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나이트 레전드-78화 (78/123)

< -- 78 회: WEC 개막 -- >

어둠의 기운을 담은 리치가 순식간에 힘을 뿜어내자 상현의 가슴갑옷 사이에 웅크리고 있던 아이리는 위험을 감지하고서 굉장한 불꽃을 뿜어냈다.

그것은 상현이 보석갑옷을 펼친 것과 동시에 이루어졌기에 일순간 상현은 인간이 내기 힘든 방어력을 지닌 상태로 리치의 암흑 마법을 맞았다.

8등급의 극의에 다다른 리치의 마법은 당연히 근접 딜러 한 명쯤은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지울 수 있을만큼 강력했다.

평범한 능력자라면 씻은 듯이 사라졌어야 할 파괴력, 그러나 눈을 멀게 만들 정도의 불이 솟구치자 리치는 깜짝 놀라 아래턱을 따각거렸다.

"이럴 수가!"

자신의 힘을 버티는 인간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 못했는지 당황하는 리치에게 신수의 불이 직격했다.

화르르르-

영상을 모니터 중이던 대원들은 속속들이 그 데이터를 뽑아 벡클레이에게 전달했다.

"장비로 지정해둔 붉은 새가 일반 새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최소 신수급으로 확인됩니다."

8급의 파워를 지닌 리치와 대등할 정도의 위력을 뿜어내는 신수를 데리고 다니는 자, 관계자들은 대체 상현이 어떤 존재이길래 미국도 보유하지 못한 초월급 괴수를 길들일 수 있었는지 궁금해 했다.

"이익!"

자신의 암흑을 뚫고 나온 상현을 보며 리치는 마력을 끌어모으며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공중에서 어둠과 불꽃이 충돌하며 거대한 마력의 폭발이 일어났다. 탱커를 맡고 있던 재식과 현성은 미리 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그 폭발의 여파를 견뎌내지 못하고 뒤로 쓸려가고 말았다.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다.

대원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보며 상현은 눈을 부릅떴다.

'분명 이상해.'

눈앞의 적에게서는 그동안 상대해온 8급 이상의 초월체 괴수의 존재감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이 정도의 강함이라면 결코 7급이라 생각하기 힘들었다. 설마 주최측에서 모종의 수를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상현은 리치가 날려대는 마력탄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손에서 검이 움직이는 것을 포착하기 힘들 정도로 상현의 검은 대단한 속도로 움직였고 리치의 공격은 모두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크흐흐!"

위기를 느낀 리치는 주변의 언데드 군단을 이용해 몸을 보호했다. 엄청난 물량의 대군세.

적들이 너무 밀착해대는 바람에 마력을 모을 시간이 없었다.

'큰 기술을 못쓰겠는데.'

마력을 모을 때는 조금의 방해가 치명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항상 조심해야 했다.

'이대로 천천히 뚫고 나가야 되나.'

리치와의 남은 거리 100여미터, 큰 기술을 쓰지 않고 이 거리를 좁히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하지만 상현은 단단한 몸과 재생력을 믿고 충분히 버틸 수 있었는데 문제는 대원들이었다.

이 전장에 가득찬 언데드들은 자신 뿐만 아니라 대원들, 그리고 저 뒤편의 공격대까지 노리고 있었다.

'일본은 어떻게 되고 있지?'

일본 역시 리타이어하는 인원이 나오고 있다면 굳이 무리를 할 필요는 없었지만 상대팀의 공략 정도를 알 수 없으니 답답했다.

결국 힘을 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상현은 다시 마력을 흡수하며 바람의 검으로 주변을 쓸어내기 시작했다.

환호성으로 가득찬 경기장은 점점 조용해지기 시작해더니 관심없는 경기를 볼 때처럼 침묵에 잠겼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관중들은 경기에 관심이 없는게 아니라 너무 집중을 한 나머지 소리지르는 것도 잊어버린 상태였다.

한국의 공격대장, 환상현이 8만명의 관객이 가득 들어찬 경기장에 침묵을 가져온 것이다. 지원대와 떨어져 나와 적진의 한가운데 홀로 떨어져 불사신처럼 움직이는 남자.

스켈레톤들은 그의 검이 스치기만 해도 몸이 바스러졌고 가끔씩 몸을 향하는 공격은 방패로 전부 걷어내는 환상적인 몸놀림을 보이고 있었다.

'과연 저 자가 죽을까 안죽을까.'

모든 관중은 상현이 쓰러질 것인지 아닌지 나름의 예상을 하며 침을 삼켰다.

