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6 회: 강화의 길 -- >
처음엔 아무도 믿지 않았다. 자신이 신이라 자청하는 사기극은 고대로부터 끊인 적이 없을 정도로 그 역사가 싶었다. 그러니 쉽사리 믿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상현이 신성을 끌어올리며 그의 몸에서 후광이 비치는 순간 관계자들은 몸이 굳으며 그 신성에 절로 고개를 숙여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상현이 신경써서 최대한 약하게 신성을 뿜었음에도 이 정도 위력이었다. 정부 관계자들의 뇌를 다 태워버리고 싶은 생각은 없기에 힘을 최대한 조절해야 했다.
"디멘션 홀 역시 마신들의 지구 파괴 수단중의 하나로 짐작됩니다. 때문에 저희 미쏠로지는 다가올 최후 전쟁에 대비해 힘을 기르고 있습니다."
"한국은...아니,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습니까?"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9급 트롤 같은건 애교로 보일 정도의 적들이 나타날 예정이며 그 물량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라 적혀 있었다.
전세계에서 초월급 괴수가 다수 출현한다면 지구 멸망은 시간문제였다.
"그건 저희가 얼마나 대비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보고서 후반부에 보시면 이번에 환상현 공격대장이 정부에 원하는 플랜이 몇 개 더 추가되어 있습니다."
정석영의 말에 수뇌부가 황급히 서류철을 넘기기 시작했다.
"300만평 규모의 능력자 훈련소 건설이라구요?"
여의도가 약 백만평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크기의 훈련소였다.
"알아본 결과 현재 있는 능력자 교습소는 일반인을 능력자로 각성시켜줄 확률이 상당히 적더군요."
능력자는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되면서부터 각성을 시작한다. 하지만 능력자들의 역사는 이제 겨우 12년차, 마력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방법을 제대로 알기엔 짧은 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현을 비롯한 신들은 달랐다. 그들에겐 마력을 운용하는 온갖 방법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 각성시켜준 재후 같은 경우엔 일반 능력자들에 비해 마력회로의 양이 3배 이상 더 많았다.
같은 레벨의 능력자라고 해도 회로가 우수한 쪽의 파워가 센 것이 당연했다.
"미쏠로지 대원들을 투입하면 훨씬 더 높은 확률로 능력자로 각성시킬 수 있을겁니다. 물론 저도 도울 예정이지만요."
"군대라도 만들 참입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미쏠로지의 이름을 걸고 군단을 만들 계획입니다."
그 말을 들은 관계자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정석영까지도 몸에 굉장한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신이 통솔하는 능력자 군단, 듣기만 해도 가슴 속 깊은곳에서 무언가를 차오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보고서에 적힌 플랜을 진행시키기 위해 지원을 아껴서는 안됩니다. 최후의 순간에 대비하려면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의 협조를 얻어도 어려운 일이 될 지 모릅니다."
"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너무 엄청난 일인지라...."
장관은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대통령 조차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상황, 물론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국정부는 최선을 다해 그를 서포트 할 터였다.
지구의 종말이 될 지 모르는 대 위협, 그 위협에 맞서 싸울 국가로 한국이 선택되었다는데 가리고 자시고 할 여유가 없었다.
"일단 보고를 좀 올려야 겠습니다. 시간은 괜찮으시겠지요?"
"예. 하지만 오늘을 넘기시면 곤란합니다. 당장 내일부터 대원들 전력 강화를 위해 중국 순회에 나서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장관은 조금 진정이 된 듯 곧바로 관계자들을 불러 보고서를 작성하고 한국에 회의 내용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마력핵이 아깝긴 했지만 다 살자고 하는 일인데 아쉬워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그들은 당장 해야될 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해야만 했다. 그렇게 커다란 폭풍이 한차례 지나가고 있었다.
"중국 순회는 원래 하던대로 여러분이 진행하셔야 합니다. 에딕손씨까지 있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죠?"
"염려 마세요."
"우리만 믿으세요!"
공항에서 상현과 종현은 대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한 달 뒤를 기약했다.
