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나이트 레전드-88화 (88/123)

< -- 88 회: 대무덤의 대장장이 -- >

신성을 가릴 수 있는 천, 그것은 상당히 귀한 아이템이었기에 아마 헤파이토스 정도가 아니면 만들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됐다.

"신성을 가릴 수 있는 아이템이라...시간을 들이면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 같긴 하다만 이유를 듣고 싶구나. 그것이 왜 필요한지 말이다."

"제 신성을 똑바로 보는 여신이 있으면 반드시 죽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현의 말이 의외였는지 헤파이토스는 눈을 살짝 크게 뜨더니 말했다.

"거참 희한한 저주로구나. 알겠다. 이유를 말했으니 옷을 지어주도록 하지, 하지만 조건이 있다. 난 지금까지 나의 물건들을 그냥 넘겨준 법이 없었다. 설령 상대가 신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너는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

황금 의자에 턱을 괴고 앉은 헤파이토스가 거만하게 물었다.

"달리 생각나는 것이 없으니 직접 말씀해 보시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드릴테니."

"좋다. 나는 렘노스 섬의 공방을 되찾을 계획이다. 그런데 그곳에는 상당히 무서운 괴물 놈 한마리가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지. 솔직히 내 병사들로도 역부족이라 생각되는 녀석이다."

바깥의 황금병사의 수가 3천, 봉인석을 지키던 괴수를 죽이는데 2천 이상의 병사가 소비됐다고 했으니 그녀가 역부족이라 평가했다면 족히 9급에 달하는 힘을 지닌 괴수일 것으로 여겨졌다.

"네가 그것을 처치해 준다면 신성을 가리는 천을 만들어주겠다. 사실 이 공방은 환경이 열악해서 네가 말한 천을 만들려면 반드시 공방을 되찾아야 한다."

"좋습니다. 그럼 공방을 되찾는 것으로 제 부탁을 들어주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잠깐."

얘기가 다 끝났으면 일행에게 가도 되겠냐는 상현의 말에 헤파이토스는 손을 들어 저지했다.

"나도 가망성이 없는 녀석에게 기대를 하며 헛된 시간을 날릴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느냐. 이 자리에서 간단한 시험을 해보자."

"시험이라면 어떤 것을...?"

"나와 겨뤄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느냐."

헤파이토스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헤파이토스는 상현이 자신이 만든 황금의 병사들을 비웃었을 때부터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때문에 실력을 테스트 해보겠다는 명목하에 분을 풀려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테스트를 시험하기 전에 제동이 걸렸다. 상현이 반대를 하고 나선 것이다.

"불가능합니다."

"어째서지?"

"저는 충분히 당신을 제압할 능력이 있지만 그것은 신성을 발휘했을 때의 이야깁니다. 방금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저는 신성을 쓰면 당신을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신이 아닌 다른 대리인을 내보내시겠다면 그 시험을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애초에 상현이 천을 구하려는 이유도 여신에게 보일 신성을 감추기 위함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갈리토스!"

"부르셨습니까."

헤파이토스의 부름에 전신을 무장한 황금 병사가 들어섰다. 얼핏 보기에도 다른 황금병사들과 질적으로 다른 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욱 공을 들여 만든 티가 난다고 할까.

"황금 병사들을 이끄는 군단장 갈리토스다. 봉인석을 지키는 마수와 상대하고 나서 깨달은 바가 있어 만든 내 야심작이지."

"저와 싸울 상대겠군요."

"그렇다."

"심하게 부서질 수도 있는데 상관없겠습니까."

"부서지면 고치면 그만이다. 갈리토스는 내가 만든 것이니 말이다. 문제는 이쪽이 아니라 네 놈이다. 네 목숨은 잃어버리면 내가 고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헤파이토스의 말에 상현은 걱정하지 말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갈리토스, 저자와 싸우기 전에 작업실에 걸어둔 내 장비를 입고 나서라. 싸움을 지켜보고 싶지만 신성을 엿보면 안된다고 했으니 여기서 기다리도록 하겠다."

"금방 끝내고 돌아오죠."

상현은 황금의 군단장과 함께 성큼 서재를 나섰다. 거실을 스칠 때 황금 시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차와 과자를 먹고 있던 대원들이 상현을 보며 벌떡 일어섰으나 상현은 그대로 앉아있으라며 손을 흔들었다.

