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5 회: 전환점 -- >
본래 미국은 조국을 위해 충성한 사람들을 크게 대우하는 국가다. 영웅이 되고 싶거든 미국에서 태어나란 이야기가 괜히 있는게 아닐 정도로 타국가에 비해 월등한 지위를 보장하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에딕손의 경우엔 상황이 너무 안좋았다. 미국 능력자 세계의 흑막이라 할 수 있는 벡클레이의 눈밖에 나버린 것이다.
환상현이 국외로 탈출을 시도할 경우 죽여서라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에딕손이 그 명령을 무시했음을 첩자를 통해 전달받은 벡클레이는 크게 분노했다.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현대의 영웅인 에딕손도 벡클레이의 눈밖에 난 이상 몰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벡클레이는 가장 먼저 에딕손 공격대의 내부에 심어둔 첩자를 통해 팀을 분열시켰다. 잰슨을 필두로 대장 자리에 욕심이 많은 능력자들을 부추기는 한편, 언론을 움직여 그의 이미지를 깎을 수 있는 모든 정보조작을 시전한 것이다.
사정을 제대로 모르는 일반 시만들과 정부 관계자들은 정보 공작에 휘둘려 에딕손을 매도하고 그를 처벌할 것을 촉구했다.
스캔들, 탈세, 각종 비리 등등, 가장 사랑받던 영웅이 손가락질 받는 인간으로 전락하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처참한 현실에 영웅은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자신의 이익도 포기하고 국가에 헌신한 인간이 받기에는 너무나 억울하고 초라한 대접이었다.
정밀 작업을 하듯 신체 구석구석을 살핀 상현은 됐다고 판단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금빛 서기가 아른거렸으며 몸 주변엔 은은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의사의 능력 상실 판정을 받은지 27일 만이었다. 상현이 지하실 문을 열고 나오자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미쏠로지 인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의 앞에 모였다.
"다 회복한 거에요?"
"아무 이상 없는 겁니까?"
시끌벅적한 대원들에게 조용히 해달라며 손을 내민 상현은 치료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거실로 이동했다.
"일단 몸에는 아무 이상 없어요. 그런데."
아무 이상 없다는 말에 박수를 치며 좋아하려던 대원들은 그런데란 말이 나오자 몸이 굳었다.
'설마 무슨 부작용이?'
다들 같은 생각을 하는 가운데 상현의 입이 열렸다.
"아무래도 재생능력 말고도 다른 능력이 하나 더 생긴 것 같네요."
침묵.
일행들은 상현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잊은 채로 침묵을 지켰다. 물론 능력자들 가운데 복합 능력을 가진 능력자가 매우 드문 것은 아니었다. 당장 스카디만 해도 냉기 계열과 냉기 드레인이라는 복합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
하지만 이미 재생능력이 10레벨의 극의에 다다른 상현이 새로운 능력을 개발했다는 사실은 보통의 복합능력과는 확실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보통 복합능력자들은 어느 한쪽의 능력이 우수하게 뛰어난 경우가 보통 없었다. 능력 개발이 워낙 힘들기 때문이다. 두 가지 능력을 절정으로 완성시키려면 배 이상의 시간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때문에 2중, 3중 능력을 가진 능력자 중에 실력으로 유명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물며 상현은 이미 세계 1인자라는 소리를 듣는 능력자다. 그런 그가 새로운 능력에 눈을 떴다는 사실은 대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대원들 뿐만 아니라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엄청난 이슈가 되리라.
"무슨 능력이에요?"
"알려줘요!"
다들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는 표정이었다. 상현은 진정하라며 대원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이번엔 전력을 다해도 되는거냐?"
백종현은 아직도 찜찜하다는 듯 물었다. 한 달 동안이나 방에 틀어박혀서 신성만 다루고 있던 상현은 그가 보기에 매우 힘이 약해진 것처럼 보였다.
회복은 커녕 창으로 툭 건들기만 해도 쓰러질 환자처럼 보였던 것이다.
"문제 없습니다."
"좋아."
펑-
지면을 박차는 소리와 함께 그의 창이 상현의 코앞을 스쳤다. 하지만 상현은 그 창을 피하지 않았고 종현은 깜짝 놀랐다.