트롤의 토벌로 얻은 800만K 급의 특급 마력핵, 상현은 그것을 이용해 강화받을 다음 대원으로 종현을 선택했다. 원래는 성하나를 강화시키려고 했는데 이만한 마력핵을 구하기 힘들었기에 근접전 담당에서 지휘를 맡고 있는 종현을 택한 것이다.
그 시간동안 나머지 대원들은 중국 던전을 돌며 핵을 수집하기로 했다. 중국 정부에서 검사관이 따로 동행을 하겠지만 스카디가 신성으로 재울 수 있을테고 그가 잠든 사이 정석영이 자료 조작을 마칠테니 걱정은 없었다.
일행들과 헤어져 비행기에 올라탄 종현이 말했다.
"이거 한 달 동안이나 잠들어 있어야 되다니, 심심해서 어떡하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치곤 표정이 되게 좋아보이는데요."
"그래?"
그의 얼굴은 상당히 우스꽝스러웠다. 자그마치 800만K다.
그에 훨씬 못미치는 마력핵을 받고도 단번에 두 계단이나 레벨이 오른 재후의 전적으로 미루어 볼 때 이번 역시 대단한 능력상승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덕분에 상현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종현의 입술은 계속 히죽히죽 움직이고 있었다.
"정부에서 우리 계획을 다 들어준다면 정말 바빠지겠구나."
대규모 능력자 훈련소 외에도 세계 각국과 공조하여 던전을 탐사하는 일, 그동안 나타날 초월급 괴수들을 처리하는 일까지, 몸이 몇 개쯤 더 있으면 싶을 정도였다.
"일 년 마다 한국이 보유한 능력자 파워는 몰라보게 달라지겠죠."
"다른 세계 정부엔 알리지 않을 참이냐?"
상현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초기에 정보를 알게 되면 대혼란이 일어날 것을 염려하여 아직 그 사실을 타국에는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상태였다.
언젠가는 알리게 되겠지만 적어도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은 지금은 아니었다.
이런 대위기를 앞둔 마당에도 누군가 이익을 위해 이기적인 움직임을 보일 확률을 배제할 수 없었다.
"당분간은요. 아마 오래 걸리진 않을겁니다. 1년 정도로 예상하고 있으니까요."
당장 시급한 것은 대원들의 강화와 예정되어 있는 렘노스 섬에서의 전투였다. 헤파이토스가 공방을 되찾고 나면 군단의 전력 강화에도 탄력이 붙으리라.
"한국 정부에서 세계 최초로 대규모 능력자 훈련소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해당 훈련소는 미쏠로지의 공격대장 환상현 씨가 정기적인 방문으로 능력자들에게 기술 전수를 할 방침으로...."
"한국이 대규모 훈련소 건설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흐르기 시작했다. 상현이 게스트 하우스 지하실에 내려가 종현을 각성시키는 사이 정부에서는 주도적으로 상현의 이름을 앞세워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했다.
세계 최고 공격대가 관리하는 대규모 훈련소, 전세계의 능력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까지 들썩거렸다.
미쏠로지를 동경하는 능력자들은 아주 많았지만 능력자가 되고 싶어하는 일반인들은 그보다 훨씬 많았다.
훈련소는 무료 운영이 아닌 선택제 운영으로 돈을 지불하고도 입단 허가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정부 발표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관련부서가 마비될 정도의 관심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전세계의 돈 좀 있다는 재벌들, 혹은 꼭 히어로가 되고 싶다고 하는 일반인들까지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들어 아직 기초공사를 다지고 있는 훈련장 근처에 살 곳을 잡기 시작했다.
쏟아져 들어오는 해외인들 때문에 공항은 몸살을 앓았고 전 세계 어딜 가든지 한국행 비행기편이 끊이질 않았다.
이런 전세계적인 관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현은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눈을 비비며 하품했다.
오늘로 33일 째.
'슬슬 일어날 때가 됐는데.'
재후의 경우에는 28일만에 의식을 회복했고 채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종현의 경우엔 그 시간이 조금 늦어지고 있었다.
'마력핵의 용량이 크기 때문일까?'
재후나 채은이 받은 마력핵의 족히 3배에 달하는 용량이었으니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가능성은 있었다.
