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0 회: WEC 개막 -- >
한국과 일본의 8강전이 끝난 뒤로 세계 증시는 급격한 변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세계 최상위권에 속하는 일본을 잡아낸 한국은 상대적으로 큰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반대로 일본은 상당한 피해를 봐야만 했다. 괴수산업을 둘러싼 주식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주식이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일본의 추락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국가 위상이 올라가는 것은 한국 정부가 바라던 일이었고 곳곳에서 들려오는 좋은 소식에 그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들이 꼭 우승을 해줬으면 좋겠군.'
비록 우승을 못하더라도 결승전까지만 올라가면 아시아의 패권을 넘볼 수 있을 정도였다. 정부 관계자들은 다 같은 마음으로 한국 공격대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멕시코의 8강전이 있는 날, 상현은 이례적으로 경기를 직접 지켜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이제까지 그 어떤 팀이 받았던 것보다도 커다란 환호가 그곳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환호의 중심에는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미국, 그리고 그 공격대를 이끄는 남자가 있었다.
'왔나?'
에딕손은 자신을 주시하는 상현의 시선을 금방 알아차리고서 시선을 공유했다. 능력자들의 신체 능력은 일반인보다 월등했기에 백여미터 이상 떨어진 상대도 초점을 맞추면 코앞에 있는 것처럼 쳐다볼 수 있었다.
상현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은 에딕손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캡슐안에 몸을 맡겼다.
'받은 만큼 보여주도록 하지.'
10년간 능력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전투를 봐왔지만 엊그제 상현이 리치와 벌인 일전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전투중 하나였다.
[2분 뒤에 디멘션 홀이 열립니다. 7급의 랜덤 괴수가 나타납니다. 공격대 여러분께서는 최선을 다해 대회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뒤 도시의 상공에서 디멘션홀이 열리며 금색의 용이 포효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공중 타입은 군단 보스만큼이나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러나 에딕손의 표정에선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전원 전투준비!"
공격대에게 명령을 내린 그가 검을 내리치자 마법부대의 공격이 용의 날개를 집중 타격하기 시작했다.
"크롸롸롸-"
마법 방어력이 강해서인지 마법들이 날개막을 찢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그러나 바로 직후, 에딕손의 손이 공기를 움켜쥐듯 주먹을 비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공중에 있던 용의 날개가 꺾이기 시작하더니 골격이 순식간에 일그러지고 말았다.
그 광경을 쳐다보던 상현은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그가 대기를 조종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저것은 그런 능력으로 설명하긴 힘들었다. 상현은 에딕손의 힘이 신성이 아닐지 강하게 의심했다.
저것이 신성이 확실하다면 충분히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힘이라고 할 수 있었다.
"키아오오!"
순식간에 지상으로 떨어진 드래곤은 지면에 몸을 부딪치며 고통의 비명을 내질렀다.
"돌격!"
날개가 접히긴 했지만 무려 7급의 드래곤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금색의 드래곤이 고개를 들어올려 모든것을 녹여버릴 기세의 불기둥을 쏘자 에딕손 공격대는 두 개의 파벌로 갈라지며 좌, 우에서 협공을 시작했다.
이제 막 대원들을 추스려 빌딩숲 사이로 도망다니는 멕시코 팀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사실 저런 7급의 공중 괴수가 나타나는 경우에는 미국처럼 땅으로 추락시킬 수 있는 전력을 지닌 팀이 아니고서야 거의 재앙에 가까웠다.
최신예 전투기들의 값이 수천억을 호가하는데 그런 전투기들을 종이비행기처럼 아는 놈들이 7급 공중 괴수였다.
쿵쿵쿵-
날개가 접혔어도 드래곤이라고 육중한 몸체를 날랜 맹수처럼 움직이며 놈은 공격대를 향해 돌진을 시도했다.
콰드득.
그러나 돌진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압축된 공기로 이뤄진 거대한 손이 드래곤의 목을 순식간에 움켜쥐었다. 에딕손은 손을 움직여 그대로 드래곤을 빌딩에 들이받게 만들었다.
평생을 지역의 패자로 군림해온 드래곤이 언제 이런 대접을 받아봤겠는가. 목이 졸려서 켁켁 거리는 사이 다수의 공격대원들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근접딜러들은 어찌나 몸이 날쌘지 스치기만 해도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는 꼬리를 피하며 드래곤의 뒤꿈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크르르륵-."