그의 방어력이 엄청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공격을 대놓고 맞아주는 경우는 흔치 않았던 것이다.
"괜, 괜찮냐?"
"아무 문제 없습니다."
코에 돋아난 보석들이 다시 사라지며 상현은 얼마든지 치고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며 종현을 도발했다.
"흥!"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겠다며 종현은 엄청난 마력을 끌어올려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제 막 8레벨에 올라선 그의 창술은 굉장히 무서웠다.
바람만으로도 건물 몇 채는 날려버릴 것 같은 기세, 그러나 상현은 전혀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두 다리로 딱 버티고 서서 종현의 공격을 받아냈다.
파카가가각-
종현의 창끝이 몸을 가를 때마다 보석과 창끝이 부딪치며 불꽃의 눈이 날렸고 큰 기술이 터질 때마다 귀를 찢을 것 같은 소음이 주변을 진동했다.
"뭐야! 계속 맞고만 있을 참이냐!"
계속 전력으로 공격을 퍼붓던 백종현은 욱해서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상현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자신의 공격을 계속 받아내기만 할 뿐 그 어떠한 반격도 해오질 않았다.
마치 자신의 공격력을 시험하는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충전된 것 같습니다."
"충전?"
상현은 천천히 검을 들어올려 종현을 향해 겨눴다.
'뭐지? 검기탄? 아니면 이기어검술이라도 부리려는 건가?'
상현이 무슨 공격을 해올지 긴장하는 찰나 그의 발밑에서부터 벼락이 터진듯 마력이 폭발했다.
"큭!"
순간 전신을 강타하는 매서운 뇌격, 종현은 깜짝 놀라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몸은 감전이라도 당한듯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종현의 반응을 보며 당황하기는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마비계열 능력?"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현이 새롭게 각성한 능력, 그것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 단 한 번도 보고된 적 없는 특수한 능력이었다.
"받은 충격을 계속 모아서 일정 이상 뭉치면 터트릴 수 있다구요?"
"아직 레벨이 낮아서 다수에게는 적용이 안되는 것 같지만 대충 그런 메커니즘인 것 같네요."
상현의 설명을 들은 대원들은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상대의 데미지를 일정 비율로 환원시켜 기운으로 뭉친후 그것을 기절의 힘을 가진 마력으로 방출시킨다는데 놀라지 않을 대원은 없었다.
심지어 상현은 재생능력자에다가 세계 최고 수준의 방어력을 지닌 자였다. 이것은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럼 그 능력을 뭐라고 부르죠? 기절 능력?"
"기절을 부르는자, 스터너!"
다들 호들갑을 떠는 와중에 정석영이 헛기침을 하며 대원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일단은 우리들끼리만 알고 있는 걸로 합시다."
"왜요? 상현 오빠가 스턴 능력까지 가진걸 알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전부 놀랄 텐데요."
"세상 사람들이 놀라봐야 우리한테 큰 이득이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미 한국은 세계 최정상급 능력자 국가로 올라선 상태입니다. 이 이상의 전력 누출은 오히려 제 살 깎아먹기죠."
그동안은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어느 정도 힘을 내보여야 했지만 이미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상태, 이제부터는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전력 누출을 하지 않는 것이 비상사태에 대비해 유리하다고 할 수 있었다.
"끔찍한 능력이었어."
상현의 능력에 처음으로 당한 백종현은 고개를 저으며 소감을 밝혔다. 정신은 멀쩡한데 몸은 꼼짝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장시간 가위를 눌린 기분이었다.
"받은 힘이 더 강할수록 스턴 지속시간도 길어지나 보지?"
"글쎄요. 그것까진 아직 자세한 실험을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치료를 하다보니까 새로운 능력을 쓸 수 있겠다는 감이 팍팍 오더라구요."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미 심장과 상체 절반을 도려낸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했겠지만 상현은 절정의 재생능력으로 다시 살아났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재생력에 그의 세포도 모종의 각성을 한 것처럼 보였다.
"그 능력의 레벨이 올라 다수에게 적용되도록 개발된다면 정말 무시무시하겠군."
