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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레전드-89화 (89/123)

< -- 89 회: 대무덤의 대장장이 -- >

"그럼 먼저 장비들을 손 봐주시겠습니까?"

"도와주겠다고 했기로소니 시작부터 너무 부려먹으려고 드는구나."

상현은 미쏠로지 대원들이 걸치고 있던 장비를 몽땅 벗겨 작업실에 늘어놨고 헤파이토스는 툴툴거리면서도 상현이 가져온 장비를 유심히 관찰했다.

"왠지 이곳 인간들의 기술이 아닌 것 같구나. 던전에서 발굴된 것들인가?"

"대부분 그럴겁니다."

"솔직히 이 정도면 인간이 쓰기에는 꽤나 괜찮은 장비라고 생각한다만?"

"그거야 그렇겠지만 마신들을 상대하려면 곤란하겠죠."

상현의 말에 헤파이토스는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실력이라면 이것들을 가볍게 강화하는데 3일 정도가 걸린다. 그리고 신경을 써서 강화하면 일주일, 그리고 완전히 갈아 새로 탈바꿈 시키려면 한 달 정도는 걸리지."

"탈바꿈 시키면 어느 정도로 바뀝니까? 갈리토스가 들고 있던 절대도끼 그림자는 따라갈 수 있습니까?"

"농담도."

상현의 말에 헤파이토스는 흥! 하며 웃었다.

"올드원은 내가 만든 무구중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재료부터 신경써서 고르고 시기를 적절하게 잡아 힘을 불어넣지 않으면 그만한 대작은 나올 수가 없지."

"아쉽네요."

어림도 없다는 헤파이토스를 놔두고 상현은 작업실 내부에 걸려있는 다른 무기들을 둘러봤다. 절대도끼 급은 아니더라도 S급 이상의 훌륭한 장비들이 제법 있었다.

그것들을 한참 구경하고 있는데 스카디가 옆으로 따라붙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상현."

"왜?"

"아까부터 이상하다고 느낀건데."

그녀는 서재에서부터 느꼈던 위화감을 털어놨다.

"왜 헤파이토스한테는 존댓말 하고 나한테는 반말해?"

"음?"

환상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표정이었지만 스카디는 그것이 못내 불만이었던 모양이다. 입을 삐죽하고 내민 스카디의 표정은 그저 귀여울 따름이었다.

"헤파이토스랑 나랑 나이 차이 별로 안나."

"글쎄 왜 그랬을까."

적어도 헤파이토스는 여신으로서의 위엄이란 것을 갖추고 있었다. 무력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격이라는 것이 느껴졌는데 스카디는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런 느낌은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게 불만이신가?"

"평등하게 해야지. 평등하게!"

"알겠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스카디 님에게도 존대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는 상현을 보며 스카디는 어어? 하더니 결국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됐어. 생각해보니까 원래 하던대로가 편하겠어."

"괜찮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나이도 더 어릴 텐데 기분 나쁘셨겠습니다."

"아니라니까? 내가 괜찮다고 하잖아."

"거기 조용히 좀 해라. 작업에 방해되잖냐."

스카디랑 상현이 실랑이를 하고 있자 황금 돋보기를 들고 장비를 살피던 헤파이토스가 짜증을 냈다.

"어. 이거 마음에 드네."

선반에 걸려있던 하얀색 롱소드를 집은 상현이 팔자로 검을 돌리며 균형을 잡았다.

"여신님, 제가 갈리토스한테 무기를 전부 잃어버려서 그런데 이것 좀 임시로 쓰면 안됩니까?"

"안 돼! 그거 임시로 쓰기엔 너무 좋은 거야."

"헤파이토스님의 아량이 그리스 신중에 제일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아무래도 틀린...."

"가져가. 그냥 너 가져."

"감사합니다."

상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검을 들고 작업실을 나서자 스카디는 어이없다는 듯 양쪽을 번갈아가며 두리번거렸다.

'쟤가 원래 저런 캐릭터였나?'

상현이 능숙하게 아이템을 가져가자 그녀는 조금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스카디는 선반에 걸려있던 보석이 주렁주렁 박힌 예쁜 왕관장식을 들고 헤파이토스에게 말을 걸었다.

"헤파이토스님의 아량이 그리스 신중에 제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이 티아라가 너무 예뻐서 그러는데 저에게...."

"안 돼. 너 줄 것 없어. 돌아가."

같은 말인데도 어째서 이렇게나 반응이 다른지 스카디는 기분이 우울해지고 말았다.

다른 것에는 달리 욕심을 내지 않는 상현이지만 유독 좋아하는게 있다면 그것은 검이었다.