차분하게 기다리자고 마음 먹은 상현은 그렇게 일주일을 더 기다리고 나서야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너무 조용하다.'
고치엔 반응이 없었다. 마치 죽은 것처럼 말이다.
이전의 각성자들은 마력이 힘차게 요동치며 상현이 마력을 제어하느라 애를 먹었는데 이번 각성은 어쩐지 너무 쉽게 진행됐던 것이다.
당황한 상현은 손에 마력을 돋워 검은 고치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한참 그렇게 고치를 풀어내자 창백하게 잠들어 있는 종현이 눈에 들어왔다.
상현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그의 맥을 짚는 일이었다.
'너무 약해.'
눈썹을 찌푸린 그는 곧바로 종현의 몸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어떤 이물질이나 좋지 못한 기운이 해를 끼치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한참을 고민하던 상현은 이대로 종현을 깨워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대로 종현을 깨워버리면 800만K의 마력이 녹아든 약효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는 셈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제대로 알아봐야 겠다고 생각한 상현은 조심스럽게 그의 머리에 손을 감싸고 정신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그의 잠들어 있는 의식과 연결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파직-
금빛 스파크가 튀며 상현의 정신이 잠들어있는 백종현의 세계로 진입을 시도했다.
사람과 신의 구분을 막론하고 정신세계의 구성 법칙은 기본적으로 동일한데가 있었다. 그 사람의 상태가 풍요로움을 뜻한다면 정신또한 풍요로울 테고 삭막하거나 문제가 있는 상태라면 그것이 정신 세계에 반영된다.
'이게 뭐야?'
백종현의 정신세계에 접속한 상현은 깜짝 놀랐다. 완전히 폐허가 된 도시, 정신세계 속의 세상이 폐허가 됐다는 소리는 그의 정신이 붕괴 직전이거나 그에 준하는 상황임을 의미했다.
'어째서?'
각성에 들기 전까지만 해도 그 어떠한 문제나 고민의 빛을 보이지 않았던 종현이었기에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종현이 만들어냈을 대도시에 발을 디딘 상현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이 어딘가에 종현이 있을테지만 그를 자극해 잠을 깨우는 것은 곤란했다.
상황을 살피러 온 것이지 그의 잠을 깨워서 마력핵의 약효를 허공으로 날려버리려고 온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쿠구구궁-
"음?"
그리 멀지 않은 곳, 굉장한 진동이 느껴졌다. 상현은 맨 몸으로 정신없이 진원지로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든지 검을 손에 들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종현의 정신을 자극하게 될 터였다.
맨 몸으로 떨어졌으니 맨 몸으로 움직이는 것이 좋았다.
"앗!"
환상현은 문제의 장소에 도착하고서는 깜짝 놀랐다. 진동을 일으키는 것은 지팡이와 몽둥이를 끼고 난리를 피는 트롤이었다.
중국에서 잡은 놈보다 좀 작긴 했지만 그래도 거의 웬만한 빌딩크기를 자랑했다.
"부르르르!"
불이 사방으로 떨어지며 건물이 무너지고 일부 생성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트롤의 공격을 받아 정신없이 도망치고 있는 자, 바로 백종현이었다.
"선배!"
더 이상 사태를 방관할 수 없다고 판단한 상현이 손을 입 앞으로 모아 백종현을 불렀다. 이곳은 정신세계, 만약 트롤이 종현을 찧어 죽이기라도 하면 엄청난 정신적 고통과 함께 종현은 백치가 되거나 심할 경우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
상현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종현이 방향을 틀어 열심히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가 되자 종현은 눈에 불을 켜고 소리쳤다.
"야 이 개 씨발! 개새끼야! 이런 건 안알려줬잖아!"
상현을 욕하는 그는 이제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흑룡 백종현, 그는 지난 각성기간동안 하루에 한 번 이상 죽어가며 이 세계를 지켜내고 있던 불쌍한 인간이었다.
============================ 작품 후기 ============================
백종현 불쌍해....
하지만 상현도 이럴줄 몰랐다는 사실....
휴 숨좀 돌리고 12시에 또 올릴 글을 쓰러 가겠습니다.
-p.s 칼업뎃 못할지도 몰라요 소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