현재 일본과 한국의 타임은 같은 상태, 대원 한 명을 잃는 것만으로도 승부가 갈릴 수 있는 팽팽한 접전중에 가장 먼저 리타이어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것은 상현이 되리라 관중이 확신하고 있었다.

그만큼 상현은 홀로 적진 속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었다.

삐빅-

타임스코어에 카운트가 올라가자 침묵했던 경기장에 화산이 폭발하듯 거대한 함성이 진동했다.

한국팀의 후방이 무너지며 첫 리타이어 대원이 나온 것이다.

"젠장!"

미쏠로지를 지원하기 위해 임시 계약을 맺은 EJ소속의 탱커 소연훈은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그야말로 엄청난 양의 물량, 게다가 약이라도 먹었는지 하급 언데드 병사들의 검이 급작스레 묵직해지자 탱커들에게 걸리는 부담이 순간 증가했다.

소연훈은 분대장중의 한 명이었는데 도저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탱커진이 휘둘리기 시작하자 힐러진에게까지 부담이 미치고 있었다.

도미노처럼 연속 붕괴를 일으키기 일부 직전인 것이다.

'근접딜러의 비율이 너무 적었어.'

그나마 EJ는 구 10대 기업으로 이름을 날렸던 지라 포지션 변경에 어느정도 유연한 부분이 있었다. 대마법을 쓰기 힘든 마법사들은 허리춤에 달려있던 거대한 롱소드를 뽑아들며 지팡이와 함께 스켈레톤을 마구 베어나갔다.

여차하면 근접딜러로 전환해서 공격을 꾀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임시 대원들이 이런 대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삐빅-

리타이어 되는 인원이 점점 늘어나자 후방을 전담하고 있던 엄지연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죽어라고 힐을 부었다.

9레벨 힐러, 세계에서도 단연 톱클래스의 힐러지만 그녀 혼자서 전장을 전부 커버할 수는 없었다. 톱클래스 힐러가 그정도였으니 다른 힐러들은 더욱 상황이 심각했다.

'빨리 끝내줘요!'

그녀는 어지러움을 꾹 참아가며 상현이 어서 이 레이드를 끝내주길 간절히 원했다.

처절한 외침, 한국팀의 전력이 서서히 붕괴해가는 가운데 지하에서는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 시선을 주목 시켰다.

"뭘하고 있었나 했더니 이런 장난을 치고 있었군."

"아 오셨는가."

미국에서 굉장한 영향력을 쥐고 있는 벡클레이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말을 붙인 자의 이름은 맥킨지, 미국의 상원의원이며 강력한 가문을 등에 업고 정계에 발을 들인 남자였다.

"너무 급작스레 난이도를 조절한 것 아닌가? 자칫하면 불명예스러운 일을 겪을 수도 있어."

조금 전부터 VIP실에서 경기의 흐름을 보고 있던 맥킨지는 관제실의 분위기가 너무 궁금해 이곳까지 찾아온 터였다.

"파워 밸런스 조절은 이번이 처음이야."

벡클레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다른 팀은 물론이고 이번 대회를 통틀어 괴수의 힘을 끌어올리라 명령한 경우는 일본과 한국의 8강전이 처음이었다.

포르투갈 때는 디멘션홀의 종류를 고정시키긴 했지만 괴수의 파워를 건드리진 않았었다.

"가만히 놔두려고 했는데 저 괴물같은 남자, 한국의 공격대장이 레이드를 17분만에 끝내버리려고 했지."

"나도 봤네. 정말 소름돋는 순간이더군."

전장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는 상현을 바라보는 맥킨지의 눈에 탐욕의 빛이 스쳤다. 에딕손 공격대만으로도 미국은 세계 최고의 능력자 파워를 자랑했지만 그런 미국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정도로 상현은 매력적인 능력자였다.

"지금은 파워를 얼마나 올린 건가?"

"8급에 달하는 정도네. VTR 최대 출력이지."

"그거 대단하군."

솔직한 심정을 담아 맥킨지가 말했다. 리치라면 6급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군단 괴수, 그런 녀석을 7급으로 올린 것만 해도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판국이었다.

그런데 한국팀이 상대하는 리치는 7급도 아닌 8급이었으니 관중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놀라 자빠졌을 것이 분명했다.

"눈치 채지 않았을까?"

"설령 눈치챘다고 해도 증거는 없네."

이번 대회의 목적은 미국이 건재함을 알리며 세계의 마음을 다시 미국으로 잡아오는 것이었기에 한국은 항상 박빙의 승부를 펼쳐야 했다.

