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나이트 레전드-81화 (81/123)

< -- 81 회: 파행 -- >

"나보고 뭘 하라고...요?"

한국 정부가 지원해준 전세기 안에서 스카디와 재후는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너에게 이 몸의 교단을 맡기겠다 이 말이야. 이 미드가르드에 나의 세력을 널리 확장하는 거지."

교단이라는 것은 종교를 뜻하며 결국 신을 믿는다는 소리인데 스카디의 말에 재후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럼 신은 어디있습니까."

세상에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스카디는 멍한 표정으로 재후를 쳐다봤다.

"바로 네 앞에 있잖아. 멍청아."

"엥?"

스카디가 푸른빛의 신성을 뿜어내자 재후는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친밀감도 아주 조금 느낄 수 있었다.

각성을 할 당시 그녀와 상현의 안정 마력이 섞여 들어간 결과였다.

"네 형이 말 안해줬어? 환상현이랑 나, 인간 아닌데?"

"인간이 아니면...외계인?"

상현의 능력이라면 외계인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스카디 역시 하루만에 쑥쑥 자라는 특이한 인물이 아니던가. 둘다 외계인이라고 해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무슨 외계인 타령이야! 신이라니까!"

그녀의 말에 재후의 표정이 뜨악하게 변한 것은 당연했다.

"넌 이제부터 이 아름다운 스카디님을 섬기는 교단의 1대 교주로서 교세 확장에 열과 성을 다하거라."

스카디가 한껏 폼을 잡으며 말했다. 재후는 머리가 아픈지 이마에 손을 짚으며 침묵했다.

에딕손의 경기를 보고난 뒤 상현은 외부 활동을 중단하고 신성을 각성시키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150년 공부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그동안 천천히 진행하던 각성작업이었지만 어차피 해야 한다면 빨리 해야겠다며 생각을 바꾼 것이다.

에딕손처럼 신성을 일정 수준 다루는 인간이 있다는 것은 예상 외였다. 그리고 그런 인간들이 만약 악의를 가지고 자신을 노리거나 동료를 노린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평생 신전에서만 살 때를 생각해보면 분명 빠른 발전이었다. 상현이 힘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2년도 채 되지 않았고 초창기와 비교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부족했다. 자신의 힘이 세지는 만큼 더 강한 상대가 등장해 자신을 위협했다.

'에딕손을 뛰어넘게 되면 또 다른 녀석이 나오려나.'

그리 유쾌하지 않은 생각을 하며 상현은 조용히 명상에 잠겼다.

한편 그 시각, 상현의 명령을 받고 WEC 대회의 실체를 파악중이던 정석영은 경기장의 어두운 지하 통로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상현은 그에게 위험을 감수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실체를 알아내려면 좀 더 깊숙이 접근하는 수밖에 없었다.

특히 조작에 관련된 증거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아무런 정보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쩝.'

어두운 복도는 무언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는 메신저를 조작해 한 통의 연락을 남겼다.

만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겨 더 이상 연락을 취하지 못하게 됐을 때의 보험이었다.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 제일 믿을맨이라고 할 수 있는 환상현에게 뒤를 부탁했으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

마력의 운용에 신경을 집중하며 정석영은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능력은 은신, 그가 전력을 발휘하면 상급괴수도 그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상대는 몬스터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그가 지하로 파고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의 관제실에 경고음이 울렸다.

"무슨 일이지?"

"카메라에는 안잡히는데 뭔가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스텔스?"

"마력반응도 없는데 능력자들이 설치한 감지기에는 반응이 있습니다. 아마 은신 기술을 가진 능력자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요원들 내보내."

상관의 명령을 받은 남자는 곧바로 움직임이 감지되는 구역에 다수의 능력자를 파견했다. 그 위치는 기밀 취급 되는 VTR기기에 상당히 가까워져 있었다.

'흠, 이 근처인 것 같은데.'

꽤나 깊숙하게 파고든 정석영은 구조물의 이곳저곳을 사진으로 남기며 계속 지하 중심부를 향해 전진했다. 처음엔 불안했지만 파고들기 시작하자 확실히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다.

통로 곳곳에 몸을 감추고 있는 진압부대, 총을 메고 있는 폼새가 딱봐도 누가 들어오자마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요량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단순히 테러범들을 상대하기 위한 배치라고 보기엔 그 강도가 상당히 과했다.

