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4 회: 파행 -- >
"미국 정부에서는 세계를 상대로 기만행위를 저질렀으며...."
정석영이 촬영한 WEC 경기장 지하의 VTR 조작을 증명하는 자료들은 굉장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에서는 부랴부랴 조작된 정보라고 맞받아쳤지만 중국과 일본이 한국편을 들면서 그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번 대회나 프로스트 자이언트 토벌건 외에도 여러가지로 미국에 잔감정이 쌓여있던 그들은 한국을 지지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미국의 주도권을 빼앗아와 중국-한국-일본으로 이어지는 공조체제를 이루길 원했으니 딱 시기가 적절하다 할 수 있었다.
당장 이런 대사건이 터졌으니 미국에 있던 해외 기업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번 조작은 미국이 정부 차원에서 개입했기 때문에 개인의 비리나 횡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후폭풍을 가져왔다.
기업은 저물어가는 미국을 떠나 새로운 땅으로 이전할 계획을 짜기 시작했고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논의되는 것은 당연 한국이었다.
WEC 조작만 해도 엄청난 대사건이었지만 여기에 또 한 가지 소문이 능력자들의 사이에서 돌고 있었다.
그것은 세계 최강자의 자리를 놓고 붙은 승부에서 에딕손이 패배했다라는 것이었다.
강력한 조작의혹과 함께 다수의 증거가 나타나며 WEC는 중단될 위기에 빠졌지만 미국은 어떻게든 대회를 진행시켰다.
하지만 한국팀이 빠져 나간 상황에 분위기가 예전 같을 수 없는법, 설상가상으로 미국팀의 에딕손마저 경기장에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미국은 에딕손이 특별 임무도중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고 그것은 상현과 에딕손이 대결하던 당시 공항에 있던 민간인과 가드들의 증언과 합쳐져 둘의 대결이 이루어졌었다는 소문을 뒷받침했다.
문제는 에딕손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것에 비해 미쏠로지 팀의 대장인 환상현은 조작사실 발표 기자회견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었다.
조금 초췌해 보이긴 했지만 두 발로 멀쩡히 걸어다니는 사람과 면회사절까지 걸고 병원에 처박힌 능력자 중 어느 쪽을 승자로 여길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사실 에딕손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는 분명 그 당시 전투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상태였고 상현을 보내주기 위해 뒤로 물러났었다.
만일 그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고 상현을 한 번 더 공격했더라면 지금쯤 상현은 완벽하게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일단 고비를 넘긴 다음에는 완벽하게 상현의 페이스였다. 그는 3일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으며 일상적인 활동을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에딕손의 경우 최소 한 달 이상은 누워 있어야 한다는 병원측의 검사 결과가 나온 상태. 에딕손마저 침묵하자 미국의 하락세는 멈출 수 없는 지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동안의 명성은 강력한 조작 의혹으로 박살이 났으며 세계 최강이라 불리던 자리마저 한국에 넘겨줬으니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자신 때문에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현은 발코니에 서서 스카디와 재후가 훈련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환상현과 에딕손의 대결 이후 미쏠로지 대원들은 엄청난 자극을 받았다. 프로스트 자이언트를 토벌하고 다수의 상급 던전을 공략하며 이 정도면 많이 강해진 것 아닐까 하고 조금 자만했던 것이 사실, 그러나 대결을 보고 난 이후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했는가를 다시 깨달았다.
그만큼 그들의 대결은 레벨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이번 일에 대한 보상으로 한국 정부에게서 보너스를 받아 실컷 놀만도 했지만 오히려 그들은 게스트 하우스에 처박혀 개인 훈련을 하기 바빴다.
대원들이 이렇게 열심히 훈련을 하니 상현도 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채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다시 정상적으로 훈련에 복귀했다.
검과 창이 맞부딪치며 불꽃을 만들어낸다. 한참을 어울린 두 사람은 누가 말하지도 않았지만 천천히 뒤로 물러서며 호흡을 골랐다.
"이상한데. 아직 회복이 덜 된 거 아니냐?"
"왜요? 제 움직임이 이상한가요?"
