색을 다양하게 전달했다.
"안녕하세요."
애초에 파티의 목적은 염탐이 아닌 교류의 장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엄청난 숫자의 '여성'들이 환상현 쪽으로 몰려들었다. 세계 각국의 내로라 하는 미녀 대원들이 열화와 같은 관심을 보였다.
가장 먼저 견제에 나선 것은 한솔이었다.
'오빠 팔짱 끼고 있어도 되죠?'
'응?'
상현의 귀에 소곤거린 그녀는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다가오는 여성들을 맞이했다.
한솔을 보고 미녀들의 표정이 살짝 굳어진 것은 당연했다.
'분명 솔로라고 했는데?'
사소한 것까지 조사해온 그녀들은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며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능력자 메신저가 있으니 언어의 장벽은 없는 셈이었다.
"어머, 그럼 여기 계신 한솔 양과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시라는?"
가짜 연인 행세가 들통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냥 조금 '들러붙는' 팀원이었던 것 뿐이군요."
여성들은 활짝 웃으며 자신의 매력을 화려하게 뽐냈다. 외국인 대원들의 적극적인 대화를 보고 결심을 한 한국의 대원들까지 상현의 옆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쏠로지의 부족한 인원을 메우기 위한 임시계약 인원 70명에 속해있었는데 이번에 어떻게 해서든 상현의 눈에 들어 정식 대원으로 발탁되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그들은 애초에 외국 여성들과 목적이 달랐으니 남, 녀의 구분이 없었다.
엄청난 인기 덕에 파티장엔 상현의 구역이 따로 생긴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바로 그 때,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이 생겼고 상현의 정면으로 당당한 걸음걸이를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백색의 턱시도를 걸친 건장한 남성, 키가 상현보다 머리 하나는 큰 그의 이름은 세계 최고의 능력자로 불리는 에딕손이었다.
"반갑네. 에딕손이라고 하네."
"환상현입니다."
그의 나이가 더 많았기에 그의 말투는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었다.
"자네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네. 이번에 어떤 화려한 전투를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
"동감입니다. 저도 에딕손 씨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능력자 세계에 몸을 담고 있다면 듣지 않을 수가 없는 이름이 에딕손이었다. 상현은 그가 내민 손을 잡으며 악수했다.
'흠.'
미국에서는 힘없는 악수는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그렇기에 힘을 담아 악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능력자들의 악수는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악수 부터가 기싸움의 전초전이었으니 당연히 서로 엄청난 힘을 주기 마련이었다. 최고의 능력자 답게 에딕손의 악력역시 대단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는데 상현과 손을 잡은 그는 의외라는 기색이었다.
상현의 몸은 그리 근육질도 아니었다. 헬스로 단련해 거대한 근육을 가지고 있는 자신에 비하면 말라깽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힘은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대가 다룰 수 있는 마력의 양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근력 계열의 능력자가 아니더라도 마력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강한 힘을 낼 수 있었다.
"과연."
고개를 끄덕인 에딕손은 반드시 결승까지 올라오기 바란다며 다시보자는 인사를 건넸다. 토너먼트 형식으로 치뤄지는 대진상 결승에 가기 전까진 한국팀은 에딕손 공격대와 맞붙을 일이 없었다.
성큼성큼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상현은 주먹을 꾹 쥐었다.
방금 전까지 그와 악수했던 오른손은 고통을 호소하며 잔떨림을 일으키고 있었다.
'상상 이상이다.'
인간 중에 저렇게 강한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던 상현이었다. 이것이 자존심 싸움이란 것을 알기에 표정관리를 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눈쌀을 찌푸릴 정도의 힘이었다.
'그렇지만 우승은 내주지 않아.'
동료를 남겨두고 이곳까지 온 이상 상현은 반드시 우승을 거머쥘 생각이었다.
============================ 작품 후기 ============================
우승컵의 행방은 어떻게 될까요?
jjom님 // 테러 무섭다고 월드컵에 국가대표팀에 2, 3군 선수들이 출전하진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게다가 능력자들은 폭탄을 맨몸으로 맞아도 다치지 않는 괴물들이 수두룩...저자리의 능력자들은 대부분 7레벨 이상의 상위 능력자니까요.
댓글 추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