워낙 조용하게 자라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 뭔가를 해달라고 결코 요구하는 법이 없었는데 유독 검을 줄 때 만큼은 눈빛이 티나게 변했기에(티나게 변했다는 수준은 어디까지나 그의 기준에서다) 여신은 자신이 구해줄 수 있는 최고의 검을 찾아다 아들에게 선물해주기까지 했다.

라그나로크 당시 휘둘렀던 검이 전 차원을 뒤져도 손에 꼽을 명검이었다는 것은 아는지 모르는지 상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일행에게 향했다.

"다들 좋은 소식이에요! 헤파이토스 씨가 우리 장비를 점검해 주겠다고 하네요."

상현은 미소를 머금고 운을 뗐지만 분위기가 싸하다는 것을 느끼고서는 왜그러냐며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형. 이제 사실대로 설명해 줘야겠어요."

가장 입을 연 것은 재후였다. 그 뒤를 이어 다른 대원들 역시 다들 한마디씩을 꺼냈다.

"우린 너를 믿고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네가 어떻게 우리한테 이런 비밀을 말도 없이 숨길 수가 있냐!"

"오빠 너무해요."

"난 언젠가 이런 일이 터질 줄 알았습니다. 교주님."

일의 발단은 신의 위엄을 내뿜는 헤파이토스, 그리고 그런 여신과 아무런 스스럼 없이 대화를 이어나가더니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는 상현의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상현은 뛰어난 능력으로 그들을 이끌긴 했지만 오늘 보여줬던 그의 모습은 어딘가 인간과 동떨어진,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존재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게다가 일행들이 차를 마시면서 상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던진 재후의 발언이 폭탄이 되서 뻥 터졌다.

"우리 형, 평범한 사람이 아니래요."

"당연하지. 상현이가 평범한 사람이면 에잉, 난 자살해야지."

백종현이 농담을 던지자 재후는 굳은 얼굴로 그런게 아니라며 덧붙였다.

"인간이 아니라고 했어요. 신이래요!"

"뭐라고?"

"신?"

재후에 말에 깜짝 놀란 김재식은 마시던 홍차를 줄줄 흘리고 있었고 성하나와 신채은은 씹던 쿠기를 목구멍으로 미쳐 넘기지 못하고 돌처럼 굳어 있었다.

"신이라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그나마 멘탈을 유지하는 건 한솔 뿐인듯 했다. 그녀는 상현이 신이건 아니건 상관없다고 했지만 나머지 일행들은 크건 작건 전부 충격을 받은듯 했다.

"누가 그래요?"

"스카디가 그랬어요. 자기랑 형은 둘다 신이라고. 아니, 형은 반신이랬던가? 비밀로 하라고 한 적도 없으니까 얘기해도 되겠죠 뭐."

이수연의 질문에 재후가 대답했다.

"뭐야. 그럼 우린 지금 신을 공격대장으로 앉혀놓고 괴물 놈들하고 싸우는 거야?"

"다른 의미로 안심이 되는데. 근데 신이라기엔 뭔가 임팩트가 부족하지 않나?"

이주혁의 말에 다들 상현의 이미지를 다시 한 번 떠올렸다. 가끔씩 한계를 넘어서는 것 같은 대단한 능력을 보이긴 했지만 신화속의 신들에 비하면 솔직히 부족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신이라면 적어도 제우스 처럼 번개를 던져 산을 쪼개고 독수리로 변해 날아다니는 등의 진짜 인간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야 할 텐데 상현의 강력함은 자신들도 죽을 때까지 노력하면 닿을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게 만드는 그런 강함이었다.

게다가 그는 독수리로 변하는 재주도 없어보였다.

이것을 시작으로 그들은 당사자가 오기 전까지 별 영양가도 없는 토론으로 엄청난 진을 뺀 상태였다.

결국 상현에게 직접 물어보자는 결론만을 남겼을 때 때 마침 상현이 나타난 것이다.

"대답해줘요. 형 진짜 신이에요?"

"신은 아니고 반신이지."

결국 본인이 인정하자 다들 두 눈이 있는대로 커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재후 너도 이제 하급신의 반의 반의 반은 될 텐데."

'아니 형이 날 붙들고 늘어지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냐며 일행의 눈초리가 상현에게서 자신에게 이동하자 재후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형,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신이라구요?"

"신이라고 하기엔 민망하고 일단은 신성을 갖췄으니까.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구요. 핵이 구해질 때마다 여러분을 신성을 갖춘 인간으로 각성시킬 겁니다. 반신하고 인간 중간쯤에 걸쳐져 있다고 보시면 되겠네요."