정석영은 이곳에 상현이 말한대로 대회 조작의 증거가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만약 조작을 한 증거를 잡을 수 있다면 한국이 대회 우상을 하는 것보다도 더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다. 조작의 주체가 세게 1위 능력자 국가인 미국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증거를 포착하겠다는 그의 다짐은 불과 몇 걸음을 떼지 못하고 부서질 위험해 처하고 말았다.

"멈춰라."

검은색 슈트 차림의 사내들이 텅 빈 통로에 대고 분명하게 말했다.

"우린 네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모습을 드러내면 목숨만은 살려줄 것이다."

그들의 말에 깜짝 놀란 정석영은 더욱 기척을 줄이며 뒷걸음질 쳤지만 어느새 뒤편에도 진압용 방패를 든 일련의 무리가 통로를 막고 서있었다.

'완전 걸렸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정석영은 다른 쪽의 통로로 냅다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잠시 뒤 복도에 상당한 양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삐빅- 삐빅- 삐빅-

WEC 경기장의 지하를 조사하러 가겠다며 메시지를 남긴 정석영에게서 연락이 두절됐다. 그를 호텔로 데리고 올겸 마중 나가 있던 상현은 뒷좌석에 파묻고 있던 상체를 일으켜 택시 기사에게 요금을 치렀다.

마냥 미터기를 켜놓고 돈을 벌고 있던 기사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얼른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손님."

"예."

과연 좋은 하루가 될 지 거지 같은 하루가 될 지는 의문이었지만 아무래도 후자쪽의 확률이 더 높은 것 같았다. 양손에는 검과 방패, S급 무장, 등에는 여분의 검과 방패를 한 벌씩 더 매달아 완전 무장한 상현이 철컥거리는 군화소리와 함께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 주변에는 다른 블록의 8강전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상현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기를 보러온 관중들 중에는 하급, 중급 능력자도 많았고 능력자의 장비를 코스프레한 일반시민들도 한가득이었다.

상현의 장비는 조금 더 고급스러운 느낌을 줄 뿐, 그들 사이에서는 결코 특이한 것도 아니었다.

경기장 외곽을 크게 돌아 서쪽으로 향하자 지하로 향하는 게이트를 찾을 수 있었다.

"일반인은 더 이상 출입할 수 없습니다. 이곳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저도 관계자인데요?"

상현의 말에 흑색 슈트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던 보안요원은 위아래로 그의 몸을 훑고서는 가벼운 조소를 보냈다.

"농담은 그만하셔도 좋습니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환상현이 이런 대접을 받는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지만 그만큼 지금 그의 표정은 느슨해보였고 기세도 민간인의 것과 다름 없었다.

지금 상현의 모습을 보고 미쏠로지를 이끄는 한국 공격대의 총대장을 떠올릴 수 있다면 토끼를 보고 호랑이를 떠올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 UFO가!"

"음?"

상현이 눈을 크게 뜨며 그들 뒤편의 하늘을 가리키자 그들은 고개를 들리며 허공을 주시했다. 당연히 아무 것도 없었다.

"이런 한심한 장난을...응?"

그들이 다시 정면을 쳐다봤을 땐 이미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어디로 갔지?"

"그새 돌아갔나?"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설마하는 표정으로 자신들이 지키고 있던 게이트 입구의 계단을 살펴봤다.

"돌아갔나보네."

긴 계단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가드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주변 경계를 시작했다.

그러나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지하의 출입제한 구역에는 비상사태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크헉!"

"끄아악."

투다당!

투타타타!

침입자를 향해 기관단총의 총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당하게 걸어들어온 침입자는 방패를 전방으로 향하며 무식하게 전진하기 시작했고 진압부대원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팔, 다리가 꺾이는 것은 예삿일이고 심한 경우엔 치명상을 입고 벽에 주르륵 기대 쓰러졌다. 특히나 능력자들을 대상으로 한 손속이 매서웠다.

'검사관님은 어딨지.'

삑삑 거리는 메신저의 위치추적신호를 잡아가며 향한 곳은 거대한 철문으로 막힌 용도를 알 수 없는 방 앞이었다.

뻐억-

신성을 둘러 문을 강타하자 두께 20센티미터가 넘는 철문이 한방에 구겨지며 떨어져 나갔다.

"이런."

정석영의 메신저 신호를 더듬어 찾아낸 것은 주인을 잃고 보관중인 시계였다. 시계만 달랑 찾은 상현은 마음이 급해졌다. 이미 사이렌 소리가 울린지 2분도 넘었다.