전력으로 힘을 쓰려면 대원들이 주변에 없는게 더 편했다.

"잠시만 기다려다오."

작업실에 들른 갈리토스는 헤파이토스가 말한 그녀의 전용 장비를 챙겨 나왔다. 본래 여신이 입을 용도로 만든 것이라 가슴이 봉긋 튀어나온게 조금 웃긴 모양새였다.

갈리토스는 남자였으니 말이다.

"어째 갑옷이 좀 작아보이는데."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자 그럼 대결을 시작하자."

협곡 바깥으로 빠져나온 일행은 거리를 벌리고 서서 대결을 준비했다.

'S급을 뛰어넘겠는걸.'

헤파이토스가 직접 만들었다는 무구의 질은 한국 정부가 무료로 임대해준 장비를 한참 뛰어넘고 있었다. 굳이 등급을 매기자면 SS나 더 높은 등급이 될듯 싶었다.

모든 힘의 균형은 장비에 우선한다.

이것은 헤파이토스의 절대적인 지론이었다.

주신 제우스 역시 아스트라페(번개창)가 없었다면 그만한 힘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며 다른 신들의 힘 역시 장비에서 나온다는 논리였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템빨 앞에 장사 없다'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 지론을 가진 헤파이토스가 만든 최고 장비, 번쩍이는 황금의 무구를 걸친 갈리토스의 위엄은 대단했다.

쿵쿵-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지축이 흔들며 굉장한 위력을 과시한 갈리토스가 쌍날도끼를 휘두르며 상현에게 덤벼들었다. 여신 헤파이토스가 무식하게 큰 쌍날도끼를 휘두르는 상상을 하며 피식 웃은 상현은 머리위로 날아드는 도끼를 향해 검을 올려쳤다.

빠직-

'아니?'

균열을 일으키는 불길한 소리가 튀어나오자 상현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S급 무기인 은색 대검이 단 한 번의 충돌로 날이 나간 것이다.

"놀란 모양이군. 이 양날 도끼로 말할 것 같으면 헤파이토스 님께서 백 년 이상 담금질해 만든 신계 최강의 무기다. 절대 도끼 올드원이라고 하지."

'망할.'

절대 도끼라는 어이없는 작명센스보다도 저 말도 안되는 위력이 더 거슬렸다.

만약 상현이 아니라 일반 검사가 S급 무기를 들고 휘둘렀더라면 균형을 맞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무기가 깨져버렸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도끼가 그대로 머리에 꽂혔을 테고 머리는 분열하는 아메바처럼 반으로 갈라져 달랑거리는 신세가 됐으리라.

"하압!"

상현은 포기하지 않고 기합을 넣으며 갈리토스에게 돌진했다.

그러나 갈리토스의 올드원이 휘둘러지는 순간 조금의 과장도 없이 태풍이 불어닥쳤다. 아예 전진이 불가능할 정도로 거센 바람,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드는 도끼날에 쪼개지는 방패, 허무하게 스러지는 방패를 보며 상현은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정석영이 봤으면 피눈물을 흘리며 살인자!(그에겐 S급 무기가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이는 모양)라고 외칠만한 대목이었다.

등에 있던 여분의 방패를 꺼내드는 동안에도 갈리토스는 여유를 부리듯 공격을 이어오지 않았다. 검의 검날도 너덜너덜 했으니 연속 공격을 해왔다면 꼼짝 없이 벌거숭이가 될 뻔했던 순간이었다.

'맞으면 안 되는 적을 공략하는 방법....'

라그나로크 시절의 상현은 이런 고민을 해야할 필요가 없었다. 당시 그는 여신이 물려준 최고의 장비를 갖추고 전장에 섰으며 눈빛만으로도 하급 마신들이 데미지를 입을 정도였다.

당연히 다가오기도 전에 적을 처리하는 경우가 일상다반사였으니 공격을 맞으면 안 되는 적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안 맞는 수밖에!'

짧은 시간에 머리를 굴리고 굴려서 나온 방법은 별 것 아니었다. 그저 상대보다 더 빨리 공격하고 상대의 공격을 안맞는 것 뿐이었다.