드래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가슴속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브레스라 할 수 있었는데 목이 졸린 상황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에딕손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손을 이리저리 흔들며 드래곤의 진을 완벽하게 빼놓기까지 했다.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는 에딕손을 보며 상현은 신중하게 힘을 가늠하기 시작했다.
자신과 에딕손이 일대일로 붙었을 경우 누가 이길지 가상 대결을 펼치는 것이다.
거리를 좁히기 전에 에딕손의 거대한 손이 날아들자 상현의 검이 화염을 뿜으며 상대의 손을 갈랐다. 그러나 손은 한 개가 아니었다. 상대가 양 손을 자유자재로 쓰기 시작하자 오히려 자신이 밀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주변이 진공상태로 변하자 호흡마저 곤란한 상태, 몸 안의 마력으로 버틸 수 있다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호흡을 해야만 힘을 쓸 수 있는 생물이었다.
상대가 쓸 수 있을 법한 최대치의 전력을 예상하며 시뮬레이션한 결과 패배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심각한데.'
자신의 재생능력은 상대의 능력에 상성이 별로 좋지 않았다. 게다가 공간을 지배하는 신성능력은 상당히 위협적임에 틀림없었다.
처음부터 최고 전력으로 신성을 뽑아내서 다크 블레이드를 먹인다면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틈을 주면 상대의 페이스에 휘둘릴 것 같았다.
게다가 이것은 일대일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 자신의 뒤로 미쏠로지 대원들까지 포함되어 있다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7급의 골드드래곤을 잡는 에딕손 공격대의 평균 전력이 한국 전력 100명보다 월등했던 것이다.
정부의 부탁을 받고 나오긴 했지만 기왕 나온 것 우승을 할 생각으로 왔더니 에딕손이란 녀석이 예상외의 괴물이었다.
상현이 그렇게 평가할 정도의 인간이 속해있으니 멕시코 팀은 미국을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가 없었다. 처참한 스코어 차이를 벌리며 미국팀이 경기장 밖으로 나왔을 때 에딕손은 상현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가버렸나?'
하지만 그는 상현이 자신의 전투를 끝까지 지켜봤을 것이라 확신했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상대도 자신에 대한 관심이 상당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당황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 이건가.'
에딕손은 속으로 웃으며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시간, 상현은 화장실에서 소변을 누며 경기가 언제 끝나나를 고민할 뿐이었다.
쿠구구궁-
지하실을 울리는 진동, 게임을 하다가 충격에 패드를 놓친 스카디는 깜짝 놀라며 일시정지를 시키고 폴짝 뛰어올랐다.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아닌데?'
상현이 말한 기간까지는 며칠 더 여유가 있는 상황, 스카디는 예상밖의 변화에 투덜거리며 지하실 중앙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고치에 손을 얹고 신성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성에 반응하기라도 하듯 검은 고치의 표면에 무수한 금이 새겨지며 천천히 부스러져 내리기 시작했다.
삶은 달걀 껍질을 까듯 스카디의 손이 검은 막을 털어내자 그 안에 감춰져 있던 냉기가 상당한 압력으로 뿜어져 나왔다.
마치 냉동인간이 해동하며 일어나듯 차가운 수증기 속에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신재후가 몸을 일으켰다.
"정신이 드나?"
자신의 물음에도 여전히 멍청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자 스카디는 슬그머니 눈을 뭉쳐 재후의 등에 퍼부었다.
"아."
반응이 있었다. 예상했던 반응과 조금 다르긴 했지만 정신을 차리는데 도움을 준 건 틀림없어 보였다.
"야!"
"음?"
그제서야 눈에 초점이 돌아온 신재후가 고개를 돌려 스카디를 쳐다봤다.
"스카디?"
"스승님이라고 해야지!"
손을 옆구리에 올리고 발을 구르고 있는 그녀를 물끄러미 보던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는 것을 자각하고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내 옷!"
"다 녹았어."
상현이 건네주는 약을 먹을 때만 해도 멀쩡한 상태였는데 정신을 차리고보니 알몸에 웬 고치 속에 하반신을 담그고 있는게 아닌가.
물컹한 느낌이 이상해 얼른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스카디가 바로 옆에 있는 통에 그럴 수도 없었다.
"스카디님? 고개 좀 돌려주시겠습니까? 저 나가서 옷을 찾아야 할 거 같거든요?"