상현은 이마에 맺힌 땀을 기분좋게 닦아내며 물었다.
"예전보다 검이 가벼워진 것 같은데?"
"그래요?"
종현의 말에 상현은 자신의 주먹을 보며 쥐락펴락을 반복했지만 딱히 차이는 없는 것 같았다.
"힘이 덜 실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내 착각일 수도 있지. 아니면 내가 더 쎄졌거나."
종현의 실력이 크게 늘었다면 그렇게 느낄만한 여지도 없지않았다. 그러나 종현은 자신의 실력이 WEC 개최 이전과 비교하여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말인즉 상현의 힘이 약해졌다고 판단한 이유가 자신은 아닐 것이란 얘기였다.
"다시 한 번 해보자."
"예."
종현의 말을 들은 상현은 더욱 기세롤 올리며 검을 휘둘렀다. 신성을 쓰지 않았다 뿐이지 상현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 한도의 공격으로 상대를 압박했다.
하지만 종현의 표정은 여전히 미지근했다. 상현이 비록 재생능력자라고는 하지만 종현이 가볍게 막아낼 정도의 검술 실력은 절대 아니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힘이 약해진 것이 사실인듯 했다.
훈련을 마친 상현은 곧바로 정석영과 함께 센터로 향했다. 자신의 신체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은 멀쩡하다고 생각했는데 에딕손과의 대결로 몸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시간의 검사를 거쳐 결과를 기다리는 상현에게 의사가 다가왔다.
"환상현 씨, 혹시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습니까?"
"아니요. 한 번도 없었습니다."
"큼큼."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서 현재 진료 결과를 천천히 불러주었다.
"환상현 씨의 세포가 마력을 거부하고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능력자와 일반인의 세포 구성이 조금씩 다른건 알고 계시죠? 한마디로 곧 일반인이 되실거란 소리입니다."
의사의 말을 같이 듣고 있던 정석영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의사 양반!"
정석영이 버럭 화를 내자 이게 내 잘못이냐는 표정으로 의사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분명 드문 케이스이긴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넘는 능력을 써서 세포조직이 무너지는 경우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에도 그런 경우 같습니다. 저도 이런 결과를 알려드리게 되서 안타깝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게 좋을겁니다. 능력자 분들이 하루아침에 능력을 잃고 우울증에 시달리시는 분들이 제법 계시거든요."
의사는 해야할 말을 전한 채 사라졌고 병실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오히려 당사자보다도 정석영이 더 충격을 받았는데 그는 다리가 풀려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고.'
한국을 뛰어넘어 세계의 희망으로 발돋움하려던 순간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마지막이 닥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상현에게 내려진 판정은 능력자에게 있어서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의사의 말을 상현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몸 상태를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어쩌면 의사가 잘못 진단했을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하며 상현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자 상황은 완벽하게 변했다.
'무겁네....'
자신의 전용무기인 S급 은색 장검이 어제보다도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치 첫 던전 사냥을 마치고 검을 고르러 나왔을 때 같은 기분이었다.
당시 상현 역시 근력만으로 검을 붙잡느라 무거운 검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꼈던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힘이 약해져갔고 결국 상현은 자신이 준 민간이이 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재생능력마저 1~2레벨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당장 자신들의 대장이 능력자로서의 힘을 잃어버리고 있단 사실이 알려지자 대원들의 걱정은 이만저만한게 아니었다. 정부에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들을 전력 지원해주는 이유중 가장 큰 이유가 환상현 때문이었음을 그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상현은 그들에게 평범한 대장이 아닌 정신적인 지주와도 같은 존재, 그가 없이는 미쏠로지 팀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대원들의 걱정과는 반대로 상현은 아무 문제 없다는 듯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겁니까?"
상현이 아무런 티도 내지 않자 정석영은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아무리 멘탈이 튼튼해도 하루아침에 일반인이 된다고 하는데 어떤 반응을 보여야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저렇게 싱긋 웃고만 있으니 정석영의 속이 타들어갈 만도 했다.
"한 달 정도면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
"정, 정말입니까?"
