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나이트 레전드-77화 (77/123)

< -- 77 회: WEC 개막 -- >

삐이이익-

거대한 콜로서스가 무릎을 꿇으며 서서히 무너지자 큰 부저 소리가 울리며 경기 종료를 알렸다.

[타임 스코어 결과! 포르투갈 팀 142분, 한국 팀 62분으로 한국팀의 승리가 확정되었습니다.]

캡슐의 문이 열리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빠져나온 대원들은 손을 들어올리며 관중들의 환호를 자아냈다.

반면 포르투갈 공격대는 크게 똥씹은 표정으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그들은 콜로서스를 다 잡지도 못했을 뿐더러 한국 팀이 레이드를 끝내는 시점에서 8명이나 대원이 리타이어 된 상태였다.

복수는 커녕 개망신만 당한 셈이었으니 대회장에 더 남아있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공격대를 포함한 16강 참전 팀들은 전부 해당 경기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한국 공격대의 전투력에 놀란 분위기였다.

정예 인원 100명으로 콜로서스 62분이라는 타임스코어도 제법 준수한 편에 속했지만 놀라운 것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물론 시드를 받을 정도의 공격대들은 콜로서스를 상대로 인명피해를 내지 않겠지만 현재 한국 공격대의 임시 부대원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손발을 한 번도 맞춰본 적 없는 대원들을 데리고 저렇게 안정적으로 딜을 넣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저 환상현이란 자, 대단하군.'

각국의 공대장들은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다. 원거리 딜러진이 마음놓고 공격할 수 있을 정도의 단단함을 지님과 동시에 민첩한 몸놀림으로 괴수의 시선을 붙잡으며 파괴적인 공격을 행하는 자, 그야말로 근접 딜러의 완성체라고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근접 딜러가 만능은 아니지.'

동시에 그들은 한국팀의 약점을 떠올렸다. 만약 많은 군단을 이끌고 나타나는 레이드를 겪게 될 경우 큰 피해를 입을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아직까지 7급 이상에서 군단을 거느리고 나타난 괴수는 없었지만 5급 이하에서는 몇 번 관측된 적이 있기에 가능성은 열려 있었다.

"다음 경기도 보고 갈까? 아니면 돌아가도 좋고."

대원들을 어디로 이동시킬지를 생각하며 백종현은 상현의 의견을 물었다. 참관은 자유였으니 숙소로 돌아가 휴식을 취할 수도 있었다.

"일단 돌아갈까요?"

가상 현실 속에서 하는 실전이라고는 하지만 정신적인 피로는 남기 마련이다. 굳이 다음 사람들의 경기를 직접 지켜보고 실력이 오른다면 모르겠지만 경기는 숙소 TV에서도 볼 수 있었다.

WEC는 세계적인 대회가 되어 전 세계에 중계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별 일 없지?"

숙소로 돌아온 상현은 간만에 스카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국에 도착한지 3일이나 지났으니 안부가 물을겸 해서였다.

달칵-

통화가 연결되는 소리와 동시에 스카디의 비명이 들렸다.

"바쁘니까 나중에 전화해!"

"무슨 일이야."

설마 재후가 잘못됐나 싶어 상현은 다급하게 물었지만 뾰로롱- 뾰로롱- 하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는 것을 보니 그가 생각했던 문제는 아닌 듯 했다.

"너 설마."

뚜뚜뚜-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어지자 상현은 잠시동안 멍청하게 수화기를 들고 침묵해야 했다.

"하아."

하라는 일은 안하고 게임만 하고 있음을 확인했으니 다음에 돌아가면 연봉 삭감을 제안해야 겠다고 생각하며 상현은 침대에 몸을 뉘었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대통령 뿐만 아니라 다른 대원들 역시 WEC에 참가하고 싶다는 열망을 비쳤기에 일단 참여는 했지만 상현은 이런 보여주기식 대회보다는 당장 대원들의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더 급했다.

상급던전을 돌며 히든 보스를 잡는 데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터였다.

'국내를 다 돈 다음에는 해외를 돌아야 하나.'

국내의 상급 던전 42개에서 핵을 얻을 수 있는 만큼 얻은 다음에는 해외로 진출해야 할 것이다.

이동 거리가 있으니 속도가 국내만큼 붙진 않을 터, 마신들이 언제 침공해올지 몰랐으니 최대한 속도를 당겨야 했다.

상현은 달력을 보며 남은 일정을 체크했다. 결승전까지 무난하게 올라간다고 가정했을 경우 모든 일정을 끝마치려면 앞으로 20일이란 시간이 남아있었다.