조금 있으면 더 강력한 진압부대원들이 몰려닥칠테니 그 때가 되면 인정사정 봐주면서 진입하기도 힘들어질 터, 그럼 사상자가 나올 수밖에 없기에 상현은 더욱 걸음걸이를 빨리했다.

"B-5구역 침입자 이동중."

"D.델타포스 투입해."

경기를 진행하다 말고 침입 보고를 받은 벡클레이는 눈썹을 찌푸렸다. 조금 전에도 침입자를 붙잡아 감금했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웬 놈팽이가 또 쳐들어온 것이다.

"벡클레이님, 이것좀 보십시오."

"뭔가."

그렇게 말한 부관은 화면에 침입자의 얼굴이 잡힌 영상을 확대 출력했다.

"환상현?"

방금 전에 잡혀온 놈이 아직까지 입을 열지 않아 어디서 보내온 놈인지 정체를 알 수가 없었는데 환상현이 쳐들어온 것을 확인한 순간 이 일을 주도한 곳이 어딘지를 벡클레이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한국팀 공격대장인 환상현이 이곳까지 무단으로 침입했다는 것은 먼저 잡혀들어온 녀석이 한국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거 일이 의외로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는걸.'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벡클레이는 짧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D.델타포스 인원에게 전달해. 절대 사살하지 말고 제압하라고."

"알겠습니다."

D.델타포스, 에딕손 공격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미국의 기둥을 책임지던 괴수 제압 전용의 특수부대. 미국이 에딕손 공격대를 전면에 내세웠기에 그들은 어둠의 뒤편으로 숨어 외부에 알리기 곤란한 일들을 도맡고 있었다.

이런 침입자들을 쥐도 새도 주살하는 것 역시 보편적인 그들의 일이었다.

"침입자를 사살하지 말고 제압하라고 한다. 능력은 10레벨, 에딕손과 동급이라고 평가된 상대다."

"좋지 않군."

에딕손 같은 강자를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의 어둠을 담당하는 정예중의 정예. 그들은 결코 불가능이란 것을 모르는 남자들이었다.

전원 9레벨로 구성된 델타포스 인원들은 지하의 홀에서 상현과 마주했다. WEC가 치뤄지는 경기장 지하의 출입제한 구역은 길고 어두운 통로로만 구성된 공간은 아니었다.

효과적으로 침입자를 격퇴할 수 있도록 드넓은 공간들이 종종 있었는데 델타포스는 상현이 오고 있다는 정보를 받아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네가 환상현인가. 순순히 우리를 따라오겠다면 서로간에 불필요한 무력충돌은 필요 없을 것이다."

상현은 그들의 말에 숨을 고르고서 대답했다.

"그전에, 이곳으로 잡혀온 또 다른 사람은 어디 있습니까. 그의 안전을 확인시켜주시면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좋다. 그럼 이것을 착용해라."

능력자의 마력 운용을 봉인하는 묵빛의 구속구를 들고 델타포스 대원이 다가오자 상현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의 안전을 보여주기 전까진 제 몸에 손댈 생각은 안하시는게 좋습니다."

"이것은 구속구다. 자네의 실력이 우리보다 월등하니 이것을 해두지 않으면 우리도 자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없다."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애초에 죽이기 위해 신원확인을 하기도 전에 총부터 겨눈 사람들 아니던가. 구속구를 차면 정석영을 구하긴 커녕 몰매를 맞을 확률이 높았다.

"좋습니다."

상현이 말하자 걸음을 멈추고 양측의 중간에 서있던 남자가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그가 구속구를 상현의 손과 발에 채우려는 순간 그의 코에 번개같이 주먹이 날아들었다.

코뼈가 주저앉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에 주먹이 꽂히며 연달아 12방의 공격이 들어갔다. 가지끝의 낙엽에 세찬 바람이 불듯 이리저리 흔들린 남자는 공격이 지나가자 풀썩 주저앉아 땅으로 쓰러졌다.

"좋다고 한 것은 거짓이었나?"

"당신들을 쓰러트리는게 좋다고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말한 상현은 검을 쥐며 자세를 잡았다. 어차피 대화가 불가능한 상대들, 무력을 이용해 쓸고 지나갈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스카디 : 넌 이제부터 1대 교주야.

신재후 : 내가 로리교의 교주라니...

여러분 고등학생은 로리취급하지 않는겁니다.

그나저나 상현이 쬐꼼 영악해지는 모습을 보이나요.

정석영을 저들이 못알아본 이유는 다음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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