"너 그런 엄청난 말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구나."

눈썹하나 까닥하지 않고 저런 사실을 줄줄 늘어놓자 오히려 그가 더 신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왕 다 들통난 마당에 숨길 필요는 없지않을까 해서요."

상현은 얼떨떨해 하는 종현을 보며 머리를 긁었다.

애초에 그가 신이라는 사실을 숨긴 이유는 본래 몸의 주인이었던 환상현의 정보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상현이 살던 세계에서는 신들이 인간들의 존경을 받으며 어울려 지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계였지만 이 세계의 신들은 이야기책 속에서나 등장하는 존재였다.

심지어 자기를 신이라고 지칭하는 모 사이비 교단의 인간들은 여신도들을 구원하겠다며 섹스를 하질않나 부활을 시키겠다며 생사람 잡는 미친 짓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병원에서 맨 처음 만났던 간호사, 자신의 신분을 분명히 밝혔을 때 보였던 벌레씹은 듯한 그 표정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했다. 여러모로 정보를 종합했을 때 이곳은 신이라는 사실을 감추는 것이 정상인으로 살기 유리한 세계였던 것이다.

"거 누구 머리에서 나온건지 팀 이름 하난 기똥차게 잘 지었네."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정석영이 너스레를 떨며 혼란스러운 교통상황을 정리했다.

미쏠로지, 신화라는 뜻이니 반신을 공격대장으로 삼은 팀이 가지기엔 참으로 적절한 이름이라 할 수 있었다.

"기왕 다들 아시게 된 거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상관없지만 아까 마주친 헤파이토스 씨 한테는 함부로 하시면 안되요."

"스카디는요?"

"스카디는 상관없지. 걔는 이미 우리 대원인걸."

손을 들고 질문하는 신지혜에게 상현이 대답했다.

"제가 반신이라는 사실을 감춰서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상현이 꾸벅 고개숙여 사과하자 종현이 다른 대원들을 보며 물었다.

"기분 나쁜 사람?"

"기분 나쁜 건 아니구 그냥 섭섭한 정도?"

"그냥 그게 뭐 별 일이라고 비밀로 했나 싶죠."

"아니, 별 일은 별 일이지. 근데 기분은 안 나빠요."

"신이나 아이돌이나 비슷한 느낌 아니야? 세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우리 대장은 이미 아이돌이나 다름없으니까."

다들 괜찮다는 반응을 보이자 상현은 안심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을 더욱 보살펴줘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상현이 꾸벅 인사하자 다른 대원들 역시 잘 부탁한다며 웃었다. 아무리 봐도 아직 그가 신이라는 사실이 잘 와닿지 않는 대원들이었다.

"자, 받아가."

헤파이토스는 직접 만든 장비들을 대원들에게 건넸다. 샹굴라 대무덤에 머무른지 한달하고도 보름, 여신이 건넨 장비를 갖춰입자 그들에게서 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위엄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내가 처음으로 다수의 인간들을 지원하는 거다보니 신경을 좀 썼는데 마음에 들려나 모르겠네."

상현이 헤파이토스 앞에서는 가급적 말을 아끼라고 해서 그렇지 대원들은 다들 기뻐 어쩔 줄을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능력자들이 자기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장비다.

능력의 레벨에 관계없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강함을 올려주니 당연한 것이었는데 여신이 손봐준 그들의 장비는 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을만큼 뛰어나게 변화된 상태였다.

"전에 말씀 드린대로 렘노스섬 탈환작전은 조금 시간을 두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나도 그동안 내 병사들을 손보고 준비를 해두도록 할테니."

섬을 지키고 있다는 최강의 괴수, 그것을 상대하기 전까지 상현은 대원들에게 전부 마력핵을 흡수시킬 생각이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수고해."

검을 비롯해 전신의 장비를 강화받은 상현과 대원들은 당당한 발걸음으로 지상으로 향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공격대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아낌없이 주는 나무란 대장장이 여신님을 두고 하는 소리라고 합니다.

신들은 자기보다 상위 신에게는 알아서 존대를 하거나 격이 다른 상대에게 하대를 듣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딱히 나이가 어리다거나 많다고 해서 말투가 결정되진 않습니다. 평소의 상현은 항상 신성을 감추고 다니니 신들 사이에서는 최하위 막내 급입니다.

신성을 감춘 상태로 내가 사실은 진짜 쎈데! 라고 해봐야 설득력 없죠.

여러가지 사정으로 말투가 뒤죽박죽 되는 것도 일상다반사입니다.

2014년 마지막 날입니다. 연참의 기운이 저를 부르니 오후에 또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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