'별 일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상현은 침대에 벌렁 누워 눈을 감았다.

무사히 8강전에 안착한 한국팀의 다음 상대는 일본이었다. 본래 150명에 달하는 직속 공격대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은 참가인원 제한에 맞추기 위해 군살을 빼고 정예만을 추려 나온 상태였다.

중국과 함께 세계 2위의 자리를 노린다는 그들의 눈빛은 저번과는 다르게 신중한 상태였다. 중국 프로스트 자이언트 레이드 당시, 일본은 한국팀을 3류 공격대 취급했었다.

그러나 토벌 직후, 그들은 곧바로 생각을 수정하며 한국을 아시아의 패권을 노리는 강력한 경쟁자로 여겼다.

훈련장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포르투갈은 환상현에게 복수의 감정을 품었지만 일본은 절대 그와 충돌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양 팀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접속합니다.]

캡슐에 몸을 맡기자 새로운 전장이 펼쳐졌다. 이번에도 같은 도시였지만 고층 빌딩은 없는 한적한 곳이었다. 대부분이 전원 주택이었으며 가끔 높은 건물이라고 해봐야 5층 정도의 연립 주택이었다.

'왠지 불안한데.'

아직 디멘션홀이 열리기 전이었지만 상현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의 이유가 곧 드러났다.

콰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입을 벌린 틈에서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리치, 7급에서 관측된 바 없다는 리치가 차원틈에서 솟아나자 일행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리치라니...."

그들이 다들 놀라는 이유는 리치의 공격수단에 있었다. 언데드 마법사, 불멸의 생명을 위해 스스로 언데드화를 감수한 고대의 마법사들은 어둠의 군단을 불러내 적을 공격하는 것에 아주 능숙했다.

언데드 병사들을 불러내서 물량전을 펼치는 것이 주특기인지라 레이드 팀에서 잡기 제일 싫어하는 놈으로 꼽히는 녀석이었다.

하물며 7급 리치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망할!"

순식간에 언데드 군대를 뽑아내며 암흑군단을 만든 리치가 소맷자락을 펄럭이자 해골병사들이 물밀듯 들이닥쳤다.

우울한 그림자를 드리운 한국 팀과는 반대로 일본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화력 중시형으로 팀구성을 마친 한국과 달리 일본은 철저하게 밸런스형으로 팀을 맞춰온 상태였다. 때문에 탱커, 근접 딜러, 원거리 딜러, 힐러의 비율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는데 드디어 백병전을 구사하는 레이드 보스가 나타난 것이다.

채채챙!

카타나를 뽑아든 일본 공격대의 검사들이 스켈레톤 워리어와 맞붙으면서 전투가 시작됐다.

VTR의 전장은 무한한 크기를 가지진 않았다. 하늘과 지평선이 있어서 무한한 것처럼 보였지만 능력자들의 재능 한계로 인해 뒤로 계속 물러서다 보면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미쏠로지 및 공격대 인원들은 무작정 후퇴를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방도가 없었다.

벌써 언데드 대부대가 탱커들의 방패에 달라붙으며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마법사들은 아군에게 보호주문과 간단한 사격마법을 쓰는 것 외에 큰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아군과 적이 엉켜 있을 때 대마법을 구사하면 오히려 아군이 더 큰 피해를 입을 확률이 있었다.

심지어 언데드 병사들은 쓰러져도 마력의 공급원인 리치가 살아있을 경우 쉽게 다시 일어서는 놈들이라 그럴 확률이 더 높았다.

"후퇴!"

무작정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분대장들은 후퇴를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캬아악!"

베도 베도 끝이 없었다. 몸을 베이고 뼈가 부서져 땅에 쓰러진 스켈레톤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개를 까닥거리며 다시 일어섰고 탱커들의 기운은 점점 빠지기 시작했다.

힐로 육체적인 부상을 치유할 수는 있어도 정신적인 피로를 완전히 회복시킬 수는 없었다.

"길을 터야 합니다."

엄지연이 말하자 상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투를 끝내기 위해서는 저 멀리서 언데드 부대를 조종하는 리치를 처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근접딜러의 비율이 조금만 더 높았어도 어떻게든 방법을 모색했겠지만 지금은 방어만 하기도 급급한 상태, 상현은 무리를 감수해야 겠다고 생각하며 아이리의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방패를 등에 지고 두 자루의 검을 양 손에 쥔 상현의 손이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초고열의 화염이 스켈레톤, 듀라한을 비롯한 각종 마물들을 잿더미로 만들며 길을 트기 시작했다.

