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3 회: 습격 -- >
아레스가 죽은 뒤, 상황은 종료를 맞이했다.
아레스가 죽자 그의 군단은 지급받던 힘의 공급이 끊긴 탓인지 눈에 띄게 약해졌고 D.SWAT과 헤파이토스의 병사들에게 순식간에 처리됐다.
유럽 디멘션 홀 이상발생의 주범이었던 아레스가 쓰러지자 혼란도 금새 진정되기 시작했다.
한 번 도망간 시민들은 좀처럼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그리스는 이제 불신의 땅이 되버렸다) 적어도 북상하던 괴수들은 전부 처리해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일행은 200만K 이상급의 마력핵 2개를 더 회수할 수 있었다.
'일단 강화는 끝났으니....'
상현은 대원들과 의견을 나눈 뒤 핵 2개를 전부 그리스 복구에 지원하기로 했다.
이같은 결정에 그리스 시민들은 감동의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들의 이름을 연호했다.
비록 출정이 늦긴 했지만 그들은 목숨을 걸고 괴수들의 중앙, 본토에 직접 출격한 영웅들이었다.
거기에 수십조 이상의 가치를 지닌 핵을 복구 발전에 힘쓰라고 선뜻 내놓은 것은 정말 대단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정부 직속의 공격대라고 해도 개인의 명예, 보수에 대한 욕심이 큰 동기라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랬다.
한국으로 귀국하는 비행기 안, 대원들 대부분이 피곤해서 곯아떨어졌지만 상현의 옆에 앉아있던 정석영만큼은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있었다.
"어째서 그런 결정을 하신 겁니까? 미쏠로지 대원들의 강화가 일차적으로 한 바퀴를 돌았다곤 하지만 핵을 더 투입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대원들은 이제 막 신성의 입문에 든 수준, 핵을 연달아 투입하면 얼마든지 추가 강화를 꾀할 수 있었다.
정석영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상현의 결정을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리스는 이미 박살이 났으니 앞으로도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라면 더욱 전력강화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의 질문에 상현이 차분한 목소리로 답을 했다.
"물론 저희 대원들은 더욱 강해질 여지가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을 안 이상 그것을 봉쇄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목적과 봉쇄요?"
"이번 일은 전부 마신의 수작이었습니다. 그들은 배신한 아레스를 이용해 세계에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불안감, 공포의식을 조성하려고 했죠. 마신들은 그런 부정한 기운을 매우 좋아합니다."
이번 아레스의 사건은 그 목적이 명백했다. 인류에게 멸망의 시나리오를 보여주며 공포심을 자극, 자신들이 활동하기 편한 무대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목표에 아레스의 행동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리스가 무너지는 것을 보며 유럽 전체가 얼어붙었고 그 모습을 보며 전 세계가 서로 살아남기 위해 수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괴수로 얻은 피해는 단순히 재산 뿐만이 아니었다. 인류의 유대가 꺾일 뻔 했다는 것이 훨씬 더 컸던 것이다.
"이대로 이번 일을 덮는다면 이 분위기가 반전 될 것으로 보이진 않았습니다. 미쏠로지는 마신의 초기 목적을 분쇄할 전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모든 계획을 예측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말인즉 크건 작건 피해를 입고 나서야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이야기였고 이번 그리스 사태의 경우는 피해를 매우 크게 입은 경우였다.
"그리스 시민들은 무너진 도시를 보며 좌절했죠. 심지어 괴수들이 모두 물러났음에도 고향으로 돌아오려는 수가 극히 적었습니다. 왜인줄 아시지요?"
"다시 괴수가 나타날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그리스는 이미 큰 피해를 두 번이나 겪었습니다. 또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깊게 깔려 있으니 시민들의 마음을 돌리기 쉽지 않았죠. 그래서 마력석을 그냥 건넸던 겁니다."
잘만 이용한다면 도시 하나를 유지시킬 정도의 발전소를 가동시킬 수 있는 것이 초월급 괴수의 마력핵이다.
"그리스는 완전히 무너져서 그들 스스로는 더이상 일어설 힘이 없었습니다. 유럽연합에서도 파괴된 그리스를 보며 섣불리 지원을 할 수 없었을테죠."
그리스의 다음 타겟으로는 누가 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자원을 쟁여둬야 한다는 생각이 그들을 지배했을 것이다.
"단 두 개의 핵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손해 보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그리스 분위기는 어떻던가요."
"그야...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두 팔 걷어 붙이고 복구를 시작했더군요."
"희망과 평온함, 그것은 마신들이 원하는 부의 감정에 정반대 되는 개념입니다. 천만이 넘는 시민들이 희망을 가졌고 그런 그들을 보며 유럽연합에서도 복구의 손길을 지원하겠죠."
상현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석영은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스 시민들 뿐만 아니라 유럽의 인구까지 합하면 정말 많은 인구가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불안감과 불신에 차있던 그들이 상현이 선뜻 기부한 마력핵 2개로 인식을 바꾼 것이다.