"나가서 찾으면 되잖아. 내가 갖다줘야 해?"
"아놔. 내가 가지러 갈테니까 그냥 고개만 돌려줘. 나 알몸이라고!"
"별 것도 아닌거 가지고 그러네."
발할라에서 워낙 발가벗고 돌아다니는 만취 전사들을 많이 본지라 스카디에게 알몸은 달리 이상한 광경도 아니었다.
소리지르는 재후를 보며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뒤 게임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재후도 깨어난 마당에 더 이상 캄캄한 지하실에 처박혀 있을 이유가 없던 것이다.
그녀가 등을 돌리고 물품을 정리하는 동안 재후는 더 이상 빠를 수 없을 정도의 스피드로 몸의 중심을 가린채 지하실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아이스 실드!"
몇 겹이나 되는 얼음 방패로 몸을 꽁꽁 가리고 나서야 그는 2층의 자신의 방으로 달릴 수 있었다. 혹시라도 거실을 관통하다가 다른 대원들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큰 곤욕이었다.
남성 대원들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여성대원들이랑은 절대로 마주치기 싫었다.
물론 다른 대원들이 전부 떠나서 텅비었다는 사실을 그는 얼마지나지 않아 바로 알 수 있었다.
"떠났다구...요?"
"그래."
옷을 갈아입고 내려오자 거실에서 스카디가 쇼파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WEC 참가하러 다들 비행기 타고 미국갔어. 나도 가려고 했는데 너 때문에 못 가고 있었다고!"
"거 참 죄송할 따름이네요."
입은 죄송하다는데 표정은 전혀 아니올시다 였던지라 스카디의 이마에 작은 힘줄이 돋았다.
"태도가 불순한데?"
스카디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신성을 피워올리기 시작했다. 순간 재후는 엄청난 압박감과 함께 스카디가 원래 이렇게 커보였나 하고 몸을 움츠렸다.
그전에는 몰랐는데 신성을 각성하게 되자 상대의 높은 신성을 체감할 수 있게 된 까닭이었다.
스카디가 비록 힘이 빠지긴 했지만 프로스트 자이언트를 앞세워 전세계 공격대를 골로 보낼 정도의 힘을 지닌 여신이었으니 이제 겨우 블랙드래곤의 조무래기 같은 신성을 흡수한 재후하고는 코끼리와 개미똥 만큼의 격차가 존재했다.
"죄송합니다."
본능적으로 신성에 굴복하고만 재후는 큿! 소리를 내며 사과했다.
"좋아. 그럼 짐 챙겨."
"짐은 왜...?"
"우리도 가야 될 거 아냐. 아무도 없는 이 집에 계속 있을 거야?"
"가야죠."
WEC라면 능력자들의 세계 대회, 상현이 팀원들을 데리고 미국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다는데 자신이 빠질 수 없었다.
"안 가겠다고 하면 때려줄 참이었는데."
전력에 도움이 되라고 키워놨지 집에서 빈둥거리라고 키워놓은게 아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 혹시 모를까봐 미리 얘기해두는데 예전보다 힘이 많이 올랐으니까 공격에 신경써. 전에 내가 가르쳐 줬던거 한 번 해 봐."
"네?"
스카디의 말에 재후는 반신반의하며 마력을 뭉쳐 눈꽃을 만들기 시작했다. 약을 먹기 전에 혼나가며 연습했던 그 작업, 그렇게 노력해도 안되던 눈꽃은 거짓말 같이 재후의 두 손에서 피어났다.
"어?"
"이제야 조금 냉기 수련자답네. 9레벨이 된 걸 축하해."
대체 누가 9레벨이란 말인가? 지하실에서부터 여러번 멍청한 표정을 짓는 재후를 데리고 스카디는 헬기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플로리다, 한창 세계의 파워가 충돌하는 격전지였다.
============================ 작품 후기 ============================
연참은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죠.
가끔 정신나간 전개, 루즈한 진행을 보일때도 있지만 그런 구간마저 금방 지나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WEC도 얼마 안남았어요. 준결승 결승만이 남았을 뿐.
본래 상현은 대회 안나가려고 했는데 정부에서 부탁을 해서 나간거죠. 딱히 뭔가 얻으려고 나간거는 아닙니다.
별다른 상품은 없고 소정의 상금이....
댓 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