만약 일본이 너무 빨리 무너졌더라면 역시 한국이 차세대 넘버원이라다는 소리가 외신의 메인 페이지를 장식할 터, 벡클레이를 비롯한 수뇌부 인원들은 한국이 미국의 명성을 뛰어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뭐 자네가 그렇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지. 그나저나 저 남자를 사로잡을 방법이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이미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려놨네. 최대한 평화로운 방법으로 저자를 미국의 국민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말이야."

벡클레이와 맥킨지는 같은 마음이 들었다며 웃었다. 현재 세계 최강이라 인정받고 있는 에딕손, 그리고 떠오르는 후보자 환상현. 이 둘을 거느리고 쌍두마차를 세웠을 때의 미국의 위상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뿌듯했다.

"심연의 죽음에서 올라온 어둠의 영혼들이여, 나를 인도하라!"

크롸롸롸-

8급 리치의 위용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강력한 본 드래곤까지 소환한 녀석은 숨 쉴 틈도 주지않고 상현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이쯤 되자 관중들은 일본팀이 옆에서 싸우고 있는지도 잊어버린 채 상현을 클로즈업 중인 스크린에만 온통 시선을 쏟고 있었다.

리치가 소환한 본드래곤은 거대한 냉기 결정을 쏟아내며 일대를 얼음지옥으로 만들었다.

아군 스켈레톤이 부서지는 것에 개의치 않고 뿜어지는 강렬한 일격에 상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리의 불꽃이 점점 약해지며 얼음을 막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아직 부활한지 얼마 안 된 어린새였기에 체력의 한계가 빨리 다가왔다.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비록 눈을 돌리지 않아도 심안에 의해 후방이 무너져 가는 것을 상현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미쏠로지 A팀 역시 사력을 다해 버티는 상황, 실제로 죽는 대원들이 없었기에 천천히 리치까지 도달하려 했지만 상현은 생각을 고치기로 했다.

꾸욱-

심장을 조이는 느낌과 동시에 막대한 양의 금빛 신성이 상현의 몸에서부터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어어?"

상현이 힘을 끌어올린 그 순간, 관제실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무슨일인가!"

모든 계기판이 핑핑 돌며 맛이 가기 시작하자 벡클레이가 물었다.

"큰일났습니다! VTR 허용 한계수치를 넘어서서 마력이 역류합니다!"

"그럴 수가!"

이미 리치를 8급까지 강화시킨 상황이라 구현 능력자들이 상당히 무리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상현이 원초적인 신성을 마구 폭발시켰으니 그것을 처리하는 능력자들의 몸에 부담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VTR 세계를 유지하는 능력자들이 코피를 쏟으며 하나 둘씩 리타이어 하자 기계가 오작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출력을! 출력을 내려서라도 원상복구시켜!"

이러다간 강제로 시스템 다운이 될 판이었다. 자국이 주최한 대회에 기계 성능 문제로 경기가 중단된다면 국가 대망신이 따로 없었다.

능력자들의 부담을 어떻게든 줄이기 위해 리치의 파워가 순식간에 7급을 지나 6급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때마침 기세 좋게 상현의 입이 열리며 전장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어둠의 광선이 작렬했다.

"다크 블레이드!"

암흑군단을 쓸어담으며 리치에게 그대로 날아간 어둠의 검이 신체를 관통하자 리치가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순식간에 힘을 빼앗긴 리치가 전력으로 부딪치는 상현의 신성을 막아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선보인 힘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리치가 간단히 쓰러지자 전장의 언데드군단 또한 구름처럼 흩어졌다.

삐비이───익!

전장이 스스륵 변하며 다시 어둠에 휩쌓인 순간 한국팀은 정신을 차리고 가쁜 숨을 토할 수 있었다.

숨막히던 레이드가 끝난 것이다.

"결과는?"

한국팀 대원들은 스코어보드를 보기 위해 부랴부랴 캡슐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결과를 확인한 그들의 이마에 주름살이 깊게 패였다. 자그마치 2시간이나 되는 격차가 벌어져 있었다.

[한국팀 경기 종료. 타임스코어 187분.]

[일본팀 경기 진행중. 타임스코어 67분.]

이대로 경기가 흐른다면 명백한 패배, 검은색 배경의 스크린에 두터운 붉은 글씨로 새겨진 타임스코어가 승패의 향방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미국이 조작을 한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일본과 균형을 맞추려고 하다가 너무 급하게 올려서 이 사단이 벌어졌죠.

이제 어떻게 될지는 다음화에!

댓글 감사합니다.

-p.s 상현의 신성력은 가히 온풍기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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