방어를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스턴 능력을 활용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자세를 낮추고 들어오는 갈리토스의 움직임은 정상급 근접딜러 능력자들의 수준에는 확실히 못미쳤다. 아마 헤파이토스가 전투경험이 없다보니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이라 생각됐다.

상대와의 거리를 좁혀나가자 전과 마찬가지로 도끼가 흉흉한 궤적을 그리며 수평으로 날아들었다. 그 순간 상현은 지면을 박차고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그러나 그 뒤의 동작은 다른 일반인들과 전혀 달랐다.

보통 인간이라면 그대로 포물선을 그리며 갈리토스의 뒤로 날아갈테고 그 정도 시간이라면 상대도 충분히 등을 돌려 대비를 했을 테지만 상현은 공중에 마력을 모아 발판을 만들고 그대로 상대의 투구 쓴 머리를 찍어눌렀다.

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충격파가 주변으로 흩어졌고 동시에 갈리토스의 목이 90도로 꺾였다.

쐐액!

모골이 송연해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은빛 도끼날이 날아들었다. 상대에게 공격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각오하고 들어가지 않았더면 자칫 맞을 뻔한 공격이었다.

"목이 꺾이고도 움직일 수 있나?"

스스로 고개를 잡아 뚜둑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바로세운 갈리토스는 터프한 공격이었다며 가볍게 칭찬했다.

"과거 제법 이름 높았던 인간들이 만든 기계들조차 스스로 복구할 수 있던 시대가 있었다. 하물며 헤파이토스님이 만들어주신 나는 거의 불사의 몸에 가깝지."

"약점은 없나?"

주절주절 자기소개를 늘어놓기에 혹시나 기대를 가지고 넌지시 물어봤지만 갈리토스는 씩 웃으며 한마디를 돌려줄 뿐이었다.

"직접 알아보거라."

그 퉁명스러운 말에 상현의 눈이 홀쭉해졌다.

"슬슬 돌아올 때가 된 것 같은데."

헤파이토스가 손가락을 두드리며 시계를 보고 있을 때 문이 벌컥 열리며 장본인들이 들어왔다.

"결과는?"

"후- 졌습니다."

졌다고 말하는 쪽은 상현이었다. 그의 대답에 헤파이토스는 흡족해 하면서도 갈리토스를 보더니 다시 무표정한 얼굴이 되었다.

어째 패자와 승자의 상태가 뒤바뀐 것 같은 모양이었다.

갈리토스는 목도 조금 비뚤어져 있었고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전신에 성한 곳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용의 심장을 불어넣어 엄청난 재생력까지 부여했는데도 저렇게 될 정도였으면 바깥은 자연재해라도 일어난 것처럼 헤집어져 있으리라.

"갈리토스를 이 정도로 만들다니 제법이구나."

"진 마당에 부탁을 하면 염치없을지도 모르지만 튼튼한 무기좀 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가지고 온 장비를 전부 잃어버렸거든요."

그렇게 안맞겠다고 용을 쓰며 움직였는데 아예 안맞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준비해 온 S급 검 두 자루와 방패 두 개를 모두 부숴먹고 나자 상현은 포기 선언을 한 것이다. 지금은 시간이 조금 지났다고 갈리토스가 멀쩡히 걸어다니고 있었지만 상현이 패배를 선언한 직후에는 다리가 휘어지고 팔목이 부러져 좀비처럼 움직이는 수준이었다.

"절대 도끼라고 하던가요? 저거 반만큼만 튼튼한 걸로 빌려주시면 제가 저 놈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흥."

헤파이토스는 콧방귀를 끼면서도 상현의 실력을 내심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본래 대장장이의 신, 설령 그녀 자신이 장비를 갖춰입었다고 해도 갈리토스와 그렇게 큰 전투력의 차이는 없었다.

장비도 장비지만 갈리토스라는 호문클루스를 만들기 위해 그녀는 엄청난 공을 들였던 것이다.

"저기 헤파이토스?"

상현이 이길 줄 알았던 스카디는 예상 밖의 상황에 살짝 당황하며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 운을 뗐다. 헤파이토스가 전력으로 협조해주기만 한다면 앞으로 공격대의 던전 공략은 탄탄대로가 펼쳐지는 셈이었다.