마음가짐이 달라졌으며 다시 서로 돕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신이 초기에 목적한 바를 완전히 분쇄하는 것이며 동시에 인류 스스로의 복구 능력을 끌어올리는 결과로 이어지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검사관님, 우리는 최후의 전쟁에 홀로 살아남자고 힘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은 정석영의 정곡을 찔렀다.
최후의 전쟁이 일어나는 날, 그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홀로 전력을 유지해 세계를 구하는 조국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상현의 머릿속에 있는 최후의 전쟁은 전 인류가 힘을 합해서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지 결코 누군가의 주도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인식을 바꿔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틀을 부수고 서로 힘을 합치는 것, 그것이 상현이 꿈꾸는 이상이었다.
대단한 환호를 받으며 복귀한 일행은 오래 쉬는 일 없이 곧바로 전력을 가다듬으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건에 대비했다.
얼마나 많은 신들이 마신들의 편으로 합류했는지 알 수 없었고 여전히 세계에는 많은 수의 디멘션 홀이 열리고 닫히길 반복했다.
이대로 가만히 게스트 하우스에 눌러앉아 있다가는 마신들이 원하는 대로 어두운 감정이 인간들을 좀먹을 것이 뻔하기에 그들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세계를 돌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1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니까 요는 이 사람들에게 마력을 느낄 수 있도록 회로를 뚫어달라는 이야기지요?"
"네. 수고스럽겠지만 부탁을 좀 드리겠습니다. 저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인원이라서요."
"흐음."
상현이 건넨 자료를 보던 여성은 호흡을 몇 번 고르며 말했다.
"어렵진 않겠지만 숫자가 너무 많은 것 아닐런지요?"
머리에 황금 테를 두르고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여성, 상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녀는 누가 보더라도 나 여신이오, 하는 오라를 팍팍 풍기고 있었다.
은은한 신성이 그녀의 주변을 감돌아 뭣 모르는 사람도 그녀가 여신임을 짐작케 할 정도였다.
지난 1년간 미쏠로지는 굉장히 많은 일을을 해냈다.
전 세계를 돌며 초월급 레이드를 하는 것은 주 업무가 됐고 그러는 사이 전 세계 최초로 대규모 능력자 육성단지가 문을 열었다.
대원들이 레이드를 하는 사이 상현은 이곳 저곳 불러다니기 바빴다.
미쏠로지 에리어라고 이름 붙여진 이 거대한 능력자 양성소는 오픈 시작 전부터 지대한 관심을 받아왔고 영업 개시 첫 날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처음 받아들이기로 한 10만 명의 인원 중에 5만 명 가까이는 한국 정부에서 먼저 채워넣었다. 주로 정계에 인맥이 닿아있는 젊은이들이 그 대상이었다.
어떻게 보면 불합리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상현은 그것까지 신경을 쓰진 않았다.
그것 말고도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실은 인원 추첨에 관여할 여력도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5만 명, 직접 가입이 가능한 그 절반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엄청난 인원이 몰려들었다.
일체의 온라인 접수를 거부하고 방문 접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한 시간 만에 예약이 만료되었다.
오픈 당일 날, 양성소 바깥으로는 줄이 엄청나게 길게 늘어서기 시작했는데 그 길이가 과장을 좀 보태 도시 한 바퀴를 두를 정도라고 했다.
그 정도 사람이 몰렸으니 당연히 가입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속출, 소리를 지르며 나도 받아달라고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런 통증을 겪으면서 상현은 나머지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가 정부에 추가로 부탁한 것은 신과 인간 사이에 있는 장벽을 낮추는 일이었다.
비단 지구 뿐만이 아니라 전 차원을 막론하고 인간은 신이란 존재에 대해 여러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반발심이었다.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신이 일을 계획해도 그것이 신이 했다는 것이 알려지는 순간 반발심을 가지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청개구리 심보처럼 말이다.
상현은 마신과의 전쟁에서 인류가 신들과 함께하길 바랬다. 이것은 지구의 평화를 위한 전쟁이었기에 작은 반목도 일어나선 곤란했다.
정부는 상현의 뜻을 제대로 알아들었고 현재 전 세계에 다수의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반발을 일으키지 않도록 손을 쓰기 시작했다.
'한국에 신이 나타났다.'
'그들이 정부의 뒤를 봐주고 있다.'
이런 종류의 은밀한 소문은 아주 조용하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소문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신이 돌봐줘서 우리가 지금 세계 최고 국가가 된 거라는데?"
"정말 그러면 미쏠로지 대장은 신의 대리인쯤 되나?"
일반 시민들의 입에서는 신에 관한 소문이 오르락내렸다.
대부분 우스갯소리로 치부하는 수준이었지만 효과는 있었다. 신에 대한 거부반응이 확실히 줄어들고 있었다.
일부 종교단체에서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흥분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신에 관한 장벽이 낮아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정부에서 특히 주력한 것은 잊혀진 신화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리스, 북구, 이집트에 대한 신화에 대한 서적을 다시 찍어내기 시작한다던지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했다.
물론 그것은 전부 비밀리에 이뤄지는 일인지라 사람들은 누군가 과도하게 정보를 뿌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도 못했다.