"미쏠로지 A팀은 저를 따릅니다. 다른 분대원은 그대로 위치 사수!"

무리해서라도 소수만으로 길을 뚫으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잘못했다가 리타이어 되는 인원이 생기기 시작하면 타임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이런 촘촘한 백병전에서는 단 한 명이 쓰러짐으로 인해 도미노처럼 진형이 붕괴하는 경우가 왕왕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대원들은 오랫동안 손발을 맞춘 A팀이었고 그것이 상현이 전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최대 범위였다.

리치에게 다가갈수록 저급한 해골병사를 벗어나 더욱 강력한 마수들이 진형을 잡고 있었다.

『간다!』

리치에게 거대한 신성을 쏘아보내자 놈은 거대한 신성의 압박에 깜짝 놀라며 균형이 흐트러졌다.

"바람의 폭풍!"

거대한 바람의 폭풍이 상현의 검으로부터 솟구치며 전방의 적을 향해 포효했다. 사나운 바람에 피닉스의 불까지 겹쳤으니 그 화력이 일개 근접 딜러가 펼치는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막강했다.

물론 바람의 폭풍은 리치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암흑군단에 막혀 사라졌지만 일순간 리치에게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돌격!"

일행에게 축복을 부여한 상현이 앞서나가자 맹렬한 기세로 대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바람을 타고 달리듯 엄청난 속도였다. 게다가 신성에 휘청인 것이 영향을 줬는지 조금 전과 같은 엄청난 속도의 병력 재생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쏠로지 팀이 순식간에 근처까지 도달하자 리치는 당황하며 암흑의 서를 펼쳐들었다.

"죽음의 권능!"

콰드드득-

리치의 손에 들린 암흑 주문서가 어둠을 토해내며 칠흑의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뇌광의 화살!"

섬광이 토해지는 동시에 이예나의 전력이 담긴 화살이 암흑의 서를 스치자 뭉쳐있던 마력이 공중에서 폭발하며 일행을 덮치던 어둠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크아악!"

빛은 어둠의 상극, 빛의 화살에 관통당한 고통을 호소하는 리치를 둘러싸고 듀라한들이 몸을 던져 미쏠로지 팀의 돌격을 막기 시작했다.

리치가 회복할 시간을 벌려는 수작이었으나 상현은 시간을 끌 생각이 없었다.

파바밧-

듀라한의 어깨를 밟고 공중으로 튀어오른 상현은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밟는 듯 방향을 틀며 순식간에 리치에게 접근했다. 지상에서 발을 떼고 순식간에 수십미터를, 그것도 방향을 바꿔가며 도약한 것이다.

성화의 기운을 담아 마무리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리치의 기세가 무섭게 불어났다. 마치 없는 힘이 생겨난 것처럼 급작스런 변화였다.

'뭐지?'

힘을 모은다거나 봉인을 푸는 등의 기색도 없이 갑자기 힘이 툭 하고 늘어자나 상현은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당황한 상현의 몸을 덮치며 막대한 어둠의 광선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공간이 일그러질 정도였다.

'너무 과했군.'

이제 겨우 레이드 시작 15분째였다. 무슨 짓을 벌인건지 저 괴물같은 한국팀 공격대장은 지구에서 단 한 번도 관측된 적 없는 7급의 리치를 박살내려 하고 있었다.

밸런스 형으로 팀을 조직해온 일본도 이제 겨우 리치와의 거리를 조금 좁힌 정도였는데 말이다.

"파워를 올리게."

백클레이의 명령에 요원은 능력자들에게 명령해 한국팀의 몬스터를 강화시키라며 긴급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허무하게 일본팀의 패배로 끝나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도 있었고 상현의 잠재력을 더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겹쳐진 결과였다.

그러나 급하게 처리한다고 너무 과하게 파워를 올린 것이 문제였다. 순간 올라간 리치의 등급은 8등급의 끝에 다다라 있었다. 마력 수치로만 따지면 중국에서 관측된 프로스트 자이언트를 웃돌 정도.

백클레이는 불의의 습격을 받은 상현이 당연히 녹아 사라졌으리라 생각했다.

공격대장을 잃은 한국은 저대로 최후를 맞이하리라.

그러나 잠시 뒤, 그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8등급 최상위 힘을 지닌 리치의 전력이 담긴 마법을 뚫고 거대한 불의 날개가 펴졌기 때문이었다.

눈을 부시게 만들 정도의 거대한 화염이 일대를 덮쳤다.

============================ 작품 후기 ============================

아이리 : 거 졸렬하게 게임하지 맙시다...;;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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