지구의 모든 신을 통틀어 그녀보다 손재주 좋은 신이 없었으니 얼마나 대단한 장비들을 만들어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북구신의 대장인 오딘조차도 제우스의 번개만 보면 입맛을 다시기 바쁘다고 했다.

"한 번 믿고 맡겨봐. 정말로 강한 사람이라니까? 헤파이토스가 신경써서 무구만 잘 갖춰준다면 공방을 되찾는 것쯤은 일도 아닐 거라구."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믿어보도록 하겠어."

어쨌든 꼴이 말이 아니긴 했지만 승자는 갈리토스, 자신의 부하가 이긴 마당에 상현을 인정해주기 아쉬웠던 헤파이토스는 스카디의 말에 못이기는 척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묻겠다. 너는 마신을 제거할 생각이 확실한 거겠지?"

스카디와 이야기를 나눠 상현이 무슨 의도로 공격대를 키우고 있는지는 전해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는 한 번 더 확답을 요구했다.

"물론입니다. 당신이 도와준다면 더 수월하게 놈들을 처리할 수 있겠죠."

"좋다. 나 헤파이토스의 이름을 걸고 말하노니 그대가 우리를 도와 마신의 토벌을 마치는 그 날 까지 나는 그대를 전력으로 도울 것이다."

"협조 감사드립니다."

미쏠로지 공격대의 마신 토벌 전력이 한층 업그레이드 되는 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환상현 : 내가 왕년엔 눈빛만으로 적을 죽이고 다녔는데!

신화 속의 헤파이스토스는 꽤나 성공한 오타쿠였습니다.

못만드는 것도 없었고 나중엔 예쁜 황금 시녀도 만들어서 붕가붕가도 할 수 있는 저력을 보여줬죠.

간만의 잉여력 돋는 답댓글!

누구게?님 // 저는 아직 상현에게 히로인을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 크크..

적절한ㅌㅌ님 // 신화 속의 헤파이스토스는 절름발이에 추남으로 묘사됐지만 작중의 2대 헤파이토스는 미녀에 늘씬합니다!

곰나와라얍님 // 에딕손은 언젠가 재등장할 예정입니다. 다만 빠르고 늦냐가 관건일뿐. 이미 낚시 바늘에 걸린 대어라고 합니다 ^^

귀무자님 // 그리스 신들이 좀 착각에 빠져사는 녀석들입니다. 지구 안에서만 놀다보니 자기들 정도면 최고다! 하고 있었는데 짱쎈 마신들이 넘어오고 나서 꿀밤맞았죠.

뱃살냥이님 // 저정도 공순이면 특급 공순이 입니다...ㅋㅋ

아스부나스님 // 아직 신이 두 명 밖에 안나와서 그렇습니다! 여신말고 남신도 다수 등장 예정입니다.

백약伯約님 // 더럽게 꼬였는데 말년에 제자복은 잘둬서 작중의 헤파이스토스는 편안하게 갔습니다. ㅜㅜ

드래곤음양사님 // 그렇게 쉽게 풀리면 재미없죠 흐흐...

조쿠나님 // 댓글 감사합니다 ^^

블루그린™님 // 뭐든 발명가능한 특급 공밀레....

벌레님 // 갈지말고 살려주세요...

Rv_taeyoon님 // 안그래도 정석영이 머리 쥐어뜯고 있습니다. 특히 상현이 엄청 깨먹거든요. 헤파이토스 지원좀 받으면 나아지려나요. 스카디가 본래 울레르 부인 포지션이었는데 여긴 2대 신들이라 기존 신화 가족관계와는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미쏠로지(신화) 팀명은 반신이 이끄는 팀이라 그렇게 정했습니다. 에이지오브 미쏠로지는 저도 재미있게 한 게임이죠 ㅋㅋ

FFR-44MR님 // 여기서 NTR 한번 더 찍으면 독자님들 분노하실거 같아 패스하겠습니다ㄷㄷ

슬슬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듯 하니 다시 폭참궤도에 오르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필력도 후지고 안읽으면 죽을만큼 재밌는 것도 아닌데...분량이라도 좋아야...흑..

그럼 있다가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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