다수의 적군을 상대로 스턴을 거는 무시무시한 능력자, 상상만 해도 엄청난 무기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려야 할 게 있는데요. 앞으로 저희 A팀이 운영되는 방향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상현은 지금이 미래에 대한 방향을 밝히기 좋은 시점이라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 재후가 큰 능력의 향상을 이뤘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계셨으려나요?"
상현의 말에 대원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세기를 타고 한국에 날아왔을 때부터 이미 그들은 재후가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일단 풍기는 기도 자체가 달라져 있었다. 예전엔 평범한 동네 청년 이미지였다면 이제는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든 기류가 몸을 감싸고 돌아 말을 붙이기 힘들어졌다고 해야할 것이다.
"미리 알려드리지 않아서 죄송하지만 저는 샤먼계열 능력잡니다."
상현의 말이 가져다 주는 파장은 엄청났다. 그말인즉 그가 2중 복합능력자가 아닌 3중 복합능력을 가졌다는 소리였다.
"샤먼이라면...신의 힘을 빌려 사용한다는...?"
"진짜에요?"
다들 쉽사리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믿기 힘드실지도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제가 샤먼 능력자라는게 아니고 이 능력을 통해 보게 된 미래의 일입니다."
신의 힘을 통해 미래의 일을 예견했다는 사실에 일행들은 숨을 죽이고 그의 말에 집중했다.
"곧 엄청난 재앙이 닥칠 겁니다. 우리가 아직 본 적 없는 9급이나 10급 괴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재앙이요."
"설마 그럴 리가...."
"그럼 우리 다 죽는 거에요?"
상현의 말은 일행들에게 굉장한 충격이었다. 이미 재후를 각성시키기 전, 상현에게 이야기를 들어 상황을 짐작하고 있던 정석영마저도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우는 걸 막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것을 막기 위해 저는 재후에게 마력핵을 사용해 강화를 시도했습니다. 그 결과는 여러분이 보시는 대로구요."
"마력핵!"
대원들은 다들 깜짝 놀랐다. 그 귀하다는 마력핵을 어디서 구했는지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것을 재후가 통째로 삼켰다는 말이 더 놀라웠다.
"저는 앞으로 여기 계신 검사관님의 협조를 얻어 던전에서 나오는 모든 마력핵을 여러분들에게 투자할 예정입니다. 18명의 대원 전원의 10레벨 달성, 그것이 우리가 가장 먼저 밟아야 할 첫 번째 계단입니다."
너무 많은 폭탄이 한꺼번에 터진 날이었다. 상현의 말을 들은 대원들은 다들 멍청한 표정으로 게스트 하우스 내를 흐느적 거리며 돌아다녔다.
'관두실 분들은 관두셔도 좋습니다. 목숨이 열 개 있어도 위험해질 테니까요.'
상현은 대원들을 걱정하며 떠날 사람들을 배려했다. 하지만 힘이 없는 것도 잠시 뿐, 얼마 지나지 않아 대원들은 정신을 차렸다.
그들이 아는 상현은 이런 일로 농담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말인즉 정말로 엄청난 대 위기가 21세기에 닥친다는 이야기였는데 그의 말대로라면 위기를 막기 위한 계획을 실행시킬 인력조차 미쏠로지 A팀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전 세계를 통틀어도 마력핵을 사상자 없이 구할 수 있는 팀이 그들 뿐이었던 것이다.
한 가정의 가장인 김재식마저 결단을 내리자 그들은 상현의 방에 모여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했다. 그들은 끝까지 상현을 따를 것을 맹세한 것이다.
'정신나간 사람들 같으니.'
구석에 서있던 정석영은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마력핵이 가지는 가치가 얼마나 큰지 그들은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이미 크라켄과 프로스트 자이언트 토벌 건으로 매 년 통장에 돈을 지급받기로 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마력핵을 사용하자는 상현의 계획에 아무 의심없이 동참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과는 반대로 정석영 또한 묘한 뿌듯함과 함께 가슴 벅참을 느끼고 있었다. 그 역시 정신나간 사람이었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다시 돌아온 템작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