국내의 흐름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사이 홀로 던전 탐험을 계속 하던 상현은 스카디처럼 봉인석에 갇혀있던 신들을 몇 명 더 구할 수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지금 앞에서 서류를 살피고 있는 여성.
그녀는 세상의 모든 마법을 펼칠 줄 안다는 뛰어난 마법사, 마법의 여신 이시스였다.
양성소 마법 교과목의 특별 교관으로 자리를 잡은 그녀는 이미 엄청난 대부대를 뒤로 달고 다니는 인기인이었다.
평소에도 신성을 감출 생각이 없다는듯 그녀는 청아한 기운을 흘리고 다녔는데 원소계열 능력자들은 그녀를 보면 고개를 절로 숙였고 둘 이상 모인 자리에서는 그녀를 찬양하기 바빴다.
마법 교과를 들을 필요도 없는 능력자들이 강의 신청을 해서 그녀가 강의를 할 때면 학과장이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이미 10만의 능력자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 많은 인원은 어떻게 된 건가요?"
그녀가 명단을 보며 상현에게 물었다.
"늘려야죠."
"얼마나 생각하고 계시죠?"
그녀가 관심이 있다는 듯 물었다.
"백만. 최소 백만을 더 늘릴 겁니다."
"어머나, 그렇게나 많이요?"
그렇게 많은 수치를 제시할 줄은 몰랐는지 이시스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물론 인원이 많다보니 초기 방식을 고집하면 한도 끝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상현이 말하는 초기 방식이란 그가 재후나 종현을 탈바꿈시켰던 일대일의 전수방식을 말했다.
양성소 초기엔 그런 방식을 고집하기도 했지만 정말이지 진이 빠지는 작업이었다.
스카디와 헤파이토스, 그리고 던전에서 부활한 신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더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일이었다.
"헤파이토스 씨가 마법회로를 자동으로 각인시키는 새로운 발명품을 준비했는데 아직 미완성 단계인지라 마법에 관련한 조언을 받고 싶으시다고 하더군요. 성공만 하면 더 이상 가입 희망자들을 붙잡고 옷을 벗기지 않아도 될 테지요."
상현이 그렇게 말하자 이시스가 피식 웃었다.
"알겠습니다. 저도 잘 되기를 바래야 겠군요. 아무리 그래도 백만 명은 너무 많거든요. 아참."
발걸음을 돌리려던 그녀가 다시 상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신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비밀인가요?"
"저는 신이 아니라 반신인걸요."
"그거나 그거나요. 반신이라고 해도 사람들의 신앙을 얻으면 상당한 도움이 될거라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지지한다는 것이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것은 그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2대 신인 이시스는 과거 1대 신들에 비해 약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양성소 내에 엄청난 세력을 거느리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상당한 마력을 회복했다.
그녀가 입버릇처럼 내뱉는 소리는 '안녕하세요. 여신 이시스입니다.' 였는데 그녀의 추종자들은 그 말을 하루라도 안들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고 할 정도였다.
"스카디 씨는 요즘 아주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들었어요."
"아아...."
그녀의 말을 들은 상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울에 가있을 재후를 떠올렸다.
요즘 출격 일정이 없는 날이면 재후는 날마다 사람 많은 명동 거리로 향했다.
'차마 그런 일은 못시키겠어.'
재후를 떠올린 상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언제까지 해야 됩니까!"
"어허, 신규 가입자가 백만에 도달하기 전까진 안 돼."
'이런 쓸모도 없는 잉여신한테 누가 신도를 자청하냐고!'
스카디의 말에 얼굴을 와락 구긴 것도 잠시 재후는 금새 영업용 미소를 회복하고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줬다.
"예, 미쏠로지 대원 신재후입니다. 전단지 받아가세요."
환상현이 미쏠로지의 간판 얼굴이긴 했지만 재후 정도면 관심 있는 사람은 알아볼 정도의 인지도는 가지고 있었다.
"어! 진짜 미쏠로지 분 아니에요?"
사람이 모여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저도 주세요."
"무슨 전단지에요?"
"겨울의 여신...스카디. 신도 대모집? 이거 뭐에요?"
"신흥 종교에요?"
사람들의 관심에 얼굴이 붉어진 재후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정해진 멘트를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믿으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실 수 있습니다. 여신님이 '미인'인지라 즐거움이 가정에 가득하실 겁니다. 예예, 전단지 받아들 가세요. 돈은 받지 않습니다."
재후는 자괴감이 드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그 모습을 뿌듯하다는 듯이 지켜보는 스카디 때문에 자리를 뜰 수도 없었다.
'차라리 초월급 괴수랑 일대일로 싸우는게 낫지. 내가 다시는 신 따위 믿나 봐라!'
소리없는 분노를 태우며 재후는 그렇게 울었다.
============================ 작품 후기 ============================
과도한 호객행위 금지!
이제 슬슬 신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타이밍입니다.
어떻게 굴러갈지 지켜봐주세요.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 오늘은 연참할 수 있도록 힘을 써보겠습니다...끆..