지금까지 한계치를 넘어 일반인이 된 능력자 중에 다시 힘을 회복했다고 알려진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상현은 인간이 아니라 신 아니던가. 그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난 이후 천천히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한 뒤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했다.
확실히 에딕손과의 대결이 자신에게 무리가 된 것은 틀림없었다. 자신의 재생능력 조차 듣지 않을 정도로 조직을 파괴시킨 것이다.
'아마도 신성과도 연관이 있겠지.'
심장이 파괴되고 가슴에 뚫린 구멍까지 메우는 재생능력이 고작 세포조직을 회복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만 에딕손이 반신의 힘을 지녔다고 한다면 이해가 갔다.
신성은 어떻게 응용하냐에 따라서 무궁무진한 효과를 낼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상현은 정석영에게 안심하라고 말하며 신중하게 치료에 들어갔다. 이름 모를 신의 신성에 노출되 붕괴된 세포 하나하나에 자신의 신성을 불어넣어 다시 완전 재생시키는 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한 달이면 충분해.'
그는 전혀 조급해하지 않았다. 방법을 알고 있는데다가 한 달이면 치료할 수 있는 상처에 상현이 조급해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와 똑같은 증상을 겪고 있던 또 한 사람의 능력자는 그야말로 똥줄이 타들어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일이냐고!"
쨍그랑-!
자신의 주변에 있는 집기를 닥치는 대로 집어던지며 화를 내는 에딕손, 그 역시 상현의 신성에 노출 돼 능력을 잃어버리는 단계를 밟고 있었다.
미국의 내로라하는 의사들과 치료계 능력자들이 에딕손의 사라지는 힘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상현과 대결을 펼친 후 채 보름이 지나지 않았을 때 그는 하급 능력자 수준까지 전투력이 떨어져 있었다.
'이제 끝이군.'
'에딕손 공격대도 슬슬 이름을 바꿀 때가 온 모양이야.'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에딕손을 몰아내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었다.
'조국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능력자가 되고 난 이후부터 평생을 몸바쳐 일해온 조국이 자신을 버리려 하고 있다는 사실에 에딕손은 큰 충격을 받았다.
"잰슨! 나 이대로 주저앉지 않아! 날 좀 도와줘."
공격대의 부대장으로 앉아있던 잰슨에게 에딕손은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반드시 재기를 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잰슨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형, 10년이면 해먹을만큼 해먹었잖아. 솔직히 다들 말을 안해서 그렇지 형한테 불만 가진 사람들 제법 있었을걸? 맨날 조국을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조국 노래만 부를 줄 알았지 우리는 신경도 안썼잖아. 히드라 토벌만 해도 그래. 대체 그 위험한 작전을 위해 우리가 몇이나 죽었어? 우리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귓등으로도 안듣고 결국 정부의 요구대로 일을 밀어붙인 거 아니야. 솔직히 이렇게 형 얼굴 보는 것도 불편해. 더는 얼굴 보지 맙시다."
대원들이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 몰랐던 에딕손은 멍청한 얼굴이 되어 힘없이 잰슨의 집을 나섰다.
'조국을 위해 몸바친 대가가 고작 이렇단 말인가?'
대원들이 자신을 이리 대접한다면 미국 정부라도 자신을 도와줘야 할 텐데 정부는 한 술 더 떠 그동안 에딕손에게 지급하기로 한 보상금액에 대한 축소가 가능한지를 검토중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상처입은 영웅은 결국 스스로 은퇴를 선언하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미국 최강의 공격대로 불렸던 에딕손 공격대의 몰락이었다.
============================ 작품 후기 ============================
에딕손 : 말도 안돼! 이럴 순 없다고!
환상현 : 느이 집은 이런 것두 치료 못하니?
에딕손 : .......
감기 완전 지독하네요.
약먹고 거의 24시간 가까이 잤습니다. 너무 자서 그런가 이도 아프고 이런 젠장;
그래도 땀내면서 푹자니까 좀 나아진 것 같습니다.
독자여러분들도 감기 조심하